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맥주전쟁 -06-

김유식 2003.04.02 14:33:35
조회 2348 추천 0 댓글 0
세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이 동시에 기분 나쁘면서도 우습다는 듯한 표정을 만들었다. 흰 운동화의 사내는 이런 일에 많은 경험이 있는지 섣불리 손을 쓰려 들지는 않았다. 잘못 손을 댔다가 재수 없으면 오히려 폭력으로 넘어 갈 수도 있는 일이고 체격이 듬직해 보이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느 바닥에서 노는 놈인지도 전혀 몰랐다. 또 같이 온 사람이 없는 가도 확인해야 할 문제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생각하는 척 하면서 안 방 창문을 통해 대문 밖에 누가 있는가를 살폈다. 아무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거실에도 김 사장의 마누라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자 실력으로 나가는 것이 사태 해결에 편할 것으로 보였다. "그 돈 이리 내라."    흰 운동화의 사내가 말하자, 돈 다발을 들고 있던 사내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운동화의 사내가 돈을 받아 양복 안과 옆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문지방을 넘어 거실로 나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김 사장! 나머지 돈은 되거든 연락하쇼. 연락 없으면 우리가 받으러 오고..."   돈을 주었던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 안되겠다. 도저히 돈 못 주겠으니 꺼내놓고 사라져라."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둣발 사내의 주먹이 날아왔다.   "쌍노무 새끼!"    김 사장이 다급한 마음으로 "응진아!" 하고 외쳤다. 흰 운동화의 사내를 쳐다보며 말하던 사내가 김 사장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다 그만 구둣발 사내의 주먹을 맞고 말았다.   응진이라 불린 사내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용수철처럼 튀어 거실과 방 사이에 있던 흰 운동화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흰 운동화의 사내가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응진이 뻗은 스트레이트가 안면에 작렬했다. 퍽! 소리와 함께 흰 운동화의 사내는 뒤로 바르게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응진이 다시 문지방을 넘어 방 안에 있던 구둣발 사내의 면전까지 온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구둣발 사내가 날렸던 주먹이 미처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맞은 상대가 맞았던 자리보다 더 가까이 와 있는 셈이었다.     구둣발의 사내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흰 운동화의 사내는 맷집이 좋아 한, 두 대 맞고 뻗을 인물도 아니었거니와 천부적으로 몸놀림과 눈치가 빨라서 쉽게 상대방에게 가격을 허락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방은 이미 분명 자신에게 한 대 맞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구둣발 사내의 두뇌회전도 여기까지였다. 자신의 복부에 응진의 주먹이 와서 꽂혔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주먹은 맥없이 허공을 휘저었고 복부에 밀려드는 고통에 상체가 앞으로 꺽였다.   "끅!"   고통은 상체뿐 아니라 무릎까지도 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후속타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몸을 굴렸다. 다행히 하늘이 노래졌다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때까지 더 날아오는 주먹이나 발은 없었다. 구둣발 사내는 공포심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15살 때부터 주먹 외에는 배워 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자신인데....   한편으로는 전광석화와 같은 상대의 주먹과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단단히 혼이 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것은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단지, 응진이라는 상대의 운이 좋은 것뿐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점점 사실로 변할 것을 구둣발 사내는 모르고 있었다. 응진은 구둣발 사내의 몸이 앞으로 꺽이고 옆으로 구르는 것까지 바라보고 있다가 흰 운동화의 사내가 앞이 아닌 뒤로 쓰러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약하게 내미는 주먹이라도 한 대 때리면 앞으로 쓰러져 일어나는 상대가 없었는데, 조금 전 흰 운동화의 사내에게 날린 주먹은 자신의 체중을 실은, 그야말로 황소라도 잠재우기 충분한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 지금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려 하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는 어느 새 다가갔는지 짙은 화장의 여자가 걱정과 경멸의 눈빛이 뒤섞인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응진이 다가가자 흰 운동화의 사내가 황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두 주먹으로 상체를 가리며 전열(戰列)을 가다듬었다. 응진은 흰 운동화 사내의 네 걸음 밖에서 그의 몸이 빠르게 싸울 채비를 갖추는 것을 보고 묘한 흥미를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보는, 적수다운 적수였다. 5년 전 전주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만났던 무서운 상대 - 이광혁 - 이후로 이런 맷집의 싸움꾼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싸움이라면 밥먹듯이 해 온지라 흰 운동화의 사내에게 뻗은 한 번의 주먹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그였다.   흰 운동화는 사내는 응진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자신이 일어나는 동안 그는 공격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응진이라는 놈은 상대방이 쓰러져 있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 깡패가 아닌 무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친 머리며, 몸에서 풍기는 기도로 보아서는 폭력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일어나는 동안 공격하지 않았다면 옷을 벗는 동안에도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흰 운동화의 사내는 어울리지 않던 양복 윗도리를 벗어 거실 바닥에 던졌다. 생각했던 대로 응진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싸움에 익숙해지면 상대의 눈빛만으로도 적의 공격 여부나 공격 방향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응도 빠르게 바뀐다. 