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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세이] 판잣집 단칸방

운영자 2007.06.15 17:16:17
조회 1486 추천 1 댓글 2

2. 어린시절


  판잣집 단칸방


  아버지께서 문중 친척의 빚보증을 섰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우리는 판잣집 단칸방에서 살았다. 어지간한 일에는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하시는 날이면 달랐다.

  나는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피하려고 했다. 영천읍내 한 가운데인데도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에서 공부해야 했다. 둥근 밥상을 펴 놓고 7남매가 호롱불 하나 밑에서 공부하다 보면, 어떤 때는 호롱불을 넘어뜨려 석유가 책을 적시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면 석유냄새는 교실을 가득 채웠다.

  경북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가족은 번듯한 대구 남산동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 동네에서 우리 집만은 초가집 두 칸에다  판잣집 한 칸이었다. 어느 방에서나 하늘이 천정 틈새로 보였다. 초가집에서는 벌레가 나와 기어 다녔다. 괜찮은 집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 초가집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집으로 데려온 적이 없었다. 친척은 많이들 오셨지만 친구에게 내가 사는 집을 보여주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판잣집에 대한 열등감을 씻어주는 마음의 안식처는 고향에 있는 우리 집이었다. 나는 방학 때가 되면 고향 황강으로 달려갔다.

  고향집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및 행랑채 등 20여 칸이 넘는 건물로서 대지가 5백 평 남짓한 굉장히 큰 집이었다. 지금은 불타고 허물어져 없어졌지만 옛날 한국의 건축미가 살아있는 시골집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경주 김씨 문중의 넉넉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판잣집으로 상처받은 나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는 좋은 위안거리가 되어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가정방문을 피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을 때, 고등학교 시절 번듯하게 사는 친구 집을 방문한 후 묘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 나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집을 떠올리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아쉽게도 29년 전에 그 좋던 고향집은 불에 타서 없어져 버렸다. 다행히 경북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큰집과 사당은 아직도 남아있어, 허전한 마음을 달래 준다. 생각해 보면 집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나는 지금 부천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 재건축이 필요한 집이지만, 피곤한 나의 심신을 편히 쉬게 해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꿈꾸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만한 집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삶이 고달플 때, 돌아가서 쉴 수 있는 고향집 같은 정치인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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