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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도 자유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진실추적 2006.06.03 13: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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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주의의 원조, 독립신문 “조선에 있는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을 대하여 년전과 같이는 대접을 아니하나 속에 조선 사람을 업수히 여기는 마음은 그저 없어지지 아니 하였는지라. 이것은 온통 일본 사람만 나무라지 아니할 것이 조선 사람들이 업수히 여김을 받지 않도록 일을 하고 행신을 하였을 것 같으면 누가 업수히 여기리요” - 독립신문 1897. 3. 9. 논설 “국중에 내란(자주독립 민중저항운동)을 지어 나라에 소란하게 하는 까닭에 외국병정들이 와서 있게 되니 이것은 외국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자기 발등을 때리는 까닭이라...일본이 암만 조선 일을 관계하려고 하더라도 조선에서 조선 사람들이 자기 일만 잘하여 갈 것 같으면 외국이 다 저절로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대접할 터이요 외국에 치쇼받을 일이 도모지 없을 지라” - 독립신문 1897. 3. 11. 논설 “그 시대에 일본은 강자였고 우리는 못난 약자였다, 지금처럼 당파 싸움만 하다가 망한 것이다...오죽 못났으면 약육강식 시대에 일본에게 먹혔을까부터 참회해야 한다...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가?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답답하고 따분한가” - 지만원 2005. 3. 5. 기본적으로 선악에 대한 분별과 가해자와 피해자, 범죄에 대한 구분이 없다. 강자는 강한 것이 모든 행위의 정당성이 되고, 약자는 약하다는 것으로 해서 모든 피해가 자기원인으로 귀결된다.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강하건 약하건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에. 잘난 사람은 알아서 강해지고 못난 사람은 알아서 약해지니, 억압은 남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고, 억울하면 나도 강해져서 남을 억누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항상 우리에게 선험적 조건으로 주어진 자명한 사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태어났으니 나머지는 나 할 탓이요, 내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사고방식.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약자가 강자를 비난하는 것을 비웃는다. 하여 지만원은 친일파를 욕하는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답답하고 따분한가”라며 탄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남 탓을 하는 것에 질색한다. “내 탓이요”하면 자유민주고 남 탓하면 빨갱이다. 내 자식이 서울대에 못 간 이유는? 사회적 불평등, 양극화 심화로 노동자인 내가 돈이 없어 강남 8학군에 못 살고, 족집게 과외를 못 시키고, 내 짧은 배움 때문에 자식에게 지적인 자극을 못 주고, 집안 여건이 자식으로 하여금 마음 편히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할 넉넉한 형편이 못된 탓이 아니라 오로지, 내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가 못난 놈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못됐다고 책임 전가하는 놈은 빨갱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서울대에 들어가서 성골이 되고 농땡이 핀 놈은 당연히 성골의 지배를 받는다. 이 게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 탓이다? “오 노~ 다 자기 탓이니라~” 이 게 자유주의의 세계관이다. 그렇게 자유주의는 기득권을 정당화한다. 한국 수구기득권 세력이 자유주의에 목을 매는 것은 돈 많은 집안 아이들이 서울대를 통해 신분을 상속하는 것에 자유주의가 이렇게 편리한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자식 교육뿐만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기득권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다. 봉건적 압제와 전제왕권의 폭압에 맞서 태어난 자유주의는,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개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신봉한다. 그것이 일면 자유주의에 진보적 이미지를 덧씌우나 그 가면을 벗기면, 기실 자유주의의 자유를 향유할 사람들은 단지 힘 있는 강자계급뿐이란 걸 깨닫게 된다. 하여 자유주의의 자유는 허구고, 민중을 향한 기만이다. 만약 일제식민지배가 부당해지면 수구기득권집단의 기득권도 부당해진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강자와 약자간의 불평등을 “내 탓이요”로 대치하는 전략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불평등에 의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을 “내 탓이요”로 바꾸기 위해선, 일제의 식민지배를 당한 조선도 “내 탓이요” 해야 한다. “잘 난 사람은 잘 못됨의 책임을 남들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잘 난 사람은 무슨 일이 잘 못되면 그 주요원인을 자신에서 찾고 반성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한다. 그러나 못난 사람은 그 원인과 책임을 자신이 아닌 남들에게 돌리며 그 책임을 전가하려고 애를 쓴다... 공산주의자나 좌파사람들의 특징은 상습적으로 책임을 남들과 제도에 전가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좌경사상이 인간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통치층이나 사회제도와 같은 외부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한승조 기득권 세력은 항상 “내 탓이요”를 기도한다. “내가 가진 권력? 