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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싶소

운영자 2017.03.08 15:06:50
조회 155 추천 1 댓글 1
나이를 먹어가면서 밤에 잠이 잘 오지를 않는다.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촛불을 킨다. 공기를 미미하게 흔드는 잔잔한 명상음악에 촛불이 춤을 춘다. 맑게 타오르는 주황빛 불 속에서 의뢰인으로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던 사람들의 삶이 떠오른다. 돈이 너무 많던 한 노인의 삶이 갑자기 기억 저편에서 솟아오른다. 부두노동자에서 시작한 그는 험난한 세월 오직 돈이 신이었다. 청계천 판자 집 호롱불 아래서 삶은 보리밥과 시장바닥에서 줏은 배추줄거리에 된장을 한 숟가락 넣고 끓인 국으로 끼니를 때웠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품들을 가지고 동대문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고 점차 포목상이 되고 버스회사를 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일어날 때 강남의 땅을 사고 집과 아파트를 지어팔면서 큰 부자반열에 올랐다. 한번 들어오기 시작하자 돈은 함박눈처럼 쏟아져 쌓이고 쌓였다. 


​그는 돈을 벌기만 했을 뿐 쓸 줄을 몰랐다. 양복 한 벌 구두 한 켤레 좋은 걸 스스로 사 입어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부자가 됐다고 해도 음식점을 가면 남이 먹다 남긴 소주를 슬며시 가져다가 마셨다. 허름한 음식점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람에게 모든 복이 다 함께 들어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가족과 화합하지 못했다. 아들은 카지노에 가서 백억이 넘는 돈을 탕진했다. 아들이 아니라 원수였다. 아내나 딸들에 대한 실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외로웠다. 어느새 인생의 밤이 찾아오면서 그는 죽음이 곧 닥칠 것을 선고받았다. 폐가 석회처럼 굳어가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죽는 꿈을 꾸었다. 캄캄한 허공을 날아 올라가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60년 전 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이 어렴풋이 우주 공간에 실루엣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삶의 목표가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걸 그는 느꼈다. 그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입지 않고 먹지 않고 돈을 벌어왔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돈에 홀려 인생을 속아온 것 같았다. 그는 그동안 벌어놓은 수천억의 돈이 증오스러웠다. 한데 모아놓고 불태워버리거나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는 결심한 걸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얼마 후 연말이었다. 명동의 자선냄비 앞에 허름한코트에 쭈그러진 모자를 쓴 영감이 나타났다. 영감은 주머니 속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 자선냄비 속에 집어넣고 사라졌다. 그날 저녁 기부받은 돈을 계산하던 사람이 봉투 안에 든 걸 보고 놀랐다. 


​억대의 수표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 영감은 꽃마을에도 나타났다. 그는 백억원을 기부하고 가버렸다. 병실에서 혼자 지내면서 인간다큐멘터리를 보던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하면서 방송국에 이백오십 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평생 목숨같이 여겼던 돈을 다 던져버리고 갔다.


 나는 그가 했다는 말이 두고 두고 뇌리에 남아있다. 그 돈들을 다 불태워 버리거나 바다에 쳐 넣어 버리고 싶다고. 그는 돈에 속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노인의 무덤에 프리지어가 핀 작은 화분을 하나들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바람에 마른 잔디가 조금씩 흔들리던 날이었다. 


​그의 거액은 재단이 되고 사회명사가 이사장이 되어 고급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호화로운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노인에 대한 입에 발린 찬사도 처음 얼마 동안이었다. 남의 돈을 가지고 잔치를 하는 그들은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제대로 돕는 것 같지 않았다. 돕는 척만 할 뿐이었다. 무덤 속의 그 불쌍한 부자노인은 내게 돈은 쓴 만큼만 자기 것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그리고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벌면 충분하다고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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