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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포스트락을 찾아서 6 - 불싸조

42(14.53) 2015.08.28 22:45:01
조회 1407 추천 17 댓글 12

 지랄이 풍년이었다. 불싸조를 듣기 위해서 내가 몸부린치던 그 때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국내 밴드씬, 어쩌면 대중음악씬에서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멋지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종의 아쉬움 또한 잔뜩 섞인 기분이 들게 만드는 밴드. 그러나 어쨌든 찾아 듣고 싶게 만드는 밴드가 불싸조다.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불싸조의 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4집이 나온다면 또 어떤 방법으로 나올지, 심히 걱정되고 기대된다. 


 불싸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이 약 빤 듯 한 제목들이다. 앨범 제목들인 <뱅쿠오 : 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 / 첫번째 암살자 : 운명을 받아들여라>나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6)>은 기본이오, '지랄이 풍년이네'나 '사도세자의 편지', '수줍은 프로레슬러', '앗싸라비아 콜롬비아'는 양반이다. 어찌되었던 음악 외적으로도 이 기묘한 센스의 제목들은 불싸조의 음악을 즐기는데 나름의 재미를 준다고 생각해서 따로 언급했다.


 앨범과 곡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불싸조가 하는 건 음악이다. 그것도 엄청난 음악이다. 불싸조를 흔히 생각하는 포스트락 밴드로 생각을 할 수 없는 게 이후에 차차 나오게 될 2000년대 후반의 비둘기 우유, 프렌지, 로로스 등의 포스트락 밴드들이 감성적이고 웅장한 음악을 하는데에 비해 불싸조의 음악은 조금 더 잼의 형식, 무언가 합을 맞추는 연주 밴드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귀에 착착 들어오는 뭉개진 리프를 선보이고 있지만 무언가 '몽환'이나 '우울' 등의 단어를 끌고 오기에는 좀 다르다. 불싸조의 감성은 여타의 포스트락 밴드들과는 많이 다르다. 불싸조의 음악을 듣고 반하는 이유는 감정적인 요소들 보다 잘 짜여진 연주에서 나오는 감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2집에 수록된 힙합 아티스트 J.Dilla의 추모곡 'Time'이나 <나홀로 집에> 테마 커버곡 같은 가슴 찡한 곡들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불싸조는 탄탄한 연주를 기반으로 수많은 장르들을 끌어온다. 2005년에 나온 첫 앨범 <Furious Five>는 온통 찌그러진 기타 노이즈, 음잘알의 용어로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기타 소리를 들고 온다. 이 기타 소리는 슈게이징의 그것보다는 싸이키델릭한 느낌도 주고, 하드한 느낌도 주고, 그밖의 여러 느낌들을 가져다준다. 이 지점에서 불싸조의 음악은 어떠한 장르로 정의되기 보다는 불싸조 본인들의 음악이 된다. '불멸의 해구신'에서 시작된 연주는 쭉 이어지는 것처럼 그대로 '울긴요, 내가 울긴요'로 이어진 다음 그대로 '파이오니아 오브 에어로다이나믹'과 그 이후의 곡들로 이뤄진다. <Furious Five>는 이렇게 하나의 기나긴 연주곡, 그냥 자유롭게 무엇이든 연주하는 느낌의 18곡으로 앨범을 가득 채운다. 중간 중간 희미하게 들리는 가사의 멜로디 또한 앨범을 완성하는데 일조한다. 이런 잘 짜여진 연주에서도 '그랜드 믹서', '삽질'에서 느껴지는 폭발하는 에너지나 '시켜서가 아니다' 등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잔잔함이라던가의 다양한 느낌들이 <Furious Five>를 채운다. 거친 느낌과 섬세함이 동시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불싸조의 음악은 <Furious Five>에서 보여준 연주만으로도 좋았겠지만, 바로 다음 해인 2006년도에 나온 2집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6)> (이하 <잠언>)은 한단계 더 다른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불싸조를 '포스트락'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첫 곡 'Born To Fuck (#1)'을 들으면 전처럼 찰랑거리는 듯 뭉개지는 기타 리프가 들린다. 그리고 곧바로 어딘가에서 따온 듯한 목소리와 약간의 다른 음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사정없고 신나게 잼을 시작하는 'Fuck To Fuck (#2)'에서 불싸조의 연주에 뭐가 더해졌는지 알 수 있다. 샘플링이다.


