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달아라.
간혹 가다 리젠되는 올드비들 경우에 누락되었거나 잘못 기입되어있는 내용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 잡아주길 바란다.
이 실록은 오늘날 예의 버르장머리도 없이 발정나 발딱발딱 거리는 좆중고딩 좆뉴비들에게 교양을 심어주기 위해 편찬해낸 실록이니라. 그러므로 차근차근 읽고 과거의 일들을 귀감으로 삼아 후세에 이바지하거라.
1. 2006년부터 쓰는 이유
2005년 전에 있던 애니메이션 갤러리는 예전에 사라지고 없어 소규모로 남기만 한 짤방 몇 개로만 유추할 수 있는 이른바 선사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필자도 2006년에나 시작했기 때문에 2005년 얘기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 유명한 사건 몇 개를 간략히 정리해본다.
2005년 -선사시대-
1. 애갤 정모
애갤 정모가 1차는 아니였다. 하지만 2005년 12월 21일의 애갤정모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라면 디씨에 오늘날에도 돌아다니고 있는 이른바 "애갤정모.jpg"라는 짤방 때문일 것이다. 그 짤방의 진실을 밝혀주자면 테니스공 이라는 닉을 가진 유저가 있었다. 그가 애갤이 씌여진 깃발을 들고 서울을 돌아다니며 애갤러들과 정모를 해서 레전드가 된 정모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맨 처음 짤과 후에 깃발이 있는 짤만이 진짜 애갤러이고 나머지는 일본 오타쿠들의 사진이거나 아니면 애니피아에 거주하던 오타쿠들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애갤 정모만 보고 아... 애갤 진짜 병진이다 이런 소리는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2. 페퍼
옛날 사람이면 다 알만한 유명한 닉이다. 요즘에야 개념없는 좆중고딩들이 인증 툭하면 30장씩 올리고 그러지만 이 때만 해도 애갤러가 인증을 한 장이라도 올리면 그 즉시 레전드로 등극해주던 시절이다. 왜? 자신의 얼굴을 까고 병진 글을 쓴다는 게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페퍼는 인증을 하며 자신이 포항공대생이라는 낚시를 시도했다. 그러자 갤러들은 줄줄히 낚였고, 이에 기고만장한 페퍼는 달빠카페 (요즘에도 유명한 그 카르자크 카페) 를 털거나 혹은 달빠 "아오이"라는 여성유저와 키보트배틀을 뜨며 악명을 높였다. 그러나 페퍼는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포공대생이었다는 낚시가 낚시로 밝혀져 버로우), 그의 간지나던 인증 몇 장은 후에 아마빠와 어스름달이라는 갤러 둘에 의해 합성 짤의 묘미로 쓰이며 추락해버렸다. 필자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페퍼는 2007년쯤에 나타나 자신의 석호필헤어컷인증과 서강대학교 인증을 보였으니 그렇게 찌질한 녀석은 아니였을 것이다.
3. 종이술사
이 당시 전설의 닉 중 하나이다. 종이술사의 특징이라면 근친상간에 대한 므흣한 글로 상대적으로 순진했던 당시 애갤러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는데 여동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동생에게 정액을 탄 미숫가루를 먹였다는 스토리는 오늘날 보는 갤러들에게도 구역질을 나게 할만큼의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종이술사가 나타났을 때가 2008년 초였던 것 같다.
4. 2005년
2005년의 특성을 몇 가지 얘기하고 싶다면 우선 애갤 레전드 닉들이 대거 출몰했던 연도이기도 하다. 일단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봉이김건달, 헤1스 둘이 벌써 생각나는 걸 보니 05년은 애갤의 고대 리즈 시절이라도 보기에 충분하겠다. 물론 봉이김건달과 헤1스는 각자 빠른 89, 88년생으로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둘 다 이 때부터 애갤을 휘어잡을 포스를 선사했다고 해야겠다. 헤1스의 경우 이 당시 로젠메이든과 스트로베리 패닉 (스토파니)를 밀었고, 봉이김건달은 그다지 눈에 띄는 애니메이션 관련 활동이 있었는 지 모르겠지만, 금목걸이 인증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2005년 애갤러스 갤러리가 쿠가매니아의 요청으로 신설이 되면서 애갤의 잦이가 두 가지로 분할되었다. 마지막으로 2005년은 건시데로 애갤이 완벽한 단결을 하여 찌질 덕후 포스 최강을 자랑하며 달빠카페, 애니피아, 루리웹 과는 범접도 안되는 병신도를 자랑했다.
