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찌꺼기처럼 걸러진 새벽 6시, 출근 버스에서 흔들리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하이닉스 직원 성과급 세후 5,000만원'*이라는 뉴스 제목이 화면을 채웠다. 손가락이 멈춰 섰다. 내 월급의 20배다. 통장에 찍힌 어제의 월급 250만 원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대출이자 130만 원, 월세 70만 원을 제하면 남는 50만 원으로 버티는 나와, 한 번의 성과급으로 자동차 한 대를 장만하는 그들은 같은 하늘을 보는 걸까.

사무실 책상 서랍 안에 '대기업 이직 준비 노트'가 쌓여 있다. 매일 밤 10시, 공장 라인을 벗어나면 파란색 형광펜으로 체크하는 자격증 스터디 계획표다. "3개월 내 전기기사 필기 합격"이라는 목표 아래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하이닉스 공채 지원 자격 요건'. 어제는 여기까지 쓰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잉크가 번져 '하이' 자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점심시간, 공장 옥상에서 도시락을 까먹다가 동료가 중얼거렸다. "저기 하이닉스 공장은 급식으로 소고기 국밥 나온다던데." 내 도시락 김치 볶음밥 위에 떨어진 먼지 알갱이를 불어냈다. 지난달 성과상여금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30만 원이 생각났다. 그때 사장님이 팔짱을 끼며 말했지.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최고 성과상이야."

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잔고를 확인했다. 1,237,000원. 하이닉스 성과급의 2.5%도 안 되는 숫자가 깜빡였다. 지난주 대학교 다니는 동생 생활비로 80만 원을 보내고, 차량 유지비로 30만 원이 빠져나간 뒤의 잔액이다. 영수증을 구기며 생각했다. '월 250이면 괜찮다던 사람들… 그들은 대출 없는 세상에 사는 걸까?'

공장 창고 벽에 걸린 2025년 목표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생산량 200% 달성!' 옆에 누군가 낙서로 붙인 포스트잇이 달려 있다. '월급 300% 인상!' 종이 끝부분이 들춰지며 비웃는 것 같았다. 하이닉스 공장 라인에는 아마 '성과급 500% 획득' 현수막이 걸려 있겠지.

집에 들어와 창고 개조 반지하 방에서 청약통장을 열어봤다. 3년 차인데도 잔고는 1,800만 원. 서울 변두리 원룸 전세금도 못 미치는 액수다.하이닉스 직원이라면 이 돈으로 부모님 집 보증금을 더 보태고 있을 테고, 아니면 성과급만으로 1년치 월급을 채웠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