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수필속의 법정스님

운영자 2017.03.07 20:37:49
조회 249 추천 0 댓글 1
 아파트 문가 구석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예전에 사랑채와 안채를 구별해서 사랑채는 남성의 영역이듯이 나만의 조용한 성역을 마련했다. 아내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나 홀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벽에 책상과 책장을 붙였다. 젊어서부터 쓰던 친구같이 익숙해진 나의 물건들이다. 하기야 평생 책상하나 끼고 살아온 셈이다. 책장에는 그동안 읽었던 책들 중에서 다시 읽어야 할 것들을 골라 모셔 놓았다.​지하실에 먼지가 수북히 낀 채 천대받던 책 중에서 감명 받았던 것을 골라 걸레로 닦아 나의 골방 제단위에 다시 모시는 것이다. 


​오늘은 창고에서 법정스님의 글이 담긴 책을 찾아왔다.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삼십대 중반에 맑은 향기를 느낄 수 있었던 수필집이었다. ​

책상 위에 선물을 받은 둥그런 병에 들어있는 향초를 켰다. 은은한 체리향이 방에 피어오르면서 투명한 유리병 속에서 밝은 주황색의 촛불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는 검게 변색된 책장을 넘긴다. 책 안에서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눈 덮인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 혼자 앉아있는 법정스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도끼를 들고 얼어붙은 개울의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온 후에 벽에 기대앉아 등잔을 바라보고 있다. 외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조촐한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는 시장기 같이 가끔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사람 누구나 다 자기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고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 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정스님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빛깔로 스스로의 길을 마지막까지 걸어간 사람 같았다. 


​그의 생전에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가 죽은 다음날 오후 그가 연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조계산의 중턱으로 갔었다. 타고 남은 숯덩이들 사이에서 파란 작은 불길이 이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버리고 떠나는 게 뭐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도 버리고 떠나는 한 모습이었다. 보라색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올라가는 그는 세상 흐름을 따르는 낡은 습관과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도 버리고 떠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만의 성역인 아파트 구석의 골방 안에서 나는 나만의 제3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는 이런 작은 글을 통해서지만 고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싶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생은 별게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다. 누구에겐가 조금의 위로라도 되고 싶고 헛된 길로 잘못 가는 걸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책상위의 초가 자신을 태워 계속 내게 아름다운 빛과 향기를 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경제관념 부족해서 돈 막 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13 - -
985 청빈한 부자 [1] 운영자 17.05.03 251 0
984 꿈을 나누는 세상 운영자 17.04.27 111 0
983 잘못태어난 재벌아들 운영자 17.04.27 305 1
982 인생을 예술로 [1] 운영자 17.04.27 119 0
981 가난한 목수의 죽음 운영자 17.04.27 207 1
980 미국대통령 트럼프 운영자 17.04.27 358 0
979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2] 운영자 17.04.17 304 0
978 정말 강해지는 법 운영자 17.04.17 240 1
977 이상한 메시아 운영자 17.04.17 161 0
976 [중단편소설] 고종사촌의 변호 운영자 17.04.17 251 0
975 그따위로 쓰지 말아요 운영자 17.04.13 165 0
974 노년의 기도 운영자 17.04.13 378 0
973 원고지 다섯장 운영자 17.04.13 177 0
972 [중단편소설] 문어빵 운영자 17.04.13 141 0
971 바늘구멍 통과하는 법 운영자 17.04.06 170 0
970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찾아온 구원 [1] 운영자 17.04.06 186 1
969 변호사공장의 이야기 운영자 17.04.06 359 1
968 친절한 이웃같은 대통령을 가지고 싶은 소망 [1] 운영자 17.04.03 128 0
967 범죄를 녹여버린 사랑 운영자 17.04.03 136 0
966 팩션 사건과 사람 - 두 노인의 시대인식. 운영자 17.04.03 237 0
965 팩션 사건과 사람 - 강가 조약돌의 행복 운영자 17.03.30 133 0
964 배설물 청소부인 판사 [1] 운영자 17.03.27 252 1
963 영화배우 남궁원집 마당풍경 운영자 17.03.24 719 0
962 인생의 마지막 소풍 운영자 17.03.24 377 0
961 사장으로 살아남는 법 [1] 운영자 17.03.24 184 0
960 구구단을 까 먹었어 운영자 17.03.24 139 0
959 작은 행복 전도사 [1] 운영자 17.03.24 114 0
958 김장로의 장인 운영자 17.03.21 226 1
957 기도의 힘 운영자 17.03.19 357 0
956 담 높은 집 풍경 운영자 17.03.19 127 0
955 나무와 진달래의 철학 [1] 운영자 17.03.19 139 0
954 유명과 무명의 차이 운영자 17.03.19 232 1
953 동네 이발사노인의 참회 운영자 17.03.13 167 0
952 돈이 아닌 마음을 모아야. 운영자 17.03.10 138 1
951 2억원 천사 운영자 17.03.10 145 0
950 거리의 연주자에게서 배운 것 [1] 운영자 17.03.10 147 0
949 공시생 들에게 운영자 17.03.10 246 0
948 왜 우리남편 국수에는 고명이 없어요? 운영자 17.03.09 170 0
947 콜라텍보다 일이 좋아요. 운영자 17.03.09 208 0
946 성녀와 좀비 [1] 운영자 17.03.09 104 0
945 대통령은 왕인가? 아닌가? 운영자 17.03.09 314 0
944 희망을 파는 법률사무소 운영자 17.03.09 263 0
943 내가 받은 잔만큼만 운영자 17.03.08 162 0
942 아름다운 황혼 운영자 17.03.08 174 0
941 벼락 칠 때 엎드리는 부자 운영자 17.03.08 172 0
940 삶속에 살짝 다가오는 악마들 운영자 17.03.08 220 2
939 돈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싶소 [1] 운영자 17.03.08 156 1
수필속의 법정스님 [1] 운영자 17.03.07 249 0
937 노년에 하고 싶은 일 운영자 17.03.07 469 2
936 혼자 먹는 밥 [1] 운영자 17.03.07 240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