 아니, 샘플링이라니. 힙합에서 비트 만들 때 주로 쓰고 저작권 등록 등등에 잘못 얽히면 표절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그 샘플링? 이라는 질문이 든다면, 그 샘플링이 맞다. 불싸조는 2집부터 아마 옛날 영화에서 따왔을 옛스러운 대사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음성들을 채집해서 연주 위에 늘어놓는다. 그리고 놀랍게 그 '샘플링'은 연주에도 잘 맞으며 오히려 '섹시한가 - 벌써 썅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야~ 고거 감칠맛 나게 소리 잘한다'처럼 기묘한 여운 또한 남긴다. 실로 <잠언>의 첫 세 트랙을 담당하는 'Fuck' 삼부작만 들어도 이러한 음성 샘플링이 불싸조만의 연주/음악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샘플링은 마지막 쯤에 가면 충격과 공포의 'Public Motherfucker #1'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잠언>에서의 샘플링은 이렇게 몇몇의 곡들에 가사처럼 얹히거나 'Public Motherfucker #1'처럼 충격과 공포의 트랙을 만드는 것 외에는 별로 쓰이지가 않는다. 가끔 들어가는 환호성이나 박수 소리 뿐일까. 오히려 불싸조의 연주가 전보다 더욱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는게 느껴진다. 1집의 달리는 잼들을 온통 가져온 듯한 <잠언>은 박자를 쪼개며 연주하는 것도 그렇고, 철금 등의 새로운 악기들 또한 더하면서 여전히 거친 동시에 섬세한 불싸조만의 연주는 여전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여러모로 골 때리는 센스 또한 여전하다는 것도 인증하고 말이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2011년, 이번에는 무려 카세트 테이프(!)로 3집 <뱅쿠오 : 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 / 첫번째 암살자 : 운명을 받아들여라> (이하 <뱅쿠오>)가 나온다. 지난 앨범명은 <잠언>에서 딴 것이 재밌었는지 <맥베스>의 한 구절에서 땄다고 전해지는 앨범은 <Furious Five>나 <잠언>과는 조금 더 달라진 불싸조를 듣게 한다. 아예 첫 곡 'Teenage Love'의 가장 처음부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느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의미심장한 샘플링과 함께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실로 이 때부터 불싸조는 슈게이징스러운 느낌이 꽤나 들었던 1집이나 에너지 넘치는 잼과 샘플리이 들어간 2집을 합친 것처럼 진행한다. 당장에 샘플링으로 시작한 'Teenage Love'는 불싸조스러운 연주를 잇다가 갑자기 분위기를 살짝 새롭게 전환한다. <뱅쿠오>에서의 연주는 이렇게 더욱 더 다양하다. '연변 잭슨'이나 '임금님의 분노'는 거칠고 빠르게 진행하며,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전도서 7:22)'는 샘플링을 중간중간 넣어 요리조리 날뛰듯이 진행한다. '80's Love Groove (Flow Of Century)'는 곡 제목처럼 은근은근히 그루브가 타진다. 곡 길이 또한 이렇게 달라지거나 여전한 곡 분위기에 맞추어 길어진 곡들이 꽤 된다. 특히 '사도세자의 편지'가 들을만하다고 느꼈는데, 여태까지의 불싸조 느낌을 그대로 포스트락스러운 분위기에 집어넣었지만 여전히 불싸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잔잔한 연주에 얹혀진 샘플링에서 시작해 포스트락의 폭발처럼 후반부를 뒤집는 '지옥에서 온 농부'도 불싸조를 '포스트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괜찮구나, 싶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뱅쿠오>는 <Furious Five>에서 보여준 불싸조만의 연주와 <잠언>에서 보여준 샘플링이라는 새로운 도입을 5년이나 연마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대단하다. 가만히 앉아 들으며 즐기기에도 좋고, 몸을 까딱까딱하며 즐기기에도 좋다. 기타, 베이스, 드럼, 샘플링 모든 요소들의 '거친 세심함'이 더욱 강해졌다. 마르티니크 섬 민요를 어떠한 영화의 대사와 함께 연주하는 '송가'나 샘플링을 제대로 이용해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느낌이 심히 팍팍나는 히든 트랙까지 마지막을 제대로 장식한다. 


 이렇게 불싸조는 비슷한 듯 하지만 서로 다른 앨범 (어쩌면 카세트테이프?)들을 발매했다. <Furious Five>의 거칠고 세심한 연주는 <잠언>에서 일부에 샘플링을 얹었고, <뱅쿠오>에서 향상된 연주력과 샘플링의 좀 더 다양한 이용으로 완성된다. 힙합의 어법이라고 생각되었던 샘플링을 락, 그것도 잼같이 에너지 넘치는 연주에 제대로 이용했다는 점과 어쨌든 연주만으로도 듣기에 좋은 점이 그러한 불싸조의 매력이다. 여태까지의 포스트락/슈게이징 밴드는 여러모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불싸조는 좋은 의미에서 마이웨이고, 독고다이다. 많이 들어본 듯하지만 들을수록 새로운 것이 느껴지게 한다. 앨범이나 노래 제목을 보면 골 때리는 유머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속을 뜯어보면 엄청난 연주들, 때로는 고개를 까딱거리게 만들고 때로는 서정적인 연주에 집중하게 하는 연주들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불싸조의 음악이다. 유머와 서정, 연주와 샘플링, 인스투르멘탈과 포스트락, 다양한 곳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아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버린 음악이다. 그래서 불싸조의 4집이 비단 훨씬 더 기묘하고 이상한 방법으로 나오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그 음반, 혹은 카세트 테이프, 혹은 LP, 혹은 음원, 혹은 그 여타의 다른 것들을 들으려 노력할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불싸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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