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장 시간'이라는 한계를 가진 금융 시장 거래 시스템이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연중무휴 구조로 재탄생하고 있다. 올해 초 발생한 중동 갈등 국면 속 블록체인 기반 파생상품 거래 플랫폼 주말 거래량은 급등세를 보여 시장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 환경을 넘어 주체까지 바꾸고 있다. 기존 인간 중심이었던 금융 시장 주체는 최근 블록체인과 결합된 인공지능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인공지능이 경제 효율성 측면에서 인간을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금융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가 미래 경쟁력 유지를 위해 디지털자산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기반구조)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통 금융사의 블록체인 시장 진출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래에셋그룹이 코빗 지분을 대거 인수하며 디지털자산 전략을 강화했고, 두나무와 하나금융그룹은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기술 검증을 완료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마스터카드가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을 인수하며 결제 네트워크 고도화에 나섰다.
▲사진=openaccessgovernment
업계는 전통 금융사의 대응과 투자가 향후 블록체인 시장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결제 기업인 비자(Visa)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자산이 기존 결제 구조를 대체하기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맞게 보완 및 확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4시간 금융 시대' 개막 '돈은 잠들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는 월스트리트의 오랜 격언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금요일 오후 5시면 문을 닫고, 주말에 일어난 지정학적 갈등에 무력했던 금융시장은 블록체인 기반 거래 플랫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최근 탈중앙화거래소(DEX)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 급증했던 원유 기반 무기한 선물 거래는 금융 시장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탈중앙화거래소란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중앙 기관 없이 사용자끼리 직접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의미한다. 지난 2월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주말 사이 고조되던 시기에 '하이퍼리퀴드'에서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파생상품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금성 가상화폐(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 파생상품 일일 거래량은 약 17억 달러(한화 약 2조 5,153억 원)까지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유동성을 넘어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도 블록체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가격 발견' 기능은 자산 시장에서 자산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적정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 미국 제이피모건(J.P.Morgan) 투자은행 분석진은 3월 주간 보고서를 통해 중동 지정학적 갈등 이후
자산 가격 형성 과정인 '가격 발견' 구조가 전통 금융에서 블록체인 시장으로 이동하는 배경에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시장의 경우 전통 금융과 달리 연중무휴 열리기 때문에 지정학 위험성, 정책 변수, 거시경제 이벤트가 즉각적으로 자산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미국 제이피모건(J.P.Morgan) 투자은행은 "시장 시간 외에 전통 자산을 거래하려는 수요가 블록체인 기술 기반 파생상품 거래소로 향하고 있다"라며 "'하이퍼리퀴드'와 같은 탈중앙화거래소가 비(非)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함께 설계하는 무인 금융 블록체인은 인공지능과 결합하며 금융 시스템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거래 플랫폼에서 시작된 전통 금융의 변화는 이제 시장의 구조를 넘어 주체의 변화로까지 확산되는 흐름이다. 현재 금융 환경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거래와 인공지능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시장 주체도 변화하고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거래를 수행하고, 결제와 자산 이체까지 처리하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거래는 단순한 자동매매를 넘어 자율적 의사결정 단계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 사진=istockphoto
예컨데 한국은행은 지난 2025년 12월 사용자 요구에 따라 인공지능이 상품과 서비스를 탐색하고 구매까지 실행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 서비스에 '예금 토큰'을 결제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검증한 바 있다. '예금 토큰'이란 은행이 발행하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으로, 실제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자산이다. 물론 인공지능 기반 거래의 자율성과 속도도 위험성을 갖는다. 알고리즘 간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가격 변동, 시스템 오류, 그리고 책임 소재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결 과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결합이 금융 시장의 주체를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수천 명의 트레이더와 백오피스 인력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던 전통 금융가의 '규모의 경제'가 '알고리즘의 효율성' 앞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아크 인베스트먼트(Ark Investment) 자산운용사의 캐시 우드(Cathie Wood) 최고경영자는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경제적 주체로 블록체인에서 직접 거래하는 시대가 오면, 전통적인 자산 운용사의 인적 네트워크 기반 영업 모델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업 재무 인프라도 약진 기업 재무 환경도 블록체인 기술 발전과 함께 전통 금융 시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과거 현금을 주거래 은행에 예치하고 안정적인 이자를 받던 기업 재무 방식은 블록체인 인프라 위에서 직접 자산을 굴리며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엑스알피' 가상화폐 발행사이자 핀테크(금융 기술) 기업인 리플(Ripple)이 전 세계 금융 책임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신 설문조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디지털자산을 도입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가상화폐 자산을 비축 중인 기업의 경우 단순 보유를 넘어 적극적인 운용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보유 디지털자산을 대출하거나, 유동성 풀에 공급하며, 옵션 전략을 통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재무 전략 변화는 은행 산업에 예금 이탈 가능성 등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난다. 글로벌 결제, 환전, 자금 운용을 블록체인 기반구조에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금융 업계 리더 72%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디지털자산 솔루션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사진=리플)
물론 기업의 디지털자산 운용 전략에도 위험성은 존재한다. 디지털자산 가격 변동성, 기술적 취약점, 규제 불확실성 등은 여전히 보완돼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점차 은행 중심의 전통 금융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며 미래 금융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신호로 평가된다.
