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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좆같은 이웃 27

EAO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5 19:07:08
조회 565 추천 3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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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이웃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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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둘이 졸업 후에 결혼 하기로 했다고?"


"응!"


대화는 어쩌다 이렇게 흘러가게 된 걸까. 굳이 따지자면 내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보고 둘이 결혼하냐는 말을 꺼낸 화이트 때문이지만, 나랑 커플링을 했다고 그 말에 맞장구치며 자랑하기 바빴던 엘사의 탓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야 대체? 반지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더욱 거대했다. 버스 안에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서 다행이긴 했는데…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소란스러워 졌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화이트 잘못이 99%다.


"안나, 결혼 날짜는 정했어?"


"뭐?"


결혼 날짜 정했냐고. 오, 엘사랑 할 얘기들은 다 끝낸 모양인지 이젠 모든 관심이 나한테 쏠리기 시작했다. 딱히 별다른 얘기는 꺼내기 싫었지만, 엘사랑 결혼 약속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내 친구들도 이제 알 만큼 아는 얘들인데 굳이 내가 말을 아껴서 뭐 하겠어.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아직 안 정했어."


"뭐? 그래놓고 결혼 약속부터 대뜸 해버린 거야?"


"그게 왜?"


"부모님은 아셔?"


"아니?"


내 기상천외한 대답에 내게 질문한 오로라나 주변에 있던 얘들이나 전부 똑같이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저 사실을 말해줬을 뿐인데 반응들이 어쩜 하나 같이 똑같을 수 있을까. 이젠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뭐야,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메가라는 결혼한다는 애들이 약속만 대뜸 잡아놓고 그게 뭐 하는 짓이냐며 나를 질타했다.


"당장 할 것도 아닌데 뭐 어때서…."


"뭐?"


"왜?"


"왜? 지금 그게 할 소리야?"


"아니… 뭐 어쩌라는 거야 나보고."


"뭘 어쩌긴 어째야? 결혼 약속까지 잡았으면 부모님도 아셔야지!"


알았어. 오늘 말하면 되잖아! 결국, 등쌀에 밀려 예정에 없던 저녁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우리 부모님은 내 손에 있는 반지를 커플링이 아니라 엘사랑 결혼 약속을 잡은 걸로 아실 텐데…. 그래도 이런 내 생각을 얘네들한테 말했다간 평생 먹을 욕이란 욕은 죄다 얻어먹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지. 결혼 떡밥이 너무 거대했던 탓일까, 오늘 대화 주제는 나와 엘사의 결혼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엘사랑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자신들을 초대해줘야 한다면서, 특히 오로라와 제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은 꼭 초대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가 굳이 왜 그래야 하냐는 반응을 보이자 오로라는 그동안 놀리고 다닌 것에 대한 복수냐면서, 나를 엄청 쪼잔하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욕했다. 그래, 쪼잔하고 속 좁아서 미안하다. 쪼잔하니까 너네는 초대 안 해도 괜찮지? 오로라는 내 말을 듣고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고, 제인은 오로라의 머리채를 붙잡으며 대신 사과했다.


"안나, 오로라 대신에 사과할게. 결혼식 초대… 해줄 거지?"


"글쎄."


"너무해… 진짜 쪼잔하게 그러지말…."


제인은 하던 말을 끊고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선 붙잡고 있던 오로라의 머리채마저 놓아주었다. 극도로 삭막해진 분위기 속에서 오로라와 제인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나를 보며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그 광경을 조용히 보던 엘사는 나를 껴안으며 저런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말라 했다. 딱히 상처를 받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부둥켜안고 열심히 달래주는 엘사의 모습이 어쩜 이리 사랑스러울까. 엘사, 나 괜찮아. 그러면서 정말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미소를 짓자 엘사는 그러면 다행이라면서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나와 엘사의 이런 애정 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메가라는 그렇게 서로 물고 빨 거면 집에 가서 하라 했고, 화이트와 벨은 커플끼리 저러는게 뭐가 문제냐면서 되려 우리 편을 들어주었다. 메가라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젓더니 곧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엘사도 그게 적잖게 신경 쓰였는지 입술을 떼고 메가라를 쳐다보았다. 엘사는 안절부절못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도움을 청했다.


