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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몬한 전투*

ㅓㅓㅓ 2006.08.12 04: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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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몬한 전투의 진상은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는 이 전투가 최초로 일본군이 변명의 여지 없이 패한 참패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그 진상을 2차대전이 끝날때 까지 밝히지 않았고 자국민의 눈을 속였다. 나중에 밝힌 사실들도 사건 관련자들의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아 객관적인 자료는 거의 밝혀 지지 않았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는 전투의 다른 당사자인 소련이 당시 전투에 대한 보도를 거의 취급하지 않아 소련측 자료가 거의 입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몬한 전투의 주무대는 호른 바이르 초원지대다. 호른 바이르 초원 지대는 블라디 보스톡에서 북서로 쭉 올라가면 하얼빈이 나타나고 다시 거의 같은 거리를 같은 각도로 달려가면 하이하르와 호른 바이르 초원 지대가 나타난다. 호른 바이르 지역에서는 만주국과 외몽고의 국경선이 불분명하여 크고 작은 전투가 몇차례나 발생하고 있었다. 노몬한 사건의 최초 보고는 39년 5월 13일 이었다. 하이하르에 주둔하는 23사단 고마쓰하라 중장으로부터였다. 보고 내용은 12일 아침 외몽고군 약700여명이 노몬한 남쪽지역에서 하르하강을 건너 국경을 침범 만주군과 교전중이며 23사단의 일부와 만주군이 이를 격멸 시킴이라고 되어 있었다. (소련측은 11일로 주장) 국경선에 대한 주장도 엇갈린다. 당시 일본측은 하르하강을 국경선으로 주장하고 있었으나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당시 많은 지도는 소련측이 주장하는 하르하강의 동쪽을 국경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전투보고를 받은 관동군 참모중에는 노몬한이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이 없어 상당 시간이 지난후에야 노몬한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일화는 전투의 책임을 소련과 외몽고에 떠넘기기 위한 계략에 가까운 말로 보인다. 분명하게 노몬한 전투는 일측의 국경 도발이었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은 5월 28일 이후였다. 23사단 고마쓰하라 사단장은 5월 13일 아스마 중좌가 지휘하는 기병연대 주력에 보병 2개 중대를 증원시켜 현지에 보냈다.(만주군 300명도 참가. 구색을 맞추려고..?) 공군기의 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개시한 아스마 중좌는 15일 외몽고군을 하르하 좌측으로 격퇴했다. 그러나 아스마 연대가 후퇴하자 외몽고군은 곧 추격하여 우측에 진지를 설치했다. 고마쓰하라는 공격 개시를 명했으나 돌아온 결과는 아스마 기병연대의 전멸소식이었다. 하르하강을 확보하기로 결심한 중장은 아스마 기병연대에 보병 1개 대대, 포병 1개 중대를 추가, 야마가다 부대를 편성하고 비행대도 증강했다. 한편 외몽고군도 새로 파견된 소련군 기계화 부대를 중심으로 증강되었다. 28일 일본군의 선제 공격이 시작되었다. 보병을 중심으로 주력을 소,몽고군 정면에 배치하였고 기병연대는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우회 측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전차대와 포병대의 저항은 의외로 맹렬 일본군의 주력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측면을 공격하던 아스마 기병연대는 퇴로가 차단되어 소련 전차대에 포위, 전원 전멸했다. 아스마 기병연대원들은 한쪽으로 겹겹히 쌓여 죽어 있었다. 고마쓰하라는 재차 포병 3개 중대를 증파했으나 이것도 패배했다. 결국 31일 일본군은 일제히 퇴각했다. 이것이 1차 노몬한 전투였다. 1차 전투는 연대가 전멸한채 일측의 완전 패배로 끝났다. 1차 전투 사후처리가 끝나지 않은 6월 19일에 관동군 사령부에 접수된 전문은 "노몬한 지역의 소련군이 점차 병력을 증강시켜 18일에 만주국 군대를 축출하였음. 적 폭격기의 폭격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 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을 접한 관동군 사령부는 즉각 노몬한에 병력집결을 지시했다. 집결된 병력은 보강된 23사단 전 병력과 제1 전차단에 7사단 일부를 배속시켜 편성한 야쓰오까 부대 그리고 2비행대 등이다. 국경분쟁에서는 전례없는 대병력의 동원이었다. 관동군은 새벽 외몽고의 담스크를 폭격했다. 일본군이 제공권을 잡기 위해 130여대의 공군기를 동원 소련 공군기지를 폭격했다. 이 폭격으로 백여대 이상의 소련 항공기가 파괴되고 기지도 부서졌다. 이 담스크 폭격으로 일측의 의도가 적극적이라 판단한 소련은 노몬한 주위에 대병력을 집결시켰다. 이리하여 제 2차 노몬한 전투가 시작 되었다. 7월 1일 노몬한에 집결한 23사단과 야스오까 부대는 아군이 제공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느긋한 심정으로 하르하강을 건너 소련진지로 깊숙히 진격하여 소련을 단숨에 격멸하겠다는 대담한 작전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2일밤 예정대로 23사단 주력부대가 출동하였고 이에 대한 소련측의 저항도 완강했다. 