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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침략의 기수에서 20세기 동방의 사도바울로. 후치다 미츠오의 삶.

장웅진 2006.02.25 09:35:12
조회 1729 추천 0 댓글 7




이상하게도 이 양반 이야기가 없어서요. 그래서 얼마 전까지 어느 정도 기력이 남아돌적에 썼던 것을 올려봅니다. ++++++++++++++++++++++++++++++++++++++++++++++++++++++++++++++++ 한편 사울은 여전히 살기를 띠고 주의 제자들을 위협하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커스에 있는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잡아서 예수살렘으로 끌어 올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대답이 들려 왔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하였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커스로 데리고 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못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아라는 제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주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나타나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다. 아나니아가 "예, 주님,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주께서는 "어서 일어나 '곧은 거리'라는 동네에 사는 유다의 집으로 가서 다르소 사람 사울을 찾아라. 사울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손을 얹어 다시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을 신비로운 영상으로 보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아나니아가 "주님,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는 대사제에게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받아 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사람은 내가 뽑은 인재로서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제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곧 그 집을 찾아 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였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커스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여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못 살게 굴던 자로서 신도들을 잡아서 대사제들에게 끌어 가려고 여기 온 자가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있게 전도하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므로 다마스커스에 있는 유다인들은 모두 당황하게 되었다. - 가톨릭 & 개신교 공동번역 성서 中 사도행전 9장1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50분(하와이시각)부터 1945년 8월 15일 정오(우리 시각)까지라는 아주 긴 시간동안 이루어진 태평양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개막전(開膜戰)이었던 진주만 기습공격은 그 당사국인 미국과 일본에게는 각각 "세계패권의 장악"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의 승승장구하던 상황이 끝남으로서 생긴 오만의 끝과 천황 및 소수의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적 가부장제의 붕괴와 그에 따른 (어찌보면 일탈로까지 보이는) 자유로운 공기의 흐름"을 가져다주었으며 또한 우리에게는 해방, 분단, 전쟁, 휴전, 차라리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 안할라치면 종종 터지는 위기사태, 미국식 인종*국제*정치*경제*문화 패러다임과 그에 대한 반항... 등등을 안겨주었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꼬이거나 펼쳐지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그 중 지금 소개하게 될 두 사람의 인생은 이 전쟁으로 인해서 참으로 "좋게 꼬이기는 했지만 대단히 특이한 사례"가 아닌가 해서 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들 중에서 유독 한 사람에게는 더 크게 주목하게 됩니다.   바로 후치다 미츠오와 제이콥 데샤젤... 그리고 그 중 후치다 미츠오의 삶이죠. 영화 <도라도라도라> 그리고 그 영화의 바탕이 된 그의 행위 덕에 태평양전쟁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 이름을 한 번 이상 들어봤을 후치다 미츠오 중좌(한국계급 중령.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냥 "후치다 미츠오"라고만 쓰겠습니다.)