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그 스님이 전화를 했다. 40년 전 이십대 젊은 시절을 잠시 보냈던 합천 산골의 작은 절이 있었다. 지붕이 허물어져 낡은 기와가 흘러내리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낡은 절이었다. 아궁이에 낙엽을 태우면 방바닥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겨울 그곳에서 고시공부를 했었다. 몇 년 전 다시 그 절에 갔었다. 절은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그 절의 주지였다. 세상에서 절망하고 뒤늦게 출가해서 그 절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얼핏 그가 폐허가 된 절을 혼자 다시 일으키던 때의 얘기 한토막이 기억 저편에서 떠올랐다.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지게에 통나무를 지고 내려오다 구덩이에 거꾸로 쳐 박힌 적이 있었다. 쫓아와 도와줄 사람은 없고 혼자 허공에 대고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만 했다고 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그 절은 봄이면 화사한 벛꽃 잎이 눈이 되어 내리는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했다. 밝고 투명한 태양이 우면산 자락으로 내리는 오후 다섯시 경 헐렁한 회색바지 저고리에 밀짚모자를 쓴 그가 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가 탁자 맞은편에 앉자마자 나는 엉뚱한 한마디를 던졌다.
“바람한번 훅 불면 촛불같이 목숨도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육십사 년을 함께 살던 어머니가 며칠 전 돌아가셨다. 상실과 죽음이 당연한 데도 나는 영원히 함께 있을 것으로 착각했었다. 슬펐다. 아무리 늙어도 엄마를 잃으면 아이가 되나보다.
“당연 하죠”
그가 맞장구를 쳤다.
“재산도 건강도 여름 풀꽃같이 금세 시들어 마른 풀 같이 아궁이에 들어갈 거 아닙니까? 잃을 건 잃어버리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걸 아는 것만 해도 상당한 겁니다. 세속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뭔지를 깨닫지 못하고 시궁창의 구더기처럼 돈에 명예욕에 애욕에 바글바글 끓다가 죽는 거죠. 본질인 허무를 직시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중이 되어 보니까 참 편하고 행복해요. 돈을 쓸 일이 있나 세상 고뇌를 짊어질 일이 있나 아침에 차 마시고 명상하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일도 천천히 자유롭게 즐기며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예초기로 풀을 깍는 데 이제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나누어 합니다.”
그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입은 승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은 내가 입고 있는 이 먹물 옷도 필요 없는 거예요. 진리를 전달하는데 그게 뭐 필요해? 일반 사람들에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렇게 연출하는 거지 뭐.”
스님의 박박 깍은 머리에 윤기가 흐르고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가족까지 있는 그는 혼자 고독 속에 들어간 것 같다. 절은 밤이 되면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암흑이었다. 대낮에도 외진 곳이었다. 거대한 바위틈에 지어진 나한전이나 산신각에는 또 다른 귀기가 서려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절에서 혼자 살려면 무섭지 않아요? 귀신 안 나와요?”
“산 귀신이 무섭지 죽은 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절에 혼자 있으면 한밤중에 남자들이 몇 명 탄 차가 쓱 들어오는 수가 있어요. 강도일지 모르니까. 그때가 무섭지. 숨지 말고 용기를 내서 그들 앞에 나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조용히 물러갈 때가 있어요.”
“몇 명이라도 함께 살아야지 혼자 사니까 그렇잖아요?”
“요즈음은 밥해주는 공양주 보살조차 두기 싫어요. 말이 많아서 차라리 나 혼자 해먹고 사는 편이 훨씬 좋아요. 그런데 그건 나뿐 아니라 우리 절 바로 밑에 있는 시골 교회 목사도 비슷한 것 같던데.”
절 아래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산속에 작은 흙벽돌 예배당 하나 지어놓고 거기서 목사가 항상 성경을 보고 기도한다고 했다. 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닭을 친다고 했다. 스님이 말을 계속했다.
“목사가 계란을 팔아 먹고살면서 그 교회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꼭 계란은 그 목사한테 가서 사요. 한번은 내가 그 목사한테 가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면서 목사님이 여기 쳐 박혀 있어봤자 헌금 한 푼 안 나오는데 왜 있느냐고 장난처럼 물어봤어요. 안됐잖아?”
아름다운 산골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런 수도자의 모습들을 보면 그 자체가 경건인 것 같았다. 진리는 수 만 명 앞의 높은 강대상에서 화려한 가운을 입은 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읽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다시 생각해 본다. 예수님도 목수였다. 베드로도 어부였다. 바울도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을 하면서 수행한다면 세상의 얽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의 그 스님도 보시를 가져다 줄 신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된장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래 어쩐 일로 합천에서 먼 서울까지 왔어요?”
내가 뒤늦게 본론을 물었다.
“나보다 열 살 쯤 어린 중놈이 절로 흘러들어 왔더라구요. 나도 외로운 입장이라 불법을 공부하고 교리를 전파하면 절 한쪽의 선원에서 지내도 좋다고 허락했어요. 그런데 이 중이 나보고 말로만 하지 말고 이왕이면 각서를 써 달라는 거예요. 이왕 낸 선한 마음이라 그걸 써주고 도장까지 콱 찍어줬죠. 그런데 지내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명색이 주지인 내가 매일 아침 공양을 지으면 이놈이 내려와서 내가 지은 밥을 얻어먹더니 어느 날 갑자기 개밥보다도 못하다고 불평을 하더라구. 갑자기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자기도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후에 잘못했다고 용서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행동은 일반인이면 몰라도 중으로서는 용서를 할 수 없는 행동이었어요. 그래서 직접 해 드시라고 했지. 다음부터는 중국 소설 속에 나오는 중 노지심 같이 개판인 거예요. 아침 예불도 드리지 않고 절을 나가면 한 달 만에 들어오기도 하고 말이예요. 그래서 내가 나가달라고 했더니 각서를 썼으니까 그렇게 못하겠다고 법대로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일부러 이렇게 서울의 변호사 한 테까지 찾아왔다니까.”
세상의 법이 이미 절이나 예배당 방안까지 침투된 지 오래다. 세상을 버린 그 안에서도 미움이 있고 욕심이 충돌했다. 라즈니쉬가 쓴 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상을 버리고 히말라야 골짜기에서 수행을 하던 중이 샘물을 마시고 왔더니 다른 수도자가 그 자리에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 수도자는 자기가 맡아놓은 자리라고 따졌다. 욕심을 버린 것 같아도 어느새 그놈은 또다시 들어와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내용증명 한 장을 처방전같이 써 주었다. 법률사무소로 오면 문서 한 장이라도 받아야 마음이 편해들 했다. 예불과 불법 공부가 계약 조건인데 그게 이행하지 않아서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짜와 가짜, 밀과 가라지가 섞여있는 세상이다. 나는 잡초를 제거해 주는 품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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