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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서 -사랑하는 내 아들 그리고 딸아

운영자 2011.07.05 14:31:44
조회 364 추천 0 댓글 0

쨍쨍한 청춘의 여름날이 언제나 계속 될 것 같더니 어느새 눈 덮인 겨울이 왔구나. 얼어붙은 산길 저편을 죽음이라고 한다면 그 뒤에는 무엇이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구나. 아버지는 동면하는 짐승처럼 옷깃을 여미고 “준비됐습니다. 하나님”하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단다. 아빠는 어린시절 너희 증조부의 죽음을 봤단다. 저녁을 잡수시고 조용히 누우셨는데 점차로 생명력이 빠져 나가더라. 며느리인 어머니가 “연락해서 식구들 다 부를 까요” 하고 물으니까 “놔둬라”하시더라. 그리고는 조용히 혼자서 저세상으로 가셨지.

너희증조부는 평생나그네셨지. 만주, 시베리아 그리고 강원도의 깊은 산골을 구름같이 흐르다가 본향으로 가셨지. 손자인 아버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권력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어. 그 끝은 감옥과 처벌이라고.
  나는 또 너희 할아버지의 임종도 지켰단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직감하자 아들인 나에게 “나도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하고 말씀하시더라. 순간적인 당황 같았어. 그렇지만 돌아가시기 삼십분 전 쯤 아들인 나에게 “야 저기 좋은 세상이 있는 걸 난 봤다. 그런데 의사들이 자꾸만 주사바늘을 찔러 못 가게 하는 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그리고 너희 할아버지는 구석에서 눈치 보는 할머니를 손짓으로 불렀어. 그리고는 이별의 악수를 하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당신 사십 삼년동안 나하고 사느라고 고생 많았어. 그동안 내가 무섭게 해서 미안해.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야. 사랑했지. 잘살다가 와.”


  그 한마디에 수십 년  응어리졌던 할머니의 한이 풀리는 것 같더라. 통곡하는 할머니의 진한 눈물은 모든 게 씻겨 나가는 용서더라.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제 다들 가 봐라”하면서 잠자듯 눈을 감으시더라. 이게 아버지가 배운 의연한 죽음의 모습이었단다. 아무런 명예도 부도 권력도 없었던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이란다. 그런데 이 유서를 쓰고 있는  아버지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너희에게 보일까봐 두렵단다. 죽음이 있으니까 그 이전을  삶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몰라. 한없이 산다면 죽음도 삶도 없겠지. 너희들은 짧은 인생을 축복같이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전하고 싶은 몇 가지를  말해 볼께.


  중학교시절의 아주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단다. 아버지는 냉기 도는 방안에 앉아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서 울고 있었단다. 너무 외롭고 마음마저 얼어붙었기 때문이지. 맞벌이 부부의 외아들인 아버지는 항상 혼자였지. 몇 푼의 용돈조차 없었지만 고독이란 가난보다도 더한 고통이었단다. 그때 내 앞에 펼쳐져 있던 건 ‘원형의 전설’이란 장용학의 소설이었단다. 회사원인 할아버지의 문학 전집 외에 지겹게도 길던 소년시절의 고독한 시간을 때울 방법은 별로 없었단다. 가난과 고독이라는 시련은 책을 읽게 하고 그 수많은 죽은 저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을 어렴풋이 배웠단다. 하나님은 책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은 현실의 고통을 통해서도 가르치시더라. 요즈음 같으면 학교폭력의 일환인데 아버지는 잠시 일탈한 생활을 하다가 동급생의 칼에 맞기도 했지. 얼굴에 서른 바늘을 꿰매는 상처면 요즈음도 중상에 속하지.학생 때는 싸울 수도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 그 후의 처벌이었단다.


  아버지는 피해자였는데 그 형태가 거꾸로 둔갑을 했단다. 어느 날 선생님 한분이 학생이던 아빠를 불러 일종의 양심선언을 하더라. 재벌집인 가해자쪽에서 배심원인 전 선생님들에게 양복 한 벌과 금일봉을 주었다고. 자기는 그걸 거절 못하고 교무회의에서 그냥 흐름에 따랐다고 말이지. 아버지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단다. 어떻게 목성과 해왕성의 크기가 다르다고 불평할 수 있겠니. 재벌아들과 가난한 사원의 아들인 나는 같은 교복을 입었어도 같을 수가 없는 거야. 인도의 간디가 일등표를 가져도 기차에서 쫓겨나고 마차꾼에게 억울하게 맞고 비로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았듯 아빠도 비교적 일찍 몸으로 그걸 배운 셈이지.


