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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01-

김유식 2003.04.02 14:27:47
조회 17241 추천 11 댓글 0
  1999년 9월 19일. 일요일. 오후 4시 20분. 공주 교도소 2동 상6방.

"돈 달라고 했는데 배 째라는 거야! 일 시킬 때는 굽신거리더니 말이지. 시팔 그래두 꾹 참았어. 잘 못하면 돈 떼이겠다 싶어서 다만 얼마만이라도 달라고 했지. 이자? 무슨 이자냐...원금도 못 받는데..."

"그래서요?"

"아...글쎄...그때 누군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이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사장님 결제 부탁드립니다.』 하잖겠어? 그랬더니 이 사장 녀석이『얼마지?』하면서 지갑에서 백 사십만 원인가를 꺼내 주잖어....돈 한푼 없어서 아침도 굶었다는 새끼가...참나.."

"그 새끼 나쁜 새끼네요."

"그래서 그 기생오라비한테 물었어.『미안한데 그거 무슨 결제요?』 하니까 이 기생오라비 녀석이 대답을 안 하는 거야. 그러더니 영수증을 하나 끊어주더라고 내가 냅다 빼앗아서 봤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내가 침을 튀겨가며 떠들기에 정신없었다. 다들 무료하게 보내는 따뜻한 가을의 일요일 오후인데 이 사내는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구속 사연을 자랑인양 들려주는 것이 취미였다. 신입은 신입대로 방안 분위기도 잘 모를 때인지라 누가 이렇게 말을 걸어주니 흥미 있는 척 들어주었다. 어제 이곳으로 이감되어 온 신입은 폭력 재범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는데 곧 출소할 예정이었다. 징역 기간이 짧은데도 이감 온 것을 보니 사고를 쳤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은 지내고 있던 교도소의 모범 재소자 실에서 출소 대기하며 지내는 것이 상례였지만 공주 교도소의 이곳도 모범 재소자 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안 개방 교도소 같은 곳만큼은 아니어도 미결수들이 법정이나 교도소 밖으로 나갈 때는 사복을 입히는 등 인권이 많이 개선된 교도소로도 이름이 높았다.

"아...글쎄....영수증엔 말이야 이렇게 써 있던 거야.『황진이』라고..개새끼!"

"황진이가 뭔데요?"

"가짜 과부들 득실거리는 과부촌이거든. 같은 동네에 있으니까 내가 모를 리 없지."

"허...그래서요?"

"잠깐...시팔 목 탄다. 물 한잔 마시고..."

"......"

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또 물었어. 『이 사장! 그래 인테리어 해 준 값 칠십만 원이 없다는 사람이 황진이에는 무슨 돈으로 갔나? 정말 이럴 거야?』 하면서 대들었더니 그 밑에 녀석이 나서는 거야! 『박 사장님 너무 하십니다.』 이러잖아."

"밑에 녀석이라뇨?"

"아...그 자식이 데리고 있는 부하 직원이지 뭐. 그래서 『넌 뭐야? 자네 일 아니니까 빠져!』 했지. 그랬더니 이 자식이 벽지하고 장식해준 거 다 뜯어 가라잖아. 인테리어 했던 거 없던 일로 하겠다나?"

"아니 그런 나쁜 새끼가 있어요? 그래서요?"

"내가 그거 같은 동네 사무실이라고 얼마나 정성 들여 해줬는데 뜯어가라니 눈물이 다 나오더라고. 같은 동네라고 계약금도 안 받고 한 거였어. 내가 다시 잘 말했지.『이 사장. 우리 이러지 맙시다. 돈 준다고 하면서 지금 몇 달째 안주고 있잖아요. 내 오늘 다 달라는 것도 아니요. 다만 몇 십만 원이라도 줘야 되지 않겠어? 오늘 우리 딸애 스케치북 사달라는 것도 못 사줘서 속상하단 말요.』하면서 애원했지."

"한 번 안주는 새끼는 그래도 계속 안 주잖아요?"

"맞아. 밑에 녀석이『우리 사장님 돈 없으니까 다음에 오세요.』 하면서 또 나서더라고...그 때 사장이란 새끼가 경리 보는 애한테 묻는 거야. 『박양아. 요즘 스케치북이 얼마냐?』 그랬더니 경리가『이, 삼천 원쯤 하는데요.』 하더라고...난 무슨 얘기하나 했더니, 사장 자식이 지갑에서 삼천 원 주면서, 그걸로 애 스케치북인가 뭔가 사주고 다음에 다시 오라더만..."

"햐...그런 개새끼는 밖에만 있었어도 내가 조져 버리는 건데!"

"나도 야마 돌았지! 그렇다고 내가 뭐 힘이 있나? 싸움을 잘하겠나? 버럭 소리를 질렀어!『그 돈 더러워서 안 받고 만다! 잘 먹고 잘 살아봐라!』 그랬더니, 사장 새끼가 칠십 만원 굳었다며 경리한테 점심으로 청요리 시켜 먹자고 하는 거야. 경리 년이 바로 중국집에 전화 거는 거 보고 있으려니까 폭발하게 되더만..."

사내는 아직도 이가 갈린다는 듯이 연신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

"뵈는 게 없었지. 경리 책상 위에 거 뭐야? 그거 종이에 구멍 뚫는 거 있잖아? 그걸 들어서 냅다 후려쳤어! 이 자식! 내가 딱 칠십 만 원 어치만 패겠다! 하면서 대여섯 번 호박통을 찍었더니 직원 새끼는 파출소에 신고한답시고 도망가고, 누가 내 귀를 물어뜯잖아. 정신 차리고 보니까 경리 년이 내 귀를 물어뜯고 있더라구."

"아니 그 년은 왜 형님 귀를 물어뜯습니까?"

빼빼 마른 사내는 탄탄해 보이는 체구의 신참이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계속 떠들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경리는 고등학생인데 월급을 안 주는 모양이야. 그 이 사장이란 놈이 가끔 데리고 잘 때마다 몇 만 원씩 줬던 모양이더라구. 그래서 정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가재는 게 편이라고...시팔 그래서 내 귀 이렇게 됐잖아."

사내는 뿌듯한 표정으로 신참에게 자신의 귀를 보여주었다. 사내의 귀는 괴물이 뜯어먹은 것처럼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난 귀가 아파도 계속 사장 놈을 줘 팼지! 많이도 아냐. 딱 칠십 만 원 어치."

"그래서 달리셨군요?"

"난 칠십 만 원어치 팬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사장 새끼가 성형해야 어쩐다 하면서 칠천 만 원 달라잖아. 그냥 들어가 살겠다고 했지. 여긴 굶진 않으니까...."

"아니 진단이 어떻게 나왔기에 칠천 만 원이나 달래요?"

"아...그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나머지 재소자들은 책을 읽거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창살 근처에서 비둘기에게 땅콩을 주고 있던 이광혁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어이 아우님. 자넨 나가면 뭐 할 거지?"

나직하고도 힘있는 목소리로 묻는 사람은 키가 훤칠하고 양 눈매가 매섭게 생긴 30대 중반의 재소자였다. 다려 입은 듯한 깨끗한 사제 재소자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전형적인 "빵잽이"로 보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인데 뭐 하겠습니까. 다시 우리 형님 모시고 살아야지요. 우리 형님은 잘 계시는 지..."

"아우님은 다음에도 같은 거로 달리면 감호처분 받겠구만?"

"에고...선배님. 우리가 언제 뭐 그런 거 걱정했습니까? 사회에서나 여기서나 사는 거야 똑같은 것 아닙니까?"

이광혁은 징역살이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최명규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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