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 오즈카 비행장에서 출격을 앞둔 ki-45 토류의 승무원들. (왼쪽에서 4번째 짝다리 짚고있다)
(출처.라이프 2차세계대전사.이거 다 그 책 보고 쓴 거여)
『 1944년 6월과 7월의 서부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함락으로 일본의 운명이 결정되기 시작했다. 일본 본토 사령부의 최고 사령관이며, 황족인 히가시쿠니가 전후 연합군 심문자들에게 고백하기를, B29가 마리아나의 기지들에 들어앉기 시작하면서 승리에 대한 일본의 희망이 끝장나버렸다고 징징댔다.
" 그러한 무기에 대항하여 싸울 무기가 일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본토 방위 사령부는 전쟁에 패했다고 느꼇고, 또 패배를 입으로 시인했었다......" 』
B29가 일본을 지지고 볶다가 결국은 홀랑 태워먹은 과정에 대해서는 저번 글들로 충분히 썰을 풀었다고 생각하오. (이번에는 일본 육군 항공대스러운 근엄한 분위기를 위해 하오체를 써보고자 하오)
자, 열도가 그렇게 불관광당하는 동안 일본햏들은 그냥 앉아서 따뜻하게 데어 죽기만을 기다렸느냐? 아니야!
B29잡을라고 대공포도 미친듯이 쏴갈기고 뱅기도 존내 많이 날렸어!
박쥐처럼 밤에만 날라오는 B상을 잡기 위해 (유선비햏 말마따나 일본햏들은 B29를 B상(B氏)라고 불렀셈) 야간전투기를 띄웠소. 그것이 바로 \'용 사냥꾼\'! (屠龍... 용을 쳐죽인다) 가와사키 - 올시다! (미군 코드네임 N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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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 15.07m / 전장: 11m / 전고:3,70m / 건조중량:4000kg / 총중량: 5,500kg / 엔진: 미쯔비시Ha-102(1,080hp)X2 / 최대속도: 540km/h (6,000m) / 항속거리 :2,000km /무장 : 37mm 기관포 1정, 20mm 상향포 2정, 7.09mm 기관총1정
(출처: http://airwar.hihome.com 존내 유명한 본좌급 싸이트지요)
저기에 더해 야간 전투기니까 당연히 레이더를 달긴 달았는데, 그 레이더가 쓰레기였다고 소문이 자자하더이다. 햏력높은 아무나 그 레이더에 대해서좀 알아봐주심 고맙겠소.
저 토류의 20mm 기관포 2정은 이런 형태로 30도 각도로 위쪽을 향해있어 B29의 하부를 공격할 수 있게 되어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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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엔진 두개달린 뱅기가 B29를 잡겠다고 나섰는데- B29와 토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1944년 6월 16일 밤 1시 반이었소.
44년 6월 15일 밤 11시 30분에 제주도의 일본 레이더 기지가 중국 청투에서 발진해 규슈로 향하는 30여대의 B29 편대를 포착했으니, 이 B29들이 일본본토로 날려보낸 최초의 선빵이었소. (실제로는 75대가 출격했는데 6대는 이륙실패하고 4대는 이륙하자마자 돌아왔고, 나머지 64대중 47대만이 목표물에 도달했소이다...ㅡ.,ㅡ;.. 이 때는 그 무시무시한 리메이 햏이 아직 유럽에 있을 때요)
공격 목표는 야와타의 제철소. 제주도의 레이더 기지에서 발한 경고가 규슈 방공 담당 후쿠오카 소재 일본 육군 서부사령부에 전해졌소. 후쿠오카의 제4비행대대에는 35대의 전투기가 있었고 그중 8대가 레이더 탑재 ki-45 토류 였소이다.
일본시각 0시 53분에 긴급 출격, 1시 반에 B29들과 첫 만남을 갖고 정중하게 일본식 환영인사를 건넸소. 2시간동안 기관포를 쏘아대고 지상에서는 탐조등 불빛을 따라 120문의 대공포가 9000발의 포탄을 날려보냈시다.
