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942년 여름 작전의 서막
오랫동안 사막을 떠나지 못했던 롬멜은 독일 최고 작전 지도부와 구두로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42년초부터 총통 사령부를
방문할 셈으로 적당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1월 말의 대승리로 전선은 한결 조용했다.
2월 중순에 들어가서 이 사실을 통보했더니 이상한 회신이 왔다.
『일시적이긴 하나 전장을 떠날 수 있으리만큼 정세가 안정되어 있는 것
인지 보고하라.』
롬멜은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뜻을 간단하게
회신했다. 최고 사령부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 다시 연락하라. 동프로이센으로 가는 비행기에
대해서는 추후 지시하겠음.』
라스텐부르크의 녹색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모든 예측과 전제를
뒤엎고 북아프리카전투를 다시금 유리하게 전환시켜 놓은 인물에 대해 쓸
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사실상 그들은 롬멜을 별로 좋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사령부가 패배를 계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승
리를 얻어 낸, 꼽추처럼 목이 짧은 이 슈와벤 태생의 사나이를 이들은 경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2월 15일 새벽 4시, 롬멜은 로마를 향해서 떠났다. 롬멜을 맞은 베네치
아 궁전의 무솔리니는 여느 때처럼 반가히 환영해 주었으나 군사적인 이야
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공적(公的)으로는 지중해 지구 최고사령관
이었던 무솔리니였지만 얼마 전부터 자신이 결정짓는 일을 피하고 있었다.
16일에는 비엔나로 날아가 가족을 만나고 17일 라텐부루크 비행장에 내
렸다. 가까운 곳에 히틀러의 사령부가 있었다.
롬멜과 참모장 베스트팔은 총통이 북아프리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그것은 큰 잘못이었다. 총통의 머리는 소련 전
선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모스크바 전방의 패전 때문에 몹시 골
치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롬멜이 영국군의 동기공세와, 1월 이후 독일군 반격(反擊)및 아프리카의
현황을 소상히 설명해 주어도 도대체 이런 일들이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답답해진 롬멜은 다그쳐 물었다.
『총통각하! 1942년도의 북아프리카, 지중해 지역에 대해서 최고 사령부
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히틀러는 즉답을 피했다. 말타를 점령해 버리자는 그의 제안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지중해 지역에서 이 이상의 공세를 취할 결심을 하게 된다면 그 계획
을 위해서 건전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우도록 힘쓸 예정이오.』
라는, 그런 애매한 말뿐 언질 이사의 것을 끄집어 낼 수 없었다. 베스트팔
이 17일 밤과 18일 오전에 걸쳐 요들과 단독으로 장시간 회담했으나 요들
의 태도 역시 석연치 않고 분명하지 않았다.
동부전선에 정신이 모두 팔렸던 최고 사령부는 아프리카를 탐탁하게 보지
않았고 이 지역에 있어서의 대영국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군을 이집트에서 두들겨주는 일 바로 그것이 대영제국의 최대의 급소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처칠은 아프리카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이 전선이 영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히틀러와 그의 최고 사령부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해하려 들지 않는 태도였는지고 모를 일이었다.
크게 낙심한 롬멜과 베스트팔은 동프로이센을 떠났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던 롬멜은 다시 한번 무솔리니를 만나 자기의 작전 계
획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으려고 웅변을 토했다. 첫째는 말타를 점령하여
아프리카의 보급선에 대한 끊임 없는 위협을 제거할 것, 둘째로 토부룩
전선을 위시한 새로운 공세를 펼 것 등.
만약 말타섬을 점령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는 작전의 순서를 바꾸
어도 좋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솔리니의 태도 역시 적극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 롬멜은 끈
덕지게 노력했다.
롬멜은 4월 말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총통사령부와 무솔리니의 최고사령
부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영국군은 이미 하기(夏期) 공세를 준비하고 있
으니 오킨렉크에게 선수를 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롬멜은 공격계획 수립에 열중했다.
『보급을 서둘러!』
입을 열면 먼저 이 말부터 나왔다.
『보급을! 좀 더!』
하나 4월 초순의 정세는 신통치 못했다. 거대한 거미와도 같은 말타 주
둔 영국군이 독일 이탈리아의 병사와 무기를 속속 삼켜먹고 있었다. 3월달
에 필요했던 6만톤의 물자 가운데서 아프리카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1
만 8천톤에 불과했다.
그러나 켓셀링의 제2공군은 바위로 이루어진 요새 말타의 공습을 시작했
다. 먼저 폭탄으로 두들겨 놓은 다음, 공정부대에 의한 말타의 점령은 롬
멜이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끝낼 작정이었다. 독일군 제2공수 사단은 이를
위해서 이탈리아로 옮겨졌으나 얼마 후, 이탈리아군은 6월 말 이전에는 침
공준비를 끝낼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롬멜은 예정했던대로 계획의 순서를 뒤바꾸었다. 먼저 토부룩
를 점령하고 나서 말타에 침공을 개시하기로.
이 변경이 아프리카 전쟁의 종요한 전기(轉機)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케셀링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쉬지 않고 바위의 섬인 말타로 날아가서 항
만과 방위시설을 때려부수고 비행장을 곰보로 만들어 놓았다. 카닝검 제독
의 함대는 폭탄의 비세례를 피해서 도주하고 말았다. 영국의 비행기는 날
아오를 수 없었고 롬멜의 보급선은 태평했다. 1942년 4월부터 5월 중순에
걸쳐서 독, 이 양국의 배는 거의 가라앉은 일이 없어졌다. 말타를 봉해 버
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증명이 필요했다면 이것이 그 증거였다. 하
나 그리고 나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이 증명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한편
영국군은 이와 반대로 말타를 끝끝내 유지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영국의 중요한 지중해 거점이 함락될지도 모른다는데 대해서 상심하고
있었던 처칠은 로드 고우드가 말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인편으로 이
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귀관은 아마도 말타섬을 독일군에게 넘겨주는 슬픈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 카이로의 오킨렉크도 불길한 말을 지껄였다.
『말타 없이는 이집트를 지켜낼 수 없을거요.』
그러나 라스덴부르크의 히틀러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칠리아에 자리잡고 있는 제2공군의 급강하 폭격대, 수평 폭격대는 최
고 작전지도부의 오류를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오직 말타에 폭탄을 퍼 부
음으로써 롬멜의 공격을 준비했다. 두달동안 지중해의 제공권은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크레타에서 날아간 Ju52 13대 가운데서 8,9대가 말타
에 있었던 영국 전투기의 밥이 되던 때는 지나갔다. 벤가디에 이탈리아의
호송 선단이 도착했다. 트리폴리 항구 부두에는 중전차, 88밀리포, 그리고
유탄포가 양륙되었다.