4. 대세 애니
스토파니, 로젠메이든, 건시데 등이 우선 생각이 난다. 엘펜리트 등은 04년으로 기억을 한다. 여하튼 이 당시에는 평균 갤러 숫자가 약 500명은 족히 넘어갈 정도로 덩치를 자랑했었다. 건시데가 방영하던 날, 이 500명이 모두 모여 함께 씹던 걸 볼 수 있었다.
5. 그 당시 문화
아직까지 애갤러스와 애갤의 분명한 구분이 없어 애갤에서도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하던 풍경이었다. 오늘날에야 다 좆중고딩 친목질로 도배되는 애갤이지만 그 때는 거의 대학생 대부분이 합동하여 찌질대던 거의 진정한 애갤 고대 리즈라고 해야겠다.
6. 선사시대 결론
선사시대는 현재로써 자료가 많이 발굴되지 않아 전적으로 다른 올드비들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올드비들이 이 글을 발견하여 빠진 내용이 있으면 꼭 추가하길 바란다.
2006년
드디어 2006년부터 시작하는구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집필하고자 한다.
1. 애갤왕조의 시작-중세시대
쿠가매니아라는 닉을 가진 자가 있었다. 그는 예전 호쿠토라는 갤러와 쌍벽을 이루던 자였는데 호쿠토가 군입대를 한 후 애갤의 명실공히 최고 자리에 급부상하여 06년부터 자주 열리던 정모에서 리더 역할을 자주 맡았다. 이럴 때 애갤 대통령 대통령 하며 호칭을 하였으니 그는 애갤의 1대 왕이 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쿠가매니아와 만나며 친분을 쌓아가던 갤러들을 꺼내보자면 봉이김건달, 조싸, 히나, 제세 등등이 있었다. 이 중에 봉이김건달과 조싸만 짚고 넘어가자.
2. 봉이김건달
엔하위키를 보니 애갤3대병신 중 하나라고 한다 (봉건달, 헤1스, 콜츠라는데 왜 내가 있지?) 물론 봉이김건달은 전편에서도 다루었지만 06년에는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약간 벗어나 행동대장 스러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로 헬싱의 안데르센 짤을 올리거나 툭하면 자신의 조폭 인증을 올리며 과시하던 그는 180cm의 키에 덩치큰 모습, 그리고 거침없는 키보드 실력을 발산하며 카리스마를 풍겼다. 하지만 그는 쿠가매니아 아래에 있어 조용히 세력을 키워가던 중이었다. 물론 쿠가매니아와 친하게 지냈지만 쿠가가 07년 1월 11일 군대에 입대를 하자 즉시 왕좌에 잽싸게 앉는 아서스(?)의 만행을 저지르고 공포의 정치를 시작한다. 물론 이 때는 봉이김건달에게 순수한 면이 아직 티끌만큼 남아있었던 시절이다.
3. 조싸
지인동을 모르는 좆뉴비들이 얼마나 될 지 새삼 궁금해진다. 조싸는 인천 사람으로 지인동 운영자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한국에 존재하던 모든 일본 동인지는 지인동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이른바 자손 1억마리 킬러. 하지만 그가 다니던 학교로 신고가 들어가고 그는 퇴학을 당했다는 초특급 크리를 당했다... 물론 조싸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라면 다른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조펠레의 저주. 그가 추천하던 작품은 모두다 작붕을 맞으며 망하고 마는 저주를 받게됬다. 대표적인 예로 NHK에 어서오세요! . 그가 추천하던 작품은 주로 곤조 회사에서 만든 작품이었는데 얼마 전에 곤조가 부도났다니 조싸의 저주의 위력을 실감한다.
4. 열풍
최근에도 간간히 보이는 닉. 짱구 꾸준글로 유명한데 옛날엔 그도 달빠카페를 자주 터는 등 애갤의 유명 키보드워리어로 활동했다. 이를 참지 못해 애갤러들이 강제 정모를 열고 열풍을 때려주려 갔다가 근육질의 트리플H가 서있는 걸 보고 그만 쫄아 못 때렸다는 얘기는 전설.
5. 사이버스타
요즘 놈들은 모를 사람이다. 고정닉 목록이 존재하던 시절 고정닉 짤방을 제작하던 사람인데 08년 쯤 되서 사라지셨으니, 혹자는 스카이넷 접속했다고 (물론 스카이넷=현실) 믿는 게 좋겟다. 도사 이미지.