이 교전으로 처음으로 B29가 적의 공격을 받고 격추되었소. 이 첫번째 격추는 바로 가시이데 이사무 중위의 공이었는데- 이 양반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7대의 B29를 더 잡은 본좌급 에이스요.
B29의 정면으로 달려들어 초근거리에서 기관포 사격으로 절딴내버린 거요.
" 폭격기의 형체가 갑자기 존내 커져버리더라니까? 흉아가 그놈 왼쪽 날개 동체 접합부에 존내 총탄을 먹여줬거든? 기분좋게 핸들 틀어서 자리를 벗어났지. 그 본좌급 덩치가 연기 풀풀 내면서 비스듬히 떨어져가더라구."
이날 전투로 7대의 B29를 떨궜고 야와타 제철소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는 일본의 방공계획을 대략 좌절모드로 돌입시키는 고난의 길을 예고하는 것이었소.
6월 15일과 16일의 교전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고사포 부대에 고위층의 불벼락이 떨어졌소. 포 1문당 평균 75발을 허공으로 흩뿌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사포 포수들은 1대의 B29도 격추하지 못했단 말이오. 뷁스러운 결과에 대한 문책으로 육군 서부 방공사령부의 선임 참모장교는 견책을 받았고, 야와타 지역의 방위 담당 제 131고사포 연대장은 만주로 좌천되버렸소.
조사관들은 계속 까대기를, 항공기 자체와 장비, 그리고 작전에 대해 존내 들쑤셨소. 하늘로 날아올라간 토류들은 속도와 상승능력이 B29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지적되었고 레이더가 쓰레기라는 점도 지적되었으니- 대부분의 토류 조종사들은 레이더가 아니라 서치라이트 불빛으로 B29를 찾아서 격추시켰던 것이었음이오.
조사관들이 갈궈댄 또 다른 사항은 -후쿠오카의 제4비행대대는 그 유명한 가와사키 ki-61 히엔 (飛燕) 을 잔뜩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걸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소. 숙련된 조종사들이 모는 성능좋은 뱅기였지만 , 레이더가 없는 주간전투기라는 이유로 밤에 이걸 날리기를 꺼려했다는 것이오. (어차피 레이더 잘 쓰지도 않으면서..ㅡ.,ㅡ+)
또한 큰 문제점이었던 건, 출격하는 비행사들은 적 편대에 대해 거의 아무런 브리핑도 받지 못하고 출격했다는 점이오. 상황실에서 적 편대가 어디서 어떤 고도로 어떻게 움직이는 지 전혀 말해주지 않았고, 조종사들은 무전기에서 \'영어라고 생각되는 소리\' 가 들리면 B29가 가까이 있다- 라고 추측했다는 것이외다.
상황 조사서는 일본의 방공 체계가 2차 세계대전의 교전국들 중 가장 비효과적인 것으로 결론내렸소. 이에 더해 혈압오르게 하는 일은- 일본 육군과 해군 사이의 그 고약한 라이벌 의식이었소.
그 교전이 있던 날, 규슈의 한 해군 전투기 부대는 전투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소...... 해군 ㅅㅂㄹㅁ
전통적으로 육군 항공대와 육군 대공포 부대들은 그들의 기지, 각 도시와 산업 목표물에 대한 보호를 책임지려고 했고, 해군 항공대와 해군 대공포 부대들은 그들의 함선과 기지및 그 시설들만 보호하려고 했소.
(육군과 해군의 아군끼리의 전쟁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소)
이들을 통합해 지휘할 전체 방공 사령부는 끝내 설립되지 못하고 말았소...
무엇보다도 암울한 일은 끊임없이 많은 조종사들의 상실이었소. 42년 6월 미드웨이 전투부터 43년 말까지만 해도 1만명의 일본 조종사가 죽어나갔는데 이를 대신할 보충 인원의 확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소.