보급이란 이런 것이었다.
한 여름,
사막은 불타고 있었다. 깊은 밤중에도 돌과 모래가 끓는 코오피처럼 뜨
거웠다. 온도계는 40,50 다시 58도로 상승하기도 했다.
의학서에는 「백인은 이런 더위를 견디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노동
은 물론 도저히 싸움을 못한다고……. 그렇다면 전차를 탈 수 있을까? 물
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영국인과 독일인 이탈리아인은 타는듯한 전차 속으로 기어 들었고 보병
과 포병은 진지를 구축했고 공병은 50도의 더위 속에서 지뢰를 묻었다. 모
두가 새까맣게 타고 마르고 피골이 상접하고 피부는 숙피(熟皮)를 닮아갔
다. 모래 속에 있는 벼룩에 깨물렸고 사병과 장교들은 설사병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전투준비에 힘썼다. 이와 같은 헌신과 정력으로
한다면 스에즈 운하를 열 개나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하나 이들은 한 개
의 운하를 가지고 싸우는 적대시하는 군대인 것이다.
롬멜은 영국군이 공격해 오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영국군 역시
롬멜의 마음 속을 알고 있었다. 어느 편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것인가?
『이번만은 영국군이 독일군을 앞지르지 않을까?』
독일 병사들이 걱정했다.
『롬멜이 선수를 쓰지 않을까?』
영국군들도 걱정을 했다. 그들은 〈롬멜〉이라 말했다. 그들의 눈에 비
치는 롬멜은 대담한 전술 전격적인 공격, 사막의 대상로(隊商路)를 쓰는
급진격의 화신이었다. 대담하고 멋있게 칼을 휘두르는 롬멜은 영국군들의
전설이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장군이 적군 전체를 대표한다는 현상은 영
국군의 사기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롬멜이 온다!』
는 말은 무서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군 최고 사령부는 이와같은 심리효과를 눈치챘다. 그래서 오킨렉크
는 재미있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전사(戰史)에서도 드물게 보는 문서였
다. 네링 장군이 비장하고 있는 당시의 문서를 펼쳐 보자.
중동방면군 최고사령관의 명령
중동방면 사령부 및 각종 부대 지휘관에게 고함.
우리들의 친구 롬멜의 이름이 아군의 이야기거리가 됨으로써 어느새 아
군의 인기를 차지하는 존재가 되어갈 위험성이 있다. 그는 정력적이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이기는 하나 초인(超人)은 아니다. 설령 초인이라
할지라도 우리 군대의 병사들이 그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한다는 것
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때문에 롬멜을 흔히 있는 장군이 아니라고 생
각하는데 대해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겠다. 먼저 리비아의 적을 롬멜이라
부르지 못하도록 해야겠다. 독일군, 추축군이라 부르지 않는 경우에는
적군이라 불러야 할 것이며 특별한 뜻을 풍겨서 롬멜이라 불러서는 안된
다. 이 명령은 꼭 이행되어야 하며 하급 지휘관들은 부하들에게 이 일에
대하여 심리적 중요성을 가르쳐주기 바람.
중동방면군 최고사령
오킨렉크
추신…본관은 롬멜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 아님.
질투 운운하는 추신의 말은 영국 고급장교의 문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적 악센트였겠으나 독일군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4) DAK를 구출한 고사포
오킨렉크는 처음 5월 중순에 공격을 개시할 계획이었으나 롬멜에게 수많
은 전차가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영국군이 아직도 충분히 우세
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영국의 전시내각은 공격을 6월 중순으
로 연기했던 것인데 이 결정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되는 결과를 갖어왔다
이에 대해 롬멜은 이미 4월부터 5월 26일을 총공격 일자로 정해 놓고 있
었다. 총공격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그는 또 한번 여우 같은 꾀를 냈다. 영
국군 방위선의 특성을 고려하여 짜낸 계교였다.
영국군이 지키고 있는 가잘라 전선의 방어태세는 방위전략상으로 보아
걸작품이었다. 해안으로부터 사막 깊숙이 들어가 있는 빌 하케임까지 56킬
로미터에 걸쳐 있는 교묘한 방위조직은 요새를 방불케 하는 지뢰 거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뢰거점은 〈박스〉라고 불려졌는데 그 직경은 2킬로미
터 내지 5킬로미터, 〈박스〉의 테두리에는 가시밭 같은 철조망을 둘렀고
깊숙한 지뢰원 둘레는 대포를 비롯한 청음초, 기관총진지, 전초진지로
굳혀져 있었다. 그 중간에 여단병력의 수비대가 진을 쳤고 장시간의
방어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박스〉군(群)의 배후
에는 예비대인 기갑부대, 기계화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토부룩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롬멜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박스〉 거점군의 정면을 공격 돌파하여 적의 전차를 격멸하던가, 아니면
가잘라 진지를 남쪽으로 우회하여 사막의 뒷문으로 방위진의 심장을 찔러
박스에 붙어 있는 영국 병력을 후방의 기갑병력과 분리시켜 놓은 다음 각개로
격파 하던가 둘중의 하나였다.
만약 롬멜이 후자를 택하지 않았다면 그를 롬멜이랄 수 없다. 물론 정면의
양동 공격으로 적을 속이기로 했다.
그에게는 독일군 2개, 이탈리아군 1개의 기갑사단, 독일 이탈리아
각 1개씩의 기계화 사단에다 4개의 이탈리아 보병사단이 있었다.
한편 릿지 장군의 제8군은 2개의 기계화 사단과 보병 1개 사단이 가잘라
방위선에 들어가 있었으며 그 밖에 증강된 2개 사단이 후방인 토부룩와
엘 아뎀 선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릿지 장군은 두 기갑사단을 기동공격력
으로 쓸 작정이었다. 〈박스〉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영국 본국의 근위여
단, 자유 프랑스 여단 및 인도 여단이었다.
양군이 다 같이 총병력이 10개사단 10만명씩이었다.
롬멜이 320대의 독일 전차와 240대의 이탈리아 경전차, 그리고 겸해서 9
0문의 차량 예인포를 가지고 있는데 대해, 릿지는 처음에 전차 631대를 가
지고 있다가 그후 250대를 추가로 받았다.
한 곳의 전장에 이토록 많은 전차가 모였던 예는 일찌기 없었다.
