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어."
퉁명스런 말에 대답도 않고 벌떡 튀어나와 식탁앞에 자리를 잡고 손바닥을 비비며 찬을 훑는 모습을 보자니 미정씨는 죽을 맛이다.
"기지배가 경박하게 뭣하는거야. 왜이리 오도방정을 떨고앉아있어."
그제야 피식 능청스런 웃음으로 대답을 하는 딸 지원씨는 이미 입에 밥 한숟갈을 넣은 채다.
"어마, 이거 머로 망등거아?"
눈을 흘기며 미정씨도 젓가락을 집어든다.
"호박."
지원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호박!? 생긴 건 꼭 무슨 오이같다~ 사온 거 아니고?"
"사오긴 뭘 사와, 호박 말려서 볶은거라니깐."
"치.. 말려서 볶은 거라곤 안하셨거든요?"
지원씨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미정씨는 또 우울해진다.
한 동안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하다 이내 미정씨가 입을 연다.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지원씨는 묻든 말든 그저 식사 삼매경이다. 미정씨는 끈덕지게 가만히 지원씨를 노려보며 답을 기다린다.
"어떻게 할거냐고."
한 번 더 호령을 하니 그제야 지원씨의 시선이 미정씨에게로 돌아간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크게 뜬 눈.
"뭘."
미정씨는 지원씨의 되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소리친다.
"다시 가든가 아니면 아예 끝을 내든가, 뭔가 대책이 있어야할 것 아니야! 이유라도 좀 알려주든가!"
지원씨의 손이 멈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앉는 그녀의 목 너머로 잘 으깨진 밥과 호박나물이 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눈을 내리깔고 입을 몇번 삐죽거리더니 다시 미정씨를 바라본다. 그러나 말없이 조용하다. 미정씨도 꾹꾹 눌러담은 말을 다했다는 듯 더는 말을 잇지 않는다.
"이혼 할거야. 해야지. 나 그집에 더 못있어. 하루도 못있겠어, 그러니까 못돌아가. 그렇다고 당장 뭐 못해. 엄마 이혼 안해봤잖아.
그거 그렇게 쉽게 되는 거 아니더라. 되게 복잡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좀 그냥 우리 그때까지만 서로 복잡한 얘긴 하지말자.
나 안그래도 머리 터질 것같애 엄마."
진지한 얘기에 맞지않게 끝에 또 푼수같은 웃음을 덧붙이는 딸을 보니 미정씨는 그만 왈칵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본다. 남편과 사별한 뒤 외동딸 홀로 보란듯이 키워냈고 좋은 집에 시집까지 잘 보냈다. 시부모들도 미정씨가 남편이 없다는 것이나
집안이 어떻다거나 재산이 얼마나 있다거나 조무사로 일하고있다는 것 따위 보지않는 꽤 좋은 사람들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사위는 딸이 일하던 시내 내과의 의사였고 나이가 좀 많은 것만 빼면 인물도 멀끔해 맘에 들었다.
이제 고생 끝났다 그렇게만 여겼다. 결혼식장에 수줍게 드레스를 입은 딸아이 손을 꼭 잡고 남편대신 입장할 땐 정말이지 부끄러울 것 없이 가슴이 벅차
터질 것만 같았다.
"엄마 성격 알잖아, 남들 눈치 안봐. 우리 딸 뭘해도 자랑스럽고 사랑하고 믿어. 근데, 알려줘야 될 거 아니야. 왜인지 나는 알아야할 것 아니야.
그 집에 연락할까도 생각해봤어. 근데 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안했어. 나는 상관없는데 우리딸이 지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도 말 못할 이유때문에
지 발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난 거면 너무 화나서 소리지르고 추태부려서 우리 딸 얼굴에 더 먹칠할까봐."
이미 미정씨 눈가에 물이 흥건하다. 지원씨는 그새 가볍게 젓가락을 쥐고 호박나물을 한입만치 들어올려 눈 앞으로 가져간다.
"내가 오이같댔잖아. 그 말 취소. 꼭 못난이 호박 이쁘게 포장하려는 것 같잖아 호박더러 오이라그러면."
지원씨는 이윽고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호박나물을 우적우적 당차게 씹으며 말을 잇는다.
"수박밭에 호박이 있으면 빼내야지 어떡해. 그렇다고 호박이 나빠서 그런건 아니잖아?
그저 호박이 호박밭에 없었을 뿐인 걸. 나 그냥 호박으로 살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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