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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남궁원집 마당풍경

운영자 2017.03.24 09:41:05
조회 719 추천 0 댓글 0
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더러 이웃을 구경한다. 화려한 배경과 잘생긴 탈랜트가 나오는 드라마는 거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연히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진솔한 삶을 찍은 프로를 보게 됐다. 30년 전쯤 그가 변호사로 출연했던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화면에서 재생됐다. 그는 돈 잘 버는 바람둥이 변호사였다. 시원스런 눈에 남자다운 강인한 턱을 가진 그는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었다.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영화 속의 그가 부러웠다. 


​그의 아들이 하버드대학을 일등으로 졸업한 천재라는 언론의 보도와 아들의 수필집을 보고 미남배우 남궁원은 아들까지도 잘 두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흘러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화면에 비치는 남궁원씨는 팔십대 중반의 공허한 미소가 흐르는 힘이 빠져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는 허리가 아픈 아내와 단 둘이 송파의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창고 방에서 아들이 초등학교 때 받아온 시험지를 내보이며 자랑하던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유학 보내고 저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어요. 아들 학비를 벌기 위해 전 돈이 되면 어떤 무대도 서고 어떤 영화도 촬영했어요. 벌거벗고 포르노도 찍고 지방의 캬바레 밤무대에 나가서 노래도 불렀죠. 그나마 배우로 이름이 알려져서 밤무대 자리가 있는 것만 해도 감사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불러주기라도 했겠습니까?”


스타로서의 자존심보다 가족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인기 탈랜트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탈랜트로서의 자존심 상 절대 밤무대에 서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러나 남궁원씨의 말을 듣고 보니 사정에 따라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논리는 없었다. 우리는 획일적인 잣대로 함부로 남을 재단하기도 한다. 남궁원씨가 말을 계속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방학 때 귀국했었어요. 그때 아들과 함께 전국 배낭여행을 했는데 지방도시 뒷골목을 가다가 거기 전신주에 붙어 있는 밤무대에 출연하는 제 포스터를 아들한테 들킨 거예요. 사실 아들한테는 속였었거든요. 아들의 눈빛이 ‘우리아버지가 이렇게 벌어서 나를 가르치는 구나’하는 것 같았어요.”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순간 아버지와 아들은 더 따뜻해 졌을 것 같다. 아버지의 희생 속에서 자식은 훌륭하게 자란다. 배우 남궁원의 인생이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물한 살 때 어머니가 암이 걸렸어요.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잘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친구 아버지가 하는 영화사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배우가 된 겁니다. 지금의 아내도 어머니 나이에 암에 걸렸었어요. 수술 전날 저하고 같이 음료수인 오란씨 광고를 찍고 수술실로 들어갔었죠.”


화면에는 당시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억이 나는 광고였다. 부부는 행복이 넘치는 표정으로 마주보며 잔에 탄산음료를 따르고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저렇게 까지 감출 수 있을까를 보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의 영화인생의 이면은 많은 부분이 추운 겨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까지 60년간 배우생활을 했지만 이 배우라는 게 어려운 직업 같아요. 옷맵시가 나게 하려면 배가 나오지 않도록 항상 운동을 해야 해요. 대본을 가지고 끊임없이 반복을 하면서 거기에 표정과 감정을 넣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촬영현장에 갈 때 쯤이면 연기가 완성되어야 하죠. 제가 배우니까 죽기 전까지는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요. 찍겠다고 불러주는 데만 있다면 말이죠.”


그에게서는 불행을 이기고 50년 외길인생을 걸은 프로페셔널과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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