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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무협] 친절한 납치, 상냥한 감금 (1)

synar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2.12 14:18:19
조회 1053 추천 27 댓글 16
														

강해져야 했다. 강해지려면 무공을 수련해야 하고, 그러려면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자고 쉬고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 시간마저 아까웠다.


그래서 유소월은 자지 않고, 쉬지 않고,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 검을 들지도 못하게 된 다음에야 자고, 쉬고, 먹고, 마셨다. 그리고 또 검을 쥐었다. 


목숨이 말라 비틀어졌다. 그럴수록 검은 날카로워졌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 오늘 강해지면 내일 죽어도 좋다. 같은 길을 걸었던 선인(先人)들의 말을 되새기기를 삼 년. 소월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이루었던 경지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다. 누덕누덕 해진 삼베옷을 입고 날이 빠진 칼 한 자루를 든 채로. 피가 이어졌으나 가족은 아니었던 이들이 소월을 가로막았다. 겨누어진 칼끝 중 하나가 그녀를 힐난했다.


"천것이 가묘에 발을 들이는구나."


또다른 하나가 설득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죄는 묻지 않겠다."


마지막 하나가 부탁했다.


"소월아, 칼을 거두어다오. 너 역시 유씨세가의 사람 아니냐."


소월은 비뚜름하게 웃었다. 천것이기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죄를 묻는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유씨세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스스럼없이 그들을 베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므로.


소월은 쓰러진 이들을 뒤로 하고 아버지의 묘 앞에 섰다. 검을 들었다. 유씨세가의 검법, 팔만사천검법(八萬四千劍法)과 닮았으되 닮지는 않은 자세를 잡았다.


"삼절마검(三絶魔劍)이라 합니다."


눈 앞에 아버지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상상 속의 아버지가 검을 휘둘렀다. 소월은 상상 속의 공격을 막았다. 상상 속의 아비를 베고 찔렀다. 삼절마검의 초식은 단 세 개뿐이다. 그 세 초식을 남김 없이 선보인 다음, 소월은 말했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천한 시녀의 배에서 나온 제가, 아무도 완성하지 못한 검법을 완성했습니다."


팔만사천검법에서 필요한 동작 세 가지만을 남겼다. 누대에 걸쳐 내려온 유씨세가의 숙원을 그녀가 이루었다.


"아버님께서 하셨던 일은."


아버지는 혈통과 재능에 집착했다. 그렇게 '만든' 오라비에게 영약을 먹였다. 강호 명숙들에게 오라비를 데려가 가르침을 청했다.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습니다."


아버지의 하룻밤 장난질로 태어나, 오라비의 경쟁자로 길러지고, 필요가 없어졌을 때 힘줄이 끊어졌으며, 다른 가문에 첩으로 팔렸던 소월이, 가문의 검법을 완성했으므로.


평생 속에 담아 왔던 말을 했다. 그런데 뱃속을 꽉 채우고 있던 것들을 토해내고 나니 가슴속이 허전했다. 심장이 뽑혀 나온 듯한 기분에 소월은 가슴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심장이 제자리에서 힘겹게 뛰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 희미한 고동을 파고들었다.


"잘 지냈어요?"


그 순간 잠들어가던 심장이 눈을 떴다. 소월은 칼 쥔 손에 힘을 주고 몸을 돌렸다.


가묘 입구에 버드나무처럼 키 큰 여인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틀어올려 구름 무늬 비녀를 꽂았고, 적갈색 눈동자가 단아하게 빛났다. 위아래가 한 벌로 만들어진 비단옷이 몸의 곡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인보다는 기녀에 가까운 차림이었지만 소월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저 여자가, 진예경이 얼마나 악랄하게 사람을 괴롭히고 부술 수 있는지를. 


소월은 여러 해 동안 예경에게 부서지고 괴롭힘당했다. 자연스레 목소리에 존경이 어렸다.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스승님."


예경이 답했다.


"날이 상했네요."


그녀는 소월의 검이 아니라 소월의 눈을 보았다. 소월은 그 시선을 피했다.


"제자를 벌하러 오셨습니까?"

"하긴 당신이 한 잘못이 많긴 하지요. 구해줬더니 제자로 받아달라 했고, 제자로 받아줬더니 비급을 훔쳐 읽었죠. 어차피 가르칠 것이라 용서해준 다음에는 허락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고.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들 하니, 벌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네요."


할 말이 없었다. 소월은 아랫입술을 사려물었다. 그러자 예경이 빙긋 웃었다.


"걱정할 거 없어요. 벌하러 온 게 아니라……."


몇 해 전, 소월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부술 때처럼 비릿한 미소였다.


"납치, 감금하러 왔으니까."





==========================



념글 "착한 감금이 보고싶다" 보고 삘이 막 와서 무협백합 버전으로 어레인지했어요.



근데 써놓고 보니 무협백합이 아니라 무협백합인 거 같고....


인기 없을 거 같다...


다음화가 보고싶으면 덧글을 달아주세요 쨔란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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