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함대 항모전대의 마지막 생존자
개조항모의 정점, 그 사투와 역전(歷戰)의 시간
제국해군 HIJMS 준요(準 - [이 한자에 물 수변을 뺀 새매 준자입니다 -_-] 鷹) 자매
Imperial Japanese Navy His Imperial Japanese Majesty's Ship Junyo Class Aircraft Carrier
이번에는 제국해군의 항모 가운데. 아카기(赤城), 카가(加賀)와 같은 진주만 공습의 항모들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쳤고 동시대의 개조항모들 가운데 매우 우수한 완성도를 가졌음에도 정작, 그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항모인 준요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항모 가운데서는 그 완만한 모습으로 가장 좋아하는 함이기도 합니다 ^^;;
1. 제국해군과 연방해군의 항모건함경쟁
영국이 실패한 대형 순양함을 개량해 만든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Furious)를 필두로 일본은 최초의 제식항모 호쇼(鳳翔)를 건조, 미국은 석탄운반선 랭글리(Langley)를 항모로 개장하며 이 새로운 함종의 전략적인 가치와 그 운영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태평양전쟁 이전~초반에 이르는 기간동안 항모의 운영교리는 확보되게 되는데 U-보트를 상대하고, 지중해-대서양 방면에 이에 대항할 해군전력이 없던 영국에 비해, 시종일관 장대한 항속거리를 가진 함재기의 아웃 레인지 전술을 추구하던 일본과 전함의 육상공격과 적 항공력으로부터의 호위를 중점으로 한 미국의 항모들이 보다 함대함 전투에 걸맞는 함재기와 그 성능을 추구하게 된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분명히, 제2차대전은 전함의 가치가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절정에 달한 시기였지만 이미 일본과 미국이 각기 A6M 제로센과 F4F 와일드 캣과 같은 고성능 함재기(와일드 캣을 구닥다리 기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큰 문제입니다만, F4F는 엄연하게 미 해군이 세계최고급의 함재기를 목표로 설계한 놈입니다)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것은 항공기의 발달에 따라 항모의 전략적 가치가 인식된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새로운 함종에 대한 투자가 컸는데 야마토급이 미 전함에 대한 확보한 우위와 파나마 운하의 제한을 고려한 전략적인 특수성을 띠고 건조된 것을 제외한다면, 제국해군은 호쇼의 실험을 거쳐 카가와 아카기를 수 차례 개장, 본격적인 정규항모로 히류(飛龍)와 소류(蒼龍)를 준공. 이를 쇼카쿠(翔鶴)와 즈이카쿠(瑞鶴)으로 완성시키며 항모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함에 대한 투자는 주로 개장을 위주로 한 것을 고려한다면 적은 편이었지요. 영국은 전함전력의 확보를 위해 양산형(?) KGV 자매를 5척이나 발주한 것을 고려한다면, 분명히 일본이 주력을 항모로 전환한 것을 빠른 판단이었습니다. 다만, 미국은 여전히 전함을 주력으로 생각했지만 역시 돈(...)이 많으니 항모도 이에 못지 않은 투자를 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물론 미국 자체에서도 항모에 대한 인식인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급히 항모로 주력을 전환했음에도 실질적인 항모전력에 대해서는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힘들었습니다. 미국이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2대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개전 시기에 일본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정규항모로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 6척, 경항모로 류죠(龍壤), 즈이호(瑞鳳), 호쇼 3척. 미국이 보유한 항모는 렉싱턴(Lexington), 요크 타운(York Town), 사라토가(Saratoga), 레인저(Ranger), 엔터프라이즈(Enterprize), 워스프(Warsp), 호넷(Hornet) 7척으로 항모의 수로는 일본이 우위, 함재기 운영과 모든 함이 정규항모라는 점에서 미국이 우세해 태평양 방면에서는 일본이 보다 유리했으나 일본이 개장 혹은 건조 중인 항모는 정규항모 3척, 경항모 1척으로 1940년대 계획으로 1943년까지 건조가 예정되었던 "태평양의 괴물"(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이 놈들과 완성도가 비슷한 놈들은 쇼카쿠급 정도인데;;), 5척의 에섹스(Essex)급 항모가 준공된다면 그나마 유리했던 항모전력에서도 뒤지게 되어 일본은 그 이전인 1940년에 대미전쟁에 돌입하고 미 항공모함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철저히 계획된 전쟁으로 항모의 건조를 서두르고 있던 일본해군은, 적의 예측을 뒤엎는 전쟁만이 필승의 방책이라고 결정, 이에 미국이 전시와 더불어 1943년까지는 1년에 1척 이상의 항모를 증가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 잠수항모 타이게이(大鯨)를 경항모 류호(龍鳳)로 개장에 착수하고 준공 및 개장 중이던 4척의 항모를 모두 1942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대미(對米)개전에 돌입합니다.
