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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후회 2

검은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2.28 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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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마음을 안고 병실로 돌아온 하나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침대 옆 협탁까지 걸어갔다. 앙겔라가 제 정체를 눈치챌까봐 달고 있던 음성변조 장치를 떼어내 협탁 위에 올려놓고 병실을 나서기 직전에 맡겨진, 보라색 꽃 화분도 같이 올려두었다.

앙겔라에게 매일같이 마음을 고백하던 시기, 하나는 꽃말을 외우는 일에 한창 재미를 들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건네받은 상자 속, 화분에 피어있는 작은 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협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수북한 편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전부 앙겔라에게서 온 편지들이었다. 편지 봉투 귀퉁이는 모두 하나같이 닳아 있었다. 밤마다 수도 없이 꺼내어 읽은 탓이다.

방금 전 건네받은 편지 봉투를 만지작거리던 하나는 한참을 망설였으나, 결국 열어보지 않고 협탁 속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읽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던 탓이다.

하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들을 수 있었던 앙겔라의 진심 때문에 6개월간 쌓아올렸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왜, 어째서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다짐할 때마다 제 마음을 이리도 세차게 흔들어 놓는지.

심란한 마음을 안고서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는 뻔했다. 하나가 이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아는 건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앙겔라가 원망스럽니?”

그런 질문과 함께 들어온 것은 아마리 아나 사령관이었다. 반 년 전에도 들었던 질문이다. 그 당시 하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에까지 제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간 그녀가 원망스럽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비와 박애의 대명사인 메르시이자 전장의 천사였지만, 제게만은 한없이 잔인한 사람이라고 울분을 토해냈었다.

그러나 오롯이 앙겔라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테러가 일어난 날, 들이닥치는 검은 차량으로부터 앙겔라가 저를 감싸 안는 것을 느끼고서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녀를 보호한 것은 다름 아닌 저였으니까.

앙겔라는 본인이 하나를 감싸고 혼자 다쳤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나는 차량에 부딪혀 무너진 건물 벽에 깔려 큰 부상을 입었고, 때문에 집중 치료실에 1달가량이나 입원해 있어야 했다. 다리 한 쪽 뼈가 완전히 바스러지는 바람에 철골을 심어야 했고, 그 덕에 아직도 오른다리가 불편했다. 조만간 철골을 빼고 교정을 받으면 치료가 끝날 테지만, 그런데도 완치가 될지는 미지수였다. 아마 몹시도 힘든 재활 치료를 겪어야 하리라.

집중 치료실에서 의식을 차린 하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아나였다. 하나의 보호자로 수술에 동의한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저를 찾는 앙겔라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별다른 부상 없이 무사히 아시아 지부로 갔다고 했다. 시력을 잃어 불안한 상태의 앙겔라가 더한 죄책감과 충격을 받게 할 수는 없었다며 아나는 미안하다 말했다.

하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고, 환자는 마땅히 안정을 취해야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중치료실에서 나와 일반병실로 옮기던 날, 앙겔라를 원망 하냐고 묻는 아나에게 그렇다고 말한 것은 결코 충동적인 마음에서 한 말이 아니었다.

저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 거였다면 무사하기라도 할 것이지, 하필이면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언제나처럼 완전무결한, 티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남아있었으면 마음껏 미워하기라도 했을 텐데……. 하나는 고개를 조용히 저으며 아나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요.”
“간병을 맡긴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고?”
“처음에는 그랬죠.”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 한 달 즈음 시간을 보냈을 때, 다시 병실을 찾은 아나는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하나에게 앙겔라의 간병을 부탁했다. 다리에 철골을 박은 환자에게 다른 환자의 간병을, 그것도 다치게 된 원인인 앙겔라의 간병을 맡아달라니. 어이가 없어 화도 내지 못하는 하나에게 아나는 한 뭉치의 봉투를 건넸다. 앙겔라가 의식을 찾고 난 뒤부터 매일매일 하나에게 쓴 편지였다.

