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오디세이 얘기다.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 예정인 크로노 오디세이는 게임 트레일러만으로도 일약 기대작 반열에 올랐다.
일단 영상만 보면 기대작 맞다. 그리고 게임을 관통하는 굵직한 줄기의 기획 역시 가히 기대작이라 할 만한 장대한 포부를 담고 있다. 영상에 내포된 이 게임의 면면을 보고 기대작이라 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런 크로노 오디세이가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72시간 동안 글로벌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진행했다. 보통 매체서는 이 경우 성공리에 종료했다는 뜻으로 성료라고 표현하는데 차마 그런 표현을 쓰지 못하겠다.
그냥 안쓰러웠다. 대체 뭐가 급해서 이렇게 만들어지지도 않은 게임을, 그것도 글로벌 규모로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을까? 도무지 피드백을 얻기 힘든 인디 개발사나 스타트업도 아니고 이런 완성도를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은 프로가 할 결정이 아니다. 수년을 기다린 게이머에게 예의도 아니며 조롱감이다. 실제로 무수한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보기만 해도 민망한 수준의 움짤, 영상이 박제되고 있다. 심지어 애초에 퍼블리셔나, 개발사에 대한 정보가 많았던 국내에 비해 해외 반응이 더 격하다는 것이 문제다.
말하자면 게임을 이루는 기본 골조 자체가 그 어떤 부분도, 단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테스트를 강행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게임의 기획 볼륨은 여타 웬만한 게임 수준을 가볍게 넘어서는 말 그대로 대작의 반열에 있는 게임이라 어설픈 것들이 보통의 게임보다도 더 많았다는 사실이며,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는 점이다. 너무 오랜 시간 사전 트레일러로 기대감을 심어두고, 전혀 다른 게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괴리감이 큰 결과물을 테스트하라고 내놓은 것에서의 체감 낙차도 크다.
그렇게 그 미완성된 게임의 면면이 하나도 아귀가 맞지 않고, 삐걱거리면서 좀비 스텝을 밟는 모습이 오히려 더 코스믹 호러였다. 절치부심하고, 애지중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개발하던 자식 같은 작품을, 겨우 이런 완성도에서 시중에 내놓아야 했던 개발자들의 심경이 더 공포였으리라.
사실 기자는 미디어 선행 프리뷰란 명목하에 이 게임을 다만, 며칠이라도 더 앞서 플레이해 볼 수 있었다. 그때도 소감은 똑같았다. 미디어 선행 프리뷰를 돌아 보며 의아했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재미있게 즐긴 것 같지? 내가 이 업을 떠날 때가 됐나? 기자 박봉에 얼마나 번다고 코로나 전부터 물려 있나? 하지만 유저 테스트가 진행되고 커뮤니티에 쏟아지는 평가는 마치 내 제2의 인격이 술 마시고 썼나 싶을 정도로 정확히 똑같았다.
이건 테스트 빌드조차 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사내 FGT도 이보다는 빌드가 완성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다 만들어지지 않은 채로 글로벌 테스트를 해야 하다 보니 만들어둔 몬스터와 구조물, 메인 퀘스트까지 급히 사포로 문질러 마감 처리만 하고, 실전 압축으로 마구 흩뿌려놨다는 점이다. 여기엔 밸런스고 뭐고 없고, 그냥 말 그대로 그냥 게임을 해볼 수 있게만 만들어 놨다. 진짜 버튼 하나 잘못 누르면 개발 툴 튀어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완성이었다.
심지어 어느 구간부터는 비슷한 지형이 반복되어 뭔가 했더니 규모만 급하게 키우느라 복사-붙여넣기인 것으로 의심이 됐고, 일부 맵이나 건물, 오브젝트 구성은 아예 레퍼런스가 됐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게임의 구도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쓴 것부터가 이미 충분히 완화해서 표현했으니 데스크가 꼭 통과시켜 줬으면 좋겠다.
흔한 레퍼런스일 뿐이라고 눈물의 쉴드를 치는 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만든 이들이 더 잘 알겠지. 어차피 애초에 꼭 베낀 맵, 아차! 비슷한 맵 자체도 테스트 버전 공개를 위해 급히 디자인해서 대충 채워 넣은 수준일 것이므로 기자는 굳이 개발자나 기획자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그들의 당초 개발 계획에 없을 테스트 일정에 맞췄어야 할 테니까.
이 게임은 그냥 되는대로 즐겨도 자기 만족할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가 아니다. 철저한 시놉시스 하에 진행되는 대작 판타지 월드다. 그것도 중세 세계관에 미지의 생명체가 습격해 왔다는 코스믹 호러 세계관의 압도적으로 매력적인 설정까지 뒷받침되어 있다. 오픈월드 감성, 심리스 MMORPG 란 장르는 이 게임의 스케일을 표현하는 장르적 수사다. 지독히도 처절한 짜임새가 표현하고자 했던 자유도의 바탕이 되었어야 옳다.