2. 준요 자매의 탄생
군축조약으로 항공모함 보유수가 제한된 일본해군은, 이미 피할 수 없게 되가는 대미개전을 대비해 대형 민간선을 단기간에 항모로 개장하는 것을 고려했습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1937년 일본 정부는 배수량 6,000톤 이상, 속력 19노트 이상의 여객선, 화물선, 유조선을 건조하는 경우에, 전시는 군용으로 징발하는 것을 조건으로 최대 60%의 건조비용을 대납하기로 합니다.
당시 전세계적인 불황기를 맞아, 이러한 일본해군의 제안에 많은 민간기업들이 응했고 일본우선(郵船)국 소속의 카시하라마루(橿原丸)와 이즈모마루(出雲丸) 자매 또한 이런 군의 지원으로 건조된 거대 민간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원래는 1939년, 다음해에 예정된 동경 올림픽을 기해, 미-일간 우호의 상징(....뭐라 말씀을 드려야할지;;)으로 태평양 항로에 취항하기 위해 건조된, 배수량 20,000톤 이상의 당시 일본 최고규모의 초호화 여객선이었지만 원래 우아한 귀부인으로서 태평양의 푸른 하늘 아래 맑은 파도를 가르는 삶을 살아야했던 그들 자매는 1940년 10월에 미국의 항모증강에 대항해 이들 자매를 사들여 항모로 개장하기로 결정, 비단부채와 화려한 드레스 대신에 철혈(鐵血)로 장식되었지요.
물론, 이러한 민수선의 항모개장은 그녀가 최초도 아니었고 특이할 만한 사항도 아니었습니다.. 영국이 이탈리아에서 사들인 여객선의 선체를 활용해 만든 항모 어거스(Argus)가 있었고 이탈리아 또한 그 전훈을 본받아 호화여객선 로마(Roma)를 항모 아퀼라(Aquila)로 개장했으며 이후 많은 민간선들이 호위항모로 개장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통상적인 개장항모였으나, 이 자매들이 주목받는 것은 제식항모에 맞먹는 우수한 설계와 항공기 운영능력이었습니다.
특이할 사항은, 당시 항모의 구조는 시야와 상공의 난기류 문제로 연돌과 함교를 분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구식이 된 프랑스의 베아른(Bearn)을 제외하고, 영국의 아크 로열(Ark Royal), 일러스트리어스(Illustrious)급 정도만이 해수를 이용한 냉각식 함교일체형 수직식 연돌을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체식 수직연돌은 분리형 연돌보다 구조적으로 까다롭기는 하나, 그만큼 배연을 위한 공간과 방어구획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는데 일본은 카시하라마루 자매를 항모로 개장하면서 함교에 일체시킨 연돌에 경사를 주어 별다른 기구가 필요없이 효율적으로 매연에 의한 시야 및 방열(放熱)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녀들을 통해 얻어진 성과들은 다시 사촌동생들인 타이호(大鳳), 시나노(信濃)에게 그대로 이어질만치 우수했습니다. (다만 운류(雲龍)급은 히류의 개량형이라서 그런지, 연돌이 분리형 측면연돌이더군요.)
[준요의 경사식 연돌.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하고 우수한 설계로 호평받았습니다.]
1942년 5월 3일 언니인 카시하라마루는 먼저 동생인 이즈모마루보다 준요라는 이름으로, 동생인 이즈모마루는 미드웨이 이후인 7월 31일 히요(飛鷹)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정식정규항모로서 군적에 편입됩니다. 특히 준요는 1942년 6월 4~8일에 걸친 AL작전에서 미드웨이 공격에 대한 양동작전으로 제5함대 휘하 제4항공전대 소속으로 류죠와 함께 더치 하버를 공략하기도 합니다.
