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술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 유파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통'이라는 코드입니다. 일본무술을 거의 짜집기해서 신흥무술을 만들어놓고, 고조선과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온갖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다붙여서 자기네 무술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세태는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택견과 씨름, 궁술과 정대업지무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통'이라는 코드를 강조하는 무술은 거의 전통하고 관계없는 무술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오륜서에 조선시대 그림을 표지로 붙인다고해서 일본 병법서가 한국책이 될 수는 없고,   검도복에서 요판 없앤다고 하까마가 한국옷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일본무술에서 일본식 용어를 배제하고 아무리 한국식으로 뜯어고쳐봤자 그것이 결코 한국의 전통무술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쉬운 진리를 무시하고 자꾸 역사와 민족과 전통을 들먹이니까, 한국 무술의 실체를 아는 외국인들의 비웃음을 듣게 되는 것이지요. '무기와 무술은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외래의 훌륭한 무술을 받아들여서 흡수하여 한국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武 문화 발전에 있어서 참으로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외래의 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꾸 한국 고유의 것이었다고 갖다붙이는 행태이지요. 혹자가..외국에서 복싱을 들여와서 한국에서 가르치면서, '원래 우리 전통 무술에는 주먹쓰는 법이 있었고, 이를 권격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싱은 한민족 고유의 무술이다'라는 주장을 한다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무술을 들여와서 똑같은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들 속아넘어가는 것일까요? '전통문화'라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존재하지도 않았던 문화를 견강부회 식으로 재창조해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한국의 武 문화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구태는 빨리 벗어나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