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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영감의 비방(3)

운영자 2020.12.07 10: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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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영감의 비방(3)


한의들은 목숨을 걸고 자기의 비방을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았다. 대구에서 평생 한의원을 하던 노인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약의 비법을 전수 받고 있었다. 그이 생전에 그런 걸 주위에 알리고 공유해야 한방분야도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한 적이 있었다. 선량한 분인데도 죽음까지 그 비법을 가지고 갔다. 내가 만난 화타 영감은 더 지독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비방을 현대과학이 성분을 분석하지 못하도록 여러 번 불에서 처리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비방을 자식에게는 알려줬죠?”

그의 아들이 한의사를 한다고 했다.

“아니야, 비방은 내 아들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어.”

“그러면 지난번 입건됐을 때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판사가 물었을 텐데 그때는 어땠어요?”

“맞아 검사가 뭘로 내 약을 만드느냐고 물었어. 그래서 절대로 안 가르쳐 준다고 했어.”

“검사는 과학적인 증명을 하려고 했을 텐데”

“병이 나면 되는 거지 과학적 증명이 뭐가 필요해? 난 절대로 안 가르쳐 줘.”

“그래도 아들한테는 전수할 거죠?”

“나중에는 알려줘야겠지.”

“지금 벌써 백 세 살인데 나중에요?”

내가 되물었다. 영감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어려서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나 알고 싶었다.

“난 공부를 못했어. 국문도 못해. 한문도 서당방 옆에서 소죽을 끓이면서 천자문을 귀로 듣고 익혔는데 그때 훈장님이 나보고 천재라고 했어. 한문도 오십년은 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거야.”

“평생을 이렇게 병고치는 것만 했어요?”

그의 삶의 편린을 살펴보고 싶었다.

“아니여, 별별 일 다했어. 먹고 살려니께. 해방되기 전에는 한동안 사주 관상을 보고 점을 쳤어. 내가 김성수씨 집 사랑채에 가서 점도 봐주고 했지.”

그는 무속 쪽에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육경신 수련을 해서 귀신과 관련을 맺는 것도 그랬다.

“내가 대법관을 만나 할아버지 변론을 해 주면 할아버지는 나한테 뭘 줄래요?”

내가 호기심에서 흥정을 시작했다. 내가 덧붙였다.

“돈보다 비방 중 하나를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우리 아들도 미국에서 중의학을 공부하니까 말이예요.”

“그건 그렇게 혀”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각서를 쓰죠.”

“내가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겨?”

“그렇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선임료를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거래는 거래였다. 영감은 그렇게 내가 내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화타 영감의 변호사가 됐고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여기 대법원입니다. 화타 영감 심리를 맡고 있는 재판부의 사무관입니다. 한가지 사정을 할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내가 사정을 해야 할 판인데 이상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 아내가 암의 말기입니다. 제발 화타영감 약을 한번 먹게 주선해 주실수 없습니까?”

그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전화가 왔다. 법정에서 재판장으로 대한 원로판사였다. 천재라는 소문과 함께 변호사 사이에서 교만하다는 평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엄 변호사 우리 집사람이 암을 앓고 있어요. 제발 그 영감님을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사정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화타 영감이 약재를 몰래 만들 때 보조를 하는 청년을 구슬러 어떤 재료로 어떻게 약을 만드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기본적인 것만 하게 한 후에 영감님이 나를 내보내고 가지고 온 뭔가를 그 속에 넣어요. 몰래 숨어서 몇 개를 보긴 봤는데 좀 황당할 때도 있었어요.”

나는 그 부분을 은밀히 파고 들어갔다. 영감은 독성이 강한 수은을 약에 다량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나 짐승이 먹으면 즉사하는 독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독약의 독을 불로 다스린다고 했다. 오래된 묘지 옆에 있는 썩은 나무토막이 약이 되기도 했다. 논바닥의 썩은 흙을 약 만드는 데 넣기도 했다. 약을 끓이는 청년의 말은 영감이 어느 날은 과자 부스러기를 가지고 와서 약탕기에 넣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소개하기도 주저되었다. 나는 영감의 변론을 위해 담당 김능환 대법관을 찾아갔었다. 고교선배이고 같은 법무장교시절 알았던 사람이었다.

“영감이 백 살이 넘었습니다. 열 세살 미만의 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하지 않듯 백 살을 넘으면 실제로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종의 대한제국 일본제국 미군정 대한민국 네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온 영감인데 한의사 자격증이 없다고 형벌을 부과하는 건 법이 너무한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말은 나도 납득이 가. 그런데 엄연히 의료법이 있고 무면허로 의료행위를 했다고 기소가 되어 왔는데 대법관인 나는 어떻게 하라고? 증거도 명확하고 말이야. 법관인 내게 유죄말고 다른 선택권이 있나?”

“백 세살인 사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선고를 하지 말고 마냥 사건을 그냥 묵혀 두세요. 이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재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사라질 거 아닙니까?”

“알았어. 그러면 내가 담당 대법관으로 있는 동안은 절대 선고를 하지 않을께.”

그렇게 결론이 났다. 그 후 나는 화타 영감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미국의 중의과 대학 총장과 연결을 시켜주기도 하고 영감에게 사기행위를 한 사람들을 추적하기도 했다. 여러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오고 귀신과 대화한다는 영감은 전혀 다른 정신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상상하듯 구름 위에서 도시의 한복판으로 내려온 신선은 아닌 것 같았다. 백 살이 넘어도 욕망과 인간사에 매여 있는 면도 있었다. 그는 비방 하나는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다만 추상적으로 한마디 한 게 있다.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을 살펴봐. 그게 좋은 약이야.”

화두같은 그 말이 내게 알려준 비방의 전부였다. 그 후 화타영감을 보지 못했다. 지방으로 가 혼자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십 일년 후 영감이 죽었다는 걸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영감은 백십삼년을 살다가 간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복을 빌며 애도하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이런 댓글도 있었다.

‘내가 영감 약 잘못 먹고 이십년 넘게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 고생하시는 분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식 병원에 가세요. 안 그러면 아주 빨리 가거나 병신되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화타 영감을 가까이서 보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간절한 환자의 믿음이 병을 고치는 것인지 아니면 신비한 의술 때문인지. 화타영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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