롬멜은 먼저 가잘라 진지 정면에서 양동작전을 시작했다. 클류벨 장군이
지휘하는 가잘라 진지 정면 공격부대의 핵심은 제361연대. 그리고 그 좌우
를 아탈리아 보병의 대군이 굳히고 있었다. 그 배후에는 DAK의 기계화 부
대가 나타났다. 모조 전차와 〈먼지 발생기〉를 대량으로 거느리고, 〈먼
지 발생기〉란 비행기의 프로펠라 엔진을 실은 트럭으로서 그 프로펠라가
일으키는 사진(砂塵)을 본 적의 정찰대는 전차의 대부대로 오인하게 된다.
이것이 롬멜의 불여우 같은 꾀였다. 롬멜이 가잘라 라인의 북부와 중부
를 전 병력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영국군을 속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참
으로 엄청나게 큰 연극이었다.
포병들은 정해 놓았던 시간대로 전 전선에 걸쳐서 포격을 시작했다. 동
시에 기관총이 콩볶듯 했고 급강하 폭격기의 〈박스〉폭격으로 사막이 흔
들렸다.
영국군 본부는 혼란을 거듭했다. 대관절 어떻게 생겨 먹은 공격이란 말
인가? 적의 의도는? 그리고 공격의 중점은?
영국군의 정찰기들은 확실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으나 정면을 공격하고
있는 보병의 배후에 대기계화부대가 전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롬멜은 정면을 돌파할 셈이로구나! 그러나 릿지 장군은 신중했
다. 그는 롬멜이라는 불여우를 잘 알고 있었다.
독일군 배후에 있는 대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공격을 위한 이동이 아니었다. 영국군 정찰기가 저녁 때 확인했던 기게화
부대와 전차부대의 전진 방향이 순식간에 변했다. 뒤로 돌아섰던 것이다.
난데없이 남쪽을 향해 버린 것이다. 강력한 기갑 공격 그룹의 집합 장소로.
이 작전은 사막을 넘고 빌 하케임을 우회해서 적 방어선의 배후를 본격
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20시 30분에 롬멜의 암호 공격 명령인 〈
베네치아〉가 하달되었다.
달이 밝은 밤, 거대한 유령의 무리 같은 공격 집단의 차량 1만대가 발진
했다. 5개 사단의 병력이 콤파스와 주행계(走行計)를 의지하면서 사막을
질러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바빴다. 목표는 토부룩 서쪽에 있는 해변가
의 길. 사열(砂熱)을 받은 타이어의 펑크가 계속되었고 이르 고칠 때마다
잭크가 모래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해변가의 길―, 보병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사막의 어느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뜨거운 아프리카땅에 불과했으나 롬멜에게 있어서는 영국군 제
8군을 가잘라 진지 후방에서 둘로 갈라 놓고 하나씩 때려잡을 수 있는 전
략적 요충 지대였다.
성공할 것인가? 그럴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5월 27일 아침.
빌 하케임에서 영국군의 남쪽 진지를 크게 우회하는 작전은 성공했다.
목표는 다시 북쪽. 이탈리아의 기갑사단은 좌익, 혼합편성인 정찰대 대군은
우익으로, 중앙에는 DAK의 2개 기갑사단이었다. DAK의 우익은 15사단.
좌익은 21사단.
15기갑 사단의 선두를 말뚝 모양의 대형을 짠 테케 중령의 8기갑연대가
가고 있었다. 경장비의 중대들이 앞서고 중장비의 중대는 뒤에 섰다. 1대
대는 횡선 3킬로미터, 종선 1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로 산개해 가
지고 급진했다. 2대대가 그 오른편 후방을 따랐다. 정찰기의 아침 보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적 전차부대가 어쩌면 이 근방에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과연 그러했다.
1대대장 큔멜 대위의 헤드폰이 울렸다.
『적 전차 12시 방향!』
영국군은 맹진하는 독일군을 발견했다.
『독일군 1개여단 같습니다.』
제8경기병 연대의 정찰 장교가 연대 본부에 보고했다. 하나 그는 곧 이
어서 이 보고를 정정했다.
『여단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군단 입니다. 정말 입니다. 경보!』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영국군에서도,
『적 전차 12시 방향. 공격 개시!』
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직 몇 개의 검은 점이 지평선에 있을 뿐 영국군 전차는 보이지 않는다.
영국군 전차는 건너편 모래 언덕에 숨어 있을 것이다. 큔멜 대위의 전차
는 고속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몇 발의 직사포를 쏘았다. 영국군도 응사했
다. 달리다가 멎어서 쏘았다. 이러한 행동의 연속이었다. 한 대의 독일군
전차가 멎었다. 그리고 또 한 대가 멎었다. 웬일일까? 영국군이 우군보다
도 먼 거리에서 쏘아 맞추었단 말인가? 그럴 수가 있을까? 또 한 발. 독일
의 Ⅲ호 전차가 직격탄을 맞았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전차장(戰車長)들이 쌍안경을 들여다 보았다.
『영국놈들이 위장망(僞裝網)을 벗어 치우고 나온다!』
보지 못하던 전차가 그곳에 있었다.
『개새끼들!』
뜻밖의 일이었다. 미국의 〈그란트〉전차가 전장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77밀리 포는 독일의 Ⅲ호 전차의 50밀리 포보다 훨씬 강했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Ⅳ호 전차뿐인데 그것도 이곳에 와 있는 것은 포신이 짧은
것으로서 〈그란트〉보다 사정거리가 짧다. 긴 포신을 가진 Ⅳ호 전차는
손으로 셀 정도밖에 없었고 더구나 철갑탄(鐵甲彈)을 가져오지 않았다.
격전이었다.
제8기갑연대는 최초의 부상병들을 수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영국군은 새
로 편성된 본국군 제4기갑여단임을 알았다.
어느 모로 보나 독일군이 불리했다. 독일 제8기갑 연대에 대한 포병의
엄호도 한참동안 중단되었다. 33기갑 포병대가 영국 신형 전차의 화력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뿐더러 포병의 주력은 새벽녘의 급진격에서 전차대를
미쳐 따라오지 못했다. 즉 제8기갑 연대는 사실상 포병의 엄호 없이 싸운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전차대는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그란트〉에 돌진, 영국
군의 측면을 제2대대가 교묘하게 찌른 것이 드디어 전운(戰運)을 결정하고
말았다. 독일의 용병(用兵)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발길에 채인 영국군은
16대의 〈그란트〉를 잃어버렸다.
영국 본국군 제4기갑여단은 오킨렉크의 제8군의 진격로 전면을 확보할
작정이었으나 롬멜의 연대에 쫓기고 말았다. 뒷문을 쑤시고 들어가는 길
이 열렸다. 크레만이 이끄는 제90경기갑 사단 및 이탈리아 제20기계화 군
단은 이렇게 해서 엘 아뎀을 향했고 토부룩의 포위를 완성해서 동쪽에
있는 영국군 보급기지와 토부룩를 갈라 놓는 일에 성공했다. 이때까지
는 모든일이 순조로왔다.