내가 누리는 부귀? 내 탓이야. 건들지마.”, “너희들의 비참한 생활? 너희들의 빈곤 대물림? 너희 탓이야. 누굴 원망해? 이 못난 것들아” 이 거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라는 인종적 분류. 못난 사람은 당해도 싸고 잘난 사람을 탓할 순 없다. 이건 사회불평등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또 너무나 당연히 인종주의에 기반한 제국주의 찬양으로 나아간다. “약육강식하는 일을 탄식하나 만일 인도정부가 튼튼하여 능히 그 인민을 보호하면 어찌 영인이 횡행하리요... 영국이 주인된 후 내란이 진정... 인민의 생명 재산을 잘 보호하며 학교를 베풀어 인재를 배양하며 학문을 권면하여 전일보다 태평을 누리니 실상 인도를 위하여 말하면 영국이 그 은인이라 하여도 옳도다.” 1889. 5. 26. 윤치호 일기(서재필 등과 독립신문 창간. 만민공동회 주도. YMCA 회장, 연희전문학교 교장, (일제하)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귀족원 의원)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식민통치의 기간을 통해서 더욱 성장 발전 강화되었을망정 소실되거나 약화된 것이 없었다. 한국의 역사나 語文學 등 韓國學(한국학연구)연구의 기초를 세워준 것이 오히려 일본인 학자들과 그의 한국인 弟子들이 아니었던가? ...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한국인들의 성장 발전의 의욕을 크게 자극하여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빠른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점을 감안 할 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천만다행이며 저주할 일이기 보다는 도리어 축복이며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해야할 사유” - 한승조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했으면 식민지화를 피할 기회도 있었다... 침체 일로의 조선 경제가 1900년을 전후해 상승 곡선을 그린다.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유입, 근대적 시장제도의 정착, 소유권 제도의 정비, 근대적 기업제도와 상법, 거래 안전성을 보장하는 신탁, 통신, 운수의 발달 등이 뚜렷하다.” - 서울대 교수 이영훈 강자의 약자지배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 기간동안에 벌어진 모든 좋은 일들은 어떡해든 강자의 시혜로 여겨 감사한다. 이 얘긴 다시 말하면 박정희에게 감사하란 소리고, 전두환에게 감사하란 소리고,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은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못난 놈이며, 광주학살은 결국 자기 탓이란 소리다. 그러니 민중이여, 민란을 일으키지 말라, 소요를 일으키지 말라, 결국 너희 탓이니 국으로 가만히 있어라, 하는 것이다. 감히 못난 민중이 이에 거스른다면 이들은 외세에 영합하는데 추호의 주저함도 없다. “(외세를 막을 군이 아니라) 동학이나 의병 같은 토비를 간정시킬 군을 육성해야” - 독립신문 1897. 5. 25. 논설 “지금 대한 인민의 학문 없는 것을 생각할진대 외국 군사가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 만일 외국 군사가 없었다면 동학과 의병이 벌써 경성에 범하였을 터... 전국에 난이 없도록 하라.” - 독립신문 1898. 4. 14. 논설 누차 강조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독립은 국가, 민족의 독립도 아니요 민중의 정치적 독립도 아니요, 오로지 국가와 공공적 요구에 대한 개인의 독립, 사익의 독립이다. 개인의 독립은 개인 재산권과 생명권의 배타적 추구로 나타난다. 재산권이 국권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과 제국 점령군과의 비교에서 이들은 간단히 제국군을 선택하고, 박정희를 선택하고, 전두환을 선택하고, 지금은 일제를 미화하면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자력갱생하는 것이다. 하여 위의 윤치호 일기에서 윤치호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에 감사해야 할 이유로 “인민의 생명 재산을 잘 보호”했다는 것을 드는 거다. 물론 거기에서 말하는 인민은 지킬 것이 많은 지주들이다. 같은 논리로 공산당이 쳐죽일 역도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공산주의가 아닌 복지국가마저도 이들은 거부한다. 복지국가가 무엇인가? 국가권력이 국민의 전반적 복지향상을 위해 국민생활에 개입하는 걸 뜻한다. 자유주의의 이상인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를 위해선 기득권층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내가 미쳤어? 저 못난 놈들을 위해 세금을 내게.” 그러니 못난 민중이여 지만원의 말처럼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을 갖지 말지어다. 자유주의의 전도사 공병호는 “대중민주주의 아래서 그 폭력의 뿌리는 유권자들인 대중이다...정치적 자유보다 우선하는 것은 경제적 안정이므로 박정희를 비판할 수 없다.”라고 했다. 흔히 이런 논리를 두고 박정희식 개발지상주의, 한국형 극우라고 말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본질은 ‘자유주의’에 있다. 우린 독재에 맞서 싸우며 자유를 목 놓아 외쳤다. 그러나 이제 수구기득권 세력이 자유를 내세우고 있고, 자유는 민중의 목젖에 칼날로 다가오고 있다. 민중에게 필요한 건 자유가 아니라 공공성이다. 공공성을 담보하는 건 국가권력이다. 국가권력은 대중의 대오에서 나온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은 대중이 뭉치는 걸 극단적으로 혐오한다. 대중을 개인 단위로 쪼개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고, 그래서 자유주의자 김훈이 대중을 경멸하고, 지만원은 정신적 귀족을 꿈꾸는 것이다. 수구 자유주의자 복거일과 급진적 탈근대 지식인 임지현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대중에 대한 혐오에서다. 