준요 자매는 민수선을 기반으로 한 항모로서는 매우 우수한 완성도를 자랑했는데, 여객선을 기반으로 하여 스크류가 2축추진이라 최고속력이 25.5노트라는 한계와 (일반적으로 항모는 4축추진을 사용해서 속력을 높입니다.) 배수량에 비해 방어력이 경항모 수준으로 낮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참신한 개념을 도입한 우수한 설계 및 히류나 소류급에 필적하는 함재기 운영능력(최대 63기까지 운영가능, 보통은 운영 48기+보충 5기)과 10,000해리에 달하는 긴 항속거리로 실전용에 손색이 없이 매우 우수한 항모로 태어났습니다. 더하여, 생김새도 참 참하게 바뀌었지요 ^^;;
3. 미드웨이 쇼크
준요 자매가 태어났던 시기는, 연합함대가 그 일방적인 공세를 끝내고 그 우위를 막 태평양함대에게 넘겨주던 시기였고 이것은 앞으로 준요 자매들이 피해갈 수 없었던 많은 고난의 순간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미군이 진주만에서 기습을 당한 것 이상으로, 일본에게 뼈저린 손실은 바로 미드웨이의 참패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전력보다 더 압도적인 규모로 미 해군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4척을 항모를 모조리 손실하고 숙련된 파일럿의 대다수를 잃은 연합함대는 단순한 항모 4척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고 앞으로 항공모함의 손실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당초 전함 3척, 순양전함 2척, 항모 3척을 기간으로 한 신규함대계획을 변경해 운류급 항모 15척, 타이호 개(改)급 항모 5척을 포함해 20척의 정규항모를 발주하고 야마토급 3번함 시나노, 수상기모함 치토세(千歲), 치요다(千代田) 자매를 항모로 개장하는 동시에 민간선의 항모개장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소와 필요한 철강에도 한계가 있어, 이것을 동시에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고 운류 자매만 해도 1942년 8월 1일에 기공한 1번함 운류로부터 마지막 15번함의 준공은 1948년 9월로 약 6년간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타이호 개급은 1948년 이후(......)에 기공될 예정이었습니다. 분명 일본의 공업능력을 생각한다면 1년에 3척에 가까운 건조계획은 분명 방대한 것이었으나 그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생각한다면 실로 회의적인 계획이었습니다. 다만 연합함대가 항모전력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 시작된 1941년 12월부터 1942년 12월까지로 이 당시에 연합함대가 손실한 항모는 쇼호(詳鳳), 아카기, 카가, 류죠, 소류, 히류의 6척, 미국은 렉싱턴, 호넷, 워스프, 요크타운 4척. 남은 미 항모 3척 가운데 1척인 레인저는 영국에 파견되어 이 시기까지 연합함대의 항모전력은 실질적으로 2배 이상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력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이 이후 1943년 12월까지 미국은 에섹스급 정규항모 7척,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8척을 준공해 연합함대에 대해 항모전력을 2배 이상으로 압도했으며 마리아나 해전에 이후로, 호위항모를 제외하더라도 연합함대와 태평양함대의 항모전력차는 1:3으로 현격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결국, 미드웨이 해전 이후 준공을 마치고 마리아나에 투입될 수 있었던 것은 경항모인 치토세 자매 단 2척뿐으로 야마모토가 왜 그토록 적 항모들을 조기에 격멸하려 했는지, 나구모가 왜 그토록 항모의 손실을 두려워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수 있게 해주는 자료라고 판단되는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야마모토 씨는 폭격기 광신도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_-)
4. 마지막 승리
긴박한 전국과 함께 연합함대와 태평양함대가 치열하게 대치하던 과달카날 방면으로 파견된 준요 자매는, 제2차 솔로몬 해전(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경항모 류죠가 격침되는 등, 항공전력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제1선의 전투항모로 투입되어 미 해군과의 일전에 대비합니다. 그러나 동생 히요는 1942년 10월 20일 기관고장으로 잠시 물러나 이후 벌어질 산타크루즈 해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누나인 준요만이 가쿠다 가쿠지(角田 覺治) 소장이 이끄는 제2항공전대의 기함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제2함대의 핸더슨 비행장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제3함대를 지휘한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 중장은 이전과 달리 전함 전대를 전방에 배치하여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고, 2차례에 걸쳐 정찰기를 발진시켜 미 항모를 조기에 발견하는 숙련된 지휘를 보여줬으며, 기함 쇼카쿠가 대파되어 이탈할 때에도 지휘권을 인수한, 견적필멸(見敵必滅)의 돌격장 - 가쿠다 제독(제2차대전사에서 스톰 헐지( Storm Healsy)와 더불어 공격형 제독의 쌍벽을 이루는 돌격 가쿠다 제독이지요 ^^;;) 의 지휘 아래 즈이카쿠와 더불어 호넷을 공격, 그녀의 함재기들이 호넷을 격침시켜 미드웨이와 도쿄 공습의 복수에 성공합니다. 