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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02-

김유식 2003.04.02 14:29:13
조회 4611 추천 1 댓글 0
이광혁. 올해 서른 두 살. 폭력 전과를 비롯해서 다섯 개의 전과를 가지고 있고 4년 전까지는 이름만 겨우 남아있던 신목포파의 행동대장이었다. 원래 출신은 서울이었으나 고교시절 시내 버스 안에서 다른 고등학교 학생 십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히고 나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잘 따르던 한 교사의 주선으로 외삼촌이 있는 목포의 고등학교로 전학하게 된 것이 그가 한국 폭력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전라도 깡패가 된 계기였다. '90년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때 신목포파는 이광혁을 제외한 나머지 조직원들이 차례차례 구속되었고 조직은 무너졌다.   신목포파의 두목 유정후는 구속된 조직원들의 뒤를 봐주다가 조직의 이권 대부분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겼고, 자신이 구속된 다음에는 애지중지 여기던 목포의 나이트 클럽과 자신이 살고 있던 건물마저 팔아치웠다. 전국의 조직폭력배들이 조직이고 뭐고 저만 살겠다고 서로 이간질과 고자질을 일삼던 시기에 유정후의 "동생 다루기"는 다른 폭력배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형사나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마음씨 여린 따뜻한 보스"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검찰 수사에서도 유정후는 구속된 동생들의 범죄는 자신이 시킨 것이라고 우겨댔으나 이미 형 확정을 받고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들을 다시 소환, 조사하기 꺼려한 검사는 다른 두목급보다는 약간 적은 10년 형을 구형했고 결국 유정후는 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신목포파에서 혼자 남은 이광혁은 수십 개월 잠수함을 타다 뒤늦게 붙들려왔다. 조직이 무너진 다음에는 도움을 받을 만한 처지의 아는 사람들도 없었고 잠수 자금도 떨어졌다. 전담 수사관들이 그의 행방을 쫓는 와중에 한 곳에서 잘해봤자 한 달 정도 밖에 지낼 수 없던 도망자의 심정도 그가 잡히게 된 한 원인이 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운이 좋았던 것은 정권이 바뀌면서 재판부가 그에게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몇 년이나 늦게 구속되고도 출소는 다른 조직원들의 출소 시기와 비슷하게 맞춰졌다.   그가 석 달 전 영등포 교도소에서 이곳으로 이감 왔을 때만해도 사방 안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봉사원인 최명규 역시 조직폭력으로 들어온 유명한 주먹잡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최명규는 부산 해운대파의 보스 이중은의 오른팔 격이었고, 해운대파는 전라계의 조직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해운대파의 이중은은 후배의 부탁으로 서울 영등포 지역에 성인 오락실을 세운 적이 있었다. 전라도 출신이 서울 폭력계를 장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전라계가 침범한 적이 없던 곳이 영등포였다. 워낙 이권이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서울 출신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영등포를 사수해서인지 서울에서도 영등포는 의미가 다른 곳이었다. 당시에는 OB파니 서방파니 하는 전라도 조직들이 서울에서 활개를 쳤기에 암묵적으로 경상도, 특히 부산의 폭력 조직들은 영등포의 서울 조직과 서로 마찰 빚기를 꺼려했다.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어서 특별한 사건이 아닌 한 이권 다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락실 설립 당시 이중은은 표면에 나서지도 않았으며 영등포를 나와바리(관할구역)로 삼고 있던 "감자"라는 폭력계의 대선배에게 상납을 바치도록 한 덕택에 오락실 운영에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광주파의 조직원 한 명이 때마침 오락실에 들렀던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부산 깡패들이 영등포를 넘본다."는 소문을 흘려 결국 오락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감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한 뒤 오락실을 처분한 이중은은 다섯 명의 조직원을 동원해서 광주파가 관리하는 천호동의 한 호텔 나이트 클럽을 급습했었고 이때 이십 대 중반의 똘똘한 꼬붕 최명규의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최명규는 광주파의 중간 보스인 흰곰을 비롯해서 조직원 네 명을 사실상 은퇴시켰다. 어찌나 잔악하게 굴었는지 그때 최명규의 칼부림을 봤던 나이트 클럽 안의 손님들 중에는 공포에 질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닌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 사건 이후로 최명규와 해운대파는 복수하겠다는 전라도 출신 조직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청탁이나 폭력 청부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 다른 조직간의 전쟁에도 조직마다 최명규를 빌리고자 이중은에게 부탁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폭력계에서 최명규의 칼 솜씨는 정평이 나 있었는데,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양복 안으로 두 손을 넣어 한 손에 세 개씩, 모두 여섯 개의 칼을 꺼내는 동안 상대방은 전혀 그의 손놀림을 보지 못하고, 어느 새인가 그 칼 중 하나가 허벅지나 옆구리에 박혀 있기 일쑤였다. 