는 1902년 12월 3일에 일본 어느 초등학교의 교장선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제국일본의 교육자"임과 동시에 "민족주의자"이며 "애국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후치다 미츠오는 18세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3년 후 졸업한 뒤 임관하여 해군항공대의 항공모함 함재기 조종사로서 15년 동안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 와중에 일본은 후치다가 (우리 나이로) 세살 되던 해인 1904년에 러일전쟁을 개시, 그 이듬해에는 승리를 쟁취한 다음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로 하는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하고, 그러면서도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에게서까지 승리를 쟁취한 아시아의 위대한 나라"로서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러브콜까지 받게 되었죠. 그러나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국이었던 영국의 동맹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막상 자기네 나라의 군대와 함대를 그 당시 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유럽 쪽으로 보내는 것은 살살 거부하면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흩어져있던 독일제국의 식민지들을 빼앗는데 광분합니다. 물론 "막상 필요할 때는 빠지면서 막상 전리품을 나눌 때는 얼굴에 철판 깔고 나타나는" 일본의 모습에 질려버린 영국과 미국 등은 이러한 일본에 대해 견제를 개시하였고, 이 때문에 일본은 각종 군축조약 등을 통하여 미국이나 영국보다 적은 수의 전함만을 보유하도록 강제 당하는 지경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자국의 산업 능력이 뒤쳐져셔 생겨난 경제적 위기와 거기 더해 1929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를 뒤집어 쓰게 되자, 그것의 해결 등을 위하여 (말 그대로 무대뽀 정신 혹은 막가파 정신에 따라 =_=;) 1931년에 중국의 동북지역(만주)에 대한 점령을 시작으로 무려 15년에 걸친 중국 침략을 개시하게 됩니다. 당연히 "아니~ 이넘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말 그대로 막나가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미국은 이에 대해 석유와 고철 등의 판매를 규제하여 전쟁용 물자의 생산과 전선에서의 무기의 운용 등을 어렵게 하고, 마침내 "중국에서의 전쟁을 관두고 병력을 모두 철수하도록 할 것!" 등을 대놓고 요구하게 됩니다. (만약 이 요구를 일본이 그대로 수용했더라면... 영화 <로스트 메모리스>와 같은 상황이... =_=;... 그와 함께 우리나라 지식층 여성들의 거의 대부분은 분명 박경원 여사와 비슷한 삶을 지금도 살고 있을 겁니다.) 이에 일본은 "청나라와의 위기도 전쟁을 통해 해결했고, 러시아와의 위기도 전쟁을 통해 해결했다. 그러니 이번 미국과의 위기도 전쟁을 통해 해결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연합함대(일본해군 함대 전체를 일컬음)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으로 하여금 미국을 단숨에 KO시킬 작전을 실행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이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참모들과 논의한 결과, 미국의 전함들을 상대로 직접 전함 대 전함이라는 함대결전을 실시하는 것보다 하와이 근처까지 항공모함들을 가져간 다음, 거기에서 항공모함에 탑재된 함재기들을 출격시켜 하와이를 기습, 그렇게 해서 마침 정박중이라 전투태세가 미미한 미국 전함들과 항공모함들을 모조리 격침시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물론 그에 따라 항공모함 아카기에 소속되어있던 후치다 미츠오도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이 기습작전의 성공을 위한 훈련에 들어갔고... 그리고 그가 그의 39번째 생일을 보낸 뒤 나흘 째 되던 날 새벽 (하와이 시각) 3시에 눈을 뜬 후치다 미츠오는 출격준비를 마친 부하들과 함께 새벽 6시를 기해 항모 아카키, 가가, 소류, 히류, 쇼카쿠,그리고 즈이카쿠 등에서 이륙합니다. 바로 이 때 후치다 미츠오가 탄 97식 함상공격기와 함께 제1차 공격대로 참가한 공격기, 폭격기, 그리고 전투기의 수는 총 183대... 그리고 이들은 거즘 두 시간 뒤인 오전 7시 50분... 미군 병사들이 아침식사를 하거나 혹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던 바로 그 순간... 전함 아리조나를 격침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작전을 개시하는데... 바로 직전 후치다 미츠오 중좌는 기습의 성공을 알리는 무전 내용인 "도라도라도라"(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를 자신이 이륙한 함대 쪽에 발신합니다.     그리고 이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는... 제가 구차하게 말씀드리는 것 보다 차라리 영화 <도라도라도라>를 구해보시던가 혹은 그게 힘드시다면 <진주만>도 권해드릴만 하다고 봅니다. 물론 <진주만>의 경우는 상당수의 밀리터리매니아에게서 "전쟁영화를 가장한 3류 로맨스 영화" 등의 혹평을 듣는 편이고, 또한 일본 시장을 의식한 탓인지... 이런저런 내용이 왜곡된 것이 눈에 띄죠...