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숏코드 짜던 노인

바보아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3.01.24 22:59:03
조회 701 추천 5 댓글 1

벌써 사년여 전이다. 내가 프갤온 지 얼마 안 돼서 코드패드로 깔짝대던 때다. 더블릿에 문제 풀러 가는 길에 프갤에 잠깐 들러 일단 문제를 뿌려보고 가려 했다. 
프갤에 글마다 앉아서 댓글을 싸지르는 노인이 있었다. 더블릿 문제 하나 풀려고 코딩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욕을 굉장히 바가지로 싸지르는것 같았다. 좀 짜주면 안되겠냐 했더니

"그깟 알고리즘 문제 하나 가지고 짜달라오? 모르겠거든 전과나 하슈"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였다. 더 짜지도 못하고 짜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댓글을 다는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컴파일 해보고 저리 컴파일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코드를 더 줄이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제출 한다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기다리기 지루하니 빨리 짜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컴파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코드를 줄이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짜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줄일 만큼 줄여야 숏코드가 되지, 생코드가 재촉한다고 숏코드가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풀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줄인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더 안줄여도 된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짜달라우. 난 안 짜주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제출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줄여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짜야지, 짜다가 손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짜던 것을 숫제 IDEONE에 올려놓고 태연스럽게 웹컴파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줄이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코드는 메인함수 하나만 남아버릴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코드를 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짜기는 아까부터 다 짜여져 있던 코드다.

1등을 놓치고 다음으로 제출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드를 짜가지고 취업해서 갑질을 할 턱이 없다. 클라이언트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푸념글을 싸고 언어 덕후질을 하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Geek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댓글과 시니컬 하면서 알려줄건 다 알려주는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더블릿에 가서 코드를 제출했더니, 자유게시판에서 어떻게 짠거냐고 야단이다. 기존에 있던 코드들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단순히 변수명만 한글자로 바꾼다고, 타입을 없애고 무조건 정수형으로 한다고 숏코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별찍기를 할때 이중for문에 printf를 쓰는 대신에 for문 한개에 puts쓰는 것이 압도적으로 코드량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요렇게 애초에 접근방식을 달리하는 생각을 뒤집는 숏코드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C언어는, 객체를 표현할때 구조체를 쓰고 함수포인터로 메서드를 표현하면 마치 OOP 처럼 사용하여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C++ 은 한번 실수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런타임 오류를 잡을 때, gdb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명령어로 오류를 잡아낸다. 이것을 '디버깅한다'고 한다.

JAVA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JAVA 한다고 하면 보통 등급은 Servlet를 할 수 있는지, 그보다 나은 놈은 JSP를 할 수 있는지로 구별했고, 스프링을 쓴다는 놈은 3배 이상 비쌌다. 스프링이란 자바 플랫폼을 위한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이다. 말로는 스프링을 마스터 했는지 똥코더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시키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돈도 적게 주는데 최선을 다할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3배나 몸값을 쳐줄 갑들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코드를 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명품 코드를 만들어 냈다. 이 숏코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코더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드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디시에 방문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죽치고 있었던 프갤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마지막 남긴 글을 [프갤 망하가는구나 ㄱㅆㄲ드라!!] 멍하니 읽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일간 베스트 게시물에 코드패드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에 IDE ONE 주소를 알려주는 댓글도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사이트를 사용하였구나. 열심히 숏코드를 짜다가 유연히 웹 컴파일을 하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프갤을 클릭했더니 잡놈들이 질문글을 싸고 있었다. 전에 C언어 질문자를 쿵쿵 두들겨서 욕설을 내뱉던 생각이 난다. 숏코드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숏코딩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경쟁심을 자아내던 그 짧은 코드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년 여 전, 숏코드 짜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추천 비추천

