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곽영훈 에세이] 올림픽 공원, 짬뽕이 되다

운영자 2006.01.20 17:20:41
조회 2711 추천 0 댓글 5

  3. 평화, 멀고도 험한 길

  
올림픽 공원, 짬뽕이 되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발족되었고 본격적인 올림픽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워낙 새롭고 거대한 사업이라고 느낀 나머지 준비 과정이 수월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전에도 나는 이미 서울시의 의뢰에 따라 주경기장과 인근 시설에 대한 윤곽을 잡아 두고 있는 상태였다. 올림픽 대로의 건설 과정은 1976년부터 점증적으로 입안된 한강 종합 개발 계획의 큰 틀 안에서 추진되고 시행된 것이었다.

  그리고 주경기장과 주변 시설이 본격적으로 설계되어야 했다. 1982년 초 서울시에서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파견되어 온 배 시설국장과 건설부에서 파견된 홍 과장,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과 환경그룹’에서 발주한 올림픽 공원 마스터플랜의 구상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대화 도중 몽촌토성 위에 일부 경기 시설과 TV 중계 타워를 세우는 것이 제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림픽 공원이 세워질 터는 역사와 유례가 깊은 몽촌토성(夢村土城) 10만여 평이 있는 곳인데, 그들은 그것을 그냥 흙더미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몽촌토성이 어떤 곳인가? 백제 시대 초기의 건국지인,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소중한 유적지가 아닌가?

  1972년 뮌헨 올림픽 공원에 갔을 때 본 라블힐(Rubble Hill)이라는 인공 언덕 공원은 2차 세계 대전의 쓰레기를 묻고 그 근처를 파서 인공 호수를 만든 후 그 인공 호수를 판 흙으로 복토를 하여 아름답게 만들어진 창의적인 설계의 결과물이었는데, 우리는 선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곳을 그렇게 가치 없는 곳으로 보다니 ……. 곧바로 각계에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고, 다행히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나는 올림픽 공원의 전체 마스터플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예산이 1,200만 원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전체 작업 물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지만, 돈 때문에 마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일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부터의 내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 없이 기꺼이 작업에 임했다. 그렇게 시작한 올림픽 공원 마스터플랜 초안 작업은 정말 초스피드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때 또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여러 대학교 내 경기장이나 기존 장충체육관 같은 공공 시설을 이용해서 올림픽 예산을 줄이자는 경제적 발상이 부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안은 경기를 관람하는 국내외 관객들의 이동 거리 면에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유를 알아보니 바로 2년 전에 개최되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운동장 시설이 서로 많이 떨어져 있었던 데다, 그것이 올림픽 이후 시설 관리나 시민들의 시설 활용 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나는 78만 9천 평의 체비지가 있는 이상, 그곳에 기자촌이나 선수촌을 지어 결국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체육대학교와 고등학교를 세우면 시설이 낭비되지 않고 오래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제시했다. 또한 중요하게 마스터플랜에서 고려해야 될 것으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와 자연이 TV를 통해 전세계인에게 생생하게 생중계되는 효과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한강과 몽촌토성, 그리고 남한산성을 보이고 또 이들을 잇는 성내천변이 체육과 휴양의 계곡으로 만들어질 때 세계인들의 눈에 오래 기억되는 스펙타클일 것이라는 소신도 밝혔다.

  나는 이런 생각을 체육부 장관과 차관, 그리고 올림픽 조직 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에게 밝히고 협의를 하였다. 그 결과, 문제는 내무부 장관을 설득시키는 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은 노태우 씨였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고맙게도 곧바로 노태우 장관에게 마스터플랜을 브리핑할 시간을 잡아 주었다. 내무부 장관실에는 이원경 체육부 장관과 김용식 올림픽 조직위원장, 전상진 부위원장 등이 배석했다.

  나는 가로, 세로 1m 정도의 도면들을 동원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78만 9천 평의 땅을 두고 왜 경기장을 분산시키려 하느냐는 것이 내 설명의 요지였다. 노 장관은 차분히 내 설명을 들었고, 결국 내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이 대화 중에 중요한 대목은 전체 공사비가 얼마나 될 것이냐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정부 투자 부분이 1,800억 원 정도였다. 경기를 치른 후 얼마나 돈이 남는 장사가 될는지는 정말 예상키 어려웠지만, 잘만 하면 들어간 돈만큼은 회수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올림픽 공원 마스터플랜은 1982년 7월에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어떻게 된 일인지 국제 설계 입찰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1984년에 국내외 업체가 모두 참여하는 국제 입찰이 시행되었다.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의뢰하여 플랜을 잡은 것이고 이를 주무 장관이 승인한 것인데 이렇게 무시되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국제 입찰을 하게 되면 예산도 예산이려니와 공사 기간이 줄어들 텐데 이 귀중한 시간의 낭비를 무슨 수로 보상 받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억울한 생각을 접고 국제 입찰에 참여하였는데, 국제 입찰에 나온 프로그램의 내용들은 이미 내가 만들어 놓은 마스터플랜과 대동소이했다. 국내외의 많은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국제 공개 입찰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해할 수 없게 나왔다. 나도 입선작 속에 포함은 되었으나 정작 당선작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같이 입선한 한 독일 업체 회장의 말은 나의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 나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내 생애에 이처럼 비애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있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본부측의 행태입니다. 세상에 당선작이 없다니,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한국 사람들, 진짜 몰상식하네요!” 하며 격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며칠 동안 몹시 흥분해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가 한국을 욕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온전히 납득시킬 만한 말이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우리 그룹의 이름으로 그와 함께 입선을 했지만, 당초 마스터플랜을 짠 사람으로서 참으로 어처구니없음을 느꼈다. 당장 아시안 게임이 1986년에 개최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코앞으로 닥쳤는데 당선작은 없고 네 개의 입선작만을 선발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올림픽 공원은 결국 네 사람의 작품이 짬뽕 된 채 만들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원래 내 마스터플랜의 정신과 기본 공간을 잘 살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를 탓하거나 속상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 같이 입선한 독일 건축가의 마음을 달래 주었던 때처럼, 단지 나의 꿈이던 이 민족의 올림픽이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열렸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속..