"메가라 괜찮은 거 맞아?"


"쟤 그냥 우리가 이러는게 샘나서 그래. 너무 신경쓰지 마."


내 말에 메가라는 정곡에 찔린 것 처럼 몸을 움찔였다. 그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결국 내가 메가라를 달래주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지만, 그녀는 제발 혼자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조용히 있나 싶다가 메가라는 가서 엘사랑 마저 하던 짓이나 하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쳤나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옆에 앉아 등을 쓸어내려주며 너무 그런걸로 샘나서 삐치지 말고 기운내라고 했지만, 딱히 내 말은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열심히 달래준 덕에 메가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엘사랑 좀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샘내고 삐치다니, 얘도 참 유별나다니까. 그 이후의 시간은 나름 평범하게 넘어갔다. 하는 대화마다 결혼 얘기는 빠지지 않고 껴들어서 지겨울 지경이었지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것 같아서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기기로 했다. 솔직히 이젠 이런 상황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잖아.


그 얘기는 점심시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젠 진짜 너무 많이 들어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미칠 거 같아. 내 얘기에 지긋했던 대화는 겨우 끝날 수 있었다. 이까짓게 뭐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떠들어 댄 걸까. 아무래도 간만에 이목을 끌기 충분한 주제가 나온 탓이겠지. 그렇다고 그게 썩 나쁘진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질릴 정도로 너무 많이 우려먹어서 문제지.


"아무튼, 안나 너는 까먹지 말고 부모님께 꼭 말씀드려라."


"아, 알겠다고!"


결국, 학교가 끝나고 부모님께 오늘 저녁 식사 때 드릴 말씀이 있으니 엘사를 초대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제발 우리 부모님이 엘사랑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절만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엘사를 데리고 곧바로 우리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결혼 약속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지만, 그렇다고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버리면 꽤 충격을 받으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그냥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는게 어때?"


"그게 제일 좋긴 해. 물론 우리 부모님이 놀라서 기절만 안 하신다면야…."


그 뒤로 더 많이 고민해봤지만, 딱히 더 뾰족한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냥 엘사의 말대로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기로 했다. 10대 소녀들의 나름대로 심도 있던 토론을 끝내고 얌전히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니 때마침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셨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긴장되었지만,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으며 엘사와 함께 인사했다.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아. 곧바로 엄마는 나를 보며 할 얘기가 뭔지 물으셨다. 오, 심장이 터진 것 같아.


"아, 그건 식사 하면서 말씀 드릴게요."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리렴."


"네…. 엘사랑 방에 잠시 들어가 있을게요."


나는 황급히 엘사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드는 거야? 내가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떨어본 적은 없는데. 아냐, 결혼은 존나 시발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전부를 좌우할 막대한 결정이라고! 엘사랑 결혼하면 앞날이야 당연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과연 우리 부모님이 허락해주실까? 사귄 지 오래되지도 않은 애들이 뜬금없이 우린 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결혼을 허락해 주세요! 라고 말하면 그것만큼 황당한 이야기가 어딨겠어.


그렇다고 말을 안 하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말씀드릴 게 있어요. 해놓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하면… 아냐 그건 내 성격이랑 전혀 맞지 않아. 엘사를 슬쩍 쳐다봤지만, 그녀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였다. 하긴, 내가 결혼 얘기를 드려야 하는 대상이 우리 부모님이지 엘사 부모님이 아니잖아. 엘사 보고 대신 말해달라 시키기도 이상하고 말이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부모님이 우릴 부르신다. 오, 제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곧 내려간다고 말하고서 황급히 엘사를 붙잡고 말했다.


"엘사, 나 진짜 정말로 부모님께 말 못 하겠어."