소문에는 그가 칼 한 자루를 던져서 30미터 밖의 사과를 두 조각 낸다고도 했다.   최명규는 따르는 동생들에게 혹독하고 엄하게 대하기로도 유명했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가끔씩 동생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닭과 개를 상대로 칼 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동생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강한 것을 신봉하며, 명령에 절대 복종할 줄 아는 건달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국내 폭력 조직의 계보를 줄줄이 꿰고 있었으며 싸움꾼으로 소문난 폭력배들의 장, 단점을 분석해서 머릿속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실력이나 두둑한 배짱, 동생들을 휘어잡는 리더십 등을 감안하면 해운대파를 떠나 충분히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는 그였으나 이중은의 명령에는 한 번도 반대한 적도, 일을 잘못 처리한 적도 없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고의 파이터였던 시라소니 이성순(李聖淳)을 깊히 흠모하고 있던 최명규는 깡패답지 않게 술과 담배, 여자를 멀리했고, 몸매관리와 긴장감 유지를 위해 과식도 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지나치리만큼 까다로운 승부에의 집착과 다혈질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성격을 꼽을 수 있겠지만 칼을 쓰는데 있어서 생명에 지장 있는 부분은 피해서 찌르고, 쓰러진 상대를 가격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성격은 칼과 주먹이 난무하는 폭력계에서는 어찌 보면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과거 이광혁의 신목포파는 해운대파와 다툼이 없었고 이광혁은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연배도 높은 최명규를 선배로서 깍듯하게 대접했다. 최명규 역시 이광혁의 명성과 경력에 맞게 대우해 주었기에 두 사람은 별다른 문제없이 출소일 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행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계기로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    이광혁이 이곳으로 이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목공반을 찾아갔던 최명규는 자신의 발 밑으로 나무토막이 하나 굴러오자 이를 피했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잘못 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야. 그것 좀 이리 던져라.』 라고 말했다. 피식 웃으면서 자리를 뜨려는 최명규의 뒷통수에『자식이 던지라면 던질 것이지.』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폭력계 선배 재소자들과 보안과장을 제외하고는 소 내 누구도, 교도관들마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도발이었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상대는 목공반 반장을 맡고 있는 고기현이 틀림없어 보였다.    십여 년간 원양어선의 기관사로 있었다는 고기현은 워낙 덩치가 좋아서 "남태평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유도에도 조예가 있었으나 건달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최명규가 소 내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있던 터였다. 다혈질의 최명규가 옆으로 성큼 걸어가 톱을 들었다 싶은 순간 번개같이 고기현에게 날렸다. 이때 최명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최명규에게 다가가 최명규의 손을 떠난 톱을 걷어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광혁이었다. 톱은 공중에서 방향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떨어졌으며 톱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세 사람은 동시에 놀랐다. 고기현으로서는 최명규가 설사 화가 났더라도 바로 톱을 던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최명규는 자신의 행동을 미리 알아채고 막아낸 이광혁의 빠른 몸놀림에 몹시 놀랐다. 또 이광혁은 손으로 톱을 쳐내긴 했으나 톱에 실렸던 힘에 자신의 팔이 저려 오는 것을 느끼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이광혁이 조용한 목소리로 "선배님, 곧 나가셔야 되지 않습니까?" 하며 최명규에게 말을 건내자 최명규는 아무 말 없이 목공반을 떠났던 사건이었다. 까닥하면 징벌을 넘어 징역살이가 늘어날 뻔했던 그로서는 내심 이광혁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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