5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UN 연설자로 내보내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5/09/29 - -
AD 프로게이머가 될테야!! 운영자 25/10/01 - -
공지 프로그래밍 갤러리 이용 안내 [96] 운영자 20.09.28 47604 65
2893644 사실 세대론으로 비판하면 안되고 생산수단 가진자를 비판해야 발명도둑잡기(118.235) 01:57 10 0
2893642 오늘의 소설, 영화 실마리: 성매매자 데이터베이스가 외국 정보기관에 발명도둑잡기(118.235) 01:52 7 0
2893641 엠스타인 명단 공개 예정인 의원 발명도둑잡기(118.235) 01:38 8 0
2893639 형님들 스타트업은 원래 조용한가요? [3] ㅇㅇ(106.101) 01:16 30 0
2893638 이직 하고 싶은데 물경력이라 방법이 없다.. ㅇㅇ(175.197) 01:16 22 0
2893637 BTS (방탄소년단) 'Dynamite' 발명도둑잡기(118.216) 01:07 13 0
2893636 먹고 살려고 안해본 일이 없는데, IT 프리랜서 장점은 ㅆㅇㅆ(124.216) 01:06 19 0
2893635 내가 느끼는게 랜딩 페이지 하나 작성에 15만 ㅆㅇㅆ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9 16 0
2893634 프리로 협업 몇번해봤는데 항상 느끼지만 ㅆㅇㅆ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6 18 0
2893632 어차피 개발하다보면 서로 지식의 빈곳이 있을수밖에 없어서 [3] ㅆㅇㅆ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8 34 0
2893631 신해철, 싸이-Dear America [1] 발명도둑잡기(118.216) 00:38 20 0
2893629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 ㅇㅇ(121.168) 00:30 18 0
2893628 한국 10년뒤엔 러스트충들 국비찍어될듯 타이밍뒷.통수한방(1.213) 00:29 15 0
2893627 일하면 그냥 현타 존나옴 [2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24 75 0
2893626 오늘의 작사 실마리: 관세전쟁 [3] 발명도둑잡기(118.216) 00:24 15 0
2893625 진짜 돈 모아서 C드라이브랑 메인보드 교체해야할듯 [2] ㅆㅇㅆ(124.216) 00:20 19 0
2893624 이거 교정 방법 잘못 고른건가? 발명도둑잡기(118.216) 00:18 10 0
2893622 후 아뮤튼 러스트 배워두십시오. 지능이 향상됩니다. [1] 프갤러(110.8) 00:12 22 0
2893620 밀레니얼로서 난 X세대보다 더 행복한 유년기에 꿀빨았다고 생각해 ㅇㅇ(121.168) 00:12 16 0
2893619 간식을 먹는데 입 안에 자꾸 찔려서 눈물이 저절로 난다 발명도둑잡기(118.216) 00:10 13 0
2893618 문화생활 깊이있게 하려면 무조건 일본에 의지 할 수 밖에 없음 [2]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10 17 0
2893616 sm은 원래 현업보다 it팀이 더 업무 프로세스를 잘 앎? [1] 프갤러(182.230) 00:02 22 0
2893615 서울에서 자란 친구들은 공부 못하면 부모가 ADHD의심해? ㅇㅇ(121.168) 00:01 12 0
2893614 이 시절 그리우면 개추 [3]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00 24 1
2893613 야야야야양야 진짜 발견. 계란국에 페퍼론치노 넣으니까 더 맛있음 ㅇㅇ(223.39) 10.02 12 0
2893612 성매매 국내 최고 DB 다크웹에 나와서 각국 정보기관이 샀을 것 발명도둑잡기(118.216) 10.02 22 0
2893611 나 금 산 거 며칠 전에 드디어 100% 넘었다 발명도둑잡기(118.216) 10.02 14 0
2893610 프갤에 모모와 김희철의 사랑 소설 써볼까 발명도둑잡기(118.216) 10.02 15 0
2893609 낼 봐야징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1 0
2893608 ㅆㅇㅆ새끼 뭣좀 해볼려고 우울증갤러리,업소 프갤러(210.217) 10.02 27 2
2893607 최근에 있던 회사에서 얻은 교훈은 ㅇㅇ(121.168) 10.02 15 0
2893606 나님 글 슬거리 생각났당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0 0
2893605 곧 죽을 때가 됐나보구만 [2] 프갤러(110.8) 10.02 25 0
2893603 34살에 국비로 취업했는데 [6] ㅇㅇ(175.197) 10.02 45 0
2893601 338621 맞대응) 프듀48 주작과 S엔터 ㅇㅇ(110.70) 10.02 35 0
2893600 근데 궁금한게 업소가는 애들은 자기 신상 팔리는거 안무섭나 [3] ㅆㅇㅆ(124.216) 10.02 36 0
2893599 추석 연휴 업소 가는 형들 꿀팁 반값 꿀팁 풀게ㅅㅅ ㅇㅇ(211.246) 10.02 15 0
2893598 오늘 당산에 연극보러 갔는데 어제랑 똑같은거드라 발명도둑잡기(118.235) 10.02 10 0
2893597 모모 추석맞이 김희철과 선물 교환하고 발명도둑잡기(118.235) 10.02 15 0
2893596 그날 인류는 떠올렸당⭐+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9 1
2893595 옳지.. 옳지 잘한당.. 그랭그랭.. [9]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44 0
2893593 기술인들이 잘되려면 창업 성공률이 높아야 하고 ㅇㅇ(121.168) 10.02 15 0
2893591 si 추노 후기 [4] 프갤러(222.121) 10.02 49 0
2893589 늦잠자지마라 애들아 [3] 루도그담당(58.239) 10.02 31 0
2893587 자취방 정리하고 나 지금 본가임 [5] ㅆㅇㅆ(124.216) 10.02 28 0
2893586 사이트 뼈대는 FSM으로 만들고 이제 애니메이션은 어떻게든하는데 [2] ㅆㅇㅆ(124.216) 10.02 18 0
2893585 두근거리는 연휴인가요 발명도둑잡기(118.235) 10.02 18 0
2893584 ❤✨☀⭐⚡☘⛩나님 시작합니당⛩☘⚡⭐☀✨❤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1 0
2893583 펜서레이크 언능 나외랑 ♥냥덩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7 0
뉴스 ‘얼굴 천재’ 송강, 팬 품으로 복귀…차은우 공백 속 대세 행보 예고 디시트렌드 10.0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