  너희들은 살아가면서 절대로 자기이익을 위해 남의 마음에 매듭을 짓는 일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가난하고 그렇다고 재능도 없는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가를 고민했단다. 아빠는 느려도 소처럼 한발 한발 자기식대로 가기로 했어. 천천히 가더라도 쉬지만 않으면 천리 길도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이었지. 고통도 있지만 때로는 행운도 있지. 느릿한 소걸음으로 산을 못 올라 입에 거품을 물고 고통스러워할 때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고삐를 끌고 산 위로 데려다 놓는 거야.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자격을 얻었단다. 하나만 자랑하자. 머리가 나쁜 아버지가 그래도 고시에서는 최상위권에 들었단다. 소걸음으로도 정상을 간다는 우진주의(牛進主義)를 실현한 셈이지. 너희들은  남과 비교하지 말고 항상 묵묵히 한발 한발 자기 앞 만보고 걸어갔으면 한단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시각에 비하면 아주 꿈이 작은 편이었지. 여직원 한명정도 지키는 남향의 사무실 한쪽 벽에 읽고 싶은 책을 꽉 채우고 살면 행복하겠다는 것이었어. 집도 작은 아파트에 소박한 승용차 한대면 만족하겠다고 생각했지. 욕심그릇을 작게 해야 행복을 쉽게 채울 수 있거든. 회사원인 너희 할아버지가 이렇게 가르쳤었지. 사장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원이라도 좁은 마당에 나팔꽃도 심고 새도 키우고 주말이면 낚시를 갈 수 있다면 그게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귀한 진리인 걸 깨달았지. 그래서 아버지는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고 목표를 정했단다.  최고의 독서가, 진실을 밝히는 글 쓰는 변호사, 그리고 영화 속의 빠삐용 같은 억울한 인물을 자유로 인도하는 뱃사공변호사가 그거였어.


  그런데 현실의 세상은 그런 낭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험악한 지옥이더라.


  만나는 사람의 상당수가 철저한 악마적 속물성을 가지고 있었지. 유흥비나 성욕을 위해 남을 해치는 범죄인 자체가 극단적 이기주의자였지. 재물을 놓고 눈이 확 돌아 법정투쟁을 하는 사람의 본질은 더러운 욕심 그 자체였지.


  이세상은 몇 겹의 베일을 쓰느냐가 문제지 다 비슷한 것 같더라. 착한 사람들은 그런 욕심과 악마들의 먹이가 되는 사슴이나 토끼 같은 존재더라. 변호사는 리빠똥 들의 그런 사냥개가 되지는 말아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불법과 탈법을 알려달라고 하고 상대를 뭉개는 야비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내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고소까지 하더라. 한번은 돈 많은 부인한테 소를 제기당해 피고로 법정에 섰단다. 남편을 잔인하게 파멸시켜달라는 걸 거절했었지. 엄청난 공격이 오더라. 조작된 증인, 치밀한 모략, 용병변호사, 무관심한 재판장의 눈길을 경험했지. 선악보다 승부욕만 남고 누군가는 증오를 해야 하는 사람 같았어. 거기에 걸린 거지. 피고로 법정에 서는 순간 혈관이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솟아올랐지. 아버지는 문득 사람마다 받아 마셔야할 일정량의 고통의 잔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더라. 하루를 살아도 그날 하루분의 말썽과 고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너희들도 시련이 오면 두 팔 벌리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시련을 피하지 말고 고통을 통해 그걸 극복해야 한단다.


  꿈을 작게 가지니까 항상 초과 달성이었단다. 그건 만족감과 행복이기도 하고. 사십대 중반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었지. 의사가 어쩌면 6개월 정도가 남은 생명이라고 했어. 죽음은 남의 일 같았고 있어도 지금이 아닌 언젠가 나중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주변정리를 하나하나 했단다. 그런데 늙은 너희 할머니가 문제였어. 아버지는 수술 전 먼저 죽게 되서 죄송하다고 할머니께 사과를 드렸지.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는 양노원에 가시라고 했어. 아직 젊은 너희 엄마에게 짐을 지게 하기 싫었단다. 걱정 말라는 너희 할머니의 뺨에 또 한번 진한 눈물이 흘러내리더라. 수술하러 병원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는 콜롬버스 같은 엄청난 발견을 하나 했단다. 봄비에 촉촉이 젖은 연녹색의 잎들이 너무 아름다운거야.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면서 바로 이 지구가 천국이었다는 걸 알았지. 그걸 정말 몰랐었다니까. 그때까지 마음의 안경이 회색이라 모든 게 그렇게 보인거야. 아버지는 수술대에 올라 의식을 잃기 전에 이렇게 마지막 기도를 했단다.


  ‘하나님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잘살다 갑니다.’


  순간 평생 살아온 장면이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더라. 후회가 되더라. 진실한 사랑을 심어둔 것도 아니고 선행을 한 것도 없고 즐기지도 못하고.


  ‘만약 살아난다면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천정이 확 두개로 쪼개지면서 난 깊은 어둠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단다. 여섯 시간의 수술 끝에 다행히 아버지는 깨어났단다.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이 한번 미소를 지어줬어. 암이 아니고 큰 폴립이었데. 그때부터 아버지는 가을의 투명한 계곡물, 고드름 속의 오색영롱한 빛깔들만 봐도 행복했어. 행복은 별게 아니란다. 그냥 그걸 보는 눈이 열리면 되는 거야. 마음이 푸근한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행복이지.


  수술 후 아버지는 돈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됐단다. 아무리 비싼 빌딩도 내 뱃속에 있는 조그만 암 덩어리 보다 가치가 없더라. 돈이란 카알 라일의 말처럼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 거란다. 그리고 피를 짜내듯 힘들게 벌어야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거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아. 저세상에서 영혼들이 모이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고 한단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세상에서 쑈를 했다고 말이다. 너희들은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축복같이 즐겁게 살다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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