수구는 대중의 대오에서 빨갱이를 보고, 탈근대 지식인들은 대중의 대오에서 히틀러를 본다. 그래서 이들이 노사모의 열광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딱한 것은 젊은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탈근대 사상의 세례를 받아 진보의 유일한 무기인 대중의 열정을 스스로 거세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쳐들어오는데 전선을 자침시키고 달아난 조선 수군 꼴이다. 국가냐, 개인이냐의 전선을 자유주의와 탈근대는 파쇼냐 자유냐의 대립으로 본다. 그러나 국가라는 공공의 장이 개인보다 약화되면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는 것이 아니라, 강한 개인에 의한 약한 개인의 노예화가 촉진될 뿐이다. 집단으로부터 개인이 파편화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는 거다. 이래서 요즘 유행하는 급진좌파의 탈근대사상이 종당엔 자유주의의 아류가 되고 신자유주의의 이중대가 되며 진보의 자폭이 되는 것이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자기의 힘을 권리로 바꾸고 자기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바꾸지 않고서 항상 지배자가 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못한 법이다.”라고 했다. 강자의 힘을 권리로, 약자의 복종을 의무로 만드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다. 하여 일제의 식민지배는 일제에게 권리였고, 조선에게 의무였다. 지금 기득권 세력의 부귀과점, 대물림도 그들의 당연한 권리가 된다. 이래서 100년 전 독립신문은 반외세 민중운동과 선을 그으면서 자유주의를 택했고, 그것이 기득권세력의 이데올로기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100년 전 자유주의자들에게 동학은 한갓 민란에 불과했고, 오늘날 노사모는 폭도가 된다. 와중에 세련된 진보 탈근대 청년들은 광노빠들을 비웃고 일체의 대중의 열정적 대오에 히틀러 딱지를 붙여 진보의 가장 위력적인 무기(질풍노도 같은 대중)을 자침시킨다. 한국 수구의 사상적 근원을 살펴보자 <선, 악>을 <강, 약>으로 대치하거나 등치하는 것, 그것이 사회진화론이고, 자유주의다. 즉 강한 것은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은 강한 것이어야 한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통치하고 교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동양의 전통사상은 세상을 선, 악의 잣대로만 보는 것이었다. 선과 악은 현실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윤리적 당위다. 이런 당위에 철학, 과학, 예술, 사회구성원리 등 모든 것이 맞춰졌다. 그래서 동양은 합리가 아닌 윤리적 당위만 있는 질식할 것만 같은 사회가 됐고, 사회적 역동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정체된 문명을 만들었다. 구한말 서양열강의 출현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강제한 일대사건이었다.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세계 안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흑선을 앞세우고 나타난 하얀 중화가 기존의 황색중화세계를 송두리째 전복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과시한 것은 힘이었다. 조선 지식인들이 그 힘에 경도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유교적 명분, 도덕적 당위 등을 다 내팽겨 치고 사회진화론,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강한 자를 경멸하는 유교적 명분론과 강한 것을 찬양하는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 얼핏 보면 극에서 극이다. 그러나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유주의 사회로 넘어오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단지 ‘왕’의 존재뿐이다. ‘왕’만 치워버리면 봉건 기득권 집단은 가볍게 근대국민국가의 지배세력으로 안착한다. 물론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여러 가지 투명한 사회적 질서 등이 있지만, 그 어떤 기득권에 대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 현실적으로 힘을 가진 강한 집단에게 그 권리를 유지시켜준다. 사적으로 소유한 부귀에 자유주의가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한말 양반들은 더더욱 자연스럽게 자유주의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왕만 버린다 뿐이지 삶의 조건이 조금도 변하지 않으니까. 마치 박정희와 전두환을 잃은 한국의 기득권집단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듯이 말이다. 자유주의야말로 박정희, 전두환의 총칼 없이도 그들의 부귀를 지켜주는 철갑이다. ‘국가의 공공적 통제에 대한 개인의 자유, 즉 개인의 독립. 부자의 향유를 터치하지 말라. 이 사회는 적자생존으로 진화하니, 열성인 약한 자가 우성인 강한 자에게 지배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국가여! 부자들을 이대로 둬라. 우매한 민중이여! 우리의 지배를 받아들여라.’ 뭐 이런 얘기다. 봉건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시민사회로의 변혁에 꼭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공화주의, 즉 국가의 공공성, 공동체의 우애, 평등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근대국민국가를 세웠다. 봉건귀족들에게 이건 좀 곤란하다. 국가의 공공성을 강조하게 되면 기득권을 고스란히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불행히도 한국 근대시민운동의 첫 깃발은 자유주의였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서재필의 독립신문이다. 