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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김상돈 회장

운영자 2017.01.20 17:10:03
조회 240 추천 0 댓글 0
김상협 총리의 동생인 김상돈회장이 살아계실 때 변호사인 나는 소송관계로 자주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그는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집안에 대한 여러 가지 숨은 일화를 직접 들었다. 더러 부인이나 자식한테 하지 못한 얘기도 할 때가 있었다. 


​집안에서는 아들들도 조심하는 근엄한 아버지상이었지만 남에게는 따뜻하고 소탈한 분이었다. 김상돈 회장역시 90가까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비상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김연수 회장의 돈심부름을 했던 김씨가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김상돈 회장과 만나 나누었던 얘기 중 형인 김상협 총리와 형제들이 함께 자라면서 있었던 발표해도 될 간단한 얘기를 여기에 적어두려고 한다. 

  

2008년 초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 나는 광화문에 있는 삼양염업사의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사무실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철제 캐비닛이 붙어있고 직원들은 수십년전의 나무책상과 서류철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구석에 놓인 대형금고도 모서리에 금박을 한 국화모양의 부조가 붙어 있었다. 일제시대 김연수 회장시절부터 내려오는 금고였다.


 김상돈 회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걸 귀중하게 여기는 성격 같았다. 김상돈 회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검소함을 넘어서서 나의 눈으로는 오히려 초라해 보이기 까지 하는 방이었다. 방 가운데 놓인 소파는 찢어진 곳을 스카치테이프로 때운 흔적이 그대로 보였다. 그날따라 김상돈 회장이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그의 검소함을 알아보기 위해 물었다. 


“입고 계신 양복은 햇수가 얼마나 된 겁니까?”


“15년 전에 산 건데 아직 멀쩡해.”


김상돈 회장의 대답이었다. 김씨가의 특별한 검소함을 나만이 직접 보고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소파 옆 탁자위에 낡은 놋쇠재떨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들이 쓰던 평범한 재떨이였다.


“오랫 만에 보는 옛날 재떨인데 이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지.”


조선갑부 지산 김경중의 유품이었다. 


“할아버지인 지산 김경중 선생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김상돈 회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다시는 밝히기 힘든 귀한 명문가의 역사였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상돈 회장이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노인은 신중했다. 정확한 기억이나 증거가 없으면 말을 하지 않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돈을 아끼시느라고 몇 만석 지주가 될 때까지도 고기를 드시지 않았어요. 줄포에 살 때 거기가 바닷가니까 언제나 생선 반찬이 제일 흔하고 값이 쌌죠. 지금이야 조기가 고급반찬으로 취급되지만 당시 줄포에서는 흔한 게 소금 같은 굴비였어요. 할아버지는 싼 그것만 드시면서 살았지. 그러다가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해서 서울로 올라오셨어. 


​할아버지는 그래도 갑부라고 소문이 나서 가외동이나 삼청동에 있는 문벌집안들과 교류를 하셨어요. 민비 쪽의 집안 그리고 윤씨가문이었지. 하루는 그런 서울의 문벌 집에 가서 신선로를 처음 들어보시고는 집에 와서 그게 그렇게 맛이 있더라고 하셨지. 당시 대단한 부자인데도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았어요.” 


김상돈 옹이 탁자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계속했다. 


“우리 집안은 부자면서도 참 검약한 집이었어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세 배를 했어도 세뱃돈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인심은 오히려 할머니한테서 나왔지. 5원도 주시고 10원도 주셨지. 우리 아버지는 남들이 코가 커서 부자라고 하는데 할머니 코는 그 두 배였어.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생이 나보고 조선갑부집 아들이라고 달리 보더라구. 


​난 부자집 아들이라는 걸 전혀 실감하지 못했지. 집에서 어머니가 항상 바지하고 양말을 깁고 그게 떨어지면 또 기워서 입히고 그랬으니까. 내가 지금도 당시 쓰던 필통이 생각나요. 중학교 오학년 내내 에보나이트로 된 필통을 썼는데 나중에는 귀퉁이가 닳아버렸더라니까.”


얘기를 본론 쪽으로 돌려서 묻기 시작했다. 


“어릴 적 김상협 형님의 모습은 어땠어요?”


“나도 상협 형님이 다닌 삼광유치원에 다녔어요. 이준 열사 집안에서 만든 유치원인데 그 유치원은 봉익동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나는 형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놀아달라고 했었지. 김상협 형은 어려서 겨울에는 콧물을 많이 흘렸어. 그때는 서울이 영하 24도 이하로 자주 내려갔으니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몰라. 나나 상협 형은 동네 아이들 하고 똑 같이 콧물이 흐르면 옷깃으로 쓱 닦곤 했어. 형의 옷을 보면 콧물이 말라서 옷소매가 반들반들했던 게 기억나.


 상협 형님은 어려서부터 남과 어울려 노는 타입이 아니었어. 혼자 방에서 늦게까지 책을 보고 공부를 했지. 한번은 맏형이 둘째 상협 형을 군기를 잡느라고 때려서 코피가 난 적이 있어요. 옆에서 본 나는 겁을 먹었지. 상협형은 그래도 덤벼드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참을성이 대단했어요. 