(쿨~럭) 그래두 <도라도라도라>를 구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니... 차라리 "꿩 대신 닭"으로서... 아무튼 이렇게 해서 후치다 미츠오는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킴으로서 일본제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이후 호주 북부 및 인도양 등에서 벌어진 일본 해군의 모든 승리한 전투 때마다 항공기 부대를 이끌어 말 그대로 "영웅 중의 영웅"이 됩니다. 하지만 후치다 미츠오가 앞서의 진주만 공격을 성공시켰던 바로 그 시각...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주의 육군기지에서는 마침 식사중이던 제이콥 데샤델이라는 중사가 라디오의 긴급속보를 통하여 진주만이 기습공격을 받아 수 많은 미군 병사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송을 들은 순간 제이콥은 벌떡 일어나 식당 벽에 감자를 던지며 포효하기를... "이 왜놈들(Japs)아! 쬐끔만 기다려라! 이 내가 네놈들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똑똑히 보여주마!!!" 그리고... 나츠미에게 졸라 깨져서 눈이 뒤집힌 케로로 중사처럼 된(*^^;) 데샤델 중사는... 뒤이어 그의 인생 그리고 "타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아주 엄청난 영향을 미친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바로 지미 둘리틀 중령이 지휘를 담당하게 된 일본 폭격작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죠. 먼저... 앞서의 후치다 미츠오 중좌에 의해 시작된 진주만 공습은 원래 3차에 걸쳐 실시되어야 했었고, 또한 그렇게 하자고 후치다 미츠오 중좌도 강력히 제의했지요. 왜냐하면 1차와 2차 폭격에서 진주만의 미군이 대항하기 위한 수단은 모두 사라진 상황이었기에, 이제 마음 편히 전함이나 항공모함을 수리할 수 있는 대형 수리시설과 미국 태평양 함대가 1년 이상 사용할 만큼의 연료가 있는 연료저장소 등을 파괴하게 되면 미군은 1년 정도는 태평양에서 마음놓고 활개치고 다닐 수 없을 것임이 분명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당시 야마모토 제독의 부하로서 후치다가 속한 항공모함 함대의 사령관이던 나구모 제독은 미군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등이 (원래는 미드웨이 섬 및 웨이크 섬 등에 비행기를 보급하기 위해 자리를 뜬 덕에) 진주만에 없던 것이 마음에 걸린데다, 심지어 하와이 근해를 계속 항해하게 되면 일본으로 귀환할 연료마저 없게된다는 부하들의 건의로 2차 폭격까지만 하고 함대의 방향을 돌리게 되는데... 모~ 당장 연료저장고는 기관총탄 한 발 만으로도 날아가기 좋을 정도로 허술했던데다, 엔터프라이즈 등의 항공모함들은 비행기를 보급해주고 돌아오던 터라서 비행기의 수도 적고, 거기 더해 태평양 전쟁 초기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군의 조종사들과 항공기들의 자질과 품질도 떨어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만약 마음만 먹었으면... 일본측이 이길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후치다 미츠오"는 "제독"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되었겠죠. 지금처럼... "말년에는 목사가 되었다"로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이라는 이름 대신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나구모 준이치 제독, 그리고 후치다 미츠오 제독" 등의 이름과 업적을 배웠겠지만요... 당연히 "일본어로"... =_=; 그런 면에서 보면... 역시 나구모 준이치의 업적인가... ㅋㅋㅋ-* 마치 원균이 "일본을 위해" 임진왜란 때 큰 업적을 세워주었듯이... (먼~바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당시 미군으로서는 일단 항공모함 등을 부릴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있다"는 것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역시 별개의 문제인데다... 당시 미군은 항공모함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고, 그런 판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감히 우리 미국의 함대를 기습공격하는 식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놈들의 코를 한 큐에 납작하게 해줄 방법을 생각하라!"며 각료들과 장군들을 들볶고 있었는데... 하지만 해군 제독들은 "일단 일본 근처에 미군의 육상기지가 없고, 또한 미군의 육군과 해군이 보유한 (공군은 1948년 창설... =_=;) 항공기는 가장 멀리 날아가는 것도 일본까지 날아갈 수 없다. 그러니 항공모함을 일본 근처까지 끌고가서 공격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항공모함 탑재 폭격기를 위하여 항공모함이 그만큼 일본 가까이 가야하고, 그렇게 되면 일본 함대에 의해 미군 항공모함이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투자한 것에 비해 손실이 훨씬 크게 된다는 결과가 나오는데... =_=;"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항공모함에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육군 항공대의 대형폭격기들을 실으면 어떨까?" 