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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33 - 학교사업 구상

운영자 2019.05.09 16:09:58
조회 109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33


학교사업 구상


김씨家 형제는 아버지에게 ‘동경에 오셔서 직접 보고 확인하실 게 있다’고 여러 차례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조선 말 애국계몽운동에 동참하고 영신학교를 세웠었다. 형제는 와세다대학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아버지를 꼭 오게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눈으로 일본을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 뭔가를 볼 것 같았다. 와세다대학은 1882년 동경전문학교란 이름으로 창설됐고 20주년이 되는 1902년에는 와세다대학으로 바뀌었다. 

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이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본의 상가와 공장을 구경했다. 그가 본 와세다대학의 창립기념행사는 성대했다. 총리대신이 참석하고 구미(歐美) 여러 대학의 대표들이 축하를 하러 왔다. 교직원 300명, 학생 1만 명의 엄청난 규모였다. 넓은 운동장 구석에서 김경중은 일본의 대학 모습을 관찰했다. 내친 김에 그는 20여 일 동안 각급 교육기관을 방문했다. 일본을 떠나기 전 김경중은 아들 형제와 송진우를 앞에 앉혀 놓고 그들에게 의견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큰아들 김성수(金性洙)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본이 단시일에 발전한 원동력은 교육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교육에 있어 일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저희들이 처음 동경에 왔을 때에는 도저히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기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 놓고 보니까 그들의 창의로 된 것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것은 다 서양의 것을 흉내낸 겁니다. 그들과 어울려 살면서 보니 일본인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국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고 이상할 정도입니다. 모두 교육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민족교육을 할 수 있는 사립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교육사업을 하고 싶으냐?”

김경중이 아들의 의사를 물었다. 

“예, 허락해 주시면 교육에 일생을 바칠까 합니다.”

큰아들 김성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경중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물었다.

“와세다대학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설립했느냐?”

“자유민권운동가 오쿠마라는 분이 야채밭밖에 없는 와세다 벌판의 구릉에 대지 2000평을 사들여 교사(校舍) 한 채를 세우고 시작했습니다. 불과 2만 원으로 시작한 학교입니다. 정부의 권력에서 독립한 학문의 자유가 학교설립의 정신이었죠. 오쿠마는 자신은 뒤에 있으면서 유능한 교육자들을 학교 교장으로 앉히고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했어요. 야당기질이 농후한 분이라 테러를 당해 한쪽 다리를 잃기도 했죠. 와세다는 자유사상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드는 학교가 됐습니다.”

“일본정부가 그런 반골정신을 가진 사람을 용납하더냐?”

김경중이 다시 물었다.

“오쿠마는 일본 번벌(藩閥)정치를 반대하는 맹장(猛將)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중의원 선거가 처음 시행되고 정당내각이 성립됐을 때 헌정당의 당수가 됐습니다. 그후 잠시 수상 자리에도 앉고 여든네 살로 돌아가시기까지 와세다 총장직을 16년간 한 분입니다. 오쿠마는 교육가일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거물이었습니다. 일본 사학(私學)의 대표인 와세다대학은 오쿠마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그가 온갖 정열을 쏟은 학교입니다. 오쿠마의 식견과 용기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일본의 방방곡곡에서 젊은이들이 와세다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와세다대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 발전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큰아들의 영혼 위에는 벌써 오쿠마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너는 어떤 학교를 하고 싶으냐?”

김경중이 큰아들 김성수에게 물었다.

“대학은 아직 힘들 것 같고 경성에 돌아가면 중학교부터 해볼까 합니다.”

“아직 세상 경험이 없는 네가 학교를 바로 차린단 말이냐? 내가 세웠던 영신학교를 봐도 그렇다만 교육은 나라에서도 쉽지 않은 일 아니냐?”

김경중은 신중한 성격이었다. 김경중의 얼굴에는 아직은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버지 김경중은 옆에 있던 작은아들 김연수에게 물었다.

“너는 일본에 와서 공부하면서 어떤 걸 느꼈느냐?”

“수많은 공장 굴뚝들을 보면서 사업가를 생각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나가 팔아야 그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일본이 조선을 먹은 것도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이 중국을 점령하는 것도 자기네 기업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집안은 여태 농토에서 생산되는 쌀밖에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쌀뿐 아니라 면포(綿布)도 우리 집안에서 공장을 만들어 생산해야 될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너는 기업가란 뭐라고 생각하느냐?”

“혼자만 매점매석해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건 모리배지 기업가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서 함께 잘살 수 있는 기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공장에서 생산한 물품들로 전 조선사람들이 먹고 입고 살게 됐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아버지 김경중은 아들 형제의 말을 깊이 가슴에 새겼다.

1914년 여름이었다. 그 무렵 조선은 평온해지고 유례 없이 흥에 들떠 있었다. 경성의 거리는 지방에서 온 구경꾼들로 붐비고 있었다. 총독부에서 개최하는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때문이었다. 농민들이 경성 구경을 한다면서 단체로 새로 개통된 호남선과 경원선을 타고 남대문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남대문역에서 내린 시골사람들은 총독부의 각 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의 안내로 지정된 여관에 들어갔다. 그들은 말로만 들어온 낮도깨비불(전등불)이며 웅장한 남대문을 구경했다. 