그들이 결국 친일파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기득권을 쥐고, 군사독재와 흘레붙고 한승조, 지만원, 이영훈을 낳고, 지금 한나라당의 발악과 박세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라는 잠꼬대를 낳았다. 2002년 한국의 수구-극우 집단이 인터넷 공간에 창간한 독립신문, 이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이런 역사성을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었는데 우연히 맞은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연의 일치라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슬로건은 원래 ‘독립’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공적 요구에 대한 개인의 독립, 공익에 대한 사익의 독립. 그래서 100년전 독립신문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과 경제적 독립이었고, 결국엔 이익 추구의 정당화, 경쟁원리의 강조를 통해 인종주의로 나아가고, 제국주의 찬양으로 나아갔으며 제 민족, 제 민중을 무시하고 외세를 숭배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자유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자유주의와 파시즘은 이란성, 아니 일란성 쌍동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이 결국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처럼 말이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를 소름끼치도록 혐오하는 것은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 특히 재산권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지켜주는 제국주의와 군사독재는 이들의 자유의 신념에 조금도 배치되지 않는다. 해서 이들이 친일과 일제를 단지 반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일체의 복지사회와 사회정의를 향한 국가적 노력에 이들이 친북용공 빨갱이의 딱지를 붙이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이들의 자유주의는 자기들의 욕망을 마음껏 향유하고 부귀를 대물림하도록 국가가 열중쉬어하고 있으라는 이념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작은정부를 외치고 틈만 나면 감세를 말하고 경쟁이데올로기를 말한다. 한국사회를 유럽식 복지사회가 아닌 미국식 자유주의사회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것이 박세일 등이 김영삼 문민정부부터 추진한 기득권집단의 탈독재시대 생존전략이다. 그래서 모든 파시즘, 전체주의의 압제에 극단적으로 반발하는 탈근대 사상을 조선일보가 환영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공의 장으로부터 개인의 욕망을 해방시키려는 탈근대 사상은, 문민정부 이후 기득권세력 생존전략과 조금도 배치되지 않으니까. 탈근대의 비조격인 니체의 전략도 <선, 악>을 <강, 약>으로 대치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그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고. <국사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탈근대 학자 임지현의 책제목이 아니다. 정신대에 도덕적 하자가 없다는 주장을 했던 미친 교수 서울대 이영훈의 논문 제목이다. 이영훈은 조선 근대화가 일제에 힘입었다는 주장도 했다. 위 논문의 소제는 “신화로서 민족”이다. 개인의 독립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은 덫일 뿐이니까. 자유주의자 복거일이 시민의 개혁정권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민족사회주의(나찌)’정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자유원리주의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어떤 민중권력, 자주, 복지의 움직임도 모두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당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 두 정부가 사실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펼친다 해도, 노론이 노론을 잔뜩 등용하는 정조를 자신의 적이라고 정확히 인식했듯이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차이를 그들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야수처럼. 탁석산은 월간조선 2003년 5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흥미로운 점은 民族의 自主獨立(자주독립)을 외쳤다는 「독립신문」에서 「民族」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1896년부터 1899년까지 발행한 「독립신문」에서 「民族」이란 말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라며 그것이 놀라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독립신문에 민족이 안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지금 친일파의 후예들이 다시 인터넷에 독립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사람마다 놀고 있는 사람을 인심 좋은 체하고 먹여 살려주면 얼른 생각하면 그게 매우 후한 듯한 일이여, 그러하되 다시 생각하면 그 사람을 아주 잡는 것이라.” - 독립신문 1896년 12월 8일자 “먹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에 의지하고 있은즉 그 사람이 어찌 자주독립할 마음이 있으리오” - 독립신문 1896년 12월 8일자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관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도 독립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독립하라는 거다. 공동체의 부조에 기대지 말고 자급자족하라. 