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라는 냥이가 있다.  턱시도냥이.
올 봄에 비어있는 앞집에서 앙살이가 낳은 새끼들 3마리 중에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녀석. 지난 여름쯤. 앙살이가 서서히 아깽이들을 독립시킬 그 무렵. 토끼는 매몰차게 돌아서는 앙살이 대신, 자신을 새끼처럼 돌봐주는 소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도 소호를 엄마처럼 형제처럼 세상에 그 누구보다 더 잘 따르며 살고 있다.

소호는 그렇지는 않지만, 토끼는 소호가 가는 어떤 곳이라도 졸졸졸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어머니께서 여행을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파견지에서 곧장 본가로 퇴근했다. 퇴근해서, 마당의 아이들과 방안의 아이들의 뒷치닥거리를 하려고 말이다. 집에도착하니 컴컴한 밤중. 8시가 넘었던가? 하루종일 쫄쫄굶고있었을 냐이들 밥을 들고 뒷마당에 나갔는 데.. 아뿔사... 좀전만해도 퇴근할 때 보이던 소호와 토끼가 안보인다. 내가 잠시 방안에서 옷갈아입고 아버지 식사챙겨드리는 사이에 사라졌나보더라고..

그래서, 소호야.. 불렀더니 (토끼는 굳이 안불러도 된다. 소호를 따라다니니까) 소호가 어디선가 부리나케 달려온다. 그래서, 소호와 그리고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냥이들을 모아서 뒷마당에다 밥을 주고 있는 데.. 어디선가 토끼소리가 냥냥 거린다.  어두운 깜깜한 밤중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는 데, 밥은 먹으러 오지도 않으면서 계속 냥냥거린다. 나 빼놓고 밥 주지마세요. 저 여기있어요.. 하는 듯한.. 그 애절한 냥냥.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봤더니.. 아뿔사.. 옥상에서 나는 소리이다. 소호는 옥상의 지리를 잘 안다. 빨래를 널러갈때면 소호가 곧장 따라나서서.. 옥상까지 올라와서 놀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잠시 집안일을 하는 사이, 소호가 옥상에 놀러갔는 데 토끼도 따라간 모양. 내가 소호를 부르니 어두컴컴한 옥상에서 부리나케 마당쪽으로 내려서 돌아온 소호. 하지만 토끼는 오지는 못했나보더라고

밤이고 불도 없고, 자리도 익숙하지 않은 옥상. 거기에 혼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데.. 내가 저녁을 주는 소리를 내자, 옥상에서 서럽게 냥냥거리고 울어댄 모양.


그래서, 옥상으로 핸드폰 후래쉬를 켜고 올라갔더니.. 토끼가 부리나케 나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내가 계단을 내려가자 토끼도 나를 따라 내려온다. 그리고, 토끼가 익숙해진 마당이 나오자 다시 쏜살같이 달려 저녁을 준 뒷마당쪽으로 향해 달려간다.

아주 별 것 아닌 장면이겠지만, 나는 진짜 뿌듯하고 흐뭇하다. 토끼에게 나는 믿음직한 존재이기에 나의 소리를 듣고 옥상 입구까지 달려왔고, 또 옥상계단도 함께 따라내려와줬다는 게... 너무 기쁜일인 듯. 나를 믿어준다는 것. 그 느낌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함이 느껴지는 건지. 토끼에게서, 정말 소중한 느낌과 감동을 받았다.

고맙다. 토끼야. 오랫동안 우리집 마당에서 살자.

#아참 토끼는 태어난 지 벌써 8개월 정도 되는 숫냥이. 근데 숫냥이 치고는 너무 작고 야위고 마름... 내가 숫냥이라고 하기전까지는 전부 암냥이 인 줄 알 정도임.. 얼른 토끼도 기골이 장대한 숫냥이로 확대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