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버들치를 위한 방생 소나타.

행당산백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1.19 13:56:21
조회 87354 추천 113 댓글 406
  현재 이사와서 살고 있는 동네엔 조그만 개천이 하나 흐른다. 이름은 성북천(또는 안암천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더라). 서울에서 흔히 보이는 도심하천들과 다를 바 없는, 조그맣고 더러운 하천이지만 다른 도심하천들과 다를 바 없이, 상당히 많은 수의 버들치(그리고 붕어와 잉어)가 살고 있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근데 어느 날 길을 지나다니다 보니 개천 옆에 이런 말이 적힌 표지판이 있더라. "성북천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 





  표지판이 붙은 뒤로 한 달쯤 지난 오늘. 유난히 추운 날씨에 개천이 얼지 않았을까 해서 개천 쪽을 바라보니, 이게 웬걸. 하천은 전혀 얼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 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49228a27344af.jpg
  그저 위 사진처럼, 하천에 물이라곤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하천 가장자리의 콘크리트 제방까지 물이 꽉 차 있었는데. 그저 지금은 조그만 웅덩이 한둘이 남고, 하천 가운데엔 붉은 깃발만 꽃혀 있고. 그러다 문득 예전에 봤던 표지판이 생각났다. "성북천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



49228a27d2769.jpg    
아마도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상류쪽에서 흘러오던 물을 막아 하천에 물을 통하지 않게 한 듯하다. 하천의 물이 완전히 말라붙은걸 보면 그 목적은 쉽게 달성한 듯. 하지만 그렇다면 버들치들은?! 그 많던 버들치들은 어디로 갔을까. 해서 보니 다리의 기둥 부분 패인 곳에 아직 웅덩이가 조금 남아있더라.




  고기들이 무사한지 보기 위해 다리 위쪽으로 가서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웅덩이엔, 고여있는 물보다 더 많아보이는 수의 버들치(와 붕어, 잉어)들이 산소가 부족해서 수면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지. 저대로 두면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전멸할 것이라는건 불보듯 뻔한 일. 구해줘야 된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거 원 어지간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보니 쉽게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가 자가용이라도 있다면 통속에 슥슥 건져서 넣은 뒤에 차타고 슥 청계천에 가서 놔주고 올텐데, 이거 뭐 가진거라곤 두 다리뿐이고. 몸은 피곤하고. 그래서 결국 보고만 있다가 용두동에서 클리너새우나 한마리 데리고 왔다. 다녀오는 길에 써놨긴 하더라. "하천의 물고기들은 공사 전에 상류로 옮겨두겠습니다" 라고. 근데 보니 이미 공사하고 있던데. 고기들은 옮겨주긴 커녕 조그만 웅덩이에서 헐떡대고 있던데. 만일 여름이었다면 이미 다 죽었겠지. 증발속도도 빨라서 물도 지금보다 더 적었을테고, 수온이 높아지면서 용존산소량은 더 줄었을테고, 고기들의 신진대사가 지금보다 활발해서 산소도 부족하고 물도 금방 오염되었을 테니까.




  그러곤 집에 와서 클리너새우를 물맞댐해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영 찝찝하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토종어 키우는 사람이고, 그런걸 떠나서도 가만 두면 곧 죽을 생명이 수천마린데, 그냥 가만 두고 있자니 영 꿈자리가 사나울거같다. 그래서 결국 울 아줌마를 소환해서 도움을 요청한 뒤, 족대와 채집통을 들고 개천으로 향했다.




49228a2883938.jpg 

49228a2949ac2.jpg 

  이거 뭐 성북동 비둘기도 아니고, 성북천 버들치들이 떼거지로 모여있다. 그래도 구하겠다고 온 길인데, 그런걸 알 리 없는 녀석들은 그저 혼비백산하며 구석만 찾더라. 사진으로만 봐도 무섭도록 많은데,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한 10배정도 무서워 보인다. 하지만 쟤들이 더 무섭겠지.




49228a2962b55.jpg
  채집통에 물부터 채워넣은 후, 족대로 아주 슬그머니 한번 뒤져봤다. 근데도 고기가 저만큼. 어림짐작으로 한번에 100여마리정도 떠진 것 같다. 죄다 채집통에 집어넣었다.



49228a2b59eeb.jpg
  한번은 족대에서 채집통으로 옮기다가 실수로 바닥에 확 부어버렸다. 빨리 다시 집어다 넣어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몇마리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다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이지. 불쌍한 녀석들. 구해준다고 나선게 괜히 죽이기만 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49228a2baff9c.jpg
  족대질 한번에 잉어까지 몇마리 건졌다. 생전 족대질하다가 족대에 걸린 고기가 무거워서 바닥에 내려놔보긴 처음.