그리고 누군가 부귀를 가졌다면 그건 그가 독립한 능력으로 이룬 것이니 국가가 그것을 건드려선(세금) 안 된다, 뭐 이런 논리 되겠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독립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절벽에 밀어세우면서 생명줄을 끊는 짓이 아닐까. 그래서 나에겐 수구가 발행하는 인터넷 독립신문의 제호가 흉기로 보인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결국 미국인들에게 선민의식을 갖게 했고,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낳았다.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침탈에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으며,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는 침략의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고,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일제를 찬양하고 제민족을 능멸하며 기득권 수호에만 열을 올린다. “인간적 동포애가 국민적 동포애보다 더 강한 것...교육받고 교양 있는 영국 신사와 그러한 독일 신사 사이의 공통점이, 영국과 독일 내의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간의 공통점보다 더 많은 것” - 독립신문 1896년 4월 21일자 자연스럽게 이들은 제민족보다 제국주의 교양인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꼈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이러니 민족이 독립신문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한승조는 미친*일까 한승조는 미친 *일까? 당연히 상식선에 비추어 미친 *이다. 그런데 그는 세칭 일류대 명예교수다. 즉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고 엘리트고 지식인이다. 그럼 미친 X이 아니란 말인가? 따져보자. 미쳤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상이 아니란 소리다. 그럼 뭐가 정상인데? 내가 만약 팔이 네 개인 사람들만 있는 나라에 가면 나는 비정상이 된다. 현재의 옷차림과 가치관으로 조선시대에 가면 난 미친 *이 될 거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구분, 미친놈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얘기다. 정상은 머릿수로, 사회적 힘으로 규정된다. 한승조처럼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이 사회지도층 인사인 것은 그런 미친 X들이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한국사회에서 한승조들은 미친 *이 아니라 정상인이다. 사실 그가 일반적인 미친 *의 기준, 즉 똥오줌 분별 못할 정도의 바보천치는 아닐 것이다. 어떻게 바보천치가 논문을 쓰고 외국 언론에 장문의 논설을 기고하겠는가. 단지 정상인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유식하며 지력이 출중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렇게 멀쩡한 지식인이 왜 삼척동자도 코웃음 칠 미친 소리를 하지? 이번 사건은 한승조란 개인의 우발적 돌출행동이 아니다. 작년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영훈이란 자가 일제의 정신대 동원을 성매매에 비유하는 개소리를 했었다. 시장의 매매행위에 불과한 것을 왜 그렇게 대한민국이 몰아치냐는 거다. 또 미군도 성매매를 하지 않느냐고 했었다. 한승조도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들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 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라고 하며 일제를 옹호하고 있다. 이것이 무얼 말하는가. 이건 어느 개인이 미쳐서 개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사고방식의 일단이 드러난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일제를 옹호하는 자들은 당연히 ‘나쁜 *’들이다. 자기가 나쁜 줄을 모른다면 ‘미친 *’이다. 어떤 사고방식이 이 명명백백한 사실에 눈감고 그들로 하여금 백주대낮에 당당히 개소리를 하게 하는가. 그건 자유주의다. 그들의 배후엔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정통 주자학에서 1900년 즈음 자유주의로 말을 갈아타기 시작해서 1945년 해방후 확실히 자유주의에 올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군사독재시절 그들에겐 무제약적인 자유가 보장됐기 때문에 굳이 자유를 외칠 필요도 없었고, 그냥 반북반공 자유민주주의 한마디면 모든 게 무사통과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민중이 봉기해서 시민권력을 형성하고 국가기구를 접수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지금 ‘자유’를 목놓아 외치고 있다. 구기득권세력과 시민세력간에 국가통수권을 사이에 둔 대회전이 펼쳐졌던 지난 2002년 대선정국에서 그들이 ‘독립신문’을 창간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왜 친일파들이 독립을 말할까? 용어정리가 필요하다. 이 때의 독립은 국가의 독립이 아니라 개인의 독립을 뜻한다. 그리고 자유란 민중의 정치적 자유, 소수자의 자유가 아니라 마음껏 돈 뜯어 모으고, 욕망을 향유할 개인의 자유다. 즉 저들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말한다. 자유주의를 말하는 자들은 민중의 정치적 자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신장되면 자신들이 돈과 부귀를 과점하는데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하여 그들의 자유주의는 아주 손쉽게 반민중 독재권력과 벗한다. 또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거추장스런 껍데기도 필요없다. 오로지 돈을 움켜쥔 개인만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부귀만 보장해준다면 일본제국이고 미국제국이고 박정희고 전두환이고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다. 