하는 구상이 제의되고, 검토된 결과 B-25 폭격기가 "항공모함에서 일단 이륙은 가능하다"는 내용이 나왔죠. 그에 따라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B-25 폭격기를 출격시킨 다음, B-25는 곧장 중국에 있는 - 아직 국민당과 장개석 총통의 지역인 내륙지역의 - 중국군 기지까지 날아가게 하고, 항공모함은 곧바로 도망쳐 돌아온다!"는 계획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B-25 폭격기의 조종사들을 훈련시키며 또한 그 작전을 이끌 사람으로는 둘리틀 중령이 선발되었죠.       그리고 둘리틀 중령 휘하에 모여든 "비밀작전을 수행하게 될 폭격기의 승무원(조종사나 항법사에서부터 기관총사수까지...)으로 지원한 사람들" 중에는 물론 앞서의 제이콥 데샤델 중사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1942년 3월 20일, 항공모함 호넷이 샌프란시스코 항에 입항하여 16대의 B-25 폭격기들 및 (제이콥 데샤델을 포함한) 승무원들을 실은 뒤, 호위함들과 함께 북태평양에서 호위용 전투기들을 실은 또 다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합류, 드디어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4월 18일 오후에 출격하여 도쿄의 어두운 밤 하늘에 둘리틀 중령의 폭격기가 목표지점에 소이탄을 떨어뜨려 불을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폭격기들이 그 주변에 폭탄을 떨어뜨리기로 되어 있었지만... 원체 일본측도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이런 사태에 대비하여 "감시용 선박"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감시용 선박들이란 실은 어선들에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함께 태움으로서 "고기잡이 대신 군함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인데... =_=; 이런 형편이었으니... 결국 이들 어선들은 항공모함 호넷을 발견하고 무전을 쳐서 일본 본토에 있는 기지에 알리자마자 거의 모두 격침당하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본토로 가는 전파를 방해할 방법은 이들에게는 없었고, 그러니 일본군의 육해군 항공기들과 군함들이 몰려오기 전에 작전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좀 더 일찍" 작전을 개시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후자 쪽으로 결정되면서 예정시각보다 훨씬 이른 오전 8시경을 기하여 B-25 폭격기들은 이륙하게 됩니다. 물론 제이콥 데샤델 중사도 함께 이륙했지요. 물론 이 작전에 대해서는 (일단 미국 내에서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이 제작되었고, 그 중 <진주만>도 여기에 속하지만... (이 작전에 참가한 남자주인공들 중 한 명이... 죽어가면서 "그녀가 낳을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줘!" 하고 말할 때의 모습이 제게는 꽤 인상깊더라는... -_ㅜ...) 그 중 일부는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결국 작전은 성공했고, 둘리틀 중령의 폭격기 이하 모든 폭격기들이 일본 본토에 폭탄을 뿌려놓고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습니다...만... =_= 그러나 결국 국민당군과 중국 민중에게 구출되어 나귀에서부터 자동차와 기차까지 모두 섭렵해가며 귀국하는데 성공한 둘리틀 중령은 처음에는 "이토록 많은 수의 폭격기들을 다 말아먹고도 폭격 결과는 별로 신통찮으니 분명 대통령 각하가 날 죽이려 하실꺼야~*ㅠㅠ*" 하는 걱정을 해야 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니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에게 "둘리틀 '장군', 잘 돌아오셨소! 우리 미국 국민들은 지금 '장군'이... 그러니까... '중령도 아니고 대령도 아니고 장군인' 그대가... 일본놈들에게 한 방 먹여준 것을 무진장 기뻐하고 있소! (물론 그 덕에 나에 대한 지지율도 상승중에 있소! 그게 중요한 거요...ㅋㅋㅋ-*)"라고 말함으로서... 그를 안심과 동시에 기쁘게 해주었는데... 하지만 바로 이때... 우리의 제이콥 데샤델 중사는 - 영화 <진주만>에서와 같은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 다음 일이 영화처럼 풀리지 않음으로서 -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었죠. =_=;;; 함께 포로가 된 동료들과 함께 고문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운데... 동료들 중 몇은 처형당하고 또 다른 몇은 고문과 굶주림 덕에 몸이 상해서 사망하고... 그 과정에서 데샤델은 분노에 끓어오르게 되었는데...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부터 데샤델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어쩌다 보니 듣게 되고, 이에 마음이 동하여 (전에는 잘 읽지도 않던) 성서를 구하기 위하여 포로수용소의 일본군 간수에게 애걸해서 "딱 세 주 동안만 읽겠습니다~" 하는 조건 하에 성서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1944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고 하더군요. 