제21, 제15기갑 사단은 네링의 지휘를 받으며 북쪽으로 향했다. 가잘라
라인과 평행으로 보급로가 차단된 영국 기갑사단을 하나씩 격파할 작정이
었으나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차, 트럭, 오토바이를 타고
진격하는 병사들은 5월 27일 아침까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뛰고
, 쏘고, 트럭에서 내려서 또 쏘면서 달렸다. 제21기갑 사단은 아그로마까
지 전진했고 보병과 전차병들은 그들의 눈으로 할비아 가도를 볼 수 있었다.
길 넘어로 바다가 보였다. 목적지였다. 적은 이미 깨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어쨌던 전진하고 볼 일이었다. 전진하는 까닭으로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나 전진이 반드시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대장들은 생각에 잠겼다. DAK는 그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가잘라 진지와 토부룩 사이에 있는 영국군 부대
를 격멸하지 못했던 것이다.
릿지 장군은 롬멜이 상상한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요격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차 병력을 동쪽으로 후퇴시켰다가 1만대 이상의 차량을
가진 독일군의 측면에 평행하면서 움직였던 것이다. 그 신형 〈그란트〉
전차는 독일 전차에 큰 손해를 입혔고 영국 공군은 독일의 보급선에 맹렬
한 폭격을 가했다. 우회했던 가잘라 진지의 〈박스〉로 부터의 출격도
롬멜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중에서도 빌 하케임의 출혈이 가장 심했다.
행운의 여신은 이번 싸움에서 롬멜의 편을 드는 것 같지 않았다.
독일 정보기관이 못찾아 낸 것은 신형 전차에 그치지 않았다. 영국군은
새로운 대전차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6파운드 포, 즉 75구경의 포는 독일 전차의 철갑을 뚫어냈다.
영국군은 신무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특히 미국의 원조가 눈에
두드러졌다.
전진하는 부대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남쪽으로부터 릿지의 등 뒤로
해안까지 빠져나가서 영국군을 둘로 쪼개놓고 하나씩 격멸하려던 롬멜의
작전은 실패했다.
제90경기갑 사단의 장갑 정찰대는 엘 아뎀까지 진출했다. DAK의 주력은
북쪽 멀리 나갔고 선봉부대는 해안에 이르렀으나 이곳에도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DAK의 전 보급부대가 고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차츰
분명해진 사실은 덫에 걸린 것은 릿지가 아니고 롬멜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북동쪽에 진출했던 제90경기갑 사단과 DAK와의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릿지의 전차가 북쪽에서 싸우고 있는 독일 기갑사단을
보급부대로부터 갈라 놓았다. 독일군 정찰 활동에 중요한 과오가 있었음이
분명해졌다. 롬멜은 그곳에 영국의 대전차 집단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란트〉전차와 신형 6파운드의 대전차포 뿐
아니라, 가잘라 라인의 교묘한 배치에 대한 정확한 정찰이 없었고
〈박스〉의 수비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27일 저녁, 사태는
험악해졌다. 북쪽에는 전차부대가 두들겨 맞는 중이었고 동쪽에서는
제90경기갑 사단이 포위 되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보급도
없었다. 물도 없었다. 부상병의 치료와 후송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사막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막료장 베스트팔은 전선의 전투부대에
나가 있는 롬멜과의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네링의 DAK에 가서 사태의 수습에
힘썼다. 네링 장군의 말에 의하면 27일 오후의 정세는 다음과 같았다.
오후 4시, 65대의 영국 전차가 동쪽에서 북진하고 있는 제15기갑사단의
측면을 덮쳤다. 측면을 옹호하던 대대는 부서지고 따라오던 치중대는 남쪽과
서쪽으로 후퇴했다. 전차만 앞세워 놓고가던 제15사단과 DAK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이런 처지에서 전멸되고 마는 예가 흔히 있다. 그러나 단 한가지의
대담한 작전으로 패전을 구해 내고 나아가서는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예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대담한 작전을 계획해서 전사에 새로운 전술의 전례를 남긴
사람이 바로 네링,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 것이 야윈 월츠였다.
네링 장군과 제135고사포 연대장 월츠 대령은 순찰 도중 독일군 보급부대의
행렬속에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다. 영국군 전차에게 쫓겨 온 일단으로서
각급부대의 지휘본부까지 섞여 있었다. 월츠 대령은 이렇게 말했다.
『한참동안 끌려 다니다가 도망하던 DAK 사령부와 차량들을 만났습니다.
DAK 사령부 역시 사단 보급부대에 밟혀 버릴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의 고사포
연대본부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네 사람이 작전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는 대열 속에 88밀리 고사포가 몇 개 보였습니다.
그 속으로 헤치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롬멜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 역시
차량의 물결에 휩쓸려 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고사포가 전차를
쏘지 않았던 탓이라고 그는 저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저는 조금전에 보았던
고사포로 달려가서 정지시켰습니다. 세 개의 고사포였습니다. 잠시 후,
DAK 전대의 중고사포대대의 절반가량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1천 5백미터 앞에 적의 전차가 보였습니다. 중전차가 40대, 그 앞에 쫓겨
가던 것이 패주하던 DAK의 보급부대였습니다. 롬멜이 이와 같은 혼란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DAK의 사령부, 연대본부, 정보차까지. 즉 전투부대의
중추신경이 쫓겨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대한 전기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사격명령을 내리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영국군 전차가
우리편 우익을 지키던 보병대대를 덮치려고 하는 것이 쌍안경으로 보였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포격에 우리편 군대가 상할 것 같았습니다. 어서 확실한
명중탄을 퍼붓지 않으면 안되겠다. 쏘앗! 88밀리 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명중! 영국군 전차가 멎었습니다. 우군의 대대를 덮치려던 적의 전차는
뜻밖의 저항을 받자 황급하게 후퇴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사포열이다!』 네링이 소리쳤습니다.
『월츠! 포를 모아서 대전차포열을 만들어랏!』
『정말 시기에 알맞는 착상이었습니다. 마침 클류게 소령이 포 1개대대를
끌어 왔습니다. 30분후에는 부관이 롬멜 직속의 고사포 1개대대를 끌고
왔습니다. 나는 급한대로 영국 전차 전면에 3킬로미터에 이르는 고사포열을
포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강력한 고사포의 방벽이 생기자마자 영국군 전차가 덤벼들었다. 노랗게
포탑을 칠한 전차의 무리, 지휘하는 전차는 안테나 끝에 삼각기를 달고
있었다. 거리 1,200미터, 쏘앗! 16문의 88밀리 고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어
공격을 계속하는 영국 전차에게 포탄을 퍼부었다. 〈드라〉라는 애칭이
붙은 포는 1,600미터의 거리에서 3발 만에 후퇴하는 〈그란트〉 전차를
명중시켰다. 미국의 신형 전차도 이렇게 되니 별 수 없었다. 포신이 벌겋게
닳아 오르도록 쏘고 또 쏘았다.
