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최봉애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오는 16일부터 6월 29일까지 6주간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자연 속에서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선왕릉 숲길 8개소를 개방한다.
봄철을 맞아 개방되는 조선왕릉 숲길은 ▲ 구리 동구릉 ‘휘릉~원릉 및 경릉~자연학습장 숲길’, ▲ 남양주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 ▲ 남양주 사릉 ‘능침 뒤 소나무길’, ▲ 서울 태릉과 강릉 ‘태릉~강릉(어린이 마당)’, ▲ 서울 의릉 ‘천장산~역사경관림 복원지’, ▲ 파주 장릉 ‘능침 북쪽 숲길’, ▲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건릉 숲길’, ▲ 파주 삼릉 ‘영릉~순릉 작은 연못 및 공릉 능침 북측 숲길’까지 총 8개소로, 전체 길이는 16.82km다.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부터 봄·가을철 기간을 정하여 조선왕릉 숲길을 일반에 공개해 왔으며, 방문객의 안전과 관람로 개선을 위해 꾸준한 정비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폭설 피해로 인해 현재 정비공사 중인 여주 영릉과 영릉 ‘영릉 외곽 숲길(3.4km)’은 이번 개방에서 제외되었다.
숲길 개방시간은 해당 조선왕릉의 관람 시간과 같으며, 방문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각 조선왕릉 관리소에 문의하거나 국가유산청 누리집,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방시간은 5월에는 오전 9시 ~ 오후 5시, 6월에는 오전 9시 ~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기상상태 등 여건에 따라 일부 조정이 가능하다. 월요일에는 모든 왕릉 숲길은 휴관이다.
구리 동구릉 ‘휘릉~원릉
구리 동구릉 숲길(국가유산청 제공)
동구릉(東九陵)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약 450여 년간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이 처음으로 조성되고 이후 문종의 현릉(顯陵), 선조의 목릉(穆陵), 현종의 숭릉(崇陵),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영조의 원릉(元陵), 헌종의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능이 조성될 때마다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 등으로 불리다가 문조의 수릉(綏陵)의 옮겨지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남양주 광릉
남양주 광릉 (궁능유적본부 제공)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조성된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세조,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사대석(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에 따라 능 내부의 방을 석실 대신 회격으로 만들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조선시대에는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고, 입구에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남양주 사릉
남양주 사릉 숲길(궁능유적본부 제공)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1521년(중종 16) 정순왕후가 노산군부인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숙종 때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을 세웠다.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태릉 (궁능유적본부 제공)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명종, 오른쪽(동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위치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서울 의릉
서울 의릉(궁능유적본부 제공)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정자각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위에 봉분이 경종의 능이고, 아래 봉분이 선의왕후의 능이다.
의릉은 완벽히 상하의 위치로 능이 배치되어 있다.
위치 : 서울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파주 장릉
파주 장릉(궁능유적본부 제공)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의 능이다. 장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인조, 오른쪽에 인열왕후를 모셨다.
현재 장릉 능침 석물은 옛 장릉의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위치 :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화성 융릉과 건릉 ‘융릉~건릉 숲길
화성 융릉(궁능유적본부 제공)
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융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이다. 1762년(영조 38)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이후 무덤을 수은묘라 불렀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에게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존호를 올렸고,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이후 정조는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1789년(정조 13) 수원 화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원의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꿨다. 헌경황후(혜경궁)가 세상을 떠나자 현륭원에 합장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장헌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하였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의 합장능이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봉분 주변의 석물은 융릉과 달리 왕릉의 형식에 맞게 세웠다. 문석인은 융릉의 예에 따라 금관조복을 입은 형태이다.
위치 :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파주 공릉(궁능유적본부 제공)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릉은 세조 7년 장순왕후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파주 보시동인 현재의 자리에 왕세자빈의 묘로 조성하여 장순빈묘라 불렀다. 이후 성종 1년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순릉은 성종 5년에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순릉은 파주 삼릉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공혜왕후가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영릉은 황제로 추존된 진종과 효순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조와 정빈 이씨의 아들인 진종이 왕세자(효장세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조 때 파주 순릉 왼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효순황후가 왕세자빈(현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효장세자묘 동쪽에 묘를 조성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계승상 아버지가 되는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영릉이라 하였다.
위치 : 경기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개방 숲길 정보>
개방 숲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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