"왜? 갑자기 내가 싫어지기라도 했어?"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떨려서 그래!"


"오, 우리 안나가 겨우 그런 거에 겁을 집어먹을 줄이야."


"나 놀리는 거야?"


"놀리는 거 아니야. 나랑 살기 싫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결국, 놀리는 게 맞잖아. 젠장, 모르겠다. 어차피 한 번 살 인생 뭐 있겠어?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엘사와 함께 밑으로 내려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 시간은 고요함이 흘렀다. 되려 분위기가 조용하니까 더 떨려서 미칠 지경이다. 침묵을 깨고 대화의 첫 마디를 시작한 것은 엄마였다. 손에 낀 거… 혹시 결혼반지니? 오, 제발. 너무 당황해서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어버릴 뻔했다.


"커플… 커플 반지에요!"


"그러니? 엄마는 둘이 벌써 결혼이라도 약속한 줄 알았지."


자식을 둔 엄마들의 직감은 어째서 단 한 번의 오차도 없는 것일까. 이게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인가? 이건 진짜 전 세계 공통적인 연구대상이야.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어쩜 저리 귀신같이 맞추실까? 그래서, 할 말이 뭐였니 안나? 드디어 올 시간이 왔구나. 근데 엄마가 이미 맞추셨는데? 이걸 굳이 말해야… 겠지. 그래, 말해야지.


"그… 엘사랑 결혼…."


"하려고?"


"아, 지금 당장 한다는 게 아니고… 약속을 했는데…."


"결국엔 한다는 거지?"


"네."


"언제 할건데?"


"학교 졸업하고요."


그리고 잠깐의 침묵. 10초 남짓한 침묵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질까. 부모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더니 다시 시선을 내 쪽으로 옮기셨다. 떨린다. 사뭇 진지한 표정엔 대체 무엇이 담겨있는 걸까. 엄마는 여전히 진지함을 유지하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씀하셨다.


"엘사랑 결혼 해도 좋아. 날짜도 정해지면 그때 다시 말해주렴."


"어… 진짜 결혼 해도 괜찮아요?"


"당연하지. 그리고 그런 기쁜 소식은 얼마든지 환영이란다."


그 말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진짜 다행이다'였다. 지금 이 행복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어서 무작정 부모님을 끌어안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 뒤론 정말 마음 편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샤워를 하고, 엘사와 함께 침대에 눕는 이 순간까지, 기쁜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엘사."


"응?"


"결혼 허락 받은게 아직도 꿈만 같아."


"그러게."


진짜 꿈만 같았다. 처음엔 내가 차근차근하게 설명하고 부모님이 놀라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부모님은 침착함과 진지함을 유지하셨고, 되려 나랑 엘사를 놀라게 만드셨다. 그래도 결혼해도 괜찮다고 하셨으니 앞으로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사 중간에 약혼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우린 약혼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에 약혼은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엘사는 자신과 내 손에 있는 반지를 보여주며 이 반지가 곧 커플 반지 겸 약혼반지니 괜찮다고 했다. 굳이 그런 의미 부여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그런 엘사의 재치 있는 대답 덕분에 대화 시간이 심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지금, 우린 그저 말없이 천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조용히, 지금 내 방안에 들리는 소리는 침을 삼키는 소리와 약간씩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저 두 눈만 말똥히 뜨고 누워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몸을 휘감는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엘사도 고개를 돌린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채, 우린 그대로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짧은 키스 후에 나는 엘사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그럼 나는 네가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사랑해."


"으, 지금 그 말은 너무 오글거린다."


오글거린다니, 너무 해. 내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쉬워하자 엘사는 장난이니까 너무 그렇게 삐치지 말라며 사과의 의미라며 내 코끝에 살짝 입맞춤했다. 안나, 잠도 안 오는데 떠들다가 잘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아무렴 어때. 지금 우리는 이렇게 기쁜걸.


───


깔끔하게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졸업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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