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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의 기인, 키무라 마사토미 제독

티안무 2006.03.30 10:54:10
조회 2543 추천 0 댓글 9

게으름뱅이 콧수염 제독 제국해군 제일의 괴짜, 키무라 마사토미(木村 昌福) 생몰년대 : 1891년 12월 6일 ~ 1960년 2월 14일 최종계급 : 중장(Vice admiral) 지휘함대 : 제5수뢰전대, 제1수뢰전대, 제2수뢰전대 기함 : 후부키(吹雪)급 구축함 시라유키, 아사시오(朝潮)급 구축함 카스미, 나가라(長良)급 경순양함 아부쿠마 어느 조직을 가나 이론보다는 실전에, 형식보다는 내용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소위 “게으름뱅이 천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키무라 마사토미 제독도 그런 예가 되겠군요. 1891년 깡촌 돗토리(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동네 -_-;;)에서 태어난 그는 1913년 해군병학교 제41기를 118명 가운제 107등이라는 턱걸이 점수로 졸업한 이후 (양 웬리의 사관학교 성적도 커트라인을 왔다갔다~) 타사파롱가 해전의 영웅이자 그 동기였던 다나카 라이조(田中 頼三) 제독(졸업성적 34등)이 그럭저럭 괜찮게 진급을 하고 구사카 류노스케(草鹿 龍之介)가 1940년에 이미 굵직한 함들의 함장을 맡으며 항공분야의 경험을 쌓고 소장으로 진급한 반면 키무라 제독은 수뢰정이나 소해정, 잘해야 구축함으로 정장 및 함장을 전전하며 동기들보다 진급이 언제나 늦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바닥에서 구르며 습득한 조함실력과 함선운영능력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그래도 계속 꾸준히 구축전대 사령등을 맡으며 일선의 경험을 쌓고 있었습니다. 상부에서는 당시 키무라 제독을 일컫어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질이 부족하며, 제국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부심과 용맹마저 결핍된 인물”로 평했고, 역시 밥벌이 이외에 관심이 없던 키무라 제독은 당시 고급장교로 들어가는 전문학교(우리나라로 치면 주특기교육이 되겠군요. 수뢰나 항공 및 포병 등등)를 거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평소, 갑판에서 하사관 및 병사들과 낚시질을 하거나 함교에 앉아 오수를 취하시며(....) “저 밥통쉐키, 전시라 지휘관만 부족하지 않았으면 댕겅 모가지인디....” 라고 이를 가는 윗분들을 곱게 무시하며 장차 나아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제7전대 사령관 구리다 타케오(栗田 健男) 제독의 기함, 모가미급 중순양함 스즈야(鈴谷)의  함장을 맡은 그는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내 제2차 솔로몬 해전(미군측 동부 솔로몬 해전), 남태평양 해전(산타크루즈 해전), 제3차 솔로몬 해전(일본측은 12일~13일로 구분, 미군측은 과달카날 해전 및 13일을 따로이 제3차 사보 해전이라 명명)에서 기민한 조함능력 및 지휘능력을 보여준 이후, 동기생인 구사카 류노스케의 적극적인 지지와 구리다 제독의 인정을 받아 1942년, “해군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전문교육도 받지 못한, 출세와는 담을 쌓은” 키무라 마사토미가 소장 계급으로 제국해군 제독의 반열에 올라 당시 천황인 히로히토를 알현하게 되는 영전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저 쉐키, 일단 추천장이 있어서 별은 달아줬는데 그래도 불안해. 일단은 육상기지에서 근무시키자.” 라고 마이츠루(舞鶴) 육상기지의 해병단장을 맡은 그는 이내 1943년 초 제3수뢰전대의 사령관이 되어 동부 뉴기니 상륙을 지원하기 위해 비스마르크 해전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그의 첫 전투는 일본군 호위기의 2배가 넘는 미군 항공기들 및 새로이 개발된 “물수제비 폭격”으로 괴멸되고 기함인 후부키급 구축함 시라유키(白雪)도 격침되어 키무라 제독도 중상을 입고 겨우 헤엄쳐 살아돌아오는 참담한 패배를 당합니다. (뭐 솔직히 구축함 7척에다가 제로센 87기, 함폭 7기, 육공 20기 가지고 전투기 154기에다 B-17 39기, B-25기 및 여타 폭격기 44기의 포위를 돌파하라는 것이 무리지만;;) 치료를 위해 돌아온 그는, 절대적으로 항공기의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함선만으로 단독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제5함대 휘하 제1수뢰전대의 사령관을 맡은 그에게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1943년 5월, 토머스 킹게이드 중장(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휘하함대가 키무라 제독의 동기  다나카 라이죠 제독에게 열나게 두들겨 맞은 아저씨. 