영국군은 그래도 악착같이 덤벼 들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느냐는
듯이. 그러나 어두워지자, 두 다스 정도의 영국 전차가 불타고 있었다.
고사포대의 지휘관이 자기 부대를 대전차전에 투입했던 일은 전사상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영국군은 포병을 동원해와서
독일군 고사포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고사포의 방벽을
부셔 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그러나 DAK의 운명은 오직 이 방벽에 걸려
있었다. 악착같이 지켰다.
그때 천우의 사풍이 불어서 모든 것을 베일로 감싸주었다. 각박한 위험은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보급을 끊긴
기갑부대의 상황은 험악해갔다.
『클류벨의 정면 공격은 어떻게 되었오?』
28일 저녁 롬멜은 가우제 참모장에게 묻고 나서 명령을 내렸다.
『그가 서쪽 지뢰원을 뚫고와 주어야 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배후가
위험하다.』
무선명령이 클류벨의 부대를 동원했다.
그후의 일은 클류벨 자신에게 들어보기로 하자.
『28일 밤,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은 나는 비행기로 전선을 향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영국군의 상공을 지날 때였습니다. 고도는 1천 5백 피트
가량, 영국 기관총에 맞았던 것입니다. 먼저 꼬리에 일연사(一連射)를 얻어
맞았고 다음에는 엔진, 그대로 떨어진 것이 영국 본국군 제150여단이 지키고
있는 〈박스〉의 최전방이었습니다. 영국 병사들이 우루루 뛰어 왔습니다.
그리고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롬멜의 명령에 대한 공격은 늦어졌다. 켓셀링 원수가 대신 달려가 지휘했다.
롬멜은 작전 회의를 열었다. 네링, 가우제, 베스트팔, 바이엘라인, 모두가
절박한 상황을 인정하고 포위를 뚫고 나가자고 했다.
클류벨 장군이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급기지에 닿는 오직 한가지 길은,
적진 돌파 밖에 없었다. 처음 롬멜은 주저했으나 마침내 승낙했다.
싸움에는 졌다. 그러나 대담한 용병으로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으리라.
5월 30일 밤, 작전이 시작되었다. 밝아 올 무렵, 가잘라 라인의 중심부의
배후로부터, 즉 동쪽편 적의 큰 지뢰원에 당도했다. 여기다 돌파구를 뚫어
보급파이프 라인으로 부대를 연결시켜야 했다.
롬멜은 전장에서의 승리라는 영예를 영국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불필요한 싸움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영국군의 불의 방벽은 이것을 강습하는 롬멜에게 엄청난 출혈을 강요했다.
비행기 폭격에 이어서 보병이 뛰어들었다. 앞섰던 독일 전차들이 하나씩
주저앉아 타고 있었다. 뛰어 들었던 보병들은 기관총좌의 밥이 되었다.
그러나 드디어 거점의 전초 진지를 돌파했다. 그 다음부터는 수류탄과
기관단총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바로 백병전이 벌어졌다.
한참 싸우고 있을 때 롬멜은 라이스만을 불렀다.
『적은 겁을 집어 먹고 있다. 라이스만, 백기를 휘들러 보게나!
항복할지도 모르니까…….』
그는 흥분했을 때의 버릇으로 슈워벤 사투리를 썼다. 당장 흔들어야
될까하고 라이스만은 생각했다. 그러나 롬멜이 벌써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몇 사람이 이에 따랐다. 흰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 군인은 별로 없었다.
대개가 마후라를 흔들었다. 셔츠를 바보처럼 흔들고 있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자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다. 영국 병사들이 진지에서 뛰어 나오면서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제105여단의 2천명이 제104전차 보병연대 제3대대
의 3백명에게 항복하고 만 것이다. 단숨에 롬멜의 숨통을 끊어버리려던
오킨렉크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독일군의 손해는 컸다.
야전병원은 트리그 카프초에 있었다. 몰려 온 부상병, 부상병, 더미를
이룬 전사자.
『탈지면!』
『맥이 약해졌어.』
『캄플주사!』
『맥이 되살아 났습니다.』
군의관이 귀를 귀울인다. 긴장한 얼굴과 또 그런 얼굴이 주시하고 있다.
『맥이 끊어졌습니다.』
가위가 소반 위에 떨어진다.
『엑시투스!』
군의관 린츠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몹시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엑시투스가 또다시 이겼다. 이 말은 사망을 뜻하는 전문어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이, 이 야전 천막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죽음은,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죽음을 면하고 그래도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데르나, 즉 지중해 연안의
야전병원에 보내진 부상병들은 다행한 편이었다.
여기에는 영국 150여단을 항복시킨 에레 소령도 와 있었고, 또 그보다 먼저
온 소장 가우제도 있었다. 그리고 또 막료장 베스트팔 중령도 있었다.
두 사람 공히 곳트 엘 왈렘에서 당한 모양이었다.
가우제는 가까운 곳에서 포탄을 맞아 뇌진탕을 일으켰고 베스트팔은 포탄
파편을 대퇴부에 맞았다.
케셀링은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
『가우제군! 흥분할 말이겠지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롬멜 대장은
그렇게 일선만 뛰어 다녀서는 안돼요. 그는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아니란
말이야. 전군을 거느리는 사령관으로서 언제나 연락이 닿는 곳에 있어줘야지,
이말을 그에게 전해줄 수 없나?』
가우제 대신 베스트팔이 입을 열었다.
『각하, 롬멜 대장을 잡아두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통신대를 믿고 일할수가
없으니까요. 더구나 이 전쟁은 모든 것이 최일선에서 결정되지 않습니까?
각하, 그래서 우리는 롬멜을 잡아둘 수가 없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데는
그가 꼭 현지 지형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하나 케셀링은 좀처럼 그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말했다.
『언젠가는 돌이킬 길이 없을거요.』
(15) 빌 하케임의 지옥
『바이엘라인, 차 안으로 들어와 내가 직접 빌 하케임 공격 지휘를 하겠어.』
이 말이 갓 부임해 온 참모장 프리츠 바이엘라인에 대한 롬멜의 인사였다.