편지를 읽어 볼 생각도 않고 한 쪽으로 밀쳐놓는 하나를 보며 아나는 말을 이었다. 오버워치의 간부인 앙겔라의 간병은 보안상의 문제로 아무나 맡을 수 없고, 아닌 듯 해보여도 은근히 사람에게 벽을 세우는 앙겔라를 옆에서 마음 편히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나는 아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앙겔라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아나는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러나 일주일 후 아나가 다시 하나의 병실을 찾아왔을 때, 앙겔라가 수술을 받기 전까지만이라는 조건을 달고서 하나는 간병을 허락했다.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전해주셨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던 거죠?”
“…그래, 그랬단다.”
“그럴 줄 알았어요. 편지를 전해준 사령관님도 원망스럽고, 뻔히 보이는 꾀에 넘어간 제 자신도 원망스럽고……. 이제 진짜로 끝이라고, 그간 박사님한테 도움 받았던 일들 이걸로 퉁치자고 마음 독하게 먹고 수락한 거였는데…….”

간병을 맡기는 했지만, 괜히 미운 마음에 퉁명스럽게 굴어도 선하게 웃는 얼굴로 저를 대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그래, 당신은 얼굴도 모르는 간병인이 이유 없이 못되게 굴어도 웃음으로 돌려주는 사람이지. 당신이 얼마나 착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인지는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어. 당신이 내게 베풀었던 작은 친절은 특별한 게 아니었고, 결국 난 당신에게 있어 의미 있는 사람은 되지 못한,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을 뿐이지. 그런 생각이 속을 할퀴었다.

시시 때때로 1주념을 기념해 데이트를 신청했던 날에 대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앙겔라를, 몇 시간 동안이나 호텔 레스토랑에 홀로 앉아 기다렸던 그 날. 결국 레스토랑이 문을 닫을 때까지도 앙겔라는 오지 않았고, 실망에 휩싸여 향한 루프탑바에서 만났던 앙겔라의 옛 연인.

속상한 마음에 독한 술을 연신 들이키던 하나의 앞에 불쑥 나타난 남자는, 하나에게 마티니를 한 잔 시켜주고선 결국 너도 나와 같은 신세구나, 라는 의미 모를 말을 했었다. 경계심과 불쾌감이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잘 생긴 남자는 입 꼬리를 들어 올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앙겔라와 전에 사귀었던 사람이라고.

안 그래도 앙겔라에게 바람 맞아 심기가 불편했던 하나는, 오버워치 유럽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수상한 사람이 아님을 밝히는 남자를 무시했다. 그러나 하나가 대꾸를 하든 말든 남자는 혼자 잘도 떠들어댔다. '그' 메르시가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와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듣고 얼마나 갈지 궁금했다고. 생각보다는 오래 갔지만 결국은 메르시의 잘난 소명의식에 지쳐 헤어지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냐고.

울컥한 하나는 앙겔라는 일이 있어 늦는 것뿐이라고, 이런 일로 헤어질 리가 없지 않냐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남자는 어차피 시간문제일 거라고 혀를 찼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가 익히 아는 몇몇 사람들의 이름-레나와 파라가 언급되자 어느새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을 읊으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말했다.

예쁘고 친절한 앙겔라에게 능히 과거의 연인이 있을 거라 짐작은 했었지만, 그게 레나나 파라였을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레나는 그렇다 쳐도, 그 인내심 대단한 파라마저도 앙겔라와 헤어졌을 정도면 저는 안 봐도 뻔 하겠단 생각마저 들고 말았다.

