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곧게만 자라와서 외부 자극에 둔감했으면 좋겠다. 이런 성질이 지금의 큰 눈새를 만든거고. 부유한 집안, 엄격한 가정, 현내 최상의 운동 환경. 누가 보면 이질적일 정도로 바르고 올곧은 삶을 살아왔던 우시지마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곧지 않은 무언가, 그게 테루시마였으면 좋겠다.
첫 만남은 경기장에서. 운 좋게 인터하이 부전승으로 올라온 죠젠지와 시라토리자와가 경기를 하던 날이었으면. 당시 테루시마는 1학년 우시지마는 2학년이었겠지. 그 때도 죠젠지는 양아치들같은 분위기를, 시라토리자와는 최정상의 배구 수재들이라는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둘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어긋난다고 생각했겠지. 아직 1학년인 테루시마는 코트에 올라갈 일이 별로 없었을거고, 이기고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백조네와는 달리 죠젠지는 코트든 벤치든 놀자판이었겠지. 당시에는 배구에 관심이 좆도 없던 테루시마도 다를 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을 듯.
벤치에 앉아있던 테루시마 포함 1학년들은 심심해져서 코트에서 경기하고 있는 선배 중 한 명씩을 택해서 내기를 하겠지. 자기가 고른 선배가 득점이 가장 적을 경우 시라토리자와 매니저의 번호를 따기로. 그리고 당연히 진 사람은 테루시마일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 테루시마는 몸을 가볍게 풀고 실톨쪽을 힐끔거리다가 실톨 교복을 입고 있는 여자애를 발견할 것임. 타월로 땀을 닦고 있던 우시지마에게 드링크를 건네며 뭔가 말을 하고있던 여자애의 어깨에 손을 올린 테루시마는 그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안녕~ 하고 인사하겠지. 당황한 여자애는 ?? 이런 상태고 우시지마도 물음표 얼굴에 띄우고 있을거임. 번호 좀 받아갈게,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애의 손에 있던 핸드폰 스윽 가져가서 자기 번호로 전화 거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님. 둘 다 당황해서 벙쪄있는데 그런 거 추호도 신경 안 쓰는 테루시마. 오히려 여유있게 둘 번갈아보면서 우시지마는 가까이에서 보는 게 더 잘생겼네, 이 여자애 은근 내 타입이다. 이런 생각하고있을듯. 자기 폰으로 진동 울리자마자 그럼 연락할게? 하고 가버리는 테루시마.
벌칙도 수행했겠다 편한 마음으로 친구들하고 노가리까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자꾸 아까 번호 땄던 생각이 나겠지. 원래 벌칙이니까 번호만 따고 연락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테루시마 이상야릇한 감정에 전화 기록 뚫어져라 쳐다만 보다가 문자 보낼 것이다.
근데 문자하다보니까 좀 이상함. 말투가 다나까야. 그리고 대부분은 경계를 이렇게 쉽게 풀지 않으니까 더 이상한데 테루는 그냥 자기가 여자들한테 잘 먹힌다고 생각하면서 의심 떨치고 샤워하고 잘 것 같다. 그리고 예상하기 존나 쉽지만 문자하던 사람은 우시지마임. 원래 그 핸드폰도 우시지마 거였고 테루가 번호 딴 여자애는 매니저도 아니었음. 그냥 우시지마 짝사랑하는데 눈새새끼가 그걸 알 리가 있나. 경기 시작할 때 저기, 우시지마상! 잘 하고 오세요! 이러는거 듣고 아, 고맙다. 이런 딱딱한 대답 하고 경기장 갈 때 폰 떨궈서 그 여자애가 주워준거였으면. 나중에 그 여자애가 돌려주러 가는 김에 고백하려고 했는데 그 타이밍에 딱 테루가 와서 우시지마 핸드폰 가져가서 번호 따 간 거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시지마는 생각에 잠기게 됨. 왜 내 번호를 받아가는거지. 왜 필요한거지. 하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었고 우시지마가 받은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했음. 금발로 염색한 투블럭에 넘긴 머리 하며 혀로 슬쩍 보이는 피어싱, 그 모든 게 항상 올곧기만 했던 자신하고는 대비되는 것들이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슬쩍 올려다보는 야릇한 느낌의 눈매가, 습관인 듯 입술을 혀로 핥고 살짝 무는 행동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겠지. 앞에 있던 여자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우시지마의 테루시마에 대한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곧게 뻗은 직선같은 우시지마에게 있어서는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는 테루시마가 강렬한 외부 자극으로써 다가왔다는 얘기겠지.
아 쓰다보니까 너무 길다. 어쨌든 이 다음에 만나서 순정파 눈새랑 테루시마랑 연애 비스무리한거 하다가 몸 가벼운 테루 후타쿠치랑 자고 오던 날 우시지마한테 걸려서 존나 격렬하게 섹스했으면 좋겠다. 사실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답답했던 테루 자기가 니로랑 잔 거 일부러 우시지마한테 들킨거겠지. 섹스할때는 말로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면서 즐기고 우시지마 잠들었을때 얼굴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면서 귀여운데 섹스도 잘하네, 하고 중얼거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