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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부자의 분노

운영자 2011.06.16 12:24:48
조회 323 추천 0 댓글 0

  얼마 전 신문판매대에서 한국에서 현찰이 제일 많다는 윤씨집안의 딸이 보광그룹 홍씨 집안에 시집간다는 기사제목을 보았다. 경기고와 서울 대 그리고 미국의 MIT공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 대 교수로 있는 갑부인 신부아버지의 사진이 그 아래 동그랗게 나 있었다. 38년 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하얀 얼굴에 껑충하게 키 큰 그가 같은 반 내 뒤에 앉았었다. 모두 검정교복을 입은 그 시절 내게는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다. 고등학교1학년 때였다. 그는 수학을 특히 잘했다. 그때도 과외가 있었지만 나는 돈이 없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야 나 수학 좀 가르쳐 주라”

  내가 교실에서 그에게 부탁했다. 어렸지만 그에게는 그런 부탁을 해도 될 푸근함을 느꼈다. 다음날부터 혜화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같이 공부했다. 시험전날 그는 자기공부를 양보하면서까지 자기공책에 받아쓴 수학공식들을 가르쳐주었다.


  저녁때가 되면 같이 밥을 먹었다. 반찬 중에 불고기 한 접시가 우리 집과 달랐다. 그의 집이 넓었다. 나는 놀 때 좀 편하겠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둔감한 편이다. 성적이 나쁘다고 비관하지 않았다. 일등이 가지는 초조감보다 꼴등의 편안함을 추구한 적이 있었다. 일부러 꼴등을 목표로 달려가 반60명중 55등까지 했었다. 꼴등도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대학시절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증을 떼러 갔었다. 우연히 그가 방위병으로 거기 있었다.


  “야 너 여기 방돌이구나 큰 빽 만났네. 좀 빨리해줘”

  그는 몰래 복사기로 가서 급히 서류를 만들어 건네주었다.  한 참 후 그가 미국 유학 중일 때 다른 친구로부터 그의 집안 얘기를 처음 들었다. 재벌회장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그의 아버지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부자 아버지가 한번은 아들을 보러 미국으로 갔다. 혹시 돈이 부족할까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인 그는 오히려 통장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철저히 검소하게 생활하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을 한 것이다. 서울대교수가 된 그와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이미 그는 아버지로부터 귀한 것을 받았다.


  “야 너 부자니까 밥 사”

  내가 그렇게 농담하면 그는 정색을 하고 되받는다.


  “내가 왜 그냥 밥을 사야 돼? 네가 사”

  우리는 동네 중국집에서 아직도 짜장면을 먹는다. 얼마 전 상가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예전에 없이 뼈있는 말을 했다.


  “요즈음 나는 공공의 적이야. 부자고 없애 버려야 한다는 서울대를 나왔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다 있지.”

  선량하던 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고 있었다.


  부자 앞에서는 비굴하고 뒤에서는 미워들 한다. 돈을 그냥 얻고 싶은 탐욕과 시기심 때문이다. 강물이 앞에 있어도 두더지의 배를 채우는 데는 약간만 있으면 된다. 사는데 필요한 돈도 마찬 가지다. 가난해도 베풀면 부자다. 부자라도 더 가지려고 하면 본질은 거지다. 진달래는 옆에 서 있는 소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또 타고난 지능이 같을 수도 없다. 사람도 하늘이 명령한 대로 사는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으니까 공자님의 ‘지천명’이 무슨뜻인지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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