오로지 치열한 공격정신만을 강조한 일본 군부는 본진 방어 따위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라는 것이 그들 신조외다.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 본토 방공 체계는 단지 210문의 대공포와 , 가장 신참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160대의 뱅기로 구성된 10개 비행중대 뿐이었소. 그나마 42년 4월에 그 유명한 둘리틀 중령의 B25 16대가 항공모함에서 떠서 행한 묻지마 도쿄 공습덕분에 - 소수의 실력있는 뱅기 부대가 본토에 배치되고 60문의 대공포가 추가 배치되면서 그나마의 방공체계가 수립된 것이오.
44년 봄이 되어 일본군 전선이 개작살나기 시작했을 때, 일본군 고위 사령부는 그들 신조를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에서 「최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 될 수 있다」 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검토하게 되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육지와 바다에서 들어오는 적의 위협이 무서운 것이었지, 하늘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치들 않았소. 그래서 아무도 B29를 어떻게 잡아야 될지 생각해본 사람이 없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전선이 이렇게까지 붕괴하여 일본 본토가 전쟁터가 될 경우 어떻게 싸워야 할지 생각해 본 사람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단 말이오.
결국, 도조가 항공기 생산에 올인하기로 결정하여, 44년 말에는 43년도에 비해 항공기 생산이 69% 증가하였고, 그중에서도 방어용 전투기의 생산에 역점을 두어, 41년에는 생산량중 21%였던 전투기 생산이 이제는 절반을 넘어서게 된 것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필요한 수에는 절대적으로 모자란 것이었으니- 軍師들은 44년 1월부터 45년 8월까지 9만7000대의 항공기를 제작하라고 촉구했으나 결국 4만대만이 납품되었으며, 그나마 대부분이 가볍고 구식인 제로기였소이다 (제로기가 이미 구식이 되버리다니 ㅠㅠ)
뭣보다도 일단 원자재가 부족하여- 강철합금, 알루미늄의 절대적 부족에 직면해- 나카지마의 기술자들은 나무판때기를 뱅기 만드는 데 써볼까- 고민하게 된 것이오.
그러한 모든 뺑이질에도 불구하고, 남태평양에서의 격심한 전투들은 일본의 뱅기들을 모조리 소모시켜버렸으니- 43년 1월 경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 대 미국의 뱅기 세력 비율이 비슷비슷 했지만, 45년 1월에 이르러서는 1대 4의 비율로 미국이 우세해진 것이오.
아무튼 B29가 일본에 들이닥칠 무렵에는 본토방위를 위해 약 1000대에 달하는 뱅기가 배치되었는데 기체정비등의 문제때문에 전투준비가 완료된 뱅기들은 300~500대 정도 뿐이었소.
이들 일본전투기들은 대부분이 주간전투기였고, 조종사를 보호해줄 장갑이 없거나 종이짝수준이었고, 연료탱크가 피탄되었을 때 그걸 자동적으로 밀폐시켜줄 고무 피막도 없었소.
B29를 잡아보겠다고 본토 방위에 나선 뱅기들을 한대 한대씩 짚어보자면-
나카지마 ki-44 쇼키 (미군 코드네임 \'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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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 출처:일본 사이트....구할 수 있는 짤방이 이거밖에 없었소..ㅡ..ㅡ;)
이 뱅기는 한쌍의 12.7mm 기관총외에 2문의 대형 40mm포 (덜덜덜)를 달고 있었으나 포구 속력이 너무 느려 유효 사정거리가 무려 140m (장난하셈?) 밖에 안 되었소. B29 기관총사거리는 1100m 였소.
미츠비시 J2M 라이덴 (미군 코드네임 \'잭\')

(짤출: 일본 사이트)
라이덴은 제로기를 대신하도록 제작된 중화력의 강력한 뱅기였으니, B29를 잡을 수 있는 고도까지 기어올라갈 수 있었고 속도도 시속 600km 이상이라서 꽤 괜찮은 놈이라고 여겨졌소. 근데 그 유명한 테스트 파일럿 사카이 사부로 소위가 문제점들을 지적하길- 이 뱅기는 아기들이 몰기에는 너무 빡센 기체라는 것이외다.