이 산타크루즈 해전은 연합함대가 단 1척도 잃지 않고 적기 70여기 격추 및 적 항모 1척과 구축함 1척을 격침시키고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전함 사우스 다코타를 중파시키는 완승이었으나, 무려 132기에 달하는 함재기를 상실하여 그 피해 역시 적다고 할 수 없었으며 이후 제대로 된 항모를 동원할 수 없게된 연합함대의 항모전에서 승리한 마지막 해전이었습니다. 이후, 1943년이 되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신규물량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소모전에 돌입한 전세는 점차 미국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궁지에 내몰린 연합함대는 마지막 전력을 쥐어짜, 태평양함대에게 마지막 공세를 결의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류최대이자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장대한 규모의 항모전. 마리나아 해전이었습니다.
4. 제국의 반격 - Last of Sunrise, 저무는 태양은 일몰과 함께
이제 피할 수 없게 된 본토결전을 위해, 최대한 미 함대에 타격을 가할 필요가 있었던 연합함대는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은 후에야 원래 수뢰 전문가 출신인 나구모 중장을 태평양방면 함대사령관으로 전출시키고, 지금까지 수송함대 호위를 맡아오던 항공전의 No.1 오자와 지사부로(小澤 治三郞) 중장에게 제1기동함대 사령관을 맡기고 항공함대의 재건을 위임합니다. 비록,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버린 일이었긴 했으나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은 총력을 가해 항공력을 정비합니다.
[객기로 유명한 젊은 시절 생긴 흉터로, 오니(鬼)라는 불리던 최후의 연합함대 사령장관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 항공전에 있어 야마구치 다몬 제독과 더불어 최고의 전문가였으나 이미 때는........]
당시 마리아나 해전에서 일본군이 동원한 항모는 제1기동부대의 전위부대에 경항모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가, 갑부대에는 항모 타이호, 쇼카쿠, 즈이카쿠가, 을부대에는 항모 준요, 히요와 경항모 류호가 배치. 전함도 공고, 하루나, 무사시, 야마토, 나가토의 5척이 모두, 중순양함 11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27척, 급유함 1척, 급유선 5척, 잠수함 24척, 함재기 도합 439기와 육상기지의 전투기 250기가 모두 동원되어 미드웨이 이전의 항공전력을 그럭저럭 복구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 해군이 동원한 전력은 역시 유례없는 대병력으로서 새로 건조된 제2대의 호넷을 필두로 항모만 15척(.....)이 동원되었으며 함재기는 900기 이상, 그 외의 병력은 제1기동부대의 3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당시 미 해군이 동원한 전력을 일일이 나열하면, 한 페이지로도 모자랍니다....;;) 1944년 6월 19일, 마리아나를 향해 전개했습니다.
원래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은 계획대로 준공을 코앞에 둔 운류급 항모 3척이 완성되고 각 기지에 항공전력을 비축해 모두 2,000여기 이상에 달하는 전력으로 미 해군을 요격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보았으나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력을 다해 확충한 항공전력은 연합함대 사령장관 코가 미네치(古賀 峰一) 제독으 사후, 연합함대 사령장관 대리를 4개월간 맡은 제1함대 사령장관 다카스 시로 중장의 엿같은 지휘에 의해 재생훈련 중이던 일본 항공함대의 1,600여기 이상 육상기지 항공대 가운데 무려 1,200기를 소모. (육군의 말대로 솔로몬만 포기했더라도 -_-;;) 당시 오자와가 확보할 수 있었던 전력은 육상기지 400여기에 항모함재기 400여기였습니다. 여기에 당시 승무원의 숙련도는 큰 격차가 나서, 일본이 태평양전쟁 개전에서 말기까지 언제나 평균 비행기간 500시간 이상의 승무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반면, 마리아나 일본 항공대의 평균 비행시간은 고작 100시간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파일럿들의 태반 이상이 겨우 항모에서 비행기를 뜨고 내릴 수 있는 , 편대 비행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미숙련자들이고 대함공격을 위해 225기의 제로센 가운데 75기를 전폭기로 개장했기 때문에 최대한 아군함대의 타격을 피하기 위해 미 함재기보다 수백 킬로미터나 더 긴 일본 함재기의 장점을 살린 아웃 레인지 공격을 결의합니다.