둥이씨
둥이씨. 제대한 후인 요즘에도 애갤에 간간히 보이며 덕후질을 하고 있는 갤러다. 군대 입대를 필자 기억에 2006년 말에 한 거 같은데, 그 한참 전에도 여러가지 애니메이션 이야기로 훈훈한 이미지의 갤러로 기억되었지만, 입대 후 2년 간 애갤질을 하지 못하다 제대를 한 후 경상도 지방을 돌면서 갤러들 밥을 사주며 인지도를 쌓는다. 하지만, 역시 훈훈한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어 최근까지도 오와동맹이라는 것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었으니, 바로 애니갤 2차 유란 당시 봉건달리아에 맞써 둥이씨아즈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봉건달리아에 가입하게 되고 둥이씨아즈는 순식간에 만들어진 만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비운의 단체로 남게 되었다.
알케/알캐
둘을 빼놓고 2006년 병신들을 논하기 매우 힘들다. 특징이라면 글마다 다는 짤방에 자신의 뇌내망상에서 끄집어낸듯한 의미없는, 자잘한 글들을 적어넣었다는 건데 알케는 그냥 오덕후스러운 글, 알캐는 후장에 탐닉을 한 점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8. 꾸준글러
이 당시엔 꾸준글이 유달리 많았다. 물론 오늘날 녀석들에게 꾸준글의 정신 (05년 근성정신에서 파생되었지)를 설교하기란 힘들겟지만 꾸준글 몇 개 생각나는 걸 적어보겠다.
1. 본인은 이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 열풍)
2.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액션마스크)
3. 꿈의 사도가 끝난 지 XXX일이 지났습니다. (베지밀)
4. 횽들 애니 제목 좀 가르쳐줘 (라엘이)
애니메이션의 \'e\'자도 모르는 것들이 만든 어이없는 갤러리 (적혈귀)
나가토 봅시다 #### (간지에효환)
6. 당시 유행어 및 문화
그 딴 게 있었나? 2006년은 하루히가 방영했던 날이라 하루히빠가 유달리, 지독하게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스토파니 빠도 있었지만 많이 죽어가던 상황. 마리미떼가 좀 성황했나? 또한 악플러가 많이 출현하기 시작하던 때이다. 물론 2007년에 피크를 달리지만 아직 설명은 자제하겠다.
7. 결론
2006년부터 애갤을 시작한 사람은 아마 좀 텃세질 재미를 지금 보고 있을 거다. 07년부터 한 사람은 지못미.
2007년. 1편. 1월에서 3월.
예전 애니메이션-일본 갤러리가 야후 16번 서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엔 수능갤러리와 같은 서버를 빌려쓰면서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무언의 조약이 있었다.
그 당시 2006년-2007년 사이였고, 2007년에 애갤을 대변혁을 맞게 되며 엄청난 혁명을 겪게 된다. 하지만 변화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애갤도 그 당시 변화의 엄청난 후유증으로 오늘날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2007년 1월, 쿠가매니아라는 초대 황제가 애갤을 승천하셨다. 군대라는 이상향을 향해 본의 아닌 항해를 떠난 것이었다. 쿠가매니아는 당시 봉이김건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를 이용해 봉이김건달은 애갤을 그의 하수였던 패밀리들과 봉건달패밀리라는 걸 결성하여 털어 버린 뒤, 아얄씨 옵퍼까지 완전하게 정복하여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른바 1차 애갤왕의 난이라는 사건이다.
1차 애갤왕의 난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일본 갤러리 고정닉 목록이라는 짤방이 있었다. 이른 바 활동량에 따라 100명을 선정하여 매달 수정하고 그랬던 것인데, 사이버스타라는 갤러가 수정을 하곤 했었다. 초반에 봉이김건달과 사이버스타의 사이는 좋았다. 물론 새로운 황제에 등극했음에 불구하고 아직 애갤이 어수선한 상황이었으니 기존에 있던 세력과의 화합은 필수덕목이었다. 허나, 사이버스타의 매너좋은 말투를 경계한 봉이김건달은 이윽고 몇 차례 전쟁을 일으킨다. 이를 1차 애갤왕의 난이라고 하며 사이버스타의 입지도가 애갤상에선 급속도로 위축되어버렸다. 봉이김건달은 이로서 초기의 어수선함을 평정하고 애갤의 독재를 위해 박차를 가하게 된다.
