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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글도 보여줄게

에브리맨(124.28) 2015.11.04 14:33:53
조회 1008 추천 21 댓글 43


꼭 내 글을 보여줘야 니그라토 글을 지적할 수 있니? 예전에 쓴 콩트 하나 올려줄 테니까 이제 그만 하자. 



 산부인과를 나오자 눈에 띈 것은 공중전화박스다전화박스 유리창에 흐르는 물방울들은 내 몸 속의 수분을 확대시켜 보는 듯 하다땅바닥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물방울들을 보고 있자니 몸 속의 수분이 한없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어질머리가 난다욕지기가 나서 바닥에 침을 뱉으려는데 길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P가 술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으로 서 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인사를 건내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그가 팔을 들 겨를도 없이 나는 공중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 이틀 전부터 내린 폭우로 전화박스 안에는 채 빠지지 않은 음습하고 축축한 기운이 서려있다. 


 공중전화 부스에 매달린 빗방울을 손바닥으로 닦아 낸다. 유리에 서린 김이 하얘질수록 몸이 뜨거워진다팬티에 부착한 패드에 분비물이 흐른다격한 풍랑에 시달린 자궁이 아물 때까지 패드에 묻어 날 분비물은 거뭇거뭇하던 초음파 사진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빈 자궁이 불로 지지듯이 뜨겁고 쓰라리다


 "수술은 십 분이면 끝납니다." 

 의사의 명료한 대답에 초음파 사진을 볼 때부터 생긴 죄의식도 흐지부지 사라졌다손과 발이 가죽벨트로 묶여지고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분주할 때 아랫배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한숨 자고 일어나면 냄새만 맡아도 역겹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겠지나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린 다리 위에 쳐진 커튼 너머로 의사의 실루엣이 보였다의사와 간호사의 말소리가 아기 옹알이처럼 들리면서 내 몸은 흐리멍덩한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P가 달려온다.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온 그가 내 팔을 붙잡는다.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전화박스 안에서 내 몸은 보이지 않는 열선에 묶인 듯 달아오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뺨 밑으로 흐른다. 그에게 우는 것처럼 보일까. 어느 틈에 상가의 불빛들이 모두 켜져 있다. 밤 화장을 끝낸 작부처럼 불은 밝다. 

 "괜찮아?"

 P는 비에 젖은 우산을 접으며 묻는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동그라미를 그린다. 진하게 서린 김 때문에 글자가 선명하다. 동그라미가 그려지면서 뽀드득 소리가 난다. 사소한 소리다. 태아가 수술실의 불빛 속으로 사라졌을 때도 뱃속에서는 그런 하찮은 소리가 났다. 물기가 동그라미 위로 흘러내린다. 동그라미는 형체를 잃어 처절해 보인다. 물기가 흐른 곳에 지렁이 같은 자국이 남는다. 입으로 후 불면 빗물 고인 땅 위로 떨어져 기어갈 것 같다. 나는 후- 유리창의 그림을 다 지운다.

 "수술은 간단했어. 죄책감을 느끼기도 전에 끝나던걸." 

 내가 대답하자 P는 말이 없다. 어느덧 비가 그쳐 있다.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공중전화박스 밖으로 걸어나온다.
 "어디가서 좀 쉬자." P가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걷는다. 뒤를 돌아보자 공중전화박스가 벌써 저 멀리 있다. 그 안에서 P는 계속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다. 그의 말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나도 입술을 달싹거려 본다. 손을 흔들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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