하여 그들에겐 전혀 민중의 견제를 받지 않고 거칠 것 없이 욕망을 향유했던 일제시대와 박정희 시대가 낙원의 원형으로 유전자 속에 남아있다. 근대 시민혁명은 인간을 예속된 신민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만들려는 기획이었다. 여기서 미국은 자유를 가져갔고 유럽은 평등을 가져갔다. 그래서 미국은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나라가 프리컨트리가 됐고 유럽엔 공화주의가 발달했다. 달리 얘기하면 자유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처음부터 당연하게 전제한다. 반면에 유럽의 공화주의는 인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를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이상향으로 보고 끊임없이 그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누가, 어떻게? 바로 국가권력이다. 여기서 공화국이 등장한다. 자유주의는 그런 국가권력의 간섭을 거부한다. 그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니까. 어차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돈벌러 몸파는 것인데 일본군한테 판들 미군한테 판들 뭐가 문제가 되랴. 하여 이들에게 정신대는 문제가 안된다. “국가? 민족? 아서라. 그런 건 최소한으로 줄여야 돼.“ 하여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퇴조’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국가, 민족 개념이 폐기되니 식민지배 같은 사건도 그리 오바할 일이 아니다. 흑묘백묘. 식민지가 됐건 독재가 됐건 기득권을 누릴 자유만 보장되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유럽의 좌파는 국가를 말하고 ‘애국’을 말한다. 애국? 이건 우파의 전유물 아닌가? 다시 정리가 필요하다. 박정희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이 뒤죽박죽 돼 버렸다. 지금 국가를 말하는 사람들은 우파가 아니라 좌파다. 우파는 자유를 말하지 국가를 말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자유 = 우파, (급진) 극좌파”, “국가 = 좌파, 극우파” 이렇게 된다. 급진 극좌파도 자유를 말하는 것은 탈근대 사상 때문이다. 극우파가 국가를 말하는 것은 물론 파시즘이고. 좌파는 공공성의 보루로서, 민주성의 지평으로서 공화국을 요청한다. 우파 기득권층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에게 자유를 달라 한다. 급진파들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억압의 기제로 본다. 그래서 급기야 급진좌파와 보수우파가 한 목소리를 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근대의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탈근대 임지현 같은 성실한 학자들의 주장이 결국 수구적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퇴조 = 복지퇴조 = 빈곤의 확대 = 기득권의 공고화“ 이 대열에 우파와 급진파가 어깨를 걸고 있는 거다. 해서 난 국가중앙권력의 지나친 약화를 반대해왔다. 민주화와 강한 국가권력은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공화국이다. 한승조, 이영훈들의 짓거리는 개수작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개인가? 물론 아니다. 그들은 사람이다. 설마 그들이 금수만도 못한 개**들이겠는가. 그런데 왜 개수작을 할까? 그들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을 것 아닌가. 그것이 사회진화론이다. 경쟁을 해서 진 자들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고방식. 이것으로 해서 기득권층의 부귀는 정당화 된다. 진 자들이 능멸 받는 것은 당연하다. “식민지배? 약육강식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렇게 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승자론을 펼치고 능력론을 펼친다. 반면에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도주의를 말하고 정의를 말한다. 만약 정의의 이름으로 식민지배가 단죄된다면 기득권층의 기득권도 정의의 이름으로 흔들리게 된다. 하여 저들은 정의가 아닌 자유경쟁과 능력의 우열, 승자와 패자만을 말한다. 그게 자유주의다. 개들도 족보가 있는데 저들이라고 족보가 없으랴. 앞서 한국의 기득권세력이 1900년을 즈음해서 자유주의로 말을 갈아탔다고 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독립신문’이다. 그래서 수구집단이 2002년 대회전의 국면에서 다시 ‘독립신문’의 기치를 든 것이 의미심장한 것이다. 독립, 아까도 말했듯이 국가로부터의 독립, 민중의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19세기말 독립신문을 만든 자유주의자들은 국내 민중의 반외세 봉기군보다 오히려 외국군을 더 환영했다.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건 민중의 봉기가 아니라 제국이니까. 독립군을 혐오했던 독립신문.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자유주의를 탄핵하는 이유 자유주의자라고 모두 뿔 달린 도깨비는 아니다. 자유주의라는 이념이 꼭 민중들 죽으라는 기득권의 저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자유주의를 탄핵해야 하는가. 왜 자유주의에 대한 정확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가. 자유주의의 공세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에 이 나라의 미래가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변혁의 시대, 한 복판에 있다. 노무현과 개혁세력의 구호는 ‘원칙과 상식’이었다. 전근대적 국가에서 근대적인 일반민주주의 국가로 나라를 일신하자는 거다. 