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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장편연재] 즐거운 토모 10. 노름 1화

플스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06 0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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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정리글 : https://gall.dcinside.com/m/lastorigin/1596905


이전화 : https://gall.dcinside.com/m/lastorigin/1808783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회자와 사람들의 함성. 그것들은 뒤섞여서 거대한 백색소음을 자아냈다. 수많은 말의 집합체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소리가 되어 들릴 뿐이었다. 처음에는 신경쓰일 정도의 소리였지만 이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배경음밖에 되지 않았다.

마츠시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토모를 바라보았다. 천으로 가려진 탈의실이었지만 그 천에 토모의 실루엣이 비치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씁쓸한 눈빛으로 토모가 있는 탈의실을 보고 있었다.

이곳은 둘이 이전에도 온 곳이었다. 신쥬쿠에 있는 지하투기장. 바이오로이드를 싸우게 하고 그곳에 돈을 걸고 피튀기는 싸움을 즐기는 곳이었다.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토모에게 세상의 어두운 곳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토모는 투기장에서 싸우겠다고 했다. 어째서.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츠시타가 토모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토모에게 슬픈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어쩌면 토모에게는 그런 운명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고 평생 싸울수 밖에 없는 운명말이다. 그 생각만 하면 마츠시타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회색으로 가득한 방에 회색 연기가 퍼졌다.

“마츠시타.”

토모의 말이었다. 마츠시타는 인상을 쓰며 토모가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경쓸 필요없어.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그 말을 들으며 마츠시타는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넌 선택하지 않았어. 우리에게는 선택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어. 다 내 탓이야. 내가 너무 자만했던 거지. 나 때문에 네가 위험해지는 건 바라지 않아. 위험한 건 나뿐이면 충분한 거잖아.”

결국 모든 일은 마츠시타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책임 역시 마츠시타에게 있었다. 토모에게 있어서 모든 일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마츠시타는 나를 구해줬어. 마츠시타를 만나기 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름조차 없는 바이오로이드였어. 하지만 마츠시타는 나를 구해줬어. 나를 토모라 불러줬어. 내게 웃어줬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츠시타에게 큰 빚을 진 거야.”

빚. 그럴지도 모르지만 마츠시타는 이런 식으로 상환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녀가 그러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들 그녀에게 그런 일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츠시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걸 알기에 그녀는 무력하게 줄담배를 필 뿐이었다.

“마츠시타. 요정에 있을 때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있었어. 어느 영화에서 보모 역할로 나왔었다던가 하는 바이오로이드였어. 그 바이오로이드가 내게 해준 옛날 이야기가 있어.”

토모는 추억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 할아버지가 있었어. 나이가 들어 힘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였지. 그 할아버지는 길을 가다가 한 학을 보았어. 사냥꾼들의 우리에 갖힌 학이었지. 할아버지는 그 학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 ‘어찌 가여운 학인가.’ 할아버지는 학을 구해주었어. 할아버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잃을 것도 없었지.”

마츠시타도 아는 이야기였다. 조금은 이야기가 달랐지만 전래동화란 언제나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학을 구해주었어. 사냥꾼들의 보복이 두려웠지만 할아버지는 상관이 없었어. 늙은 할아버지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거든. 학은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도 없이 어디론가로 날아갔어.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어.”

마츠시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토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아는 토모에게 그 이야기는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어.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마츠시타가 생각하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었지. 여인은 할아버지를 보살펴주었어. 성심성의껏, 정성껏. 여인은 할아버지를 온몸을 다 바쳐서 도와주었어. 어느날은 할아버지에게 돈이 없는 것을 보았어. 여인은 할아버지에게 천을 주었어. 그 천은 여인만큼이나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천이었어. 여인은 할아버지에게 그 천을 팔아 돈을 벌게 해주었어.”

“알고보니 그 여인은 학이었던 거지.”