보이드 잡아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내 컨트롤 죽이지? 이러고 지나갈 사이즈가 아니란 얘기. 물론 지극히 짧은 시간 진행되는 테스트 빌드를 위해서 급격히 축소했다고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이런 거 축소할 시간에 그냥 2차 크로노 게이트 정도만 공개하고, 그 안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이번 버전의 정식 명칭은 글로벌 비공개 테스트다. 의아했다. 레벨 디자인부터 동선, 캐릭터 모션, NPC 위치, 액션의 합, 스킬 디자인, 사냥이나 채집에 의한 성장 구도까지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가정 하에 걸리는 모든 것을 어차피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바꿀 것 같은데 뭘 테스트하란 거지? 프레임이 뚝뚝 떨어지더라도 어쨌든 언리얼 엔진 5 그래픽이나 보란 건가? (물론 사운드 팀과 커스터마이징 팀은 죄가 없다. 두 팀은 나가 있어.)
이 게임의 개발사는 사실 알 만한 분들은 다 아는 그 회사임에도 정작 각종 보도자료와 공식 정보에는 언제인가 황급히 설립했을 '크로노 스튜디오'라는 자회사가 출력된다. 엔버지를 엔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셀을 형님셀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야 테스트 공개 전부터 그런 준비를 착착 해온 그들이 더 잘 알겠지만 어쨌든 이 게임은 지난 몇 년 간 차곡차곡 준비되어온 것임에 분명한 기획력과 매력은 엿보인다.
하지만 그 공개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다. 크로노 오디세이의 완성도가 아직 시장에 테스트 빌드로 공개되기에 이른 버전이라는 것을 개발사는 몰랐을까? 그들이 어디 초짜들도 아니고 이미 성공 가능성에 충분한 평가를 받은 전문가들로 그럴 리가 없다.
게임을 출시하는데 있어 개발은 과제라고 하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한 여러 마케팅 기법과 혹은 틀을 깨는 참신한 시도들이 매번 시장에 소개되는 실정이다. 수십억, 아니, 수백억을 들여도 '브랜드 이미지'는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크로노 오디세이는 그런 면에서 대작이란 기대감을 가진 타이틀이었다. 그것을 불과 72시간의 성급한 플레이로 모조리 잃고, 이제는 각종 어이없는 상황을 담은 움짤들이 돌아다니는 조리돌림 신세가 됐다. 아마 앞으로도 어떤 웅장한 트레일러를 공개하더라도 이 평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중요한 가치이자 개발자들의 자존심이 손상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이 시점에서 6월, 즉, 2025년 반기가 지나기 직전에 이걸 공개해야 한다는 결정을 했을까?
이 글은 리뷰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문제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겠다. 게임조선은 리뷰는 이미 나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두 편이나. 기자는 도대체 상호작용 버튼이 제때 안 먹혀서 꼭 한 번 비비게 만드는 점, 시작 마을 근처 폭포를 헤엄쳐서 거꾸로 내려가는 점, 락온만 하면 카메라 시점이 발발 떠는 점, 풀과 바위가 공중에 떠 있어서 이런 누추한 곳에 갑자기 공중 정원 맵을 만들었나- 싶었던 찰나에 리뷰 쓰면 욕지거리를 할까 봐 미안하지만 다른 인원에게 넘겼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런 글을 쓰니 얼굴에 침 뱉는 건 똑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72시간 동안, 최소한 게이머들은 오랜만에 MMORPG 다운 MMORPG를 즐길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기자도 그랬다. 오랜만에 필드를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는 기분.
하지만 그것은 원래 캐릭터와 필드, 퀘스트만 있으면 느낄 수 있는 오픈월드 MMORPG의 당연한 흐름이다. 하물며 3일만 즐기면 초기화되니 무언가에 쫓길 일도 없고, 캐릭터가 망할 일도 없으며 누군가와 비교 당해 뒤처질 일도 없는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길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지엽적인 재미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만 충분하다면,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밀고 나간다면 최근 국내 게임 시장에 전래 없는 수준의 MMORPG 스케일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기자가 아는 그 회사 개발자들은 실력은 충분하다. 그냥 이번 결정의 주체가 카카오게임즈든, 크로노 스튜디오든 어차피 그 주체는 이 빌드를 안해보고 결정했거나 레퍼런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최소한 그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주말을 낀 테스트가 끝나고 24일. 카카오게임즈는 주가는 정말 오랜만에 상한가를 넘나 들었다. 백번 양보해서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을까?(실제 그렇게 분석한 매체도 있었다.) 우연찮게도 이란-이스라엘발 중동 불안 해소와 맞물려 2021년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코스피가 3,100을 돌파하는 시점에 그룹 차원의 수혜와 블록체인 사업 쪽의 기대치로 보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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