>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42 [곽영훈 에세이]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한 삶터를 위해 [58] 운영자 06.02.13 6361 5
41 [곽영훈 에세이] 웃음이 있는 동심, 아름다운 학교 [5] 운영자 06.02.10 3041 0
40 [곽영훈 에세이] 더 이상 죽이지 마라! [6] 운영자 06.02.09 3277 2
39 [곽영훈 에세이] 세계와 인류의 심장부 [2] 운영자 06.02.08 1956 1
38 [곽영훈 에세이] 세계를 향하여 [2] 운영자 06.02.07 1951 0
37 [곽영훈 에세이] 서울의 ‘전문의사’를 꿈꾸며 [3] 운영자 06.02.06 2366 1
36 [곽영훈 에세이] 서울과 함께 신음하고 아파하며 [4] 운영자 06.02.03 2582 0
35 [곽영훈 에세이] 만신창이가 된 서울 [3] 운영자 06.02.02 2661 0
34 [곽영훈 에세이] 통일 평화시(統一 平和市) [3] 운영자 06.02.01 2512 1
33 [곽영훈 에세이] 현실로 다가온 엑스포의 꿈 [6] 운영자 06.01.31 2377 0
32 [곽영훈 에세이] 올림픽의 평화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3] 운영자 06.01.27 2498 0
31 [곽영훈 에세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평화의 불 [4] 운영자 06.01.25 2653 0
30 [곽영훈 에세이] 고르바초프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 [5] 운영자 06.01.24 2551 0
29 [곽영훈 에세이] 제발 도와주세요!! [2] 운영자 06.01.23 1934 0
[곽영훈 에세이] 올림픽 공원, 짬뽕이 되다 [5] 운영자 06.01.20 2711 0
27 [곽영훈 에세이] 한강 종합 개발 프로젝트 [5] 운영자 06.01.19 2889 0
26 [곽영훈 에세이] 세계의 꿈과 희망 올림픽 유치 [2] 운영자 06.01.18 1734 0
25 [곽영훈 에세이] 세계인을 위한 사랑방 '영종도' [2] 운영자 06.01.17 2152 0
24 [곽영훈 에세이] 지구촌의 새로운 도시들 [2] 운영자 06.01.16 2206 0
21 [곽영훈 에세이] 수도를 옮겨라! [3] 운영자 06.01.13 3114 0
20 [곽영훈 에세이] 전국이 꿈을 가진 도시로 [2] 운영자 06.01.12 1643 0
19 [곽영훈 에세이] 지하철 2, 3호선 제안 [6] 운영자 06.01.11 2787 0
18 [곽영훈 에세이]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 [7] 운영자 06.01.09 2368 0
17 [곽영훈 에세이] 멋진 한강 만들기 [5] 운영자 06.01.06 2089 0
16 [곽영훈 에세이] 아름다운 서울 만들기 [2] 운영자 06.01.05 1718 0
15 [곽영훈 에세이] 배워서 남줘라! [5] 운영자 06.01.03 2254 0
14 [곽영훈 에세이] 대학로를 살려라! [3] 운영자 06.01.02 2262 0
13 [곽영훈 에세이] 남대문과 남산이 끙끙 앓는 소리 [3] 운영자 05.12.30 2471 0
12 [곽영훈 에세이] 김대중 씨를 위한 장미 한 송이 [6] 운영자 05.12.29 2386 3
11 [곽영훈 에세이] 큰 안목 큰 숙제 [6] 운영자 05.12.27 2818 0
10 [곽영훈 에세이] MIT와 하버드에서의 추억 [5] 운영자 05.12.26 3377 0
9 [곽영훈 에세이] 징기스곽 [6] 운영자 05.12.23 1865 0
8 [곽영훈 에세이]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 가다 [8] 운영자 05.12.22 2875 0
7 [곽영훈 에세이]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6] 운영자 05.12.21 2254 0
5 [곽영훈 에세이] 글을 시작하며.. [22] 운영자 05.12.19 2752 0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