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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영원으로

운영자 2017.01.05 10:41:04
조회 139 추천 0 댓글 0
자연인 김상협은 혜화동 한옥의 사랑채에서 인생의 말년을 독서와 사색으로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70평생을 철없이 바보처럼 살아온 것 같기도 했다. 주역보다는 조역과 단역을 한 인생 같기도 했다. 


​그는 서재에서 묵묵히 책을 보고 글을 썼다. 그의 독서열은 식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조상인 하서의 말씀을 가져다 놓고 다시 음미했다. 그분의 말씀대로 항상 중용을 지키고 물러날 때 물러나려고 애를 썼었다.


 사서삼경을 다시 정독했다.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었다. 70노령에 성서를 읽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고린도 전서는 초현세적 혁명적 성격이 넘치는 좋은 가르침이었다. 그는 평생 독서의 바다에 사색의 그물을 던진 진리의 어부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시대의 큰 흐름을 지켜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역사를 관장하는 신의 메시지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메모형태의 초고를 쓰고 다시 이를 정리하여 일기장에 빼곡이 정서를 했다. 매일의 정해진 원고분량은 8백자 정도였다. 반드시 초고를 쓰고 수정 가필 재정리 끝에 정서로 마무리 지었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날 총장시절 비서인 송병국이 노인이 된 김상협을 찾아왔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한다고 인사를 온 것이다. 그가 들어서는 마당의 나뭇가지 끝에 빨간 감 하나가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상큼한 눈을 맞고 있었다. 그를 맞으러 마루에 나와 섰던 김상협총장이 그를 보면서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감은 먹이를 찾을 길 없는 배고픈 새들을 위한 거라네”


비서 송병국이 옆에서 지켜본 김상협 총장은 자비 그 자체였다. 화가 나면 “음, 안됐구나”하고 마음이 흡족하면 “음, 좋구나”가 다였다. 그 특유의 표현은 곁에서 모셨던 많은 이들에게 김상협총장을 지칭하는 상징어였다. 비서들이 젊은 날을 얘기해 달라고 하면 김상협 총장은 얼굴을 붉히며 “집에 월급 한 번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하고 아이들 한번 얼러주지 못했는데”라고 미안해했다. 비서가 뒤늦게 공부를 하게 됐다는 말을 하자 김상협총장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늦은 감이 들 때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증거지. 공부란 사명감을 가지고 한 걸음 한걸음 착실히 평생 하는 거야.”


“총장님도 오래오래 사셔야죠”


예전의 비서가 인사를 했다.


“이제 공자의 수명을 넘겼으니 나도 축복받은 사람이지”

노인 김상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995년2월20일 오후 6시경 무렵이었다. 김상협 총장은 천안으로 내려가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논현동에 있는 아들집에 들렸다. 며느리가 스테이크를 만들어 시아버지 상위에 놓았다. 아들은 미리 구해둔 아버지가 좋아하는 죠니워커 블루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잔에 따랐다. 그 잔을 들어 마신 김상협 총장이 가족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맛있다.”


김상협 총장은 그윽한 눈으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손주들의 재잘거리는 얘기들을 들어주었다. 그가 돌아와 세상을 떠나기 전 쓴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젯밤 눈이 조금 왔지만 오늘 아침 따뜻한 햇볕에 모두 녹아 없어졌으니 이제는 정말 새 봄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같기만 하군. 심신이 상쾌하다. 이것을 복이라 하는 거지. 아들내외 손자와 정답게 저녁식사를 했다.’ 

  

1995년2월21일 새벽 5시경 죽음의 천사가 그를 찾아왔다. 그의 죽음은 모습과 빛깔이 달랐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의사들은 그의 마지막을 드물게 있는 무통증 심장마비라고 결론지었다. 그 닷새 후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추운 날이었다. 그는 계룡산 자락의 국립묘지에 조용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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