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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재의 욕구에 솔직하라는 역의 가르침

운영자 2009.01.30 10:13:47
조회 1473 추천 1 댓글 2


 ‘주역’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현재’를 중요시하라는 것이다. 물론 특별한 역경에 빠져 있을 때는 ‘역설적 의도’에 의한 이열치열(以熱治熱)식의 방법이 크게 효과를 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느낌과 본성, 그리고 욕구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그저 땜질해나가듯 무심히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럴 때도 ‘역설적 의도’의 효과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역설적 의도는 일체의 이성적 계산이나 도덕적 당위(當爲)를 초월하는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가상해볼 수 있다. 빠듯하게 살아가는 어떤 봉급생활자가 용돈을 일주일치씩 정해놓고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월요일 퇴근길에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친구는 몹시 반가워하면서, 같이 한잔 하고 싶은데 자기에겐 술값이 없으니 미안하지만 술을 좀 살 수 없냐고 청한다. 마침 지갑에는 일주일치 용돈이 다 들어 있는 친구와 술을 좀 근사하게 마시려면 그 돈을 다 써야 할 정도의 액수다. 옛 친구를 보니 핑계김에 술을 실컷 마시고도 싶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예 돈을 하나도 안 쓰려고 “마침 다른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안되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친구를 따돌리는 경우고, 둘째는 술을 사기는 사되 적게는 일주일치 용돈의 7분의 1에서 많아봤자 3분의 1 정도만 사는 경우다. 그리고 셋째는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이다”라고 생각하여 일주일치 용돈을 몽땅 써버리는 경우다.


 ‘주역’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생활철학으로 제시해주는 것은 세 번째 방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현재의 본성과 욕구에 충실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욕구엔 친구에 대한 우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릇된 욕구라고는 볼 수 없다. 이렇게 행동할 경우 그 다음날엔 반드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다시 일주일치 용돈만한 금액이 뜬금없이 생기게 된다는 게 나의 믿음이라면 믿음이다.


 물론 위에 든 예는 현실에 당장 적용되기는 어려운 예다. 그러나 일주일을 일년으로 늘이고 일년을 다시 10년 정도로 늘일 때, 계산을 초월하는 이런 식의 생활철학이 궁극적으로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고 나아가 궁극적 승리를 가져온다고 나는 확신한다(지금까지의 내 일생을 통해서만 봐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말해 현재적 욕구에 정직하되 ‘길게 보고’살며 ‘두고 보자’ 정신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두고 보자’ 정신은 절대로 복수의 정신이 아니다. 시류를 초월해 주변의 유행사조에 연연해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 바로 ‘두고 보자’ 정신이요, 천진난만한 솔직성과 직관련을 지닌 천재(天才)의 정신인 것이다.


 우리가 현실적 조건이나 정치적 유행기류에 맞춰 생각하고 계량하는 것은 우주의 거대한 운행질서에 견주어볼 때 지극히 초라하고 무지한 것이 되기 쉽다. 어줍잖게 미래를 게산하거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야심찬 게획을 세운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특히 사후(死後)의 문제는 더욱 그래서, 죽은 뒤의 명예나 내세 심지어 무덤자리까지 걱정하는 것은 정말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묘를 아무리 명당자리에 호화롭게 꾸며봐도 천재지변에 의해 언젠가 파괴될지 모르는 일이다. 또 ‘데카메론’에 나오는 얘기처럼 색(色)을 탐한 승려는 그 정직성을 인정받아 오히려 천당에 가고, 색을 절제한 승려는 위선죄에 걸려 지옥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필연적으로 변하는 것도 있지만 우연적으로 변하는 것도 많다. 그래서 ‘주역’은 ‘구(姤)’괘를 만들어 ‘구(姤)’를 ‘후(逅)’ 즉 ‘우연한 만남’으로 해석하고, ‘우연한 길사(吉事)와 우연한 흉사(凶事)’를 괘의 대의(大意)로 삼고 있다.


 나는 ‘역설적 의도’와 ‘현재 중시’의 생각을 ‘우연한 길사(吉事)’에 연결시켜, 화두 비슷한 형식의 시로 표현해본 적이 있다. 제목은 <인생은 즐거워>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태양빛이

  너무 뜨거워

  우산을 쓰니까

  비가 온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이는데 태양빛을 가려줄 양산이나 모자가 없다. 그럴 땐 이것저것 가리며 남 눈치 볼 것 없이 우선 우산이라도 있으면 쓰고 봐야 한다(아니, 일부러 우산을 쓸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역설적 의도에 따른 ‘상징의 연역’ 효과에 따라, 한줄기 시원한 비가 우연히 쏟아져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연한 길사(吉事)’라 하더라도, ‘변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확고한 신념이 서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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