그러나, 오자와 제독의 함재기들은 오히려 아군 함대의 근처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미 함재기들의 철저한 방공망에 걸려 완패당하고 제1기동함대 또한 쇼카쿠와 타이호가 모두 미 잠수함의 뇌격에 격침, 준요의 동생 히요가 미 함재기의 공습에 격침되는 참사를 당합니다. 특히 타이호의 격침은 큰 충격으로서, 장갑항모로 불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저질연료에 의한 유독가스 누출과 그 유폭으로 격침된 것이었죠.
[타이호의 최후. 일본항모건조 기술의 정점이라 일컫어지는 그녀로서는 매우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일본 함재기 승무원들의 미숙련도와 미 해군의 뛰어난 VT신관이 모두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미 미 해군이 이 마리아나 해전에서 일본해군의 작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파라오 제도를 탈출하던 연합함대 사령장관 코가 미네치 대장이 행방불명되고 그 참모장 후쿠도메 중장이 포로로 잡혔는데 (탑승기는 전설의 1식육공 -_-;;) 그와 동시에 일본군의 모든 작전내용이 미 해군의 손에 들어와 미 해군은 결전지역에 미리 잠수함을 포진시켜 일 함재기 탑승원의 비행훈련을 저지하고 3척의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역시 오자와 제독의 작전이 유효했다는 반증이 - 일 기동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 미 함재기들이 적함은 1척도 격침시키지 못하고 연료부족으로 바다에 떨어져 무려 100기가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나의 비극 이후, 제1기동부대와 그 마지막 항모들은 레이테 작전에서 전함들의 미 함대 돌입을 위한 미끼로 사용되는 비극을 맞는데, 먼저 해저로 떠난 동생이 그 운을 남겨주고 떠났는지 마리아나에서 이착함이 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본토로 귀환, 다시 메시마(女島) 부근에서 통상보다 3배 빠른(믿으면 김X일) 미 잠수함 레드 피쉬(Red Fish)의 뇌격을 맞고도 살아남아 1945년 8월 15일 고향인 사세보(佐世保)에서 종전을 맞고 그해 11월 해체됩니다.
그녀는, 연합함대가 정규항모로 확충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개장항모이자 여객선을 기반으로 했다고 생각할 수 없이 우수한 완성도와 능력으로 태평양전쟁의 중~후반을 장식한 연합함대의 대표적은 후반기 정규항모였으며 ‘실전’을 거친 항모전대의 자매들 가운데 살아남은 단 1척의 정규항모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제가 제식항모보다는 개장항모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제2차 대전의 항모 가운데서도 특별히 애착이 가는 함이기도 합니다 ^^;;
다만, 과달카날과 마리아나라는 연합함대의 몰락의 역사 속에서 격전의 순간마다 있어온 그녀는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멸망을 피할 수 없었던 연합함대의 운명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거함이라고 보며 쓸데없는 주저리를 늘어놓아 봅니다.
준요자매 상세사항
배수량: 27,500톤
보일러:미츠비시 수관 중유보일러 6기 - ( 히요 : 카와사키 라몬트 중유보일러 6기)
연료탑재량:중유 4,100톤
전장:215.30m
전폭:26.70m
주기:2축추진 미츠비시 트리식 올 기어드 터빈 2기 , 2축 추진 - ( 히요 : 2축추진 가와사키식 올 기어드 터빈 2기)
흘수:8.15m
출력:56,250마력
무장: 40구경 12.7cm 연장고각포 6기, 25mm 연장기관총 8기, 함재기 48기(함전 12, 함공 18, 함폭 18)+예비 5기
최대속력:25.5노트
항속 거리:18노트로 10,000해리
승무원 정원:1,187명
비행 갑판:210. 3×27. 3m
함재기용 승강기 :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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