남자는 입술을 짓씹는 하나에게 결국 너도 나와 같은 신세가 될 거야,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홀로 남겨져 술잔을 비우며 하나는 남자의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꾸만 앙겔라에게 있어 저는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대로 계속 사귀어봤자 남자의 말대로 저만 혼자 상처받고 끝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술잔을 비울 때마다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에게 암시하듯 중얼거렸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깨끗하고 청결한 병실에서 앙겔라를 바라보는 내내 떠오르는 비참한 생각들에 못 이겨, 하나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앙겔라가 수술을 받기 전까지 도와주는 것으로 모든 미련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4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앙겔라가 매일같이 창가의 아네모네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게 되자 처음의 다짐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답장 한 통 오지 않는데도 매일매일 꼬박꼬박 밤새워 써 내린 편지에는 온통 제 안부를 묻는 말과 염려 섞인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안 읽었으면 모를까, 저녁이 다 되어 제 병실로 돌아온 이후 밤을 새워 편지지 네 귀퉁이가 너덜너덜할 때까지 읽는 바람에 이제는 숫제 그 내용까지 거진 다 외워버린 하나가 앙겔라를 계속해서 원망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앙겔라가 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지켜보는 제가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순간 앙겔라에게 받았던 상처를 그냥 덮기로 마음먹었다. 들쳐봐야 저만 아픈 일들, 모두 다 가슴속에 묻고 떠나기로 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앙겔라가 털어놓은 속마음은 그 결심마저도 흔들리게 했다.

“정말로 내일 떠날 생각인 게야?”
“어차피 수술 받는 날까지만 간병해드리기로 약속한 거잖아요.”
“날짜가 문제가 아니잖니.”
“…….”
“앙겔라가 깨어나면 가장 먼저 하나 너부터 찾을 텐데.”

하나는 말없이 침대 시트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굳이 아나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바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상관없다는 말했을 텐데 앙겔라의 속마음을 들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쉽게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하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내들었다.

“저 너무 애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네가 애 같다니?”
“박사님이 저렇게 미안해하고, 또 저를 찾는 걸 보니까… 이대로 떠나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거든요. 박사님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저를 생각하고 그리워할 수 있게요. 에이, 유치해.”
“네가 정말로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렴.”

잔잔하게 웃으며 제게 대꾸해주는 아나를 보고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령관님은 저랑 박사님을 화해시키려는 거 아니셨어요?”
“그러면 좋겠지만, 하나 네가 정말로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박사님이 상처받는다고 해도요?”
“그래.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이잖니.”
“그치만 사령관님은 박사님을 걱정해서 저한테 박사님의 간병을 맡기신 거잖아요.”
“어느 정도는 그랬지. 하지만 걱정한 건 앙겔라만이 아니란다. 네가 앙겔라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떠나지 않기를 바랐기에 간병을 부탁한 거야. 혼자 삭히기만 하면 마음에 병이 들기 쉽거든. 간병을 계기로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속에 있는 것들 좀 털어냈으면 했단다.”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간 나눈 대화라고 해봤자 앙겔라가 일방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고 저는 그저 짧게 짧게 대답하는 것이 다였다. 따라서 아나가 바랐던 '대화'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앙겔라의 이야기를 듣고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렸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하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아나가 말을 이었다.

“앙겔라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든 아니면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을 하든, 무슨 선택을 하든지 간에 네가 행복해지는 것만 생각하렴. 그게 너에게도 앙겔라에게도 가장 좋은 일이 될 게야.”

쉬운 듯 해보이면서도 어려운 말에 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나가 떠난 후, 하나는 침대에 누워 아나의 말을 곱씹었다.

행복해지는 것. 앙겔라의 곁을 떠나기로 한 것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그러나 아시아 지부로 떠나는 게 제가 행복해지는 일인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행복했던 순간은 과거에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길고 긴 구애 끝에 제 애타는 마음을 앙겔라가 받아주었던 그 순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복잡한 마음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데 협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보라색 스타티스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 꽃잎이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고 있는 작은 꽃을 보자 속이 더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앙겔라가 제게 꽃을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 건네주라고 했으니, 자칫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 선물을 아무 의미 없이 준비했을 리가 없으니 꽃말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꽃이 담긴 화분을 건네받은 순간 더 이상 마음의 벽조차 세울 수가 없었다.