바이엘라인은 1942년 6월 1일부로 부상을 입은 가우제 소장 대신에 DAK에서
기갑군으로 전보되었다. 이것이 롬멜식이었다. 우세한 적의 포위를 뚫고
릿지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 바로 어제 일인데 빨리도 적 전선 중추 세력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롬멜이 줏어모은 전투부대는 제90경기갑사단이 대부분이고 DAK소속 전차
몇 대와 제33정찰대대, 그리고 이탈리아 군의 트리에스테 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5월 26일 이래로 이탈리아군은 빌 하케임 전면에 있어서 공세 개시와
더불어 점령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는데 기실 한 발자국도 적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롬멜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1개 사단병력을 가지고도 못한단 말이냐? 좋아. 우리가 하지.』
이 결정은 곧 아프리카의 가장 격심한 전투의 원인이 되었다. 토부룩을
지키는 가잘라 라인의 남쪽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빌 하케임은 자유프랑스군
제1여단과 유대인 의용군 1개 대대가 피에르 케니그 장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릿지 장군은 생각한 바가 있어서 이 용맹스러운 부대를 빌 하케임에 투입했던
것이다. 빌 하케임을 빼앗기면 전 가잘라 전선이 무너진다. 그렇게되면
토부룩도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자연 아군은 빌 하케임을 두고 전 작전의
운명을 걸게 된 것이었다.
처음 롬멜은 그의 장기인 〈손수건 전술〉을 써보았으나 빌 하케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독일군 전차는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고 기관총탄이 가까운
곳에서 있는 흰 헝겁 조각을 흔들어대며 항복을 권유하고 있는 전초에게도
내리 쏟아졌다.
『틀렸구나! 도저히 안되겠는데?』
롬멜은 바이엘라인을 뒤돌아 보았다.
『공격!』
3천명의 프랑스군과 1천명의 유대인 대대는 훌륭히 구축된 진지에 웅거하고
있었다. 지면과 거의 같이 자리잡고 철저히 위장된 기관총좌와 포진지는 손을
댈 수도 없을만큼 든든했다. 알고 보니 그런 화점이 1,200개나 되었다.
그랬으니 맹렬한 불비가 쏟아질 수밖에…….
공격은 프랑스군의 포화로 저지되고 밀려나왔다.
『급강하 폭격기!』
롬멜은 명령을 내렸다. 곧 그것은 켓셀링에게 연락이 갔다. 이 연락에
대해 켓셀링 원수는 곧 대답을 했다.
『급강하 폭격기를 보낸다!』
이들은 폭격을 가했다. 하나 프랑스군은 아주 좁은 참호와 소규모의 토
치카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거의 직격탄이 아니면 아무 구실을 할 수 없
었다. 그래도 케니그 장군은 릿지에게 곧 응원을 청했다.
『전투기를!』
이윽고 출동한 날쎈 전투기 앞에 급강하 폭격기는 적이 될 수 없었다.
대부분 불덩이가 되어 추락해 버렸다. 롬멜은 이를 갈았다. 켓셀링도 곧
날아와 화를 냈다.
『안돼, 롬멜! 지상병력 전부를 투입해서 저곳을 공격해, 병력을 아껴서는
안돼!』
롬멜은 기갑부대의 위기 구출로 이름난 고사포 부대를 불렀다. 백전연마의
제135고사포 연대장 월츠 대령이 둥장했다. 이 부대와 함께 출동한 다른
연대명도 아프리카 전사에 영원히 남아야 할 것이다.
제4고사포 연대, 제1대대, 제25고사포 연대, 제2대대, 제18고사포 연대,
제1대대, 제6고사포 연대, 제1대대였다. 그 엄호에 임한 것은 제3정찰대대,
제33전차 보병부대, 제90경사단의 보병부대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사단이었다.
이윽고 월츠 전대는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곳트 엘 왈렘의 영국
제150여단에 대해 성공했던 전례도 여기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독일 공병이
밤새껏 지뢰원에 길을 뚫어 놓아도 프랑스군은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지뢰
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포위망이 워낙 엉성해서 보급도 자유스러워 계속
집중포화를 강화시켰다. 롬멜은 발을 동동 굴렀다. 밤새도록 신호탄을 계속
올려 대낮처럼 밝게 비치는 적진에 기관총탄을 퍼부어 프랑스군의 사기를
꺾으려고 해보았지만 아침이 되어 돌격을 해보면 대항하는 포화는 여전했다.
월츠 대령은 공격병력이 약하다고 경고를 했으나 롬멜은 우겼다. 손해가
막심한데도 공격을 강행했다. 소규모 접전이 차츰 열기 띤 격전으로 변했갔다.
하나 한 가지 롬멜에게 다행스러웠던 일은 릿지가 빌 하케임 작전을 방관하는
편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롬멜군의 좌익인 DAK 본부 측에 공격을 가하지 않고 곳트 엘 왈렘
부근에 있는 이탈리아군을 산발적으로 공격했을 뿐이다. DAK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롬멜과 연락도 않한 채 겁쟁이 영국 기갑사단을 독자적으로 공격
했다. 폰펠스트 장군의 부상으로 클라제만 대령이 대리 지휘하는 제15기갑
사단은 남부로부터 달려 들었다. 휘하 제8기갑연대는 철조망과 지뢰원을
비스듬히 종단하여 빌 엘 타말로, 제21기갑사단은 동쪽에서 공격을 가했다.
영국군은 상대가 이탈리아 전차대인줄 알았는데 의외에도 지독한 DAK의
전차전에 끌려 들어갔던 것이다.
롬멜은 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모든 군인들은 롬멜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전장에 있다는 사실을 어디서고 느끼게 했다. 사기가 죽어 전차를
멈춘 전차장이 흔히 포탑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햇치를 열고 보면
영락없이 그 앞에 롬멜이 장갑차 위에 버티어 서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진군이다. 진군! 멈추어서서 공격을 할 수 있나?』
거침없이 전선을 달리는 그의 독전법은 이러했다. 어떤 때는 정지중인 전차
바로 뒤에 차를 멈춘 적이 있었다. 이때 일어난 사건을 그의 측근 연락장교
폴 슐리펜 바하를 통해 들어보자.
『전차 뒤에 바싹 다가가서 차를 멈추었지요. 제가 쇠몽둥이를 들고
뛰어내린 순간, 그 전차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조종병은 백 기어를 넣고
곧장 우리 차를 향해 후퇴해 왔습니다. 롬멜은 위기일발의 순간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 무렵의 롬멜과 영국군의 전술상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건이
또 있다.