애갤 1차 뉴비의 난, 그리고 과거고정닉들의 몰락
2007년 3월, 세 명의 갤러가 혜성같이 애갤에 갑자기 등장한다. 모두들 같은 프록시 195.175.37.70 를 썼기 때문에 세쌍둥이 아니냐는 의혹도 샀다. 첫 번째 갤러는 zxc라는 갤러로 지잡대 냄새 킁킁 이라는 광역도발로 애갤러들과 매일 키배를 하였다. 이를 본 봉이김건달은 zxc를 부셔버리기 위해 몇 차례 싸웠지만 이는 zxc의 기세만 더욱 더 등등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기고만장해진 zxc는 이제 고정닉목록을 집중적으로 십자포격하기 시작한다. 고정닉목록으로 인해 애갤에 텃세가 있고 이로 인해 뉴비들의 입지는 좁아진다는 주장에 당시 갤러들의 50%는 이 의견에 찬성했고 다른 50%는 반대했다. 그러던 중 qwe라는 또다른 닉이 나타나 비슷한 공격을 시작했다. zxc와의 차이점이라면 고정닉목록만 줄기차게 까댔다고 해야겠다. 이윽고 asd 라는 닉까지 나오며 3인의 워리어는 고정닉목록을 무너뜨려버리고, 이에 마음고생을 하던 사이버스타는 결국 포기하고 고정닉목록을 공지에서 내려버렸다. 고정닉들의 입지는 순식간에 없어졌지만 뉴비들에겐 신분상승의 기회였다...
2007년 1-3월을 정리하자면 과거 애갤의 문화의 쇠퇴기와 함께 근대 애갤의 신 문화가 도래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뉴비들과 고정닉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고, 2005년이나 그 전부터 하던 사람들은 2007년 3월을 기점으로 많이 탈갤을 하였고, 2006-07년에 들어온 갤러들이 서서히 인지도를 쌓아가던 시점이었다. 이른 바 물갈이였던 것이다.
타입문
2007년 2월 21일에 등장한 애갤의 전설적인 찌질이로, 그 전에도 존재하던 초딩이나 도사님이라는 닉들과 쌍수를 이었다. 특징이라면 엄청난 욕을 하며 훈훈한 세이버(나름대로) 짤을 달고 아래에다가는 말도 안되는 70글자짜리 단어욕으로 일반 애갤러들의 정신상태를 파괴시켜버리는 키보드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에게 천적 KimGun이라는 닉이 나타났다. 타입문은 이 당시 자신이 카스를 잘한다고 허세를 부렸으나 KimGun과 함께 하면서 0킬 35데스라는 기록을 세운뒤 sibal jonna jal hae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외에도 연고대 드립 (서연고는 서울대, 연세대, 그리고 연고대), 애니매시연드립등을 시전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피 주소가 프록시를 쓰지 않음에 따라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 주은프레지던트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것이 밝혀져 당시 애갤에서 현1피를 뜨자는 말까지 돌아다녔었다. 최근까지도 활동하지만 필자로써는 애갤에서 08년 이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도사님
도사님을 빼고 애갤을 이야기하기 섭섭하다. 도사님은 키보드워리어였지만 나름대로 덕후들을 구제해주고 당시 사라져만 가던 개념갤 애갤을 위해 힘을 쓰던 안타까운 운명을 타고 났었다. 그는 언제나 덕후들에게 돼지들아 도사님께서 XX라는 식의 글을 쓰며 덕후들을 갱생시키려 언제나 애썼지만 특유의 거친 말투는 GGG라는 닉의 반발을 사 결국 키배에서 지고 미스터리 갤러리로 사라지셨다. 하지만 도사님의 승천 이후 애갤은 급속도로 막장화되었으니 옛날 갤러들은 도사님을 그리워했었다. 하지만 이를 어찌랴. 한번 간 인연은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거늘.
당시 유행어 및 문화
아직까지 극소수이지만 햏자 사투리를 쓰던 갤러가 존재하였다. 이들은 이윽고 영원히 멸종을 하였다. 또한 히라노 아야를 까기 위해 만든 티라노아야라는 말이 탄생했고, 이는 2007년 여름 쯤 쎾쓰! 라는 말과 합성되어 티라노쎾쓰!라는 말로 재탄생하게 된다.
4. 결론
혼돈의 애갤은 이 때부터 도래했고 이윽고 가장 중요한 분수령인 2007년 여름이 오게 된다.
