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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자랑스런 특전용사들이 승전보를 알려왔다. 서빙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이미 많이 고초를 당하신 정 총장님을 발견해서 모셔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연대 뿐 아니라 수경사 전체가 환호했다. 충정사단 증원 문제를 놓고 육본이 미온적이었던게 기억나서, 일단 수경사 선에서 보고를 마치고 육본에는 사후보고를 올렸는데, 확실한 성과를 거뒀으니 말을 하더라도 체면이 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머지않아 우리 2지역대원들이 개선장군처럼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수경사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두들겨 맞은듯 얼굴이 말이 아닌 총장님은 모두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사령부에 복귀하자마자 인사치레를 생략하고 전화기부터 잡았다.
제일 먼저 통화가 이뤄진것은 9공수여단이었다. 육본측의 애매한 설명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던 9공수여단장 윤 장군은 납치를 당했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총장님의 육성명령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하지만 심각성을 깨닫는 것과,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 - 3군지사에서 차량지원을 받아야 이동할 수 하는데, 이놈들이 도무지 말을 듣질 않습니다. 일단 급한대로 저희 수송부를 동원해서 특전대대 하나를 선발대로 보내겠습니다!]
“알았어, 윤 장군, 내가 3군지사에 직접 연락해서 명령을 내릴테니까, 곧 차량이 올거요. 그때까지 나와 수경사령관 외에는 그 누구의 지시도 듣지 말도록. 알았나?”
일단 제일 시급한 병력증원의 문제를 해결한 뒤, 바로 육본에 전화를 걸었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시간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국방장관이 조금 전에 B2벙커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 총장님 뚜껑이 제대로 열려버렸다. 어떻게 납치되었다 풀려났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보안사놈들의 말장난이 나타난 것이다.
[ - 내가 왜 자네를 연행하라고 지시했겠나. 각하께서도 자네 연행안을 재가해주신 적 없어. 그 놈들이 월권 행위를 저질러서 그 공문서 위조를 한거야. 장난질을 친거야.]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이 전화통화를 통해서 육본의 지휘계통이 정상적으로 복구되고, 보안사측이 명백한 월권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제대로 확인되었다.
이 전화통화를 통해 한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놈들이 21시경 장태완 수경사령관과의 통화를 마친 직후, 1공수를 육본으로 출동시켰다가 육본측이 1공수의 서울 입성을 저지시키고 그들을 회군시킨 것 이었다.
후속조치가 이어졌다. 다른 한강다리들은 전부 수경사의 통제 아래 있었으니 굳이 챙길 필요도 없었지만, 행주대교는 30사단이 담당하고 있기에 육참총장과 30사단장의 전화통화가 이어졌다.
그 다음은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3군지사. 여태 이어졌던 그 어떤 전화통화보다도 짧았고 직설적이었다. ‘지금 당장 트럭을 9공수로 보내지 않으면 전원 반란군 가담자로 간주해서 사살명령을 내려버리겠다’는 분노가 절절 배어나오는 직설적인 명령이 떨어졌고, 저쪽에서도 깨갱 하고 차량지원을 즉각 실시하겠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육참총장 명의로 예하 부대에 이뤄진 마지막 조치는 경복궁에 소재중인것으로 파악된 장성들 전원에 대한 보직해임이었다. 5.16 이래 가장 짧은 순간, 가장 많은 별들이 한순간에 별똥별이 되어 사라졌다.
“자네들 덕분에 살았네. 정말 고마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전화 릴레이가 끝나고 한숨을 돌릴 타이밍이 되자 마자, 총장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태완 사령관과 내게 그런 말을 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다음엔 각자 굳은 악수를 한 번 씩 나누었다.
그것이 12일날 총장님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후 참모총장은 아까 국방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협의한 대로 역할분담을 나눴다. 국방장관은 미 8군으로 이동해 미군측에게 이번 사태 진압에 대한 협조를 얻으러, 정 총장님은 육본 B2벙커로 복귀해 지휘권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기로 했다. 또한, 총장님의 육본 복귀에 앞서서, 이미 수경사와 우리 연대 내에서 취해진 것 처럼, 육본 내 보안부대에 대한 강제 무장해제 및 구금 절차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총장님이 육본으로 무사히 복귀하고, 수경사령부로 그 병력들이 돌아온 때가 2310시. 9공수의 선발대인 1개 대대가 부대 앞에 도착한 것도 그 때 쯤이었다.
병력에 다소 여유가 생긴 우리의 다음 목표는 보안사였다. 서울 내에 가장 많은 실병력과 중화기를 보유한 30단/33단은 여전히 건재했고, 33단에 분산 배속돼있던 전차대대 예하 병력들을 수경사로 불러오려던 시도는 33단장의 저지로 무산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수는 없었다. 전 군의 통신을 감청하며 특이사항을 경복궁으로 전달하고 있을 보안사를 지금 손 봐야, 앞으로 진압작전을 어떻게 치르던 기밀유지가 될 터였다.