마츠시타가 끼어들었다. 토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은혜 갚은 학. 자신 역시 은혜를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맞아. 학은 은혜를 갚기 위해 여인으로 변장하고 할아버지에게 찾아왔던 거지. 그 바이오로이드가 해준 이야기는 여기까지였어. 우리는 일을 하러 나가야 했고 그 바이오로이드는 다시는 보지 못했어.”

씁쓸한 이야기였다. 마츠시타가 피우는 담배가 달게 느껴질 정도로 씁쓸한 이야기였고 씁쓸한 세상이었다.

“토모. 너는 은혜를 갚을 필요가 없어. 여기서 벗어나 너 혼자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어. 나는 내가 받을 책임을 받는 거고.”

“마츠시타. 학은 도망친다 해도 사냥꾼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며 토모는 탈의실 천을 걷었다. 마츠시타는 토모를 올려다보았다.
토모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JK처럼 보이면 JK처럼 입어야지.’ 라고 야마다가 말했다. 악취미였다. 이제부터 싸우러 갈 사람에게 교복이라니. 밝은 개나리색 블레이저에 흰색 미니스커트, 오버니삭스를 입은 전형적인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이제 가방까지 들려주면 학교로 가도 위화감이 없을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한 여자아이가 싸워야 한다니, 마츠시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토모.”

마츠시타는 담배 꽁초를 대기실 구석으로 던지며 말했다.

“정말로 싸울 거야?”

토모는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부츠를 신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졌어. 나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를 위해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 뿐이야."

대기실 밖의 소음이 거세지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싸우는 건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토모.”

토모에게 말하기 전에 마츠시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이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이기고 돌아와.”

마츠시타는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대기실의 문고리를 붙잡았아.

“토모. 이 문을 열면…”

“마츠시타.”

토모는 마츠시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알아. 하지만 난 결정했어. 싸울 거야.”

마츠시타는 그런 토모를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가 함성이 쏟아져 들어왔다. 뒤로 넘어갈 것 같은 환호성이었지만 토모는 주눅들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천장에는 등 하나 없었다. 오직 경기장에서 눈부실정도로 밝은 빛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토모의 뒤에서 걸어가는 마츠시타의 눈에는 토모의 검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토모가 어두운 복도를 빠져나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환호와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츠시타는 그림자의 경계 뒤에 멈추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토모를 바라보았다.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옥타곤에 오르자 해설자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등장하는 것은 우리 투기장의 신성! 다치코!

토모가 아닌 다른 이름인 것은 마츠시타의 부탁이었다. 토모라는 이름을 수많은 사람이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의미가 비슷한 것은 무의식의 탓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관객석에서 어중간한 크기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일종의 의리 환호라도 되는 걸까. 바람잡이였을까. 알 수 없었지만 그리 좋은 환영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전국민이 사랑하는 마법소녀 모모! 물론 모모도, 시로우사기도 아닙니다! 그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마츠시타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토모가 보는 것을 어깨너머로 본 그 드라마. 그 잔혹한 드라마.

-뽀끄루 마왕!

해설자의 외침에 사람들은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경기장 반대편에서 검은 옷을 입은 갈색 긴 머리의 여자가 걸어왔다. 누가봐도 남사스러운 복장은 낯이 익었다. TV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TV 방송의 인기 캐릭터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토모의 때와는 천차만별이었다.

마츠시타는 야마다가 앉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토모가 세번의 싸움 전부 이기는 것에 걸었어. 무려 천 오백배나 되는 배당이지. 듣도 보도 못한 니세가 세번이나 목숨을 건 싸움에 이긴다고? 말이 안되잖아. 하지만 나는 내 고블린을 이긴 저 니세를 믿는다.’

야마다의 말이었다. 믿는다. 만일 토모가 이기지못하면 토모는 경기장에서 죽은 목숨일 것이고 마츠시타는 도쿄만에서 죽을 목숨일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그런 일만은 없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토모를 바라보았다. 마츠시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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