2007년 2편. 여름
2007년 여름은 뉴비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때다. 잘 숙지를 하길 바란다.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이 때부터 애갤의 연령이 급속히 낮아지며 엄청난 양의 찌질이들과 뉴비들이 유입된다. 하지만 네이버카페와 웃대 종자들에 대한 벽은 여전히 높아 순수 디씨인들이 대량 양성되며 애갤의 힘은 갑자기 커져만 갔다. 이 당시 봉건달이 지휘하는 왕조는 서서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던 올드비들과 함께 아얄씨로 숨기 시작했으며 봉건달의 세력이 약화되는 동안 뉴비들이 서로 친목그룹을 만들며 애갤 멸망의 가속화를 시켰다.
애갤중고딩의 난
2006년까지만 해도 중고딩은 중닥딸 (중딩은 닥치고 딸딸이) 고닥공 (고딩은 닥치고 공부) 등으로 10대들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애갤에 건재했다. 하지만 올드비들은 1차 뉴비의 난으로 멸종한 상태였고, 당연 10대들이 대거 유입하게 된다. 이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고, 마침 방영하던 코드기어스와 그렌라간과 맞물려 2007년 애갤을 이끌어가게 된다. 하지만 부작용도 심했으니, 92라인 등의 친목라인을 만들고 아얄씨 채널에서 서로 친목질만 해대며 고정닉 텃세를 부리니 애갤은 막장화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필자야 이제 10대 딱지 떼고 좆대딩이 되었으나, 역시 대딩도 대닥취 (대딩은 닥치고 취업)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진 않는다.
정모의 활성화
애갤멸망의 이유라면 주저없이 무분별한 정모를 꼽고 싶다. 그리고 이 몹쓸 문화가 2007년 여름부터 활성화가 되었다. 일단 서코 정모를 토대로 엄청난 양의 정모가 거의 1주일 주말에 한 번씩은 열리고 했는데 이로 인해 갤러들의 친목질은 가속화되고 새로 온 갤러들의 입지는 더욱 더 좁아지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몇 명 찌질이들을 한 번 얘기해보고 싶다.
GGG
간단하다. GGG는 한나라당 지지자였고 도사님을 버로우시켰던 닉이다. 2005년부터 활동했는데 왜 이 때 논의를 하느냐?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이 망하던 날이었다. 그는 그 때 열린우리당 회의장 옆에 열리던 서울코믹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열린우리당의원들이 침통해 할 때 “이명박 만세!!!”라는 멘트를 고함질러 외쳤고, 이 때 열우당 경비원들이 “저 새끼 잡아!!” 이러며 GGG를 잡으러 갔다고 한다. 물론 잡히지 않았지만, GGG는 훗날 바바PC방에서도 야동플짤을 감상하는 등 대단한 법력을 발휘했다.
으엉
2007년 아이콘이라면 단연 으엉이다. 그는 사실 2006년부터 활동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막장화가 되어가던 애갤에서 게이였던 그의 인기는 단연 우후죽순처럼 엄청나게 상승했다. 상승하던 그의 인기는 당연히 봉이김건달을 자극했지만 봉건달리아의 지속적인 방해 및 견제구에도 그는 특유의 충청도 식 낙천성 (충남 서산시 출신이다) 을 발휘하며 2007년 12월 서코 정모 때는 그의 사인회까지 개최되어 많은 갤러들이 그의 사인을 받아갔다. 하지만 오박사 게이 짤등을 올리며 코마키 마나카 (투하트2의 히로인)을 밀던 그는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고 으엉이 일궈낸 최대 성과라면 인증까기의 활성화이겠다. 그는 거의 매일 글을 싸면서 인증을 최소한 5번 이상은 올렸다 (매번 올릴때마다 다른 인증이라 나중 가서는 거의 으엉 인증만 해도 60개가 넘어갔다는 전설). 또한 이렇게 얼굴을 당당하게 까발리고 “코마키 쨩 박제하고 싶다” 등의 박제매니아, “후장!”의 후장매니아. 왕과 나에 나오던 배우 전하은의 미니홈피에 가 “전하은 박제하고 싶다” 등의 글을 싸면서 훗날애갤병진들의 귀감이 되었다.
결론
2007년 애갤 여름.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났었고 이를 다 옮겨 적지 못했다. 그만큼 방대하고 지금 와 돌아켜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당시 흥하던 막갤과 와갤의 영향을 받아 키배도 거의 2시간에 한번 꼴, 글리젠도 30초에 한페이지등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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