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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고도 시안. 그속의 양귀비 흔적들
https://youtu.be/7NA8I8-6fyE
세계 4대 고대도시로 로마 아테네 카이로 시안(장안)을 꼽습니다그중 시안은 유일한 동양권 도시로 3500년의 역사동안 무려 12개 왕조가 시안을 수도로 하였습니다주나라부터 진시황제. 한고조 유방. 당나라의 이연과 측천무후등이 이곳을 도읍으로 천하를 호령하였고 삼국지초반 후한시절 동탁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였습니다이백 두보 백거이같은 당대의 위대한 시인들도 시안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또한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며 그 위세는 송나라 명나라대까지 이어져 수많은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습니다진시황릉규모가 어마어마하여 거의 산 하나 전체가 거대한 무덤입니다불로장생을 꿈꿨던 절대군주답게 묘내부에 지하궁전을 만들었습니다시안의 상징이기도 한 병마용갱수천년동안 흙속에 묻혀있었던 이곳은 진시황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1974년 농부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수천의 병사인형들은 키 170~197사이로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수천개중 표정이 똑같은 인형이 한점도 없다고 합니다시안하면 빼놓을수없는 인물이 당나라시대의 절세미녀 양귀비입니다중국역사의 4대미인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여겨집니다나라를 어지럽히는 미모라는 경국지색이 바로 양귀비에게서 나왔죠당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끌던 당시 황제 현종과 양귀비가 만나 서로 사랑을 속삭이던 흥경궁입니다당시 현종은 56세였고 양귀비는 22세로 현종의 며느리였습니다양귀비의 절세미모와 노래 춤에 빠진 현종은 자신이 총애했던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서 며느리를 뺏고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습니다현종은 목욕을 좋아하는 양귀비를 위해 온천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곳이 바로 화청지입니다화청지에 있는 목욕하는 양귀비의 동상화청지의 온천수는 양귀비를 위해 43도 온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이곳이 양귀비가 현종과 같이 목욕하던 장소라고 합니다양귀비를 만나기전까지 당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끌 정도로 현명하고 치세를 잘했던 현종은 양귀비에 빠진이후 정사를 멀리하고 향락에 취하면서 탐관오리들이 득세하고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면서 당나라는 급격히 쇠퇴하게 됩니다그 와중에 호족들이 소외감과 불만을 가지게 되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납니다안록산의 군대가 시안 부근까지 당도하자 현종과 양귀비는 사천지방으로 피신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이 지경까지 오게 된게 양귀비때문이라고 생각한 부하장수들이 현종에게 양귀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여 결국 양귀비는 37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을 메어 자결하게 됩니다마외파의 양귀비 묘무덤이 돌로 되어있는 이유는 양귀비무덤의 흙을 가져가서 바르면 양귀비처럼 이뻐질수있다는 소문때문에 무덤의 흙들이 없어지자 어쩔수없이 돌로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화청궁에서는 양귀비와 현종의 애절한 사랑을 화려한 조명과 무대로 표현한 장한가 공연이 매일 펼쳐집니다. 중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연출을 맡았습니다장한가는 당대의 시인 백거이가 양귀비의 미모를 칭송하고 현종과 양귀비의 영원한 사랑을 읊은 시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600년 역사를 지닌 시안성벽1384년 명나라초에 세워진 시안종루중국에 있는 종루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실크로드의 시작을 상징하는 무슬림거리인 회민가불교탑인 대민탑과 그앞에 불교를 깨닫기위해 인도와 서역으로 떠났던 서유기 삼장법사의 실제인물인 현장법사의 동상대민탑에서 시작되는 대당불야성당나라의 전성기시절당시 세계최대도시였던 시안을 재현해놓은 1.5킬로미터의 테마거리로 화려한 조명과 당나라 상징적인 인물들의 동상을 비롯한 조형물들이 세워져있고 당나라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과 각종 음악공연 및 거리행사 퍼레이드등이 매일밤 펼쳐집니다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거리 1위로 뽑혔다고 하네요
