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 걱정했던 건
모든 배우들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것과
관극 전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거

제일 중요한건 난 시인 이상을 좋아하지 않았어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한다는 그 글자들을
수능기출로 셀수없이 봤었으니 기억나는건 시험지 뿐

근데 오늘 이후로 난 이상, 김해경이 좋아졌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풀어준 극이었던 것 같아

워낙 극의 첫인상을 중요시해서
포스터와 딸려오는 짤막한 시놉만 읽고
넘버들도, 내용도, 영상들도 안보고 갔던 것이
이렇게 큰 충격이 되어 다가올 줄도 몰랐다 난
그리고 참 잘했던 일이라고 생각해

자첫이니만큼 이런 디테일이 떨어졌고
이게 부족했다 하는건 별로 없어- 이미 오늘 본 게 나의 스모크야

극 초반은 응 이게 뭐지 이게 뭘까...
바다로 가겠다고 무턱대고 납치하는 해와 초
납치되어와서 춤출래요? 사랑을 해봤어요?하는 홍
셋이 맞닥뜨렸을 때는 삼각관계극인가 까지도 상상했어

하지만 그건 정말 헛다리
난 내 본진이 나오는 극이 가물거릴정도로 너무 빠졌다
내 최애극 등극 ㅜ ㅜ
연출들은 물론 극이 캐리/ 배우들이 캐리 가 아니라
그 모든게 관객들을 끌어들인 느낌?

해.
난 초반에는 초가 주인공인줄만 알았지.
시를 쓴다잖아. 초와 같이 나와서 그림을 그리러 바다로 가겠다는 해는 그냥 등장인물 1정도의 느낌이었다.
친구라기엔 형제? 형(초)를 마지못해 따르는?
쓸이 잠깐 생각나기도 했어/ 총을 들이밀면서 너만 잘하면 돼 라고 하는 초와 알았어알았어 하고 힘겹게 넘기는 모습이 살짝

많은 바발들이 그랬듯 각성한 해는 너무 멋있네
딱 해 초 홍이 한사람으로 결합된 모습같아 좋았어

아까 불호포인트 중에 하나가 석방 전 대화에서 너무 건들거린다고 하는게 있던데
난 사실 그 부분 맘에 들었어. 내 창작물을 그리 깔보고 들춰보는데
어느 누가 발톱을 숨길 수 있을까 싶었거든.
나였어도 내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너희들이 멍청한거다, 하고 비꼬았을지 몰라

초.
노래도 연기도 다 좋았는데
딱 한가지 아쉬웠다고 한다면 좀 더 강압적이었으면 좋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 것.
초는 거울 밖 나의 부담과 책임을 온전히 떠안아버린 존재인데,
또 죽고싶단 생각을 가득 안고 말하는데
더 무섭고 따가운 모습을 했어도 어울렸을 것 같아
해를 챙기는 부분은 형 같기만 했어 사실

자신이 글을 써도 봐주지 않는다,
돌아오는건 돼지꼬리 뿐 하며 그래 죽고싶다 하는데
눈물 후두둑 떨어지더라 너무 맘이 아팠다

해에게 총을 주며 죽으라고 하고
거울 속 모습처럼 같이 총구를 머리에 댈 때
손이 덜덜 떨리는걸 보고 그래, 결국은 살고싶잖아 하고 속으로 말하게 되더라

근데 마지막 퇴장하던 때 펄럭이던 코틐ㅋㅋㅋ 뿜어버렸네


해+초
거울 장면 실화입니까
이건 글로 안적을래 직접 보는게 백번 나으니까

홍.
솔직히 감동이었다.
정연홍 정말 잘하는구나.
나한테도 홍이 있지만- 질책의 느낌이 더 강하거든.
애매한 희망을 건네주는게 더 큰 고통이라는 대사가
너무 와닿았었는데
그 후에 초에게 내려놔도 된다고, 혼자가 아니야 하는데
이 부분 많이 울었어. 나도 듣고싶던 말이었다.

극 자체에 대한 감동이 크다보니
배우 디테일들은 잘 생각이 안나는게 아쉽다.
노래와 연기들 잘하셨던건 너무 잘 알겠어- 극 후반에는 주위 관객들이 하나도 안보일정도로 집중할수 있었거든

약간 셀털이지만 난 그림을 그려
일종의 창작자야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극이 암전되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무대를 본 게 아니라 거울을 봤던 것 같다는 거였어
극이 끝나고 난 또 한참 울었다 울컥해서....
어셔분이 2층 닫으려고 하시는 것 같길래 우는채로 나왔다
시인 이상은 결국 병원에서 죽었고
오늘 해의 퇴장이 살짝 장난스러웠지만
약을 먹고 쓰러지는듯한 그게 너무 잘 어울리기도 했구

이 극 여운이 너무 길다
그리고 꼭 모든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ost 안나오나요?ㅜ ㅜ
영업해준 뮤덕언니에게 이 영광을 흑흑
아까 스모크도 그려달라던 바발, 스모크 꼭 그릴게

p.s- 내일은 오첨뮤 자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