권위주의, 전체주의, 서열, 문벌, 지역주의, 금권정치, 파벌, 상명하복 등 일체의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구체제를 지키려는 기득권 세력과 매시간시간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전쟁은 전쟁이고, 그 다음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그 다음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조국은 어떤 모습인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형식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나라살림이 주권자들이 원하는 대로 꾸려지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이 형식을 쟁취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피가 필요했다. 그 다음엔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은 어떤가?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되면 진보일까, 후퇴일까? 당연히 대단한 진보다. 박정희, 전두환의 나라 대한민국이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만 되도 상전벽해, 천지가 뒤바뀌는 진보다. 미국사회는 한국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원칙과 상식이 넘쳐난다. 당장 교육 문제만 해도 미국엔 서울대가 없다. 아이비리그 다 합쳐도 우리나라 서울대 만큼 권력을 독점하진 않는다. 미국처럼만 되도 한국은 엄청나게 좋아지는 거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모델은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혁명의 원조 프랑스도 있지 않은가. 프랑스 지식인들은 자기네 나라와 다른 미국을 일컬어 ‘민주주의 국가’라 한다. 그럼 프랑스는 민주주의가 아니란 말인가? 프랑스인 레지 드브레는 이렇게 말한다. “공화정은 민주주의 그 이상이다... 공화정은 ‘자유’에다 ‘이성’을 더한 것이다. 그것은 권리에다 정의를 더한 것이다. 또 그것은 관용에다 의지를 더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공화국에서 계몽의 빛을 제거했을 때 남아있는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계몽의 빛을 달리 말하면 그것은 바로 ‘평등’의 이념이다. 노예였던 개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 만든 시민혁명 후 미국은 자유 일변도의 민주주의 국가를 세웠지만 유럽은 민주에 평등을 더한 공화주의를 취했다. 그것이 박애적이며 ‘이성적인’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있다. 이 아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해 미국은 부모 책임이고 유럽은 국가 책임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그 만큼 부모의 자유가 존중받고 유럽은 국가에 의해 자유가 제한된다. 유럽은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반면에 미국은 부모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한에서 아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 그래서 유럽의 대학은 전면평준화로 나아가고, 미국은 부분 평준화, 부분 서열화로 나아간다. 즉 돈이 넘쳐나는 사람은 일류 사립학교 가서 알아서 돈 쓰고, 없는 놈은 공립학교에 가란 소리다. 이 경우 아무리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계층은 대물림된다. 자유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자유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탓이다. 반면에 유럽은 사회가 공동 책임을 진다. 인간 사회의 어떤 개인도 다른 구성원과 완전히 단절된 독자적 개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사회에 의해 주어진 조건하에, 사회에 대해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는 강자가 누리는 권리과 약자가 받는 차별에 있어 미국과 유럽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드리웠다. 미국은 강자‘만’의 사회고 유럽은 공동체의 가치가 보다 더 추구된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 권리’ 위에 있는 공동체의 ‘정의’다. 다시 말하면 유럽에선 강자의 ‘자유’가 공동체, 즉 국가권력에 의해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이 제약받는다. 그렇게 미국은 시장주의 사회, 유럽은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둘 다 민주주의고, 둘 다 원칙과 상식이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워싱턴 D.C의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등, 보건 등 각종 사회보장분야에서도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은 그동안 잠재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스웨덴은 지난 90년대 실업자에게 기존 임금의 70%를 지급하는 등의 사회적 안전망을 갖췄다. 신경제를 통해 큰 성과를 올린 스웨덴은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불평등 해소에 앞장섰고, 오히려 미국보다 경제위기를 잘 견뎌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인 스티글리츠의 미국 사회에 대한 푸념이다. 미국은 자유주의 1번당과 자유주의 2번당이 양당정치를 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자기가 더 자유주의적이라고 경쟁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자유주의가 무슨 고매한, 인도주의적인, 진보적 이념이라도 되는 양 신주단지처럼 받든다. 그 결과는 우리가 오늘날 보는 미국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얼마 전 콘돌리자 라이스와 우리 인터넷 언론과의 간담회 때 그 짧은 시간에 라이스의 입에서 자유란 말이 28번 나왔다. 이쯤 되면 신앙이다. 