응진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흰 운동화 사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 응진은 번개처럼 오른쪽으로 몸을 이동시킨 후에 왼쪽 발을 들어 뒤에서 달려 들어온 구둣발 사내에게 휘둘렀다.   응진은 두 눈을 흰 운동화 사내에게 고정시켰다가 자신의 발이 헛발질을 하게 되자 의아한 마음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상대를 너무 과하게 평가했다. 느린 구둣발의 사내는 응진의 왼발이 땅에 닿으려는 때가 되어서야 접근해 오는 중이었다.   구둣발 사내의 달려오다가 응진의 발을 보고 주춤거렸다. 응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반 바퀴 몸을 뒤집어 공중으로 떴고, 오른 발로 돌려 찼다. 무겁게 살에 닿는 느낌이 다리를 통해 전해져 왔다. 문제는 응진의 등 뒤에 있는 흰 운동화의 사내였다. 뒤에서 공격해 온다면 한 대 맞을 수밖에 없는 불리한 위치이기도 했다.   '제길 아깝다.'   흰 운동화 사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잠깐 동안 주저했던 자신을 욕했다. 등 돌리고 있는 응진이라는 놈에게 주먹 한 방이면 게임이 끝날 것도 같았지만 속단 할 수는 없었다. 그가 언제 뒤돌아서 주먹을 날려 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매너 좋은 파이터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것 자체도 용납되지 았다. 그러나 결국 사태 해결에는 도움되지 않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스스로 욕하는 중이었다.   응진은 흰 운동화의 사내가 달려들지 않자 앞을 향해 두 번 연거푸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미 응진의 발에 얼굴을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구둣발의 사내는 점점 밀리면서 다시 방 안으로 가서 쓰러졌다. 구둣발 사내는 먹다 만 족발과 김치, 쟁반 국수 위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또 얼굴에 발을 맞았다. 이번엔 조금 더 멀리 가서 자빠졌다. 주위에 누렇게 보이는 물이 튀었다. 역시 주춤주춤 일어서기는 했으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TV 앞에 흥건히 고여있던 소변이 구둣발 사내의 온 몸을 적시고, 김치 국물로 보이는 붉은 색이 바지를 물들였는가 하면, 얼굴에서도 붉은 피가 흘러 흡사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눈빛은 괴물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미 체념한 듯 온순하고 겁 많은 양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자식이 어디서 후이우찌(기습)를 해?"   다소 화가 난 듯한 응진이 큰 소리로 물었지만 구둣발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하긴 대답을 얻고자 물은 것도 아니었다. 응진은 바닥에 웬 물이 고여있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것이 채무자를 괴롭히기 위해 해결사들이 하는 고전적인 방법임을 알아차렸다. 이 녀석들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단체로 몰려와서 참았던 대변까지 보고 사라지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응진은 방바닥에 족발과 국수가 흐트러진 것을 보며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다. "넌 양아치냐? 돼지 새끼냐? 오줌싸고 그 옆에서 사료 처먹어?" 이때,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태야 이만 가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 사장. 오늘 대접 잘 받았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뵙게 되겠지요." 김 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내심 통쾌했으나 흰 운동화 사내의 말은 곧 복수하러 오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TV 옆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흐잉~ 형님 그냥 가요? 허잉~" 구둣발 사내가 덩치에 맞지 않게 팔뚝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 상대가 아니다." 흰 운동화 사내의 짤막한 대답에 구둣발 사내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울음소리는 더욱 커진 상태였다. "힝힝~" 짙은 화장의 여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흰 운동화의 사내와 근태. 둘이서 같이 싸우면 되겠건만 흰 운동화의 사내는 여길 떠나자고 하는 중이 아닌가? 그 사내는 자기 자신보다도 동생이 맞고 돌아오면 길길이 날뛰며 못 참는 성격임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하물며 제일 가깝다는 근태가 저렇게 비참한 꼴로 맞고 울고 있는데 특별한 외상(外傷)없이 그냥 가자고 하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동생 그냥 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긴 했지만 말투에는 이해 못하겠다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누님은 빠지세요." 흰 운동화의 사내는 대답을 마치고 거실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양복을 들었다. 손을 넣어 다섯 개의 돈 다발을 꺼내 거실 한 구석에 던졌다. 그리고 몸을 틀어 현관 쪽으로 향했다. 뒤따라 나오는 구둣발의 사내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현관까지 내려오자 더욱 서럽게 울어댔다. "흐잉. 형님은 내가 개 맞듯 맞는 거 보고도 괜찮으쇼잉? 엉헝" "가자." 현관까지 내려왔던 구둣발 사내가 갑자기 몸을 틀더니 다시 거실로 올라섰다. 주먹을 불끈 쥔 상태였다. "으헝. 형님! 지는 이대로 못가겄소! 지는 못가겠어라! 나 여기서 뼈다귀 묻을라요! 헝엉" 흰 운동화의 사내도 속이 쓰렸는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더 추한 꼴 보이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스럽기는 했으나 근태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그럼 넌 더 맞고 오던가." 흰 운동화 사내의 쌀쌀맞은 소리에 근태라는 사내의 울음소리가 목청껏 높아졌다. "허엉~ 광혁 형님만 계셨어도..히잉" 이때 거실에서 이들을 바라보던 응진이가 화들짝 놀랐다. 앞으로 나서면서 빠르게 물었다. "양아치 새끼! 너 지금 무어라고 했냐?" "으엉..긍께 씨불놈아 니눔은 우리 광혁 형님만 나오시면 파리 목숨이나 진배없는 거시여! 헝헝" 응진이 놀라며 말을 되받았다. "광혁 형님이라고 했냐?" "그래 씨불놈아. 으헝" >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9 맥주전쟁 -08- 김유식 03.04.02 2374 0
8 맥주전쟁 -07- 김유식 03.04.02 2434 0
맥주전쟁 -06- 김유식 03.04.02 2348 0
6 맥주전쟁 -05- 김유식 03.04.02 2661 0
5 맥주전쟁 -04- 김유식 03.04.02 2840 0
4 맥주전쟁 -03- 김유식 03.04.02 3366 0
3 맥주전쟁 -02- 김유식 03.04.02 4611 1
2 맥주전쟁 -01- 김유식 03.04.02 17241 11
1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