영국 본국군 제7기갑사단장 멧사비 장군은 제4여단에게 전진중인 적
제15기갑사단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단장은 이에 반대하고 이웃인
제2기갑여단장과 암호없이 상황에 대한 의견교환을 했다. 독일군의 뛰어난
도청반 장교는 한바탕 싸움이 끝난 수 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귀중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담치고는 지나쳤지만 롬멜의 부하들은 이러했다. 어찌되었던 DAK의
공격으로 영국군은 질려버렸다. 곳트 엘 왈렘 구멍에서 기어나온지 얼마
안되는 롬멜이 그렇게도 빨리 전장의 주도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제15기갑사단은 인도군 제5사단을 격파했으며 제10여단을 전멸시켰다.
얼마나 심한 난전이었는지 이 여단의 포위상 북부를 맡았던 리포르트 중위가
지휘하는 제5기갑연대 1중대는 도망가는 대열에서 잡은 포로 중에서 여단장
디스몬드 장군을 찾아냈다. 그는 전후에 훌륭한 롬멜 전기를 쓴 사람이다.
이어 영국 본국군 제2,4,22기갑여단도 같은 고배를 마셔 170대의 전차를
잃었다. 제201근위 여단 대부분이 포로가 되었다. 제8군은 부대별로밖에
싸우지 못해서 그 약점을 찔려 각개격파 당하고 만 것이었다. 하나 제8군은
강대했다. 롬멜군보다 훨씬 강대한 조직이었다. 아직도 가잘라라인 북부
토부룩, 나이트 브릿지, 엘 아딤에 상처 없는 부대가 남아 있었다.
용감하고 현명한 지휘관이 이 병력을 잘 조종 지휘했더라면 롬멜의 입장은
며칠 전 곳트 엘 왈렘에서 겪은 것과 같이 아주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롬멜의 배후도 완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빌 하케임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괘씸한 빌 하케임!』
롬멜은 이 말을 저주스러운듯이 몇 번이나 토했는지 모른다. 그의 전투
부대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거점에 대해 몇 번이나 돌격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급강하 폭격대는 1,000회 이상이나 출격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롬멜은 공격방법을 달리 하기로 했다. 휘하 제33, 200,
900공병대대를 시켜 곳트 엘 왈렘과 빌 하케임 사이의 지뢰원을 빠져
북에서 공격을 하게 했다.
6월 8일 아침, 공병대는 빌 하케임의 북방 78킬로미터 지점으로 진출했다.
그곳에 롬멜이 나타났다. 공병대 지휘관 해커 대령은 자기 부대 일부와
이탈리아군 2개 대대로 전투부대를 편성, 북쪽 방면으로부터 빌 하케임
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각하, 제 병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해커가 대답하자, 롬멜은 병력을 증강시키기로 하고 제288특별 부대의
일부를 보내겠다고 해커에게 약속했다. 해커는 그 밖에 전차 12대, 장갑차,
88밀리 고사포 1개 중대를 지원받고 다시 야포 1개 대대, 중포 1개 중대,
그리고 월츠 대령의 고사포 몇 문도 측면엄호에 가담했다.
해커는 이를 둘로 나누워 함께 북에서 전진했다. 좌익 공격대는 해커가
지휘하고 우익은 제200공병대대장 훈트 대위가 인솔했다.
17시, 해커는 공격명령을 내렸다.
『전진!』
대령은 장갑 정찰차를 타고 이탈리아군 선두에 섰다. 공격은 이제 물결을
일으키며 개시되었다. 그러나 심한 적의 포화와 지뢰로 전렬에는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군 중대장 6명은 눈깜짝할 사이에 3명으로 줄어들었다.
차페물이 없는 지형은 사실 무서운 죽음의 함정이었다.
전차 12대 중에서 6대가 적의 교묘하게 위장된 대전차포의 밥이 되었으며,
다시 4대는 지뢰를 짓밟았다.
칼 엘리히 슐츠 중사는 88밀리 포에 달라붙어 발견되는대로 기관총좌와
박격포좌에 직사 사격을 가했다.
이때 영국군 긴급응원대 본국 제4기갑여단이 동쪽에서 해커의 좌익을
공격해 왔으나 월츠 대령이 이를 저지했다. 그리고 손실을 많이 보면서도
이를 격퇴했다.
해가 질 무렵까지 해커의 공격대는 빌 하케임 방위선 500미터까지 육박했다.
산악병들은 어두워지는데도 공격의 손길을 쉬지 않고 공병과 협동하여 최전선
기관총좌 몇 개를 점령할 수 있었다. 제288특별부대 산악병 중대장 톰서 대위는
기관총을 거머쥐고 유대인 대대가 지키고 있는 참호 속으로 뛰어들었다.
유대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포로가 되었다.
밤이 왔다. 전투도 잠시 휴식상태에 들어 갔다. 6월 9일 아침이면 또 한번
급강하 부대가 빌 하케임을 두들기게 되어 있었다. 이윽고 다시 날이 밝았다.
그러나 예정된 항공기 공격은 실천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해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프랑스군은 그의 장갑차를 알고서 모든 화력(火力)을 집중시켜 왔다.
운전병은 도망치려고 했다. 그 순간 지뢰를 밟았고 그 충격으로 해커 대령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가까이 서 있는 거의 다 타버린 전차를 임시 지휘소로
삼았다.
롬멜은 몹시 마음을 상하고 있었다. 그는 상황보고를 하는 해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저주스러운 빌 하케임 때문에 우리군은 굉장한 희생을 내었다.
난 지쳐버렸어. 여긴 포기하고 토부룩로 나가야 하겠어.』
해커는 다시 1개 대대만 증파해주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잠시 생각한
롬멜은,
『좋아! 해커, 최소한 1개 대대는 바데 중령을 시켜 보내줄께.』
바데 중령은 115기갑연대장으로 중화기를 가진 2개 대대와 완전한 작전
지휘능력이 있는 연대본부를 가지고 있었다.
바데 연대가 오기까지 급강하 폭격기가 적진을 효과적으로 폭격해 주었다.
독일군 포병도 전력을 다했다.
6월 9일 밤, 증원부대가 오자, 즉각 공격을 개시했다. 하나 빌 하케임의
적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저항력이 강했다.
이 격심한 독일군 집중포화 한 가운데서 1,200이나 되는 화기 진지에 케
니그 장군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사막에서 우리들 프랑스인은 싸우고 또 죽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대인 의용군대대의 진지에서도 명령이 전달되었다.
『싸워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지켜 보고 있다.』
1942년 6월 10일 저녁, 바데 대대와 불굴의 용사인 공병, 산악병들은
적진 깊이 쳐 들어가 오래 묵은 요새의 폐허 앞에 바싹 붙었다.
케니그 장군은 릿지에게 연락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적은 이 전투 지휘소 바로 앞에 와 있습니다.』
릿지 장군으로써는 탈출을 기도하라고 타전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비극이 시작되었다.