소련측은 수백대의 전차를 동원 반격을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병사들은 소구경 대전차포와 화염병을 가지고 육탄 돌격을 시도했다. 3일 오후부터 전황은 불리해져 23사단은 서서히 철수 야스오까 부대와 합류했다. 야스오까 부대도 우측의 소련 진지를 공격하면서 전차 40여대가 파괴 되었다. 5일 일측은 공격을 재개했으나 소련 전차와 포병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전투는 16일 교착상태로 빠졌다. 상황이 이러하자 일본 참모부는 단기전으로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소련과 외몽고의 주장대로 국경선을 인정하는 선에서 전투를 끝내려 결정했다. 그러나 관동군은 소련측의 피해도 막대하다며 더욱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것을 주장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전투는 재개 되었다. 소련측이 예상밖으로 강력하고 자신들의 포병이 부족하다고 판단 일본 본토에서 포병 3개 연대를 증원 받았다. 7월 23일 세번째 공격을 시도 하였으나 이 공격도 실패, 전선의 교착 상태는 계속 되었다. 관동군은 6월 중순경 큰 피해를 입은 야스오까 부대를 해체하고 전 만주지역에 방공관제를 실시하는 등 제반 조치를 취해 갔다. 8월 제 6군을 창설, 노몬한 방면의 전군을 지휘하게 하는 등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한편 소련측도 쥬코프의 지휘하에 제 1군단을 설치하여 기갑 5개 사단 (전차, 장갑차 각각 450량 가량)을 중심으로 병력을 증강했다. 8월에는 다시 소련측이 제공권을 찾아갔다. 일측이 장기전에 들어서자 소련측은 8월 공세를 준비하였다. 8월 10일 소규모 전투를 시도하기 시작한 소련측은 20일 드디어 본격적인 8월 공세에 돌입한다. 공세에 동원된 부대는 기갑 5개 사단, 기병 2개 사단, 저격 3개사단으로 일본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병력이었다. 일측의 장기전에 소련측의 단기결전이었다. 소련측의 강경대응의 배경은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유럽 전선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20일 소련은 항공기의 지원 아래 전 전선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새로 보강된 신예 전차부대의 엄호를 받는 대규모 소련군은 차차 일본군을 압박해 갔다. 23일 소련군은 일본군을 완전 포위하였다. 일본군은 퇴로를 차단당한채 고립 되어 버린 것이다. 일본군은 정예 7사단을 노몬한에 투입한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퇴로는 차단되고 방어진지는 여러곳으로 분산 고립되어 일본군은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어 탈출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 막대한 피해만 입었다. 29일에 일본군은 외몽고가 주장하는 국경 밖으로 완전히 쫓겨났다. 이중 가장 비참한 지경이 된것은 23사단이었다. 1차 노몬한 전투에서 이미 1개 연대가 전멸, 병력을 증강했으나 최전선의 주력을 형성, 소련군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고바야시가 지휘했던 보병단은 소련 전차에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고바야시 자신도 전차에 깔려 중상을 입는 등 막대한 피해를 당한채 괴멸 되었다. 28일 홀스텐 북쪽으로 이동하려한 사단 사령부는 소련군의 공격으로 포위되었다. 제 일선의 야마카타 연대장은 군기를 불사르고 자결하였고 고마쓰하라 자신도 유서를 남기고 최후의 돌격을 하려 했으나, 군 사령관의 설득으로 몇명의 친위병만 거느리고 도망치는 처지가 되었다. 23사단 11000여병력중 사상률은 70%를 넘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남긴 것이다. 살아남은 병사들도 대열을 이탈하여 퇴각하거나 문책이 두려워 자결하는 자가 속출했다. 고마쓰하라는 본국으로 소환되어 대기발령 되었다가 병사했다. 노몬한의 결정적 패배를 직면한 일본 육참은 어떠한 조건이라도 전투를 종결 시키기로 하였다. 관동군은 더욱 대병력을 동원, 재결전을 벌이려다 일왕의 재가를 받아 분쟁지역에서 철수하라는 지시에 응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일본군 전멸이라는 군사적 성과를 올린 소련군은 스스로 설정한 국경 밖으로 전혀 추격을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소련의 "침범하지도 침범 당하지도 않는다" 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노몬한 전투를 돌아보면 소련측의 절도 있는 군통솔이 일본측의 하급 부대인 관동군이 육참에 반발하는 등의 일에 비해 훨씬 돋보였다. 9월 17일 휴전 협정이 성립 되었고, 국경선은 몇번의 절충 끝에 소련측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는 선에서 종결되었다. 관동군의 독주로 시작된 이 전투는 이렇게 참패로 결론났다. 이 노몬한 전투는 관동군의 단 한 번 뿐인 본격적인 전투였을 뿐 아니라 일본군으로써는 현대적 장비를 갖춘 군대와의 첫 전투였다. 소련은 전차전의 하나 하나에서 새로운 전법을 구사한데 반해 일본군은 아무런 대응 없이 무조건 육탄돌격으로 일관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무런 과오로부터의 교훈을 배우는 것이 없이 잊혀졌다. ----출처 : 디펜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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