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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최후의 도박-발지 대 전투

하인리히 소위 2005.10.29 0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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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지 대전투 <히틀러의 최후의 도박>이라고 일컬어지는 <발지전투>는 히틀러가 아르덴느산림지대의 130Km에 걸친 유령전선에 기습을 성공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유령전선이라고 한것은 이곳이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와 태고의 정적에 잠겼는데 여기서 양군이 두달 가까이나 대치하여 감시를 계속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회피하려 한데서 유래 되고 있었다. 이 유령전선에는 미8군단이 배치되어있었는데, 2개사단은 전투손실이 심했고 나머지 2개사단은 모두가 신병으로 편성되어 경험이 부족했다. 히틀러는 여기에 집중공격을 가하고 돌파구를 열어 뮤즈강까지 신속히 전진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독일 기갑군을 동원해 단숨에 안트와프까지 전진해 연합군을 보급항구로 부터 차단시켜 패배의 날을 연기 시키면 무조건 항복하기 보다는 유리한 평화 조건을 얻을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고 히틀러는 생각했다. 이 작전은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5년동안이나 전세계의 반을 상대로 싸워 온 히틀러의 생각으로는 물의가 아니었다. 독일군의 공격은 1944년 12월 16일 아침 5시30분에 시작되었다. 히틀러가 이 작전의 성공에 걸은 기갑부대의 돌진이 아르덴트의 무성한 산림과 악천후 때문에 제한된 길목에서 집중적으로 저지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군의 엄청난 계획에 놀라지 않은 미군 지휘관은 없었다. 12월 16일~17일의 양일간 미 제8군단은 눈이 쌓인 전나무 숲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25만의 독일군 정예부대의 전진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이때 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지휘관들은 아이젠하워를 포함해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다만 홀로 의욕에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고대하던 일대격전을 치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조지, 패튼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급 사령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고 패튼은 생각했다. 패튼의 자신감에 아이젠하워는 그에게 강력한 반격을 해주기를 바라면 6개사단의 병력으로 작전을 실행하라고 명령했다.하지만 패튼이 장담한대로 쉬운일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선 진행중인 자아르의 전투(제3군은 자아르전투가 진행중) 를 중지하고 전군을 90도 좌선회 시켜 독일군의 저항을 뿌리치고, 게다가 몇천대의 차량을 눈길 속에서 이동시켜야만 되었다. 이것은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부터 무리한 계획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자신에 넘치는 패튼이었다. 12월22일 패튼은 3개사단으로 공격을 시작한 다음날 날씨가 좋아져 공군이 지원을 할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이 포위되어있는 연합군을 섬멸하기 위해 강력한 병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제4기갑사단에게 아롱~뤼에쥬가도를 따라 바스토뉴까지 진격하는것을 최우선으로 중시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의해 <발지전투>에서의 패튼은 유례없는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이 결정이야 말로 적절한 것이었다. 패튼의 전임참모장 가페장군이 이끄는 역전의 용사 제4기갑사단은 고속전투여단에게 바스토뉴 외각진지의 독일군 초계선을 돌파하도록 했다. 이들이 상대할 독일제5공수사단은 독일 공군의 지상요원을 끌어모은 오합지졸같은 전력이었지만 대전차포를 앞세우고 미 제4기갑사단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8군단의 건조물 파괴공작은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수행되었는데 이것이 구원부대의 전진에도 방해가 되고 있었다. 그로인해 23일 정오에 바스토뉴에 남쪽 14Km가까이 쯤에 있는 부르논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여기서 전진은 주춤하고 말았다. 24일 지상포격과 전투기의 지원이 있은 뒤 오후1시 30분 전차에 보병을 탑재하여 공격했으나 날씨가 맑아 얼어 붙었던 대지가 진창으로 바뀌어 전차의 기동에 제한을 받게 되고 이는 독일 자주포의 좋은 밥이 되어 11대의 셔먼전차를 잃고 격파 당했다. 할 수 없이 후속 고속기동연대에 바톤을 넘겼다. 4개대대의 포병과 1개대대의 셔먼전차가 맹렬한 포화를 뿜으며 루모아빌의 제5공수사단을 격파하고 독일군 250명이상을 포로로 잡았다. 이날 하루를 루모아빌에 공격에 다써버려 이 이상은 전진하지 못했다. 바스토뉴까지는 아직도 10Km가 남아 있었고 미제4기갑사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재공격은 [최후의 1인까지 싸우라] 하는 패튼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는 길고도 고난의 전투였다. 