그 자유의 본질을 100년전 독립신문을 만든 이 땅의 자유주의자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최선을 다하여 조선이 적자로서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조선이 공정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조선이 적자로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윤치호 일기 1892. 4. 7. 경쟁과 적자생존. 자유주의의 본질이다. 당연히 경쟁에 승리한 일제를 욕할 수 없다. 100년 전 독립신문의 창립자들은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기득권을 지키고 제국주의에 투항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구기득권 집단 역시 자유주의를 통해 영생을 얻으려 한다. 뉴라이트는 “낡은 보수와 극단적 진보”를 극복하겠다며 기염을 토한다. 낡은 보수는 독재체제고 극단적 진보는 사회주의다. 그럼 그들이 그 사이에서 찾은 것은? 자유주의다. 그걸 보고 한국의 수구집단이 내세우는 자유주의는 사이비 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흔히 비난한다. 일면은 맞는 말이다. 어차피 수구집단에겐 이념이 아니라 탐욕만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탐욕만 있는 자들에게 가장 이로운 이념이 ‘자유주의’인 것 또한 사실이다. 자유주의는 욕망을 해방시키니까.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보수우파적 사상이 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던가? 보수우파라고 해서 모두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데, 역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자유주의라는 날개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의 초과잉상태다. 한나라당도 자유주의, 열린우리당도 자유주의, 좌파진보진영은 탈근대사상이라는 유사자유주의에 빠져 사회가 날로 우경화, 미국화하고 있다. 제대로 날려면 자유주의당, 즉 보수당과 그 반대의 정치이념, 정치집단이 서야 한다. 지금처럼 자유주의가 득세하면 미국과 같이 자유주의당들이 보수 양당 정치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 80년 광주부터 피로 써온 민중투쟁의 역사는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프랑스식 모델에서 국가는 공동의 이익의 입안자요 수호자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식 모델에서 국가는...하나의 위협, 불필요한 존재... 프랑스식 모델에서 국가가 행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식 모델에서는 균형 잡힌 경쟁과 시장이다.” - 쥐스탱 바이스 자유주의의 목표는 독립이다. 공(公)에 대한 사(私)의 독립. 공화주의는 사보다 공이 우선한다. 우리는 흔히 사보다 공이 우선하는 걸 ‘독재’라고 알고 있다. 독재에 지긋지긋하게 당한 한국 민주세력은 자유민주, 국가중앙권력 약화를 마냥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 틈에 자유주의가 파고든다. 결국 국가라는 공공성의 토대가 와해되고 그 자리에 사적인 경쟁의 장인 시장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시장은 수구기득권이 생존할 토양을 제공한다. 그리고 민중은 민주와 자유의 이름으로 다시 벼랑 끝에 몰린다. 미국처럼.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공공성의 이념이 서야 한다. 그것은 공화국을 바로 세우는 거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방점을 ‘민주’가 아니라 ‘공화’에 찍는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민주’에 방점을 찍는 보수당과 ‘공화’에 방점을 찍는 진보당이 양 날개가 되는 것이다. (민주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항상 자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서두에 말했듯이 대한민국은 지금 격변기에 처해 있다. 격변기에 한 번 틀이 짜이면 그 틀이 바뀌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린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이 우-우 프레임으로 짜이느냐, 좌-우 프레임으로 짜이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자유‘의 득세는 필연적으로 우-우 프레임을 도출한다. 그러면 없는 집 아이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가고 아파도 치료도 못 받고 천시만 받는 나라가 된다. 이념은 세상을 규정한다. 이념이 서면 정치는 따라서 바뀐다. 자유주의가 득세해 정치인들이 서로 “내가 진짜 자유주의야”하고 경쟁하는 판이 되면 미국 꼴이 된다. 자유주의의 ‘자’자도 꺼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원래는 좋은 건데 한나라당이 잘 못 쓰는 게 아니라 자유주의 자체가 원래부터 몹쓸 사상이라고 각을 세워야 한다. 자유주의가 무너지면 수구집단은 알아서 사멸하고 유럽식 좌우 정치구도가 도래한다. 그리고 복지사회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개인에 우선하는 국가권력이 박정희, 전두환만 있는 건 아니다. 민주적 원리에 의거해 세워진 국가권력은 얼마든지 정당하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오직 국가권력만이 약자를 강자의 횡포로부터 지켜주는 공공성의 토대가 된다. 그것이 공화국이다. 권력을 말할 때다. 자유주의에 맞서야 할 때다. 국가를 세울 때다. 개인을 국가로부터 독립시키고, 공동체보다 개인을 위에 두는 사탕발림 그 이면에 있는 비인도성을 폭로할 때다. 좌파 지식인들, 젊은이들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유사자유주의-탈근대사상으로부터 젊은이들을 구출해야 한다. 반독재민주투쟁에 한이 맺혀 자유에 대한 경각심을 잃은 민주세력이여 깨어나라. 그래야 왼쪽 날개가 제대로 선다. 이젠 민주보다 공공성이다. 권리보다 복지다. 자유주의가 살면 친일파가 살고, 구기득권세력이 살고, 한나라당이 산다. 자유주의가 죽으면 민중이 살고, 인간이 살고, 공동체가 산다.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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