아카마츠 데이메이 정도의 베테랑 조종사는 이 뱅기로 45년 2월,3월에 머스탱과 핼캣등 최소 6대의 미군기를 떨굴 수 있었지만 (아카마츠는 존내 술꾼에 브리핑도 참석 안하고 매춘부 집에 경보벨을 설치해놓고 살던 햏이었는데, 경보벨이 울리면 고물 자동차를 몰고 비행장으로 달려와 무작정 이륙하는 본좌급 싸이코였소)
신참 아가들이 라이덴을 몰다가는 이륙도 하기 전에 지 혼자 꼴아박기 딱 좋은 뱅기라는 것이오.
가와니시 N1k1-J 시덴 (紫電-보라빛 번개) (씨뎅?) (미군 코드네임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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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출:airwar.hihome.com, 日사이트)
이 씨뎅도 존내 문제점이 많긴 했지만 잠재력 있는 뱅기였으니- 장갑용 철판도 있고 시속 580km의 속도에서 훌륭한 선회력을 보여줬고 날개에 20mm포 4문을 단 채로 제로기와 맞먹는 기동력을 보여줬단 말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진 정지사고가 빈발하여 존내 욕쳐들어 먹은 뱅기로 남게 되었소. 이거 몰고 가다 그냥 지 혼자 꼴아박고 죽은 아가들도 부지기수라 하오.
대부분의 일본 뱅기들은 요격보다는 지상 공격 지원에 더 촛점을 맞췄기 때문에, 상승율들이 참 낮았소. 대부분의 뱅기가 9700m고도에 기어올라가기 위해서는 50~60분의 시간이 걸렸으니 슈퍼마린 스피트파이어가 1만m고도에 15분내에 점프할 수 있었던 데 비하면 참 셂스럽소.
그러나! But! でも! 그 유명한 나카지마 Ki-84 하야테 (미군 코드네임 \'프랭크\') 를 빼먹으면 삐질지도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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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출:airwar)
일마는 1만2000m까지 6분30초만에 워프할 수 있고 속도도 시속 631km요! 존내 본좌급아니오?!
근데, 이놈도 역시나 연료계통이 애자라서 엔진이 픽픽 꺼지는 통에 애꿏은 아가들 많이 잡아먹었소. 성능만큼은 경이적이어서 ww2 최고의 전투기라는 가당찮은 찬사까지 듣는 놈이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불량품이라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하오.
일단, 뭣보다도 이놈들은 전부 주간전투기라서 레이더도 없이 깜깜한 밤중에 밤하늘을 하염없이 날면서 B29랑 운좋게 마주치기만을 빌던 놈들이니,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서치라이트뿐이었소. 그나마도 불빛이 8000m까지 밖에 안 닿고, 나중에는 장비고장으로 다 박살나버렸소.
ㅅㅂ.. 독일이 41년에 벌써 레이더에 의해 작동하는 마스터 서치라이트로 영국뱅기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데 비하면 참 안쓰럽소.
마스터 서치라이트는 전쟁 끝날 때까지 일본에서는 구경도 못해봣고, 그나마 서치라이트 부족에, 그걸 운용하는 요원들도 관련 교육을 전혀 못 받은 자들인지라 (동네 부녀회 회원들이 조작했다는 곳도 있소) 44년 2월 나고야 공습때 서치라이트에 잡힌 B29는 100대 중 1대였다고 하오.
대공포도 마찬가지 형편이었으니- 44년 중반까지 일본의 표준 75mm 고사포는 포탄을 겨우 6000m 높이까지만 쏠 수 있었소. 그러다가 나중에, 독일에서 존내 본좌급 인기를 구사하던 88mm포를 보고 일본애들도 88mm포를 만들었소. 그치만 일본판 88mm포는 성능도 시원찮은 데다가 생산도 지지부진했소.