드디어 12월26일 오후4시쯤 제101공수사단을 독일군에서 구출한 <바스토뉴 구출작전>이 끝나고 동시에 그의 이름은 전 미국에 명성을 떨치게 된것이다 패튼이 제3군을 자아르강의 교두보에서 눈 덮인 아르덴느로 이동시킨 다시말해 혹한의 유럽땅에서 3만3천여대의 차량을 연 25만Km나 이동시키는 불가능을 부하장병에게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패튼의 특유의 대담함 실행력과 지휘력으로 군수송면으로도 업적을 남겼다고 이의가 없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수송면의 한 공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다. 미9군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멜리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르덴느의전투가 패튼 덕에 이겼다고 믿고 있다. 확실히 제3군은 바스토뉴를 탈환했다. 하나 독일군의 주력부대가 최초의 열흘동안 벨기에 북서부에 미제1군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바스토뉴 주변에 격전이 전개된것은 도시가 독일군에 포위 되었을때가 아니고 열흘뒤 브루?과 안트와프를 탈취하겠다는 야망을 히틀러가 버리고 남쪽으로 군을 돌렸을때 생겼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패튼이 북진중에 싸운 독일군은 제7군의 2류전력인 보병 4개사단으로 명백하게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만 배치되어 있던 약체였다. 이 동안에도 북부방면에서 미제1군이 독일군 정예부대인 제5, 6기갑군등 4개군단의 중압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패튼의 견제작전이 없었다면 사실 제1군은 극히 위험한 전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바스토뉴 구출>은 적의 측면을 찌르는 패튼 작전의 제일 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 학자들 사이에는 바스토뉴는 전술적으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보는 이가 늘고 있다. 오히려 <발지 전투>에서 독일군의 결정적인 패인을 준것은 크라크장군(제4기갑사단의 전투여단 지휘관)의 상비트 방위전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상비트와 바스토뉴를 공격한 독일 제5기갑군의 만트이펠이 지적하고 있듯이, 상비트는 예상외로 버티어냈고 그 결과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SS제2기갑군단의 행동개시가 휠씬 늦어지고 말았다. 이 결과 독일군의 진격은 예정보다 5일이나 늦어지고 상비트의 배후 비엘사룸에 있는 미군의 소탕에 또 2일을 소모해야 했다. 덕분에 미제1군은 방어선을 정비할 시간을 벌수 있었고 우연하게도 바스토뉴의 미군들도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패튼의 공헌도는 어찌 되었든 그는 <발지 전투>에서 명성에 상처를 입지 않았던 오직 한명인 미군 사령관으로써 각광과 추앙을 받았다. 패튼은 미국의 전통적인 영웅상의 조건 - 힘차고 속되고 사나이다워야 하는 - 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대중의 마음 속에서 바스토뉴의 구출과 결부 되어 버렸다. 미국민에게 있어서 바스토뉴의 방위 작전은 곧<발지 전투>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바스토뉴의 구출도 끝나고 패튼 휘하에는 6개사단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1945년 1월 1일 6개사단은 바스토뉴 돌출부를 더욱 넓히기 위해 남부에서 공세 작전에 들어가고 독일군의 측면에 깊이 파고 들어갔다. 1월 3일과4일 양일 바스토뉴는 독일군 8개사단(SS제6기갑군의 4개사단이 포함)의 맹렬한 연계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악천후로 인해 공군의 지원을 바랄수도 없었으나 미제3군은 악착같이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바스토뉴 서부에 가해지는 독일군의 압력을 경감시키기 위해 패튼은 부득이 배치한 신참의 미보병사단을 투입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었다. 그러나 1월 5일이 되자 독일군의 공세는 약화하기 시작하고 퇴세가 뚜렷해졌다. 독일 만트이펠(제5기갑군)은 북방에서의 몽고메리의 반격에 대비하여 병력을 먼저 철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히틀러는 바스토뉴 탈취 계획을 포기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패튼은 다시 전진할수 있게 되었다. 1945년 1월 11일 그의휘하 제11기갑사단은 후파리제 지역에서 제1군 2기갑사단과 성공리에 합류했다. 이리하여 독일군의 돌출부는 붕괴되고 그 뒤로는 잿더미로 변한 전쟁터를 정리할 따름이었다. 1월 29일 <발지 전투>는 끝났다고 하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패튼은 특별 공식기자 회견을 열고 그답지 않은 겸손한 어조로 [내가 한일이라면 명령을 내렸을 뿐이지] 그러나 그주 주말에 패튼의 일기장에는 [본 작전중 제3군은 미국 역사상의 어떠한 군대보다, 혹은 아마도 세계역사상 어떠한 군대보다도 보다 광범하게 보다 신속하게 행동했고 또 단시일 안에 보다 많은 부대를 전개 시켰던 것이다] 이 자존심이 패튼의 숨김없는 본심이었을 것이다. 결국 발지 전투에서 독일은 전차 600대 항공기 1600대를 잃고 7만명의 사상자와 5만명의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했다. 모든 예비병력마저 다잃은 히틀러에게 그나마 위안에 된것은 연합군이 침공을 6주정도 연기시켰다는것 뿐인것이다. 자료출처 http://patroller.hihome.com/page-24.html http://patroller.hihome.com/page-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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