작성자 : NY런던파리고정닉
서부시대때 아들을 뚝스딱스하고 마차에 불지른 여자
사건이 난 배경은 1847년 미 서부시대. 그 당시 서부에서는 나라에서 땅 공짜로 준다는 소리에 한 번 인생 펴보려는 사람들이 마차끌고 수천km 너머에 있는 서부로 대거 이주했음. 그리고 서부로 가던 이들이 주로 애용하던 길이 있었는데, 바로 오리건 가도라는 길임 길이는 약 3400km에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모피상인이나 사냥꾼, 선교사들만 지나다니던 길이었지만, 19세기 중반에 수십만 명이 서부개척을 떠나는 활로로 사용되었음 하지만 가는 길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는데, 왜냐면 가는 길 중간에 해발고도가 4000m가 넘는 봉우리가 수십 개나 있을 정도로 가파르고 날씨가 추운 로키산맥이 있는데다가, 총들고 강도질 하려는 도적때가 가끔씩 털러오고, 늑대나 곰같은 짐승들이 한입하러 오거나, 이질, 콜레라, 천연두, 장티푸스같은 질병에 걸려 땅의 거름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병사가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음.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 하루에 10~20km를 대부분 걸어서 가야했고, (마차에 타는 건 마차에 식량이랑 옷가지, 총, 탄약, 땔감같은 필수품을 실어야해 공간이 없어 마부 빼면 못 탔음.) 옷은 흙과 먼지투성이로 덮히고 빨래도 옷보다 더러운 흙탕물에 하는 게 부기지수에 먹는 거도 모닥불에 대충 조리한 밀가루빵이나 통조림 요리나 씹어야하는 생활을 최대 1년은 해야했음. 결국 이런 고되고 힘든 행렬에 미쳐 버리는 경우가 가끔있었고, 설명할 사건이 대표적인 사건임 사건은 1847년 9월 15일 북미서 10번째로 긴 강인 스네이크강을 따라가던 개척민 행렬에서 일어남. 당시 아내인 엘리자베스 마크햄과 남편인 사무엘 마크햄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개척민 행렬에 섞여 스네이크 강을 따라 서부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더는 못가겠다며 가만히 서서 뻐팅기기 시작함. 남편인 사무엘은 아내를 데리고 가려 설득과 말싸움을 했지만, 결국 아이들만 데리고 길을 떠남. 그치만 상술한 대로 씹창난 서부 한복판에 아내를 두고가긴 그랬는지, 결국 아들 존을 보내 엄마 데리고 오라고 시켜서 보냄. 몇 시간 후, 아내 엘리자베스는 마차에 도착했음. 그런데 보냈던 아들 존이 보이지 않았음. 사무엘은 아내한테 아들은 어딧냐고 물었고, 엘리자베스는 존을 돌로 내리쳐죽였다고 말함. 그말에 놀란 사무엘은 마차를 내버려두고 곧바로 엘리자베스가 뻐팅기던 곳으로 급히 감. 다행히도 아들은 살아있었고, 이후 아들을 챙기고 같이 마차로 돌아옴.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됨. 바로 가족들 짐이랑 식량이 실린 마차가 불타고 있었음. 다행히 사진처럼 전소된건 아니고 근처의 다른 개척민들이 불을 꺼줘서 다 타진 않았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니, 바로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사무엘이 아들 챙기러 바로 달려가자마자 마차에 불질러버린 거였음. 사건 후 둘은 바로 이혼 하지는 않고, 성공적으로 오리건 주의 오레곤 시티에 정착 후 가게를 운영하며 몇 년간 같이 살다가 1850년대 초에 결국 이혼함. 아마 엘리자베스의 정신적 문제, 스네이크 강 때 일로 인한 부부 갈등이 원인이었을 듯? 이혼 후 사무엘은 캘리포니아로 가고, 몇 년 후 엘리자베스도 캘리포니아로 가서 재혼했지만 결국 1872년에 이혼하고, (마운틴 뷰 묘지의 위치) 1891년까지 86세의 나이로 살다가 사망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마운틴 뷰 묘지에 묻힘. 추가로 엄마한테 뚝스딱스 당한 존은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서 살았고, 1912년 81세의 나이로 사망 후 어머니가 묻힌 마운틴 뷰 묘지에 묻혔음.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장성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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