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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04-

김유식 2003.04.02 14:30:24
조회 2840 추천 0 댓글 0
오후 11시가 넘어 마지막 주문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붉어진 얼굴에 조금씩 취해 보이는 학생 무리들이 다시 주문을 하기 위해 바로 모여들었다. 바 안에 앉아있던 50대의 동양인은 자정이 가까워지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손님들을 보며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일어나 힘겹게 3층으로 올라갔다. 블루 라이언은 건물의 1, 2, 3층을 모두 쓰고 있었지만 학생 손님들이 넘치다 보니 층계마저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것이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스쿨 펍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양인은 3층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가 한 백발의 노인 앞에 앉았다.   피곤했던지 노인은 소파에 앉아 졸고 있었으며, 벽 쪽의 TV는 켜진 채로 채널 4의 방송을 내보내는 중이었다. 노인이 깨지 않게 코트를 조심스레 내려둔 동양인은 이제는 왜소해진 체구의 노인을 바라보며 희미해졌지만, 잊을 수 없는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초겨울 어느 날 아버지는 벽안의 젊은 금발 외국인 장교와 함께 집으로 왔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의 아버지는 당시 소령의 계급으로 연합군과의 연락 장교역을 맡고 있었는데 주로 미국이 아닌 다른 참전국 담당이었다.   영관급 장교라고 해도 누구나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멋진 권총을 옆에 찬 외국인 중위는 집에 올 때마다 통조림과 레이션, 밀가루, 군복 등을 산더미처럼 놓아두고 갔으며 때로는 사병을 통해 대신 보내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것은 가계에 커다란 보탬이 되었다. 또래의 꼬마들이 "기브 미 쵸코렛"을 외치며 미군들 사이로 손 벌리고 있을 때, 군인 아버지를 둔 소년은 쵸코렛을 입에서 뗀 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살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외국인 중위가 보내준 물품들을 금붙이나 은붙이로 바꾸어 가져왔고 바꾼 금붙이의 반 정도는 외국인 중위에게 주는 것 같았지만 세세한 것까지 알 수 있던 나이는 아니었다. 조금 더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그 외국인 중위는 자신을 어눌한 발음으로 "나이스 보이 창환" 이라 부르며 몹시도 귀여워해 주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뛰어 놀았다. 한 번은 권총을 만져보다가 그에게 호되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때 모은 재산으로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회사를 차렸고, 가족들은 남들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나이스 보이라 불리웠던 창환은 대학 교육을 마친 뒤, 유학까지 다녀왔다. 창환의 가족으로서는 그 외국인 중위가 구세주나 마찬가지였고, 아버지는 외국인 중위가 본국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죽을 때까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매년 중위의 생일과 성탄절에는 잊지 않고 값비싼 선물을 보내주었다.   외국인 장교의 이름은 이안 노블이라고 했다. 영국 남부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이안 역시 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군복을 벗고, 런던으로 가서 장사에 손을 댔다. 그 장사는 지금까지 반세기 가깝게 이안과 그 가족의 생계 수단이 되어왔지만, 다른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이안은 더 이상 펍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김창환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노인을 깨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가 실례인 것 같아 내일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왁자지껄한 펍의 1층으로 내려온 김창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로버트를 슬쩍 바라다보고는 묵고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의 리츠칼튼 호텔로 향했다.   이안 노블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이안은 자신이 빚에 쪼들리고 있으니 여유 자금이 있다면 펍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든가, 아니면 직접 운영해 보라고 했다. 김창환은 오죽 급박한 사정이었으면 자신에게까지 편지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술 장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김창환은 한국에서 꽤 알아주는 주류 유통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고, 한국의 한 맥주 회사의 지분도 상당량 가지고 있었다. 남들은 50대라면 한창 일할 나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늙고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치의마저 장기간 요양을 권유했던 터라 이안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한국의 사업이야 동생이 관리하고 있으니 자신은 이제 일선에서 빠져 영국 남부 해안의 브라이튼이나 헤이스팅스 같은 휴양도시에서 조용히 지내보고 싶었다. 지난 30년간은 사업 확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절이라 더 이상 사업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펍은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의 크기에, 저만한 손님이라면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투자할 가치가 없더라도 투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안 노블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해왔던 터라 이제 환갑이 가까워진 자신으로서도 이 때가 아니면 옛 은혜에 보답할 기회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국인이 런던의 펍에 직접 투자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김창환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한국 회사의 런던 사무소를 개설한 뒤, 그 운영 자금을 이용해 편법으로 돈을 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또, 펍의 운영은 로버트 노블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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