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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지하철 2, 3호선 제안

운영자 2006.01.11 14:16:49
조회 2802 추천 0 댓글 6

  2. 서울을 향한 좌절과 희망

  지하철 2, 3호선 제안

 

  지하철 2, 3호선 제안한강 종합 개발 계획을 시행하면서 수도 서울의 새로운 면모를 위해 내가 낸 또 다른 제안은 본격적인 지하철 건설 계획이었다. 1977년 당시 강남은 막 개발이 시작된 상태로 약 200만을 조금 넘는 인구가 살았다. 앞으로 강북과 같이 500만 인구로 성장할 것이므로 대중 교통 체계의 근간인 지하철 개발을 꼭 해야 했다.

  1970년대 말의 서울은 인구 1,000만의 거대 도시로 거듭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당시의 인프라(infrastructure) 수준이나 버스 교통 시스템만을 그대로 둔 채 인구 1,000만이 서울을 메운다면, 도로망 체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데다가 마치 정원 50명의 버스 안에다 100명 이상을 강제로 구겨 넣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개연성이 눈앞에 닥쳐오는데도 대중 교통 수단의 골간(骨幹)인 지하철 계획은 없었고, 서울역까지 온 철도와 청량리에 있는 철도를 지하로 연결한 지하철이 전부였다. 이것이 2호, 3호를 완성하면서 1호선으로 명명된 것이다.

  한강 개발과 더불어 강남 개발을 촉진시켜야 할 상황에서 또 구자춘 시장을 찾았다. 대학로와 한강 개발을 거치며 새로운 서울의 가능성을 확인한 나는 서울의 지하철 설계안을 제시했다. 서울 발전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했던 구 시장은 내 제안을 진지하게 경청한 후,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보였다. 내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역에서 청량리를 지하로 이은 철도를 그대로 두고 이와 대각선이 되게 강북의 서북측에서 강남의 동남쪽으로 새로운 지하철 선형(線型)을 잡아야만 개발이 덜 된 지역의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 노선이 서울 지하철 노선을 긋는 첫 번째 논의에 따른 것이며, 사실 2호선으로 명명하기를 제안했는데 지금 3호선으로 불리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노선은 둥글게 잇는 환상선(環狀線)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강을 중심에 두고 서울 동서남북 각 지역이 지하철로 균형 있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선형의 제안에 대해 구시장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무엇 때문에 둥글게 노선을 잡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4대문 안 중심으로 개발된다면 도심 교통 문제는 극심해질 것이고 옛 도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이 따릅니다. 4대문 안과 테헤란로를 꿰면서 영등포와 신촌 쪽도 연계 발전시키는 방안입니다.”

  사실 이것을 나는 3호선으로 생각했었으나 2호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울러 파리 지하철의 경우 한강처럼 세느강을 중심에 두고 둥근 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효율성이 높다는 사례를 설명하였다. 이 같은 실제 사례가 구 시장을 설득하는 데 더욱 적중한 듯하다. 구 시장은 자신이 직접 지도 위에다 둥근 선을 그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멋지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당시 배석했던 서울시 직원 중에 나중에 시장이 된 우명규 씨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가 후일 초대 지하철 건설본부장이 되었다.

  나의 이 제안은 한강과 엮이는 동서 관통 중심선을 제외하고 대부분 그대로 수용이 되었다. 지하철 1호선과 대각선을 이루는 직선 노선이 바로 3호선이고, 서울을 감싸듯 원형으로 이어지는 환상선이 바로 2호선으로 명명되었다. 2호선의 경우 특히 대학가를 지나는 역들이 많았다. 이화여대, 연세대, 홍익대, 교대, 건국대,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을 연계하다 보니, 이 또한 유동 인구의 분산과 유치의 두 장점을 그대로 살리는 효과를 냈다. 그런데 구체적인 선형 설계안이 나온 것을 보니까 애당초 내가 그렸던 동그란 원형 모양이 아니라 역과 역 사이가 꼬불꼬불하게 굴곡이 많이 생겨 있었다.

   “지하철은 효율성을 위해서 간단명료한 선형이 필요하고, 환승도 많아야 두 번이면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했다. 나는 지하철 구상을 한 사람으로서 끝까지 내가 생각한 선형으로 주장을 하려다가 그냥 수용하기로 결심했다. 서울을 살리기 위한 교통 시스템과 지하 공간 개발이 시급한 마당에 상호 불신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판단이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는 앞으로 한 세기 이상 계속 시간을 들이면서 어차피 지하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잘못된 것은 앞으로 수정을 거치면서, 스웨덴이나 스위스처럼 본래 지하 공간은 언제고 국가 안보를 위해 쓰여질 것이라고 믿었다.

  2, 3호선 노선이 확정된 후 나는 구자춘 시장의 부탁을 받아 5개 역사의 설계를 담당했다. 나는 그때 설계를 하면서 일반화되어 있지 않던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지하철 통로 관리를 위해 여러 가지 설계를 고려했다. 예를 들면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는 지하철 출입 계단을 만들 때 계단 벽면에 층계를 붙이지 않고 3cm 정도의 일정한 공간을 두었다. 이것은 계단에 쓰레기가 발생했을 때 손쉽게 쓸어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환경 미화원이 그 공간의 끝과 끝을 오가며 비질 한 번 하는 것으로 쉽게 청소가 되기도 했고 비 오는 날이면 빗물에 쓸려 저절로 청소가 되는 효과도 있었다. 비록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설계 때 배려한 이 작은 틈새는 지하철 계단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했다.

  1호선으로 명명된 철도 역사의 화강석 계단에는 이 틈새가 없는데, 2호선 이후 모든 역사의 계단뿐 아니라 공공 계단은 내가 처음 설계한 대로 일정한 틈새를 두고 시공되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계단을 화강석으로 시공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화강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나는 석재인 데다 보기에도 좋고 튼튼하며 미끄럼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석재를 가공하는 인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는지 타일이나 벽돌 종류를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에다 자꾸 수선을 해야 하는 재료를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화강석을 판석으로 잘라서 표면에만 붙이고 안쪽은 콘크리트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 화강석이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계단마다 덩어리째로 화강석을 쓰도록 하였다. 기타 안전사고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일반 주택의 계단과 공공 장소의 계단은 일단 그 경사도부터 달라야 한다. 1호선이나 다른 철도 역사의 일부 계단은 아직도 경사가 심하다. 공공 계단의 경사도는 완만하게 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인 만큼, 경사가 심하면 뛰다가 넘어지거나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표를 내는 개찰구의 형식은 파리의 메트로 지하철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와 설계했으며, 지하철은 한 번 정도 환승을 해서 목적지에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승객 위주의 설계가 되도록 했다. 아울러 1, 2, 3호선 각 노선별로 각기 다른 고유 색깔을 채택하여 색깔만으로 쉽게 노선 확인이 되도록 했는데, 내게 익숙했던 보스턴 지하철과 파리, 뉴욕 등의 지하철 노선에서 실시되던 블루 라인, 오렌지 라인, 레드 라인, 그린 라인 등의 색깔 코드가 그때 도입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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