수기사나 26사단과 같은 시 외곽의 부대를 서울로 불러들이자는 이야기는 북괴의 남침 가능성을 이유로 미군측과 국방장관이 보다 시간 여유를 갖고 생각해보자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기에 어쩔 수가 없었지만, 장관 및 대통령의 명령을 사칭하며 월권 및 반란행위를 저지른 전두환 일당을 그냥 가만 둘 수 없다는 점 역시 장관과 총장님이 의견 일치를 본 상황이었다. 따라서 반란군이 정신을 차리고 가용 병력을 쪼개서 상황을 악화시키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들이 섞여서, 보안사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었다.
보안사로 9공수 1개 대대와 우리쪽 1, 2지역대가 원정을 나간 직후, 사전애 총장님과 구두로 정해둔 약정된 음어로 출동 상황을 육본측에 보고하자 육본측에서 확인을 해 주며 새로운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주었다.
“1공수랑 30사단이 한판 붙었다니…….”
“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 더 사태가 심해져서, 반란군 놈들이 전방 병력까지 불러오기 전에 빨리 진압을 해야돼.” 사태가 점점 전면전의 양상으로 치달아감을 새삼 실감한 내가 한숨을 쉬자, 수경사령관 장 장군이 그렇게 말하며 빠른 진압을 다시금 천명했다.
“사령관님, 그래도 설마 놈들이 전방병력까지 빼오겠습니까? 북괴군 위험도 있고, 미군측 통제도 받아야지 않겠습니까.” 수경사 참모장 김기택 장군이 전방병력 동원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사령관의 우려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의견을 제시했지만, 내 생각에도 장 사령관의 의견은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의견 표명을 하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낸 사령관님이 그에 대한 대답을 내 놓았다.
“이미 장관 명령이고 대통령 명령이고 다 위조하고 사칭하면서 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저 모지리들이 전방에서 병력 못 빼올 이유가 뭐가 있겠나?”
“사령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들이 사태 초기에 상황 파악한다고 허송세월하던 그 순간에 이미 1공수를 육본으로 보내려다 제지당했다는 점을 보면, 이 녀석들은 사전에 치밀하게 병력동원계획까지 짜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병주 사령관 통제를 받지 않고 저리 날뛰는 꼴을 보면, 3군사령관님이 직접 병력이동을 제지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수경사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 역시 장 사령관의 의견에 동의하며 온건하게 김기택 참모장의 추론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참모들 표정을 봐도, 합수부측은 이제 어떤 소리를 해도 못 믿을 청개구리 취급이 분명해보였다.
“참모장 의견도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네. 상대가 상식적이라면 놈들이 전방병력까지 동원할리가 없지. 하지만, 저 놈들은 이미 상식 밖의 역적놈들이야.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서, 진압작전에 임해야 돼.”
수경사령관이 그렇게 참모들을 다잡고, 참모들 역시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한구석 무전기 앞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보안사에서 교전중이랍니다. 예상대로 놈들의 무장상태가 경미해서, 머지않아 접수할 수 있을거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장 사령관은 들뜨지도, 그렇다고 비관하자도 않는 차분한 태도로 작전지휘에 임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구만. 보안사가 마무리되면, 9공수는 보안사에 잔류하면서 후발대를 기다리라고 하고, 저, 그, 8240연대 예하부대는 계획대로 다시 수경사로 원대복귀 시키도록. 추후 병력 이동은 피아간 상황을 고려해서 조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좋은 뉴스가 지나갔다. 대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으면 둘 중에 무엇을 먼저 들을지 물어보곤 하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겐 그런 선택권을 주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사령관님, 큰 일 났습니다. 특전사가 반란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어떤 자식들이 특전사를 공격한거야?”
“최세창의 3공수로 추정됩니다.”
특전사? 아니 사령관님은 그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1공수도 이미 회군하지 않았냐면서, 예하 여단들은 자신이 확실하게 통제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던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렇게 믿으시고 자식처럼 아끼던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다니…….
이미 30단과 33단에게 배신을 당한 수경사의 경우를 봤을때 짐작을 했어야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설마’ 싶었다. 이유도 있었다. 장 사령관이야 10.26 이후의 혼란기에 부임하여 아직 예하부대 순시조차도 다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 사령관님은 어땠는가.
특전사령관으로 근무하신지 5년차에 접어드시는 분이었다. 휘하 여단장들이랑 알고 지난지도 오래 됐고, 1공수 박희도의 경우는 대간첩작전 실패로 군복을 벗을 판이었던 그를 장래가 기대되는 군인이니 선처해달라며 발벗고 나서서 감싸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휘하 여단장들을 아끼던 분이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죽일놈들…….”
장 사령관이 분노에 치를 떠는 내 어깨를 말없이 두드렸다. 그렇게, 유난히 길었던 ‘79년 12월 12일의 밤이 지나가고,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 날이 13일로 바뀌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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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까지 올리기엔 길이가 애매해서 또 글자제한으로 짤릴거같아 7장만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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