눈으로는 꽃잎 윤곽을 따라 그리며 제 행복이 무엇일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어쩌면 앙겔라의 속마음을 듣는 순간 이미 답은 내려졌던 걸지도 몰랐다.
은은하게 퍼지는 스타티스 향을 맡으며 하나는 눈을 감았다.

***

물속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마취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탓인지 몸이 나른했다.

수술은 다행히도 무사히 끝났고, 의사가 사흘 후 붕대를 풀자고 했기 때문에 앙겔라는 여전히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어제까지 저를 보살펴주었던 간병인의 존재가 새삼 와 닿는다. 괜히 번거롭다는 생각에 간병인을 따로 구하지 않은 탓이다. 목이 말라서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몸에 힘을 주어 상체를 들어 올리는데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등을 받쳐서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게끔 도와주었다. 간병인이었다. 어제로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었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 앙겔라에게 간병인이 물었다.

“목마르세요?”
“아, 네…….”

앙겔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 듣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아닌, 듣기 좋게 높은 미성은 몹시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마취가 덜 풀렸기 때문인지 청각에도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다리 한 쪽을 약간 끄는 듯한 발소리는 분명 간병인의 그것인데,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마치, 그러니까 꼭, 아이인 것 마냥.

멍한 정신으로 물 잔을 건네받았다. 제 손에 물 잔을 쥐어주는 손길은 평소의 장갑이 아닌 맨손이었다. 사람 체온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지만 어쩐지 그 온도마저 익숙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물을 코로 마시는지 입으로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퍼즐이 한순간에 맞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허겁지겁 붕대를 풀어헤쳤다. 그러나 채 눈을 뜨기도 전에, 부드러운 손바닥이 제 두 눈을 감기는 것을 느끼고서 몸이 굳고 말았다. 틀림없었다. 아이다.

“눈 뜨지 말아요. 의사가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예민해진 귓가에 조용히 숨을 내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앙겔라는 무어라 입을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번만 저를 만나러 와준다면 그간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진심을 가감 없이 내비치리라 다짐했는데, 막상 아무런 예고도 없이 현실이 들이닥치자 입술만 달싹이는 게 고작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절박한 탓에 오히려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앙겔라는 더듬더듬 손을 올려 제 눈을 덮고 있는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저보다 살짝 높은 체온은 손의 주인이 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앙겔라는 혹시라도 붙잡은 손이 빠져나갈까봐 손가락 사이사이로 아이의 손가락을 단단히 얽었다.

지난 4개월 동안 제 곁에서 머물며 저를 보살펴 준 이가 다름 아닌 아이였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앙겔라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하나…….”
“혼자 생각 많이 해봤어요.”

그러나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아이가 말을 잘랐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아이의 목소리는 몹시도 차분했다. 앙겔라는 술렁이는 가슴을 안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지만, 곧 이어지는 말에 서둘러 고개를 저어야 했다.

“난 박사님이 좋고, 박사님도 내가 좋다고 하는데 왜 항상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뒷전으로 밀려날까. 박사님은 그냥 내가 좋다고 매달리니까 어쩔 수 없이 날 받아준 게 아닐까. 그러니까 박사님이 날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난 박사님에게 있어 별 의미 없는 사람인 게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아요. 하나, 그건 오해예요. 전 하나를 한 번도 그렇게 여긴 적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점점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한국에서 옴닉사태가 일어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부모님 장례식은 끝나 있었고……. 세상에 저 혼자 남은 것 같은 거예요. 뭐, 실제로도 그랬지만요.”