덧붙이자면 이 당시 일본군에도 상관들이나 고참들 몰래 기도를 하거나 성서를 읽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는 미군 해병대 소속 항공대의 조종사였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된 적이 있는 그레고리 패피 보잉턴 소령도 자신의 자서전 <검은 양의 울음소리>에서 언급한 바 있죠. 또한 그 때문에 보잉턴 소령은 "학자들이니 하는 - 나처럼 무식한 놈보다도 - 많이 배운 사람들마저 일본인들을 모두 도매급으로 취급하는 것에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는 말을 했고요. (-_-;) 각설하고... 그 덕에 데샤델은 하느님을 믿게 되면서, 마침내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 그 후 5일 뒤인 20일에는 포로 수용소에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내려오면서 그들에 의해 해방된 뒤, 미국으로 돌아가서 신학교에 입학한 다음 선교사가 되어 (1948년에)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즉 이번에는 폭탄 대신 성서를 들고 찾아온 것이죠. -_- ... 그리고 가두 선교를 하던 어느 날 중 하나였던 1948년 10월 초... 도쿄 시부야 역에서 <나는 일본군의 포로였습니다>(http://www.pray4revival.org/Page%20DeShazer.htm)라는 전단지를 나누어 주던 그는 어느 중년 신사의 손에도 그 전단지를 쥐어주었던 바... 근데 그 중년 신사는 다름아닌 "전직 일본제국해군 항공대 지휘관 후치다 미츠오 대좌(대령)"였던 것이죠. 그럼, 그 사이에 후치다 미츠오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니... (일단 데샤델이 잡힌 것은 논외로 하고... =_=;) 미국측의 둘리틀 작전의 성공에 충격을 받은 일본군 수뇌부는 어떻게든 미군이 다시는 일본 본토 근처로 항공모함을 보낼 수 없도록 미국 본토에 좀 더 가까운 지역의 섬들 등을 점령하기로 마음먹고 "미드웨이에 대한 점령작전"을 실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준비과정에서 암호통신문이 흘러나가고 또한 해독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군의 작전계획은 이미 노출되었고, 이에 미군은 이번에는 결코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철저한 대비태세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런 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몰랐다"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일본군은 작전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래, 아니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 된 새로운 군대를 만든 이래, 아니 이순신 장군께서 당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임하셨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래 최악의 패배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마침 맹장염에 걸려 출격 직전에 수술을 받고 항공모함 아카키의 병실에 누워있던 후치다 미츠오도 - 격침 직전의 아카기에서 빠져나와 - 간신히 병원선에 실려 - 패전으로 주눅든 함대와 함께 - 일본으로 귀국한 뒤, 말 그대로 "죄인 취급"까지 받게 됩니다. (해 떨어진 뒤 배에서 몰~래 내려진 다음, 들것에 실려 병원 뒷문으로 들여보내진 다음, 면회가 가능한 사람도 엄격히 제한되어지는 생활이라는.. =_=;;; 물론 이후 1944년 10월에는 대좌로 진급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좋은 시절은 미드웨이 이후 다 갔음~"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일본이 항복하고 그에 따라 일본 군대가 해산되자, 그는 고향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1948년 10월 초"...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두해주었으면 한다"는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호출을 받은 그는 바로 시부야 역에서 "미국인 전도사"로부터 "전단지"를 받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읽고 마음에 와닫는 것이 있어 곧바로 일본어 성경을 구입한 다음, 그것을 읽고 감동을 받아 마침내 "1950년 4월 14일"에는 기독교도(..."개신교도"가 적당할라나요... =_=; 아무튼... 이 글을 작성중인 제가 가톨릭 신자라...)로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함께 집회활동과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물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선교활동을 하는 그를 보며 "저 사람이 바로 그 진주만 공격대 대장 했던 후치다 중좌래요! ㅉㅉㅉ" 등의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았죠. 심지어 전도사로서의 일이라던가 혹은 농사짓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수입이 없어 가난에 시달리던 때에 - 한국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냉전의 와중에서 미국측의 압력 & 제의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소련의 팽창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된 & 적잖을 뿐만 아니라 안정된 수입이 보장될 - 자위대에 입대해 줄 것을 권고받기도 했지만, 후치다 미츠오는 "나는 예수님을 위한 활동에 바쁜 몸이라서..." 