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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희희낙락 3.txt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2.02 02:03:08
조회 854 추천 2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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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모음 링크.


 2부 1편, 2편.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푸른색 천 쪼가리. 민희는 다른 소파에 널브러진 그것을 집어 은희에게 던졌다. 어떻게든 입어 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은희. 


 약기운에 몸이 무거워서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해,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민희가 입혀주었다. 또 다시 멍해진 동태 눈깔로 쳐다보기에, 민희는 으르렁거리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은희는 그때마다 벌벌 떨며 미안하다고 민희에게 빌었다. 


 가까스로 옷을 다 입혔을 때는 이미 몇 분이 지나간 후였다. 민희는 은희의 손을 잡고 문을 열려했다. 그 느낌이 마치 손이 아니라 상처 입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쥐는 듯 했다. 


 은희는 슬리퍼를 신고 민희를 따라가려 했다. 약기운이 온 몸에 퍼진 것인지 은희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은희는 자신의 시야가 흐려지면서, 동시에 얼굴도 같이 달아올랐다는 걸 느꼈다. 민희의 팔을 어설프게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부들부들 사시나무처럼 떨기를 반복했다. 


 민희는 자신의 어깨에 은희의 팔을 걸었다. 부축을 해주니 그래도 조금 걸을만한 것인지, 은희는 느릿느릿하면서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병신... 가지가지 한다.”


 “미, 미안.”


 민희의 냉소적인 말에 은희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한심했다.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머리를 보면서 은희는 예전과는 다른 위화감을 기억해냈다. 


 “민희야.”


 그 위화감에 은희는 말을 꺼내려 했다. 


 “왜.”


 “아, 아니야.”


 그렇지만 은희는 말을 억지로 끊었다. 


 대신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민희의 귓가에 내려 앉았을 뿐이다. 은희가 하려던 말은 사실 별 거 아니었다. 단순히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꺼낼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키가 좀 컸다는 말이 혹시라도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민희는 은희의 말이 내심 궁금했지만,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보단 일단 이곳에서 먼저 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민희는 은희를 부축한 채로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민희가 문에 힘을 주자, 그제야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활짝 열렸다. 


 청색 데님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 민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같이 신은 검은색 로퍼가 민희의 눈에 인상적이었다. 이미지상 이런 곳과는 안 어울리는, 그런 코디였다. 


 민희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닌데 여자는 그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다. 민희를 올려다 보는 그 모습이 해바라기 씨를 입에 문 햄스터와 비슷했다. 여자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아, 죄송.”


 여자의 데면데면한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민희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뭘 훔쳐 듣겠다고 저러고 있었던 걸까. 민희는 그 이유를 몰라도 좋으니, 빨리 떠나가고 싶었다. 


 그보다 먼저 여자는 주저앉은 상태로 은희의 손을 잡았다. 은희가 고개를 떨궜다. 여자는 은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달 전의 기억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다. 뭘 잘못 먹었는지, 그것도 아님 처먹은 게 없는 건지 안 그래도 조막만한 얼굴이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언니라는 저 새낀, 여기 오자마자 애한테 처먹인 게 약이랑 술이냐. 좆나 악마 같은 년. 아니, 악마보다 더 한 년.  


 “아영 언니....”


 은희가 눈을 피하면서 이름 하나를 중얼거렸다. 여자의 이름이었다. 아영은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은희의 얼룩진 마음속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같은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희는 아영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녀는 가게에 저당 잡힌 빚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영은 별 다른 차별 대우 없이 은희를 대해주었다. 


 한편 은희의 중얼거림을 들은 민희의 속에선 뜨거운 게 올라왔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그 만남을 자꾸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민희는 살짝 짜증이 일었다. 이젠 추억으로 바래진 예전의 기억조차 자꾸만 떠오르는 민희였다.  


 저 사람이 누구길래,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걸까. 성씨도 빼고. 나한테는 죽어도 남민희였던 주제에.   


 “너도 가?”


 아영이 은희의 한 손을 두 손으로 덮었다. 어린 아이라고 불릴 나이는 한참을 지났는데도, 은희의 그 손을 아영은 고사리 같은 손이라고 느꼈다. 뼈와 살가죽만 남은 것처럼, 손바닥과 손등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이 아영은 가슴에 아프게 다가왔다. 


 “대답하지 마.”


 민희는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은희를 끌고, 아영인지 뭔지 하는 저 사람도 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간신히 일으켜 세운 은희가 또 다시 망가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민희는 그 검은 마음을 꾹 참았다. 


 “호구 하나 물어서... 좋겠다.”


 “아, 아니에요. 어, 언니...”


 민희를 바라보며 하는 아영의 말에 당황하는 은희. 차마 그 말마저 씹을 순 없었던 모양이다. 민희는 그냥 다 때려 부술까,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아영은 자신의 가방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 그대로 은희의 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간지러운 느낌과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은희는 손을 빼려 했지만, 아영은 은희의 손을 꾹 잡고 꿋꿋이 볼펜을 놀렸다. 


 은희의 손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아영은 그게 내심 마음이 쓰였다.   


 “갈 곳 없어지면 여기로 연락해~”


 기어코 다 적은 듯, 아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은희의 등을 쳤다. 전화번호였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게, 아영의 핸드폰은 아닌 듯 했다. 아영은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민희는 은희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몇 개의 룸엔 사람이 들어갔는지,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럴 때마다 은희는 흠칫, 흠칫 떨었다. 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은희의 손을 꽉 잡았다. 


 자신이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불안감에 꽉 잡았는지... 그것은 민희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잡은 손을 더 이상 놓고 싶지 않았다. 