이어지는 하나의 말에 앙겔라는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큰일을 겪은 아이를 가장 옆에서 챙겨주었어야 할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제 생애를 통틀어 가장 바빴던 그 시기에 아이는 전에 없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가슴속으로 스멀스멀 몰려드는 불안감에 앙겔라는 아이의 손을 붙잡은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박사님 곁에 있어도 예전처럼 행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것 같았죠. 박사님을 짝사랑하던 때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이게 바로 외사랑 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힘없이 피식 웃는 소리에 앙겔라는 고개를 떨궜다. 아이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신경 쓴다고 신경 썼지만 아이가 느끼기에는 한없이 부족했으리라. 그동안 아무리 후회했어도 그 점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훈련에 몰두하게 됐죠. 몸은 힘들었지만 대신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끽소리도 못 내고 그 자리에 서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데, 바로 옆에 있는 박사님이 알아채주지 못하니까 원망스런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도 갔죠. 박사님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에요.”
“…아무 잘못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나.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제가 하나를 방치했다는 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하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사과했지만 아이는 말이 없었다. 잠시의 시간을 두고 아이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점점 지쳐갈 즈음에 박사님이 영화 보러 가자고 저를 찾아오셨죠.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더 컸어요. 박사님과 데이트 할 때마다 항상 호출로 끝이 났었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그 날도 그렇게 되어버렸고… 박사님이 몇 번이고 저를 돌아보면서도 의료동으로 향하는 걸 보고 생각했죠. 어쩌면 박사님을 짝사랑하던 때가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박사님과 연인 사이가 되니까 자꾸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는 거잖아요. 박사님한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차라리 아무런 기대도 없으면 마음 아프지도, 실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박사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서, 결국 아시아지부로 가기로 했어요. 박사님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저 제게 실망해서 제 곁을 떠나기로 한 줄 알았는데, 마지막까지 저를 생각해 결정을 내렸다는 아이의 말에 앙겔라는 가슴 한자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반년 간 아무리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사과했다 한들,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아이의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슬픔도 분노도 원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정리한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마치 진정한 끝을 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데 아이가 말했다.

“한 달 동안 마음정리를 하고 나서 아시아 지부로 떠났는데 박사님이 쫓아오셨잖아요. 여행하는 내내 그리워하던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원망스럽다는 거였어요. 조금만 더 일찍 저를 찾으셨더라면 헤어지기로 마음먹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었죠. 게다가 그 후에 테러까지 당했으니…… 박사님을 원망하지 않으려해도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앙겔라는 차마 이해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쥐고 있는 아이의 온기라도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손을 놓으면 이제는 정말로 영영, 아이가 제 곁을 떠날 것만 같았다. 이미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싶지만 아이의 입으로 과거의 심경을 전해들으니 차마 제게 기회를 달란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나 사령관님이 박사님의 간병을 부탁했을 때, 그간 박사님이 제게 쓴 편지를 함께 건네주셨거든요. 그 편지들을 읽으니 다 정리했다 생각했던 마음이 너무 복잡해지는 거예요. 한 달의 여행으로 박사님과 함께 했던 2년의 시간을 정리하는 건 무리였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박사님 모르게 박사님의 곁에서 정말로 다, 정리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박사님이 수술 받는 오늘이 모든 게 다 끝나는 날이었죠.”
“하나…….”
“그런데 어제 박사님이 건네준 보라색 스타티스가 발목을 붙잡더라고요. 진짜로 수술이 잘못 되었으면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

아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저는 더 이상 박사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아요.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감정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 다 털어버렸어요. 박사님과 저는 그저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박사님도 이 이상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하나, 이런 말 하는 제가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정말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겠어요? 이제부터라도 하나에게 돌려주고 싶은, 전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이대로 하나를 보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박사님에게 드릴 게 없는 걸요. 솔직히 이젠 지쳤거든요.”

아이의 음색은 정말로 심신이 고단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앙겔라는 여전히 마른 듯한 아이의 손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굳이 무언가를 제게 주려하지 말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하나. 전 뭔가를 받기 위해서 하나와 함께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일찍이 제게 그러했듯이.”
“…….”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나란히 걸어서 산책도 하고, 가끔씩 데이트도 하고… 전에는 미처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일들을 하고 싶은데… 제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겠어요?”

