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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진달래의 철학

운영자 2017.03.19 20:22:57
조회 137 추천 0 댓글 1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베이비 붐시대를 살아온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한 반이 백 명을 훨씬 넘었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도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기 위해 경주마 같이 달려야 했다. 경쟁의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입고 있는 교복과 뱃지는 일류 이류 삼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금 수저와 은수저 흙 수저의 구별은 부모의 재산만 관계되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만든 사람마다 아이큐를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다. 금 수저 머리를 타고난 사람들은 입시에서 고시에서 실패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패를 하고 재수를 하면서 힘겹게 가야 했다. 노력도 재능인 것 같았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대학시절 친했던 친구와 대학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천재의 머리를 타고 나지 못했다면서 대신 노력으로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그가 도서관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몸살이 심한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안 보였다. 오후에 보니 그는 병원에 가서 링거를 한 병을 맞고 와서 다시 공부하고 있었다. 순간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친구였다. 


​내가 도서관에서 나와 여학생과 잠시 얘기를 하는 걸 그 친구가 보고 다가왔다. 그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며 나를 잡아끌고 도서관으로 가자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여학생의 표정이 울 것 같았다. 


​그는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 판사시절 그가 수술을 한다기에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병실침대에 앉아 판례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노력하는 걸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의 주변에는 그런 기질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졸업후 합천의 제실에서 함께 고시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방에서 창호문 양쪽에 조그만 책상을 놓고 나란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의 집중력은 무서웠다. 책을 볼 때는 눈에서 뿜어나오는 파란 빛이 종이를 뚫을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고 몸이 허약한 바짝 마른 그의 어디에 에너지가 있는지 그의 공부는 끝이 없었다. 매일 먼저 자리에 눕는 나는 낭패감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판사가 됐다. 


나는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태어날 때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그의 운명의 상당부분이 결정된다. 그래서 금수저란 말이 나왔다. 또 하나님이 사람마다 재능을 달리 주셨다. 머리가 좋게 타고난 건 재산보다 훨씬 큰 선물이었다. 


​집념과 노력도 타고난 달란트였다. 그 모든 걸 갖추지 못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속으로 고민했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불공정한 세상을 빨리 인정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질투와 불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증오로 내가 불타버릴 것 같았다.


 내 페이스 대로 세상을 걷기로 했다. 소같이 뚜벅뚜벅 걷는 것이다. 천천히 홀로 자유롭게 그렇지만 쉬지는 말자고 했다. 남들과 내가 듣는 음악의 박자가 달랐다. 내게 들리는 박자대로 걸음을 걷기로 했다. 인생은 마라톤이었다. 상위권에 들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내 페이스대로 가도 언젠가는 마지막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내면으로 눈을 돌렸다. 꼴찌로 들어간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가서 테이프를 끊는다면 나와의 싸움에서는 이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육십 대 중반인 지금도 소처럼 걷는다.


 눈에서 파란 독을 뿜으며 공부했던 친구는 도중에 자살을 해 버렸다. 천재란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불이라는 걸 느꼈다. 세상의 지위에서 선택받고 앞서가던 친구들도 모두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와 다시 같이 걷고 있다.


 나무는 타고난 자리를 원망하지 않는다. 골짜기에 있다고 자리를 옮기려 하지 않는다. 진달래는 나무를 보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무는 진달래를 보고 무시하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대로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 진작에 나무와 진달래의 철학을 알았다면 더 잘 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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