​그런 순한 상협형을 할머니가 불쌍하다면서 어려서부터 끼고 돌았죠. 우리 할머니는 한학에 밝으셨죠. 상협형이 어렸을 때 한자를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치셨어요. 그래서 상협형은 어려서 이미 한문에 통달했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 산삼을 슬쩍 빼내다가 상협 형에게 먹이기도 했구요. 


​우리 형제들은 대체적으로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봉익동에 그 당시 개천이 있었는데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개천에서 형제들이 썰매를 타고 놀았어요. 당시 우리 동네를 보면 돈화문 앞에서 단성사 쪽까지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 도로였죠. ​

그 길은 종로 쪽으로 조금 구배가 나 있었어요. 우리는 그 길가에서 연날리기도 많이 했어요. 겨울에 눈이 오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는데 정월이 되면 연줄에 아교를 묻히고 거기에 유리가루를 발라서 서로 연을 날리면서 줄 끊기 시합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형제들이 컸죠.”


노인은 기억이 생생했다. 


“그 당시 봉익동 집이 어땠어요?” 


“봉익동 집은 아흔아홉칸 조선기와집인데 조선시대 궁중의 내시 중 높은 인물이 살았던 집이었어요. 역사가 깊고 좋은 집이었어요. 상협 형님이 나온 교동국민학교를 나도 다녔죠. 학생이 백 명쯤 됐어요. 50명쯤은 최고 명문으로 알려진 경기중학교를 가고 40명정도는 경복중학교로 진학을 했어요.


 그 당시 우리형제들을 남들이 조선 최고부자집 아들이라고 그랬는데 상협형이나 나나 면으로 된 검은 교복을 입고 다녔어요. 양철로 만든 필통이 녹슬고 찌그러져도 중학교 내내 그대로 가지고 다녔어요. 


​김상협 형이 경복중학교에서 월반을 해서 일본의 최고 명문인 야마구치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동경제국대학교 정치학부에 합격했을 때 장안의 뉴스가 됐지.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죠. 


​그때 동경대 정치학부는 법과보다도 훨씬 좋았어요. 졸업식장에는 일본 황족들이 와서 일본인 인재를 살피곤 했으니까요. 대개 그 출신들은 졸업하고 일본 상무성 엘리트 사무관으로 출발하죠. 그리고 죽 승진해서 사무차관까지 올라갔어요. 그 후에는 정계로 나가 의원이 되고 마지막에는 총리대신이 되곤 했죠. 일본인들도 부러워하는 학교였어요. 


​상협 형은 어려서부터 천재기가 있었어요. 성격도 대범했어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형을 아버지가 오마치의 구례하 방적공장의 직원으로 들어가게 했어요. 형님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때 공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아버지가 시킨 일인데 이왕 하려면 잘해야지 하더라구요.


 아버지는 그다음 만주 봉천 소가둔에 설립한 남만방적을 상협형에게 맡겼죠. 당시 남만방적은 영국제 기계를 도입해서 직물을 생산했는데 만주에서 최고였어요. 아버지는 상협형에게 기업을 잇게 하려고 했는데 상협형이 그 말을 듣지 않고 학자의 길로 간 거죠.”


“일제시대 당시 집안에서 땅을 얼마나 가지고 계셨어요?”


내가 물었다. 조선갑부 김경중의 재산목록을 알고 싶었다.


“그 당시 우리 집안의 문서상으로는 논이 900정보, 평수로 따지면 270만평이고 밭이 380정보, 140만평이었죠. 문서에 나와있지 않은 것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 외로 많아요. 만주의 농장은 별도구요. 아버지가 만주 농장 중 하나를 나에게 줬는데 그게 30만석이었지 아마. 


​소작인들이 나를 학생지주영감이라고 불렀으니까. 아버지뿐 아니라 할아버지도 일찍부터 아들에게 분재했어요. 아버지가 대부분의 토지를 받았죠. 당시의 관습으로는 아들에게 전 재산을 주었으니까요. 


​큰아들인 인촌 김성수선생은 양자로 보냈어요. 김성수선생은 생부인 우리 할아버지한테서도 받기는 받았는데 그렇게 많지 않아요. 내 기억으로는 5천석쯤 될까?”


“세상 사람들은 인촌 김성수선생을 전설같은 조선의 큰 부자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사실과 달라요. 갑부였던 할아버지 김경중은 아버지를 시켜 토지를 농장화 하고 경성방직을 운영하게 했어요. 백부인 인촌선생한테는 중앙학원과 동아일보를 경영하게 했죠. 동아일보만 해도 그래요. 매번 결손이 나서 아버지 가 증자금을 전부 부담하셨죠. 해방 후 동아일보에서 아버지의 주식이 아마 90퍼센트가 훨씬 넘었을 거요. 그걸 조카들에게 넘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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