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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아버지와 도둑 아들 3

운영자 2010.04.08 10:15:39
조회 211 추천 0 댓글 0

  다음날이었다. 나는 법원에서 수사 및 재판 기록을 모두 복사해 왔다. 그 기록을 첫 페이지부터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공소장 기재 내용은 주심판사가 얘기해 주던 것과 동일했다. 외판 사원으로 있던 김순호는 남의 사무실에 가서 사람들의 지갑을 훔쳐냈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었다. 지갑에 들었던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컴퓨터를 사고 신사복도 사 입었다. 그 외에 식사도 하고 다른 물건들도 산 목록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김순호는 친구 중의 하나가 군대 간다고 해서 송별식을 하던 날 주점 화장실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주민등록증을 주웠다. 김순호는 그것을 하숙집으로 가져가서 사진을 떼어 내고 자기의 사진으로 바꾸어 붙였다. 그리고 검문시에 그 주민등록증을 경찰관에게 제시한 것이다. 죄명은 <절도, 공문서 위조, 행사, 사기>였다.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그의 모습은 교활한 절도범이었다. 경찰관이나 검사 앞에서 그는 모든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물건의 주인들도 모두 경찰서에 가서 자기가 잃어버린 물건을 진술했다. 그리고는 그 당시 외판 사원인 김순호가 왔다 갔음을 말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나 의문점이 거의 없는 사건이었다.


  변호사가 무엇을 변호할 것인가? 그냥 형식적으로 법정에서 관대한 처벌만을 바란다는 입에 발린 소리만 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말을 안해도 담당 재판부에서 당연히 살필 사항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장식물로 있기에는 가난한 그의 아버지에게 오히려 경제적 부담만을 줄 뿐이다. 변호사로서 할 일이 별반 없는 사건으로 잘못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사무실로 날씬한 몸매를 가진 미인형의 아가씨가 들어왔다. 달걀형의 갸름한 흰 얼굴에 뒤로 늘어뜨려 생머리가 등허리 위까지 늘어져 있었다. 김순호의 피해자와 합의한 합의서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변호사님,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녀는 합의서를 제출하면 당장 그가 석방되리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어디선가 합의만 하면 빠져 나오는다는 가히 상식적인 소리를 들은 듯 했다.


  “글쎄요.. 강간이나 간통 같은 친고죄면 합의하여 고소가 취소되면 석방되지만 이 경우는 죄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형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합의서를 제출하면 경우에 따라 형이 감경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도 재판부의 재량 사항이기 때문에 보장은 못하겠는데요. 실례지만 아가씬 김순호와 어떤 관계지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주저하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하얀 목덜미가 붉어지고 있었다.


  “친구예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데 앞장서는 적극적인 행동들로 미루어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이로 짐작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김순호의 품성과 평소의 행동들에 대해 묻고 싶은 의욕이 일었다. 왜냐하면 부모는 몰라도 가깝게 지내는 여자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었다.


  “김순호씨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면 평소의 행동이나 인간성을 잘 아실테지요. 제가 변호사로서 참고하기 위해 그러는 거니까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쁜 점은 듣고 흘려보내고 좋은 점은 변론하는 데 참고가 도니까 있는 그대로 느낀 대로 말해 주세요."

  그녀는 한참이나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친구를 좋아하며 마음이 여리고 착해요.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1년이 넘게 사귀었지만 도저히 이런 일을 할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나는 그녀 역시 팔이 안으로 굽듯이 변호사 앞에서도 좋은 말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서 희망적인 말을 듣지 못하자 침울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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