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툴 사용이 점점 쉬워지고, 접근도 훨씬 용이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여기저기서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나 이거 할 줄 알아."
"나도 이거 해봤어."
"AI툰, 나도 만들 수 있어."
이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한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DSLR이 보급형으로 풀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자동 모드가 친절해지자 너도나도 전문가를 자처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 보면 내가 찍고 싶은 사진에 어떤 렌즈가 필요한지, 이 상황에서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그 감각을 몸에 익히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광고사진작가도 필요없는 거 아냐?" 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렇다고 진짜 사진을 찍던 작가들의 입지가 흔들린 것도 아니다. 카메라가 보급형이든, 신형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찍어내는 사진의 밀도는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갔던 장소를 찾아가 비슷한 시간대, 비슷한 빛, 비슷한 설정을 흉내 내며 '출사'라는 이름의 발품을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바뀌면 또 어려웠다. 그때마다 깨달았다.
아, 이건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눈과 시간의 문제구나.
만화도 마찬가지다.
펜과 잉크로 작업하던 시절, 한 장에 5천 원 하던 스크린톤을 아껴 쓰느라 손이 덜덜 떨었던 기억. 한 번 그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어서 선 하나 긋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고지 앞에 앉을 수 있었던 시간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작업 환경은 분명 좋아졌다. 스크린톤, 칸 나누기, 말풍선 배치는 신의 선물 같았다. 하지만 출판만화를 해보지 않은 예비 작가들에게 '만화 원고'라는 벽은 여전히 높았다. ctrl+z, 올가미툴, 3D 인체 더미 같은 기능들이 등장하면서 진입 장벽은 더 낮아졌다. 인체 데생에 자신이 없어도 시작은 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만화와 그렇지 않은 만화의 차이는 여전히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AI가 등장했다.
손으로 하던 많은 작업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말해지는 시대. 그러다 보니 "만화의 언어를 몰라도 칸 안에 그림 있고 말풍선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만화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AI가 아무리 이미지를 멋지게 만들어도, 작가의 눈에는 아쉬운 점이 꽤 많이 보인다. 비율이 미묘하게 흐트러진다거나, 선과 면의 논리가 어긋난다거나, 정리되지 않은 디테일이 '그럴듯한 척' 모호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AI 결과물을 보고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이거 수정하려면 내 품이 더 들겠는데?" 그리고 실제 협업을 포기한 사례도 많다.
이 사례는 AI의 한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기준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일반 독자보다 까다롭다. 원고 완성의 기준이 분명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넘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집요하게 고치고,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요소까지 정리한다. 그런 집요함과 애착이 결국 작품을 '나밖에 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즉, AI툰에서 진짜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로 얼마나 멋진 이미지를 뽑았는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어디까지 책임지고 다듬을 수 있는가다. 물론, 그중에는 분명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곧 등장할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 늘어난다는 건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진다는 뜻이니까. 이건 분명 반가운 변화다.
다만 여기에는 저작권과 신뢰의 문제가 함께 따라온다. 초기에는 "이게 합법인가?" "누구의 그림을 학습한 거냐?"가 앞에 섰고,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의 분기점이 생겼다. 결과물로만 승부하려는 사람들과, 과정과 출처, 수정과 책임을 포함해 '작업의 정당성'을 설계하려는 사람들. 툴이 쉬워질수록, 이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결국 만화를 좋아했고, 만화를 많이 읽어온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툴은 '만드는 법'을 도와주지만, 만화는 '읽히는 법'을 알아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컷을 어디서 끊어야 긴장이 생기는지, 말풍선의 위치 하나가 시선을 어떻게 흐트러뜨리는지, 한 장면을 굳이 그리지 않아도 독자가 상상하게 만드는 여백이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은 툴을 만져본 시간보다 만화를 읽고, 분석하고, 좋아해 온 시간에서 나온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재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 기준을 가진 사람은 이미 수많은 만화를 읽으며 "이 장면이 왜 좋았는지", "여기서 왜 마음이 멈췄는지"를 몸으로 기억해온 사람들이다. 툴이 쉬워질수록 전문성은 흐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는다. 2026년의 AI툰은 결국 그 지점에서 갈린다. 기술은 평준화되었고, 도구는 널리 퍼졌다. 그래서 이제 남는 것은 작가의 눈, 만화의 언어, 그리고 과정에 대한 책임이다.
김한재 교수는...
강동대학교 만화웹툰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한재 교수는 세종대학교 멀티미디어애니메이션전공으로 석사, 상명대학교 감성공학 박사를 받았다. 교과서만화(1995)> 학습만화가로 데뷔했으며, 애니메이션산업백서, 만화산업백서, 캐릭터산업백서 집필진으로도 활동했다.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산업과 콘텐츠 이야기를 풀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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