49228a2cf07d6.jpg
   저 정도만 건지고 족대질은 그만두었다. 현재만 해도 채집통은 포화상태고, 어림짐작으로 이미 건진 개체수만 1000마리는 넘어보였고, 그 이상은 나도 건사할 자신이 없었고 일단 이 정도 개체수만 줄여주어도 용존산소량엔 여유가 좀 생겨서 남은 녀석들도 꽤나 버틸 수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고. 저 통, 보기보다 큰 통이다. 아마 실제 용량은 15~20리터정도? 거기에 물보다 고기가 많게 채웠으니 뭐.




49228a2dbafb7.jpg



49228a398a7ca.jpg  
일단 집에 데려온 후, 두개 통에 나눠 담았다. 오늘 당장 다른 하천에 방류하기엔 시간도 늦었고, 여력도 없고 해서 집에 데려온 뒤 욕조에서 하루동안 놓아 두었다가 방류해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면 하룻동안 씻질 못하다보니 일단 여유를 두기 위해 씻을 동안만 두개 통에 나눠 둔 뒤 에어레이션을 하는 중이다.




49228a3acfd36.jpg
49228a3aea99c.jpg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욕조에 고기를 옮겨주는 중이다. 윗 사진의 큼직한 녀석은 잉어. 아랫 사진의 큼직한 녀석은 붕어. 그리고 나머지 자잘한 녀석들은 죄다 버들치. 이번에 보인 어종은 버들치, 잉어, 붕어, 참붕어, 미꾸라지였는데, 그중 버들치가 거의 99%를 차지하고 나머지 종들이 아주 약간의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도심하천의 왕자, 버들치.




49228a3ba1cef.jpg  
  바글바글하게 몰려있는 버들치.




49228a3ce1cbc.jpg  
옮기는 과정에 5마리가 사망했다. 불쌍한 녀석들. 모습만 보면 아직도 멀쩡한 것 같은데.




49228a3da6ac6.jpg  
  모두 다 옮겨준 뒤의 모습. 이것도 장관이라면 장관이다. 아래는 보너스로 버들치 군영 동영상.









  결국 쉽지 않게 마음먹고 쉽지 않게 일을 끝냈다. 아직 직접 놓아주는 단계가 남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오늘보다는 쉽겠지. 솔직히 말해서 이게 뭔 난리인가 싶다. 자연형 하천 공사가 자연을 죽이다니. 하천이란 겉보기에는 그저 물이 흐르는 곳이고, 그렇게 물만 흐르면 고기들도 다 쉽게 잘 살겠거니 싶겠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다. 하천 바닥의 모래 곳곳엔 물을 맑게 해주는 박테리아들이 모여있고, 그 모래 위엔 수초가 살면서 박테리아들이 미처 정화시키지 못한 질산염 등을 제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천의 환경을 바탕으로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다시 이 물고기들을 먹는 물오리나 백로들이 하천을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면 이 박테리아들이 죽게 되고, 수초들도 마찬가지로 죽게 되며, 물고기는 당연히 살지 못하게 된다. 자연형 하천 공사라는 명목 하에 짧게는 수십년에서 길게는 수천년에 이르러 만들어진 생태계가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공사 어디에 자연이 있겠는가.
  故 백남준씨가 건멸치를 편지봉투에 넣어 "물고기를 위한 방생 소나타"를 연주한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살아있는 버들치를 통해 "버들치를 위한 방생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도 꽤나 유쾌한 일이었다. 나 말고 다른 토종어를 사랑하는 분들, 또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분들도 이 음악을 같이 합주한다면 더 유쾌한 음악이 되지 않을까. 물론 몸은 좀 피곤하고, 옷은 좀 더러워질지도 모르지만.