그러다가 종전을 수개월 앞두고, 무게 45톤에 포신 길이가 10m에 달하는 본좌급 150mm포를 만들었는데, 이건 진짜 물건이었소. 45년 봄에 도쿄에 2대가 설치되었는데, 이 두놈이 5월23일과 25일 공습때 B29 7대를 잡았소. (그러나 그걸 대량생산해 배치하기에는 이미 버스 떠난 지 오래였소)
결국 최종적으로 대공포로 격추된 B29는 29대 뿐인 것으로 나타났소.
공습중 빵빵 거리는 대공포 소리는 결국 심리적인 안정 효과밖에는 없었던 것이었소.
일본의 레이더망- 조기 경보체계를 볼짝시면- 일본의 레이더 기지들은 고도 8000m 이상과 2700m 이하의 적기는 거의 포착할 수 없었소. 또 250km 내의 적기에 대해서는 그 거리를 판단할 수 있었지만 목표물의 고도는 측정할 수 없었소.
1000km 밖의 바다를 순찰하는 50척의 일본 해군 초계정들은 마리아나 제도로부터 일본으로 접근하는 모든 통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보닌 제도를 통과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띄엄 띄엄 1열로 배치되어있었소.
근데 일마들은 미국 해군이 무서워서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가 나중에는 죄다 일본 해안선에 딱 붙어버리게 되었소. 이들 중에 레이더가 달려있는 초계정은 단 한척이 있었는데, 그나마 이놈도 45년 3월에 격침되버렸소.
일본의 감청기지 요원들은 B29의 전파들을 도청해서 (B29승무원들의 무전규율이 얼마나 허술한지는 영화등을 통해 다들 잘 아리라 생각하오. 별 시시껄렁한 잡담들까지 죄다 전파를 타잖소. " 훗, 메리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줘." "양키즈가 21대 0으로 졌다고?!" 등등) 글마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할 수는 있었지만 어디를 때릴 지는 몰랐기 때문에 뱅기 지휘관들은 연료 한방울이 아까운 판국에 함부로 지들 뱅기를 뛰우려고 하질 않았소.
독일 같은 경우에는, 연합군 폭격기가 접근해오면 지상기지의 레이더와 공중 관측기가 침입자들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하여, 우리집에 왜 왔니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이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수십km앞에서 요격할 수 있었지만, 일본은 지형적 조건때문에 그런 방공체계를 갖출 수 없었소. 지형의 80%가 산인 이 길쭉한 섬나라에서, 미군 폭격기들이 먼 바다로부터 동부 평야지대를 때리러 올 때, 이를 독일처럼 멀찍이 앞질러 탐지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소.
더구나 통신 장비들은 전부 구식이었고, 모든 정보는 중앙으로 집중하도록 되어있어서, 전파정보대로부터 경보가 도쿄의 육군성 전화교환대를 거쳐 다시 지방 전투 분견대까지 전달되는 데에는 존내 시간이 걸렸소.
사례를 들어보자면- 전쟁 말기에 레이더 기지가 도쿄를 때리러 오는 미군 폭격기를 520km 밖에서 발견했지만 , 전투기 부대가 그 소식을 받은 건 3분이 소요된 후. 그리고 실제로 긴급 요격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7분이 더 걸렸고, 실제로 선도 비행대가 이륙하는 데에 15분이 추가되었고, 그 놈들이 B29의 고도에 도달하는 데에 50분~1시간이 소모되었으니- 결국 확정 경보로부터 교전 가능상태에 이르기까지 75분내지 80분이 걸린 것이오. .... B29가 마리아나 제도에서 도쿄까지 1시간이면 올 수 있으니, 폭탄 버리고 내빼버리면 닭쫓던 개 지붕 야리는 꼴이 되는거요.
이 모든 쥐를 맞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섬나라 조종사들은 존내 열심히 싸웠소. 본문이 너무 기니까 나머지는 이따가 올리겠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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