6월 6일 이후, 부릴 대위와 그의 부대는 빌 하케임 전방에서 남쪽 요소를
맡게 되었었다. 카이자의 전차 보병대대, 그리고 슐츠 대위가 거느리는
전차보병대대의 일부가 돌격부대였다. 6월 7일, 시도한 정면 공격은 실패했다.
지뢰원과 적의 방어포화가 부릴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투부대는 빌 하케임 전방에서 적의 탈출과 보급선을 방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6월 10일 밤, 수색대가 포로를 끌고 돌아왔다. 영국군 지뢰원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있는 것을 잡아온 것이었다. 심문해 본 결과 놀라운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포위된 적은 이미 부설한 지뢰원 사이의 통로로 탈출하여 조속히 영국군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장갑차군은 다음날 이른
아침에 남쪽으로부터 독일군 진지에 접근하여 영국군을 수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곧 전령이 나르고 명령은 곳곳으로 하달되었다.
부릴과 카이자는 포대에서 다른 포대로 또 기관총좌 사이를 누비며 다녔다.
모든 화기는 탈출구로 겨낭되었다. 탄창에는 예광탄이 장진되고 통신반은
최전선까지 전선을 끌어다 놓았다. 그리고 신호탄 권총을 찬 보초병도
배치되었다. 드디어 전부대는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부릴은 신호탄을 쏘기
전에는 절대로 사격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먼저 빨강, 다음은 초록! 이 신호탄을 보고 나서야 쏘란 말이다.』
부릴의 새 무기는 6정의 42형 기관총이었다. 제606고사포대대의 귀휴병들이
이 신무기를 아프리카로 가지고 온 것이다. 이 무기는 조금 떨어진 와디에
위치한 특별 기관총소대에 배치되었다.
한 밤중―전초는 빌 하케임 방면으로부터 엔진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들었다.
차츰 가깝게 들렸다. 캐타비라소리도 섞여 있었다. 지뢰원에서 철조망을
짓밟고 지나가는 소리도…….
『아직 멀었어.』
부릴은 전령에게 속삭였다.
『아직 멀었다니까…….』
적이 연막을 깔고 몸을 감추려 할 때에야 비로소 부릴은 명령을 내렸다.
『쏘아!』
사방은 초록빛 신호탄이 별무리되어 환해지고 동시에 지옥이 연출되었다.
의지의 작열과 죽음의 지옥이 전개된 것이다. 짙게 뿌린 연막도 케니그의
군단을 구출하지 못했다. 예광탄이 적 전차군으로 빨려들어가고 이어 독일
포병도 1초간에 25발이나 나가는 신형 42형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넓게 포위된 전장의 한쪽에서는 탈출을 기도하는 영국군과 처참한 전투가
벌어졌다. 삽, 권총, 총검, 수류탄을 마구 휘드르는 백병전…….
이리하여 장군과 함께 일선을 돌파하여 영국군 제7여단 진지에 도착한
수효중, 전투능력이 있는 군인은 불과 반도 못되었다.
6월 11일 아침, 빌 하케임 수비군 중에서 남아있던 자들은 백기를 들었다.
황폐한 진지를 점령한 독일군이 발견한 것은 5백명의 부상병과 소수의
후위병력뿐이었다.
전선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빌 하케임의 함락으로 릿지 장군은 가잘라
라인을 유지할 가능성이 없어졌고 반면 롬멜은 토부룩 공격의 전제조건을
얻게 된 것이다.
빌 하케임을 잃은 영국군 지휘부는 망연해했다. 독일군은 도대체 무적이란
말인가? 롬멜을 칠 방법은 없단 말인가? 영국군 사령부에서는 이런 속삭임이
돌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의 모든 전술방법을 일체 무시하며, 싸우고
이겨내는 롬멜이란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전술상의 법칙으로 보아 공격측의 병력은 방어측보다 훨씬 강력해야 되는데
공격을 하는 롬멜은 언제나 병력은 거의 열세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법칙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국군 전차의 숫자상의 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죠. 그쪽편 사령관들이
따로따로 병력을 투입하는 이상에는 말이지요. 전력을 한 부대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세한 것입니다.』
롬멜은 포로가 된 영국군 전차 지휘관 장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국군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았다. 위대한 바다의 모험자도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까닭으로 위대할 수가 없었다.
반면 롬멜은 싸울 때마다 법칙을 자기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었다.
빌하케임을 함락시키자마자 그는 전 병력을 북으로 돌렸다. 영국군 기갑부대를
크게 두들길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롬멜이 크게 패배한 처지였지만
불과 며칠도 되기 전에 대 승리의 용장이 되어 있었다.
또다시 출발!
흰 신호탄 두 발이 올랐다. 두 자루의 권총을 사용한 대형 신호탄이었다.
이것이 제21기갑사단 집합지점 표시였다. 길을 잃거나 뒤진 부대들도 이것을
보고 신호탄이나 무전으로 연락하게 되어 있었다.
곧 콤파스를 맞춘다. 신호탄 작열점 상하에 위치한 성좌에 정신을 기울인다.
전진이다. 제104전차보병 연대의 슐체 소위도 이렇게 빌 하케임과 나이트
브릿지 사이의 사막을 진군하고 있었다. 정찰도중에 길을 잃은 것이다.
그들이 타고 있는 승용차 뒷 좌석에는 뮬러 상등병이 기관총을 잡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언제 어느때 적이 나타날른지 모른다. 운전병은
엔진 상태와 달리는 차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슐체 소위는 무릎 위에 두 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콤파스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좌로 2도, 좋아. 조금 더 우편으로! 음, 카시오페이아 좌의 주성으로
곧장 달려라!』
그러나 이렇게 해서 더듬어가는 길에도 별별 위험이 많았다.
『아니 저 그림자는 뭐야?』
『영국 군인인 모양입니다.』
영국군 차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편에서도 상당한 위험을 느꼈던
모양이다. 정신없이 악셀을 밟아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자 또 가자!』
왼편 어디선가 영국군 기관총을 장비한 차의 특유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영국군에서는 제일 소형인 장갑차였다.
2시 45분, 아직 본대는 보이지 않는다. 본대는 이미 카시오페이아 좌외선
별을 보고 진군하고 있는지. 성좌를 보는 자는 오른 편으로 돌아가게
돼있으니…….
『정지! 누구야?』
『쿠아휼스코(選帝候〓암호로 쓰인 중세 왕위명)!』
『오, 이제야 왔구나?』
고마운 손, 그들은 찾고 있던 우군이었다. 연대단위로 다시 전진……
북으로……해안지대로…….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