경복궁 안에 자리잡은 박람회장은 사람들의 혼을 뺄 만큼 화려했다.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가장 큰 관심을 쏟은 것은 그중에서도 그의 시정(施政)업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심세관(審世館)이었다. 이 전시장은 한일합방 이전의 조선의 사회경제 상황과 합방 이후 5년이 지난 현재를 도표로 그려서 대조시킴으로써 총독부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를 민중에게 선전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 심세관을 오전 나절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으로 주먹밥과 엿으로 요기를 하고는 다음에는 특설관들을 구경했다. 철도국관, 동척관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참고관이었다. 참고관에는 일본 본국은 물론 대만에서까지 출품한 온갖 진기한 물건과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골에서 온 농꾼들은 그걸 보며 입을 딱 벌리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밤에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민족정신이 희미해지고 사람들은 일본의 경제발전 정책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김성수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줄포로 돌아왔다. 몇 달 먼저 돌아와 집에 있던 송진우와 자주 만나 장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송진우가 이런 말을 했다. 

“한때 민간에 팽배했던 교육열이 사그라지고 관립학교 이외에 그나마 교세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예수교 계통의 학교뿐이라지 뭔가? 민간 유지들이 세운 학교는 경영난 때문에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 일부 있고, 대부분은 소멸됐거나 남아 있어도 폐교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하더라구. 총독 데라우치는 조선인에게는 초등교육만 하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학교들을 인가해 주지 않았어. 사립학교 하나 세워 인가를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모양이더군. 그런 속에서도 이승훈(李昇薰) 선생은 평양에 오산학교를 만들어 멋지게 민족교육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조선의 인재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고 말이야. 그런 멋진 사립학교를 하나 해 봤으면 좋을 텐데.”

1911년에 제정된 조선교육령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교육에 차별을 두고 있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소학교 6년, 중학교 5년인 데 비해 조선인의 경우 보통학교 4년, 고등보통학교 4년으로 학제부터 달랐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모두 총독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보내려 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시설이 열악한 조선인의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김성수가 품에서 스크랩한 기사 하나를 송진우에게 내보였다. ‘교육계 시찰’이란 제목으로 쓴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였다. 그걸 건네주면서 김성수가 설명했다.

“매일 아침 조선인 학생들이 교실에 오면 일본인 교사가 통역을 데리고 들어와 모든 학과목을 일본어로 가르치고 있다는 거야. 일본선생은 과목마다 일본을 자랑하고 높이는 데 정신이 없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쓰같은 일본 영웅들 칭찬에, 지리시간에도 일본은 세상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주걱 같은 형상이라고 자랑한다는 거지. 그걸 듣는 조선아이들은 기가 죽고 일본만 최고로 생각하게 세뇌가 된다는 탄식이었어. 이제부터라도 민족교육이 시급해.”

김성수는 이따금씩 경성으로 올라와 최남선, 이광수, 안재홍 등과 만났다. 모두 일본 유학시절 함께했던 친한 사이였다.

최남선은 <청춘>이란 잡지를 창간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김성수가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얘기했다. 

“학교를 한번 만들어 볼 거야. 마비되어 가는 조선의 민족혼을 되살려야지. 새로 만드는 학교의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최남선이나 안재홍은 고창 갑부 김경중의 재력을 알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상징은 백두산이고 백의(白衣)니까 그 중간쯤으로 해서 백산학교라고 하면 어떨까?”

최남선의 의견이었다.

“그거 괜찮네.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도 있고 말이야.”

그렇게 임시명칭이 만들어졌다.

“관료가 되기 싫은 동경유학생 친구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선생 구할 걱정은 없네.”

김성수가 말했다. 그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 동경에 와서 와세다대학을 보시고 수긍하신 상태니 경성에 대지와 교사를 지을 자금은 주실 게 틀림없어. 그런데 문제는 총독부의 인가야. 총독부에서는 조선의 학교들을 정리하려고 교육령을 발표해서 인적, 물적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는데 그게 될까?”

“그래도 총독을 보면 처음보다는 규제를 느슨하게 하고 상당히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있잖아? 지금이야말로 적기지.”

최남선의 의견이었다. 

“총독부에 들어가서 일하는 유학생 출신을 가운데 넣어서 학무국의 의사를 먼저 타진해 보세.”

안재홍(安在鴻)의 의견이었다. 얼마 후 중간에서 알아본 사람이 연락을 했다. “일본인 학무국장 세키야가 ‘백산(白山)이면 백두산을 상징하는 말이 아니냐’고 하면서 ‘학교 이름을 후지산이라고 해도 허가해 줄 수 없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인가 난 조선인의 학교들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있는 판에 무슨 잠꼬대 같은 학교 설립이냐”고 하면서 단호히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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