협력부터 인수까지 융합 본격화 블록체인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국내외 주요 전통 금융 업체의 시장 선점을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규제 환경이 점차 명확해지고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전통 금융사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 미래에셋그룹이 비금융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코빗 가상화폐 거래소의 보통주 2,690만 5,842주를 약 1,334억 8,000만 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취득 후 미래에셋컨설팅의 코빗 지분율은 92.06%로 알려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미래에셋그룹의 코빗 인수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강조해 온 '미래에셋 3.0' 전략의 일환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미래에셋 3.0'은 인공지능과 디지털자산을 전통 금융 시스템에 융합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미래에셋그룹의 중장기 비전이다.
▲ 코빗
업비트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사인 두나무는 하나금융그룹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송금 서비스 기술검증(PoC)을 완료했다. 양사의 기술검증은 하나은행 국내외 지점 간 기존 국제금융통신망(SWIFT) 방식으로 주고받던 송금 전문을 두나무가 개발한 레이어2 블록체인인 '기와(GIWA)체인' 상의 블록체인 메시지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결제 대기업인 마스터카드(Mastercard)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업체인 비브이엔케이(BVNK) 18억 달러(한화 약 2조 7,054억 원) 규모 인수 소식이 발표됐다. 비브이엔케이의 기술로 자사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를 보완해 국경 간 송금, 대금 지급, B2B(기업 간 결제) 및 P2P(개인 간 결제) 등 새로운 활용 사례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마스터카드의 입장이다.
결제 속도 개선 등 구조적 변화 시급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자산이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는 가운데 전통 금융사들의 '빠른 변화 적응'과 '전략적 투자'는 미래 시장 입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 환경이 명확해지고 기술적 인프라가 성숙해짐에 따라 디지털자산 기반 금융 서비스 기존 은행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결제 기업인 비자의 아시아태평양 디지털 커런시 총괄은 지난 2월 비자코리아가 개최한 미디어 세션에서 현금성 가상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과 함께 결제 구조가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견해였다.
▲ 비자
니신트 상하비(Nischint Sanghavi) 비자 아시아태평양 디지털 커런시 총괄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결제 구조를 대체하기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맞춰 보완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속도 개선을 넘어 결제 시스템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경우 지난 1월 '토큰화 증권' 및 블록체인 결제 관련 플랫폼 개발 소식을 공개한 바 있다. 개발을 통해 24시간 운영, 즉각적인 결제, 달러 금액 기준 주문, 스테이블코인 기반 자금 조달 등의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설명이었다. 린 마틴(Lynn Martin)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사장은 "당사는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장 운영 방식을 혁신해 왔다"며 "독보적인 보호 체계와 높은 규제 기준을 기반으로 신뢰와 최첨단 기술을 결합한 완전한 블록체인 솔루션으로 업계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과거 투기 자산의 실험적 무대로만 여겨졌던 블록체인 기술이 전통 금융을 위협하고 재편하는 핵심 생태계로 성장하고 있다. 블록체인 시장이 기술, 보안 등 과제를 극복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과 안정성을 확보해 미래 금융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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