 카운터엔 ‘언니’도 없고 깍두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은희는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다. 은희의 그 모습이 민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자신인데, 혹시나 아영이란 그 사람을 또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바람은 송곳같이 날이 섰다. 에일 듯 아려오는 살갗에 은희는 팔을 웅크렸다. 그러나 칼날 같은 추위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몇 걸음 뒤 은희의 몸은 약이 아닌 다른 이유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정신이 멀쩡해진 건, 그나마 민희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반면 은희가 떨고 있는 것을 민희도 몸으로 느꼈다. 부축을 해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하다가, 결국 민희는 자신의 롱코트를 은희에게 입혀 주었다. 그러자 은희의 눈빛은 놀람으로 물들어갔다. 민희는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어서 걸음걸이에 잔뜩 힘을 줬다. 


 정장 하나만을 걸치고 있으니, 이번엔 민희의 몸이 추위로 떨려왔다. 은희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시 벗어주려고 했지만, 이번엔 민희가 그것을 막았다. 


 “어차피 버스나 택시 타려면... 너 그거 입고 있어야 돼.” 


 “괘, 괜찮...”


 “제발. 니 꼴 좀 봐.”


 민희의 말에 은희는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 원피스가 맞긴 한 걸까 싶은 옷 쪼가리에 은희는 황급히 롱코트 자락을 여몄다. 


 “어차피 버스 타려면 길가 쪽으로 나가야 돼. 네가 입고 있어,”


 민희는 잠깐 멈춰 서서 코트에 달려 있던 단추를 그대로 잠가 주었다. 


 은희의 얼굴이 붉다. 추위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민희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민희는 살짝 손을 움직여 은희의 볼을 만졌다. 은희의 볼은 마치 추위 속 손난로를 만진 것처럼 따뜻했다. 


 은희는 민희의 차가운 손을 이리 저리 피했다. 닫혀 있는 그녀의 눈썹이 살짝 떨려왔다. 그런 은희의 모습에 민희는 그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추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였네. 

 



 두 사람은 간신히 버스를 잡아탔다. 


 택시를 잡아탈까 하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가 단숨에 와버려서 그냥 타버렸다. 어차피 길어도 40분이면 가는 거리였고, 퇴근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 막히는 구간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뭐가 예뻐서 택시를 잡아 태운단 말인가. 한 순간에 오천을 잡아먹는 돈 귀신을 제 손으로 들였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출을 크게 했으니 당분간은 좀 아껴 살아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민희와 은희는 왼편 좌석에 같이 앉았다. 은희가 창가 쪽이었고, 민희가 출구와 가까운 쪽이었다. 정신을 차린 은희가 도망칠까 싶어서, 일부로 안쪽으로 밀어두었다. 그러나 은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은희는 멍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흘려보냈다. 오늘 일어난 일이 그녀는 아직도 어리벙벙하기만 했다. 익숙한 지명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나갔다. 


 이 방향으로 가면 분명 예전에 살았던 동네가 나올 것이다. 남민희는 아직도 거기 살고 있는 걸까.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민희. 그런 그녀의 손이 은희는 아프게만 다가왔다. 


 “차은희.”


 민희의 목소리가 은희의 상념을 깼다. 은희는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에 민희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야, 누가 너 잡아먹어? 뭘 그렇게 놀라.”


 “아, 아니야. 아닌데.”


 은희의 말은 끝을 찾지 못하고 흐려졌다. 그녀는 민희를 대하는 게 어색했다. 더 깊게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이 현실감이 없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민희의 모습 때문에 그랬고, 이렇게 ‘언니’의 곁을 떠나온 상황 때문에 그러했다. 


 “너 신발 몇 신었지?”


 정말 뜬금없게도, 민희는 그런 것을 물어보았다. 아무런 느낌 없는 평탄한 목소리에 은희는 순간 저런 것을 왜 물어보나 싶었다. 


 “245....”


 은희는 키가 커서 그런지 발 사이즈도 약간 큰 편이었다. 어렸을 적엔 살짝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그만큼 키도 커서 그렇게 돋보이는 문제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은희의 발 사이즈를 듣더니 갑작스레 민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등받이에 등을 댄 채, 민희는 눈을 감았다. 눈 마주치고는 못 할 말 같아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신발도 새로 사야겠다.”


 민희는 말했다. 그 목소리에 은희 또한 자신의 발을 보았다. 민희는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발 많이 상했네.”


 발에 맞지 않은 큰 슬리퍼를 꾸역꾸역 신었던 탓일까. 은희의 발 이곳, 저곳에 상처가 참 많이도 났다. 엄지발가락이 있는 쪽엔 이음새가 맞닿았는지, 피부가 잔뜩 곯은 상태였다. 그런 상처가 나는지도 모르고, 은희는 그 겨울 날 참 많이도 도망쳤다.   


 “뭘 잘했다고 울어.”


 민희의 타박에도 은희의 눈가에선 눈물이 차올랐다. 룸 안에서 한참을 울었는데도, 눈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눈물을 계속, 계속 흘려보냈다. 은희는 오른 쪽 팔을 들어, 자신의 팔뚝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아니, 그게... 미안.”


 “너 진짜 미안이란 말 한 번만 더 하면 그땐 입 꿰매버린다.”


 서슬 퍼런 민희의 말에 은희도 말을 뚝 끊었다. 대신 히끅하며 눈물 참는 소리가 버스 안에 가득 찼다. 버스 안에 그들 말고는 사람이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은희의 눈물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버스 기사는 라디오 소리를 더욱 높였다. 커진 라디오에선 철 지난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은희의 울음소리와 가수의 청아한 음색이 섞인 채로 버스는 어둠을 헤치고 굴러갔다.


-


아.


전기장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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