출처- 물고기 갤러리

추천 비추천

113

고정닉 7

4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공지 HIT 갤러리 업데이트 중지 안내 [774] 운영자 23.09.18 26347 35
공지 힛갤 기념품 변경 안내 - 갤로그 배지, 갤러콘 [237] 운영자 21.06.14 114136 57
공지 힛갤에 등록된 게시물은 방송에 함께 노출될 수 있습니다. [696/1] 운영자 10.05.18 565498 251
17809 메피스토펠레스 완성 + 제작 과정 [561] 무지개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5 57810 341
17808 야쿠르트 아줌마의 비밀병기 [408] 6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5 64543 966
17807 첫 해외 여행, 일본 갔다온 망가 [185] 불효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4 43453 281
17806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디시인사이드...manhwa [855] 이재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4 76320 1529
17805 7년간 존버한 수제 커피만들기.coffee [223] 끾뀪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3 40006 593
17804 닌텐도 DS로 원시고대 Wii U 만들기 [224] 도박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02 59215 549
17803 계류맨의 수산코너 조행기(스압,움짤) [58] 고정닉이라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30 29836 46
17802 추석 .MANHWA [421] ..김지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9 116299 1988
17801 대충 히로시마 갔다온 사진 [28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8 60119 186
17800 쿨타임 찬거 같아서 오랜만에 달리는 sooc 모음집 [79] ㅃㄹ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7 28379 46
17799 메이플 콜라보 기념 디맥콘 DIY 제작기 [143] 빚값(211.220) 23.09.27 32684 180
17798 깜짝상자-上 [134] 고랭순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6 33837 232
17797 홈마카세) 올해 먹은 식사중에 최고였다 [239] 내가사보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6 54290 297
17796 니끼끼 북한산 백운대까지2 [72] 설치는설치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5 17274 62
17795 어휴 간만에 밤새 sff겜기 만들었네 ㅎㅎ [196] MENY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5 31629 176
17794 GBA SP 수리 및 개조일기 [168] 서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3 35638 194
17793 [스압] 첫글임. 여태 그린 낙서들 [295] Big_Broth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2 36426 306
17792 스압) 올해의 마지막 자전거여행 [74] 푸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2 20147 88
17791 유럽 한달여행 (50장 꽉) [106] 야루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1 26922 106
17790 대충 조혈모세포 기증하고 온거 썰 풀어준다는 글 [254] 사팍은2차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1 28956 493
17789 심심해서 올리는 니콘 9000ed 예토전생기 (스압) [87] 보초운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0 19830 91
17788 이번에 새로만든 고스트 제작기 [168] PixelCa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20 32320 266
17787 더 작고 섬세하게 만드는 종이 땅꾸들 [183] Dika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9 28386 378
17786 고시엔 직관.hugi [222] MERID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9 33846 189
17785 미니 브리프케이스 완성 (제작기+완성샷) [72] 카나가와No.1호스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8 17385 105
17783 일본우동투어 7편 후쿠오카현 (완) [170/1] 모가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8 29689 165
17782 이광수 만난 manhwa [235] 그리마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6 75099 283
17781 지리산 노고단 당일치기 후기 [74] 디붕이(222.106) 23.09.15 23319 50
17779 대보협 Mr.YMCA 대회 참가 후기 [375] 포천시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4 43011 267
17778 (스압)장제사의 이틀 [192] ㅇㅇ(180.67) 23.09.14 33621 298
17777 일본일주 여행기 (完) [133] Ore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3 32703 169
17776 하와이안 미트 피자 [423] 고기왕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3 51210 467
17775 요도(妖刀)슬레이어 (1) [261] 호롱방뇽이(211.178) 23.09.12 44509 115
17774 [폰카] 카메라 없이 폰카만 있던 폰붕이 시절 [132] 여행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2 29057 74
17773 PBP 1200K 후기 - 完 누군가의 영웅 [79] 우치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1 15308 78
17771 단편만화 / 시속 1000km 익스트림 다운힐 [120] 이이공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11 20957 195
17769 KL - 델리 입국 후기 (으샤 인도 여행기) [79] 으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8 20761 65
17768 세트병) 프리큐어 20년 즈언통의 굿즈모음 [405] 신나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8 28309 497
17767 적외선 사진 쪄옴 [96] D75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7 47180 108
17766 싱글벙글 내 작은 정원 [358] 이끼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7 35067 419
17765 일붕이 여름 철덕질 하고온거 핑까좀 [197] ㅇㅌㅊ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6 27711 226
17764 전 특수부대 저격수 예비군 갔다 온 만화 [451] 호공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6 60999 591
17763 전에 주워서 키웠던 응애참새 [758/2] 산타싸이클로크로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5 74648 1729
17762 위증리) 혼자서 하는 스코틀랜드 증류소 여행 [73] 우왕(124.216) 23.09.05 23119 44
17761 세계 3대 게임 행사, 게임스컴을 가보다 (행사편 上) [142] Shikug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4 39372 225
17759 굣코 1/5 스케일 피규어 만들었음 [164] 응응5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4 26825 330
17758 용사냥꾼 온슈타인 피규어 만들어옴 [159] 도색하는망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9.02 33527 315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