후에 다시 키무라 제독에게 엿먹음)이 인솔하는 1만 2천의 미군 북태평양 함대가 앗투 섬에 상륙, 2,500명의 수비대가 옥쇄(라고 쓰고 도죠의 대본영이 버렸다고 읽는다)한 직후, 불과 동쪽 몇 해일 이내에 떨어져 있던 키스카 섬의 수비대 5,200명에게도 똑같은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패전을 교훈 삼은 킹게이드 제독은 90척 이상의 함선으로 해상을 봉쇄하고 인근의 섬에 항공기지를 건설하며 항공정찰까지 행하며 키스카 섬의 상륙작전의 준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이에 우리 훌륭하신 도죠 히데키 각하 이하의 대본영의 지침은 이러하게 떨어졌습니다. “뭐, 어차피 데려올 수도 없고. 명예롭게(....) 옥쇄시켜준 다음에 1계급 특진이나 시켜주자.” 라는 제안이 나왔소. 그러나 이렇게 끝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 북방을 관할하던 제5함대 사령장관 카와세 시로((河瀬 四郎) 중장은 “그 병사들은 다름아닌 천황 폐하의 적자들이다, 폐하의 적자들을 그렇게 헛되게 죽일 수는 없다!” 라고 강력히 구출작전을 제안하여 끝내 “네 꼴리는대로 하세요.” 라는 구출작전의 허가를 얻습니다. 좋은 의도였으나 무리한 작전의 내용과 이미 눈밖에 난 제안이라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못하던 카와세 제독은 자신과 같은 돗토리 현 출신이며, 뛰어난 조타술로 제독의 자리를 꿰어찬 키무라 마사토미를 생각해냅니다. “씨바, 사나이 대 사나이로 부탁한다. 딱 까놓고 말해서 이런 훈장 하나 떨어지지도 않을 개삽질같은 작전을 군말없이 수행할 인간이 너 밖에 없다. 너랑 내랑 고향도 같은 돗토리잖아? 형님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눈 딱감고 한번 갔다 와라.” 그리하여 1943년 7월 7일 1920년에 건조된 나가라급 경순양함 아부쿠마(阿武隈)를 기함으로 쿠마급 경순양함 키소(木曽), 구축함으로 시마카제급 시마카제(島風), 카미카제급 아먀나미(綾波), 유구모급 오오나미(大波), 시라츠유(白露)급 시라츠유, 사미다레(五月雨), 시라구모급 시라구모(白雲), 후부키급 우스구모(薄雲), 히비키(響), 아사시오급 아사구모(朝雲), 하츠하루급 와카바(若葉), 하츠시모급 하츠시모(初霜). 이상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0척을 기반으로 유조선 1척, 해빙함 1척을 더하여 더하여 키스카로 출동합니다. 그러나 11일, 제1구축전대가 키스카 섬 남서 500해리에 접근할 때에 이미 안개가 걷여들기 시작했고 키무라 소장은 망설임 없이 지시를 내립니다. “튀자.” 불퇴의 정신이 못밖힌 제국해군의 제독으로서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던 말을 꺼낸 사령관에게 어안이 벙벙해진 부하들을 보고 키무라 제독은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돌아가자. 돌아가야 키스카로 다시 올 수 있다.” 그러나 키스카를 눈 앞에 두고 돌아온 키무라에게 돌아온 것은 “씨바, 저런 겁쟁이 놈이 제독이라고 별을 달고 있으니, 제국해군의 앞날이 훤하다!!” 이에 대하여 키무라 제독은 “그럼 이 함대 니들한테 줄테니까 니들이 가서 싸워보든지. 싸움을 근성으로 하니? 애초에 가지도 못하는 놈들은 닥치고 즐~” [참고로, 키무라 제독은 구출작전의 협의문제로 온 육군참모에게 “내 일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함대가 위험에 빠지지 않는 이상 싸우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대단한 양반이라는] 지난 수차례, 미 함대와의 교전을 통하여 잠수함도 미 해군의 레이더에 소용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키무라 제독은 안개가 끼는 날까지, ‘상태 안 좋은 사령관’을 걱정하며 안달복달하는 참모장 아리치카 무지(有近 六次) 중좌와 함께 함교에서 바둑을 두거나 이전의 재능을 살려 기함의 뒤켠에서 낚시 및 오수를 즐기시다 다시 안개가 낀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함대를 재정비하여 출격합니다. (제5함대의 참모가 이런 키무라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오히려 안심하고 돌아갔다는 말이 있소. 대범한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여하튼 이런 키무라 제독의 모습에 불안한 감을 느껴서였는지 이번 7월 22일의 출격에는 제5함대 사령장관 카와세 제독 이하의 막료들이 동승해서 출동합니다. 