앙겔라는 제가 말하고도 참 염치가 없단 생각이 들어 입 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럼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냐고 탓해도 할 말이 없었다. 제 상황이 나아지고 나서야 아이를 돌아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제 손 안에서 손을 빼내지도 않았다. 아이의 온기에 작은 용기를 받은 앙겔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굴… 만져봐도 될까요?”

눈을 떠서 보고 싶지만 당분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가 눈을 감겨주었기에 그 다정함 때문이라도 참아야했다. 하지만 바로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에 그토록 그려왔던 아이가 있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잠시 침묵하다 그렇게 하라는 듯 손을 맞잡아왔다.

앙겔라는 아이의 얼굴이 있겠다 싶은 위치에 빈 손을 가져다 댔다. 곧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피부가 예민한 손끝에 와 닿았다. 조심스레 더듬어보니 턱인 것 같았다. 매끄러운 피부와 선이 가는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입술, 코, 그리고 눈자위를 쓰다듬는데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을 때는 이렇게 아이의 얼굴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잃고 나서야 더 소중히 느끼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와 닿았다. 아이가 그랬다.

“…전처럼 박사님을 대하지는 못할 거예요.”

한참 아이의 뺨을 손등으로 쓰다듬고 있는데 아이가 작은 한숨과 함께 살짝 마음을 드러냈다. 앙겔라는 얼른 말을 받았다.

“상관없어요. 말했잖아요. 굳이 무언가를 하려하지 않아도 돼요. 그동안 하나가 다가와 줬으니 이번엔 제가 그렇게 할게요. 전처럼 바쁠 일은 이제 없을 거예요. 기계 신경망을 잇는 나노머신이 개발되었으니 반드시 제가 나서야 할 일도 그다지 없을 거고요.”
“사실, 겁도 조금 나요. 박사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일을 우선시해야 할 상황은 반드시 올 테니까요.”

아니라고,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앙겔라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개인으로서의 앙겔라와 오버워치의 의무장교로서의 앙겔라는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아이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다시금 환자의 생명을 먼저 위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은 의사로 살아가는 이상 필연적인 일이었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아이가 작게 웃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노력하신다고 했으니까. 영원히 사랑한다고 해줬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졌으니까, 저도 노력해볼게요.”
“하나…….”
“밤새 생각해봤는데, 박사님을 떠난다고 해서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사람들을 구해주는 박사님이 좋기도 하고. 저번에는 너무 심했지만……. 이제는 제가 박사님에게 있어 의미 없는 사람이 아니란 건 알았으니까요.”

아이가 그렇게 말하고서 앙겔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온기를 찾아 품 안을 파고드는 작은 동물을 떠올리며 앙겔라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문득 평소 맡았던 아네모네가 아닌 다른 꽃향기가 났다. 스타티스 향이었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꽃말을 아이는 무사히 알아들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짧게 네, 하고 대답했다. 미안했어요, 하는 말에도 아이가 네 하는 대답을 했다. 사랑해요. 착실하게 돌아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앙겔라는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한마디를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이 말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 그러나 앙겔라는 저를 힘주어 끌어안는 온기에 희망을 품었다.

다시 한 번 행복해지기 위해 제 손을 다시 잡아준 아이를 이번에는 결코 배신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말 한마디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던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앙겔라는 마음을 담아 사랑을 속삭였다. 계속, 계속. 목덜미가 젖어들 때까지.





끝.







사족)

일단 늦게 글 올려서 정말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앙겔라가 죽고 하나가 편지를 읽는 것 외엔 다른 전개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짜내느라 오래 걸렸어ㅠㅠ

앙겔라를 굴려야하는데 그럼 피폐물로 갈 것 같아서 벤츠 하나가 감싸안는 걸로 끝냄 ㅠㅠ
사이다 전개를 기대했던 갤럼이 있다면 사과할게. 미안.

아무튼 모자란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즐거운 하루 되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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