등의 핑계로 그것을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여전히 일본제국시절에 받은 정훈교육내용을 버리지 못한 어느 불쌍한 젊은이(가미카제 대원이 되었다가 전쟁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뜻을 못 이루었다는...)에게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그 청년을 교화시켜 교회에 다니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971년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을 겸한 전도집회에서 일제 식민지 시절에 대한 잘못을 사죄하기도 했죠. 그 후 5년 뒤인 1976년 5월 30일... 그는 74세의 나이로 오사카근처의 카시와라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진주만 기습 2개월 전인 1941년 10월, 훈련에 참가한 후치다 미츠오의 모습입니다. 이 훈련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영화 <도라도라도라>에서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죠. 실제로 훈련은 진주만과 비슷한 지형을 지닌 가고시마만과 가고시마 시가지 근처에서 진행되었으며, 10월 5일에는 야마모토 제독에 의해 후치다 미츠오와 같은 간부급 비행장교들에게는 진주만 기습 공격에 대한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고 합니다.   전함 아리조나의 격침장면. 너무 확실하게 부서진 덕에 건져내는 것이 포기되고, 대신 물 밖에 나와있던 중요한 시설물들만 철거한 뒤, 그 위에 기념관을 지어버렸죠. =_=; 당시 저 배가 침몰 될 때 죽은 사람 수보다, 구조받지도 못한 채 안에 갇혀서 죽은 사람 수가 더 많았다니... 영화 <토라토라토라>에서 후치다 미츠오 중좌로 분장한 타무라 타카히로. 정말로 후치다 미츠오와 "감쪽같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양반이죠.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도플갱어"는 아니라... (=_=;)... 아무튼 국내에서는 MBC에서 특집외화 등으로 방송을 몇 번 해준적이 있는데, 당시 후치다 미츠오 역의 성우분이 "작전은 시작됐다! 암호는 토라 토라 토라!" 하고 외치는 모습은 이 타무라 타카히로의 모습과 잘 어우러져서 후치다 미츠오를 더더욱 "괴물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DVD도 못 구하고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은 덕에... 그 장면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데샤델 중사의 모습... 사진에 1945라고 찍힌 것 봐서는... 전쟁 후 모습인데... 데샤델 목사님의 말년의 모습 이륙 직후의 B-25폭격기와 뒤따라 이륙하려는 B-25 폭격기들 화기애해해 보이는 두 분 목사님들... *^^; ps. 기타 데샤델 목사님과 후치다 목사님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사이트들을 참조하시길...   참고 자료 출처 - (1) http://starbulletin.com/2000/04/29/editorial/special.html - 영화 <도라도라도라>에서의 후치다 미츠오 중좌(로 분한 영화배우 타무라 타카히로)의 사진. (2) http://bbs.defence.co.kr/bbs/bbs.cgi?db=history5&mode=read&num=14184&page=1&ftype=6&fval=%c8%c4%c4%a1%b4%d9&backdepth=1 - 말년의 후치다 미츠오 목사의 사진. (3) http://www.biblebelievers.com/fuchida1.html - "천황의 사무라이에서 하느님의 사무라이로 전향한 후치다 미츠오"의 이야기. (4) 핸더슨 비행장 - 태평양전쟁의 갈림길 (권주혁 著, 지식산업사 출판) (5) http://www.nostalgicaviation.com/doolittle_raiders%20Signed.htm - 둘리틀 폭격대의 제이콥 데샤젤의 사인이 담긴 사진. (6) http://www.pray4revival.org/Page%20DeShazer.htm - "나는 일본군의 포로였다" (제이콥 데샤젤) (7) http://www.georgiasouthern.edu/~etmcmull/DESHAZER.htm - 둘리틀 폭격대의 일원이자 일본군의 포로가 된 제이콥 데샤델. (8) http://en.wikipedia.org/wiki/Mitsuo_Fuchida - 위키 백과사전 "후치다 미츠오" (9) 진주만 공격대 (군사정보 출판) (10) http://www.combinedfleet.com/kaigun.htm - 태평양전쟁 중 일본의 무기 및 기타 전투에 관한 내용들 모음 및 연구 사이트. (11) http://bbs.defence.co.kr/bbs/bbs.cgi?db=history5&mode=read&num=14228&page=1&ftype=6&fval=%b5%d1%b8%ae%c6%b2&backdepth=1 - 디코(http://www.defence.co.kr)에 Percificwar 님이 쓰신 <엔터프라이즈 이야기 제9화 - 둘리틀 공습작전> (12) http://www.spu.edu/depts/uc/response/spring2k4/eternity.html - 제이콥 데샤델에 대한 사진자료 및 기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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