24일, 카타리나 비행정이 짙은 안개 속에서 7척의 함선을 키스카 섬 약 200해리에서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은 킹게이드 제독은 지난 패전의 설욕을 갚고자 함대를 출동시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1구축전대는 키스카에서 약 500해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짙은 안개 사이로 깔린 암초를 향해 위험천만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비록 짙은 안개 사이로 미 해군의 추격은 피할 수 있었으나 한치 앞도 안보이는 협로를 항해한다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때 활약한 것이 시마카제와 그 레이더) 키무라 제독은 이전 솔로몬 해전의 경험으로 미국 레이더의 탐지범위가 20km 이내라는 것과 함선과 암초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암초와 1km 이상의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 아슬아슬한 항로를 택하여 섬에 돌입합니다. 기함 아부쿠마의 함장이 수로돌파에 지나치게 기력을 쏟아 쓰러지자, 키무라 제독은 몸소 키를 잡고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함대를 무사히 연안까지 유도하는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에드윈 피셔 제독;;) 미네키 토이치로(峯木 十一郎) 소장 이하 2,400명의 육군과 아키야마 카즈조(秋山 勝三) 소장 이하 2,800명의 해군은 이미 섬을 포위한 미 해군을 보고 거의 절망에 빠진 상태로 구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대본영에서 구원군을 보내준 ‘역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당시 수비대의 심정이란 한마디로. “ㅆㅂㄹㅁ 도죠가 우리를 구할 병력을 보내면 내가 양키다.” 라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키무라 제독이 구원함대를 이끌고 도착하자 미네키와 아키야마는 쓰러져 부하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군요. 이후 12척의 대형 발동정에 분승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미네키 장군과 아키야마 제독이 철퇴하자 제1수뢰전대는 5,200명의 병력을 무사히 데리고 8월 1일. 본국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합니다. 키무라 제독이 이 “키스카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탈출작전을 성공시키고 육군과 해군에게 모두 영웅대접을 받고 있을 무렵, 우리의 호프 킹게이드 제독은 레이더 상에 나타난 일 함대에게 약 1,000발의 레이더 일제사격을 가하고 완전전멸의 쾌거(....)를 거두게 됩니다. (킹게이드 각하께는 좀 미안하군요 ^^;; 이 분도 상당히 유능하신 분인데) 이후 8월 15일. 군함 100여척, 미군 29,100명 캐나다군 5,300명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키스카 섬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고 상륙하자 그들을 맞아준 것은 일본군이 남기고 간 3마리의 개들이었다 합니다.(-_-) 이후 야전지휘관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레이테 해전에도 참가하고 1944년 11월 묘코급 중순양함 아시가라(足柄), 오요도급 경순양함 오요도(大淀), 아사시오급 구축함 카스미(霞), 유구모급 구축함 키요시모(清霜), 아사시모(清霜), 무츠급 구축함 카야(榧), 스기(杉), 카시(樫)로 재편된 제2수뢰전대(기함은 구축함 카스미)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다시 아무도 성공시키지 못했던 민드로 섬의 연합군 수송선단 공격작전을 성공키기게 됩니다. 이 때, 킹게이드 제독은 다시 제7함대 사령관으로 요격기들을 출동시켜 제2수뢰전대를 공격했는데, 전투기 100기와 B-25 폭격기 13기, 어뢰정 20척을 동원했음에도 구축함 키요시오 1척을 격침시키는 것을 외에는 제2수뢰전대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제2수뢰전대는 연합군 보급시설과 수송선을 실컷 때려부수고 도망쳤다 합니다. (워낙 급하게 출동하느라 폭탄에 신관도 달지 못했다는 후문이 -_-;;) 이 연합함대 최후의 승전이라 불리는 민드라 섬 해전 이후,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과 특공작전을 위주로 작전이 전개되자 육상으로 차출. 연합함대 사령부 근무 및 대잠학교 교장, 해군병학교 분교 교감, 통신학교 교장등을 역임하다 패전 이후인 1945년 11월 1일에 중장으로 승진한 키무라 마사토미 제독은 제국해군의 해산에 따라 11월 10일 예편합니다. 전후, 자신의 옛 부하들과 함께 야마구치 현에서 제염회사를 경영하며 눈치 보지 않고 낚시와 오수를 즐기던 키무라 제독은, 1960년, 70세를 끝으로 보다 먼 세계로 낚시를 즐기러 떠나게 됩니다. . . . . . 3~4교시가 휴강이군요 -